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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03년11월11일_일요법회_경산종법사퇴임법문_김제원교무님설법.hwp
◆ 원기 103년 11월11일 일요법회 <경산종법사 퇴임법문>
◆ 설 법 : 보산 김제원교무님
◆ 타이핑 : 일반7단 이제선
오늘 이제 기도 시작인데요. 저희 교당을 제가 어떻게 했었냐면. 저는 사실 학사 때문에 1000일 기도 이렇게 할까 말까 하다 안 했습니다. 그 대신에 매월에는 월초 기도가 있고요. 그 다음에 이제 음력 정초가 되면 음력정초특별기도를 했었고, 그 다음에 부처님오신날 즈음해서 관등특별축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이제 좀 마음이 풀어지기 쉬울 때가 이때입니다. 대신에 수행하기는 참 좋은 시절이 죠. 단풍 구경하기도 좋은 시절이구요. 이때 그러면 한번 기도로 다시 함축해보자~ 이런 의미에서 했는데. 저는 기도 기간도 길지 않습니다. 오롯하게. 그런데 마침 대입 수능이 이때쯤 있어요. 임용고시가 좀 뒤에 있고. 그래서 이 때 맞춰서 항상 기도를 해왔습니다.
이번에 기간이 되게 짧네요. 5일간 인가 이렇게밖에 아닌거 같은데, 맞아요? 예~ 오늘 결제를 해서 5일간 오롯하게 새벽 5시 반하고 오전 10시에 이렇게 할 겁니다. 그래서 정~ 못 오겠다 하는 사람은 집에 하세요. 기도문을 카페에 올려드릴 겁니다. 또 단중 카톡에 올려드릴 겁니다. 그러나 가능하신 분은 여기에 오셔서 함께 기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제 제가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할 말이 많아. 그 동안에는 인제 내가 꾹 참았거든. 예를 들어서 누가 생일이다 그러면 떡만 내. 그러면 안 돼요. 뭐를 해야 하냐. 반드시 법신불 전에 먼저 기도를 하고 기도비를 내고, 그리고 우리 대중 공양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그 동안 참아왔어, 이때 할라고. 누가 회갑 이다, 누가 진급했다 승급했다 그러면 반드시 법신 불전에 기도와 아울러서 기도비를 내시고 대중공양도 같이 하시면 음과 양의 불공에 맞다! 그런 생각을 가졌는데, 여태 참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앞으로 대중공양만 사람은 어떻게 할까? 항상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법신불사은님은 그런 위력에 항상 감사하고 또 거기에 기도하는 우리 원불교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칫 마음공부 마음공부 그래가지고 현실의 내 마음만 바라보고 또 내가 대하는 사람만 잘 하면 된다~ 이런 그 얄팍한 수준의 원불교 마음공부가 아니다, 그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주에 이제 영상으로 보셨는데, 제가 오늘 생각해보니까 한번 더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오늘 시간을 하고자 합니다. 이번 특별 죽은 기도에 하여간 특별한 일 아니고는 같이 해주세요. 같이. 기도를 혼자 집에서 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오셔서 하시면 좋습니다. 제가 뭐 기독교 이야기 안 해도 되죠? 저 숙대 옆에 기독교는 매일 새벽에 대전에서도 올라옵니다. 2000명이. 그래서 기도를 합니다. 거기는 일 년 내내 해요. 그런데 우리는 상시가 중요하니까 기도를 가끔한다. 그래서 이 때라도 응축해가지고 그렇게 해줘. 이제 내가 너무 배려를 많이 해주는 가, 확 그냥 50일씩 100일씩 해버렸어야 하는데 그냥. 내가 그냥. 짧게 하는데도 모른체한다 그럼 아니다 그 말이에요.
자, 제가 법문을 그대로 다 읽을 것은 없을 것 같고요. 먼저 역사적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 대산종사님께서 이제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것은 퇴임을 하시고 12년 전에~ 아니죠, 24년전 이네요. 24년 전에, 그때 많이 뵜을 거에요. 대산종사님께서 퇴임을 하시고 이제 좌산님께서 취임을 하셨죠. 그러니까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그 다음에 대산종사님 그 다음에 이제 좌산님이었습니다. 그때 피치로 내 걸으신 것이 뭐였죠? 뭐였어? <맑고 밝고 훈훈하게> 를 내 놓으셨어요. 결국은 맑고 밝고 훈훈하게는 원불교의 수양 연구 취사를 대중의 한 언어로서 쉽게 표현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12년간 하시고, 원래 더 하셔도 되는데 당신이 100주년을 맞이할 종법사가 새로 하는게 좋겠다~ 준비할 사람이.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만류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양 하시고 후래에게 넘겼죠. 그래서 이제 경산종법사님이 되셔가지고 대사식을 12년 전에 영묘전 광장에서, 그때 마침 대선기간이여서 막 대선 후보들도 다 와서 앉아있고 그리고 참 멋진 잔치가 이루어졌었습니다.
그때 이제 좌산님께서 내리신 법문이 무슨 법문이냐면 <살신성인>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퇴임 법문에 살신성인. 내 몸을 죽여서 어떤 것을 인을 이룰 수 있다. 즉 몸을 죽인다는 것은 내 욕심을 죽인다는 거죠. 내 욕심을 제어해서 반드시 인을 이룰 수 있다 하는 마지막 퇴임 법문을 우리 좌산님께서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 새로 올라오시면서 경산종법사님께서는 무슨 법문을 하셨죠? 예~ <도미덕풍>이다. 도의 맛 그리고 덕의 바람. 도미덕풍을 기치로 내밀고 여러분들 족자도 옛날에 막 하고 선물도 다받으셨을 거에요. 그래서 이제 뭐 경륜은 제가 생략하겠습니다. 약 12년간을 이렇게 하시고.
이 교헌 상에 종법사 후보는 출가위여야 하구요. 그리고 74세 이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수위단원들이 종법사를 선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는 선거에 참여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전산 김주원종법사님께서 되셨는데, 원래 퇴임하셔야할 나이입니다. 원로로 가셔야 하는데 원로를 못가고 꽉 잡힌 거죠. 벼락 맞으신 거에요, 그 양반도. 예. 그래서 하셨는데, 이제 대사식이 지난주에 있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지난주의 대사식은 약간 좀 변화를 준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오프라인에서 대중이 모여서 한 대사식이 온라인을 통해서 영상을 통해서 전체가 함께 하도록 하겠다. 즉 시대의 변화를 예고했던 겁니다. 그래서 함께 영상을 통해서 즐기자 했던 겁니다. 그래서 어느 교당은 만세 할 때 있잖아요. 일어나서 같이 만세도 했다는데 우리는 안했어? (했어요) 우리도 그랬어? 음~ 잘 했어요. 뭐 우는 사람도 많았구요.
하여간 사실은요. 종교 역사를 공부해 보면, 당대의 제일 위가 돌아가셔야 대게 넘어갑니다. 종교가는 그렇습니다. 대체적으로. 근데 원불교는 이 대사식과 상사라는 제도를 둬서 지금 상사님이 좌산님. 그리리고 경산님이 상사님이 되신. 이제 상산님이 떼로 계실랑가도 모르겠어. 하하하하. 왜냐하면 출가위가 되면서 74세 이하가 후보가 되면 앞으로 6년 밖에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앞으로는. 그래서 지금 정년 연장을 하려다가 못했어요. 구조조정 하면서 하려다가 대중이 ‘젊은 우린 어쩌라는 거냐 ’ 이래서 정년 연장을 못해 가지고, 앞으로는 아마 12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6년 밖에 안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장 우리 전산님은 교헌 상에 6년 밖에 못 하십니다. 그래서 아마 대중의 어떤 것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인지하는 시간을 좀 줘야 하는데 그렇게 했다가 6년간에 이 전체를 변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 기다릴 시간이 없이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염두에 두실 필요가 있고.
제가 뭐 맡은지 아시죠? 우리 한울안신문에 안 나왔어요, 저. 가지마라 그런가봐.
교정원에는 교정원장님이 계시구요. 이 분은 대외 업무를 보십니다. 그리도 대내 업무는 제가 책입자입니다. 부원장으로써. 교화부원장으로 해서, 교화부훈련부장도 하면서 각 부서를. 재무부는 따로 있구요, 재무부는. 구조가 이렇게 되죠. 보통 기업은 재무 총무 이렇게 해서 관계가 되죠. 그런데 원불교는 총무가 교화 밑으로 오고, 교화가. 왜냐면 종교집단이기 때문에. 재무와 교화. 재무도 결국 뭐 하자는 거예요? 돈이 어떻게 해야 들어와? 사람이 모여야 돈이 들어오지. 어떤 사람이 모여야 해? 응? 마인드. 교화가 되어야지 돈이 되지. 그렇죠? 지금 우리 교단이 반백주년 기념대회 이후에 사실은 좀 정체돼 있고 감소된 부분도 있습니다. 이 좋은 법을 시대의 흐름에 의해서, 또 여러 가지 여건에 의해서 많이 이렇게 돼서 상당히 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총부 예산이 계속 삭감이 되고 있고 특히 젊은층 교화가 어려운 점이 있고. 그래서 제가 사실은 어깨가 되게 무겁기도 하고 그런 상황입니다.
이제 종법사님 법문으로 들어가 보면, 앞에는 생략하고요. 경산님께서 종법사님을 하시면서 표준삼고 있는 것이 이것이었다는 것을 퇴임법문으로 해 주신 것입니다. 종법사님 것이오 그게 아니라 우리도 충분히 저렇게 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갖고 같이 한번 생각을 해보면 좋겠어요.
자 저기 보면, 그 표준의 실천을 첫째를 뭘 두었어요? 신앙. 신앙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부처를 이루는 자양분이다. 그리고 법력을 얻는 기초공사다. 그래서 우리에게 안심을 주고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준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죠. 그래서 깊은 신앙은 진리에 눈을 뜨게 해준다. 그리고 교단을 하나로 만들며 일체 생명을 구원하는 위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스승님과 법신불사은 전에 대합일하게 하는 성자의 길이 바로 신앙이다.
우리 교법 상에 보면 정전에는 개교 동기에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 이렇게 나와 있죠. <진리적 종교 신앙> 이렇게 돼 있고 또 정전에 일원상의 수행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신앙하는 동시에 수행의 표본을 삼아> 그러니까 신앙과 수행을 쌍으로 나가되 기초가 뭐냐? 근간이 신앙의 바탕 하의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재주가 그래 재주가. 덕에 바탕한 재주여야 해요. 잘못하면 재승박덕이 돼. 재주가 승에서 덕이 박하게 되거든. 덕의 바탕 하에 재주가 돼야지, 덕이 없는 사람은 그 재주가 나중에 칼이 되기도 하고 다시 자기를 향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것은 뭐냐면은. 어떤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선과 후가 있구요, 본과 말이 있고, 주와 종이 있어요. 그리고 시작, 시와 종이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것을 구분을 잘 못 하셔. 예를 들어 드릴께. 우리 청년 한 놈이 “교무님~ 원불교, 영육쌍전이라고 했잖아요. 도학 과학 병진이라고 하던데요. ” 그리고는 교당 법회를 빠져. 병진이 라고 했으니까. 지금은 뭐할 때다~ 이 말이여? 도학을 할때다 이 말이여. 아 우리 교도님 엄마가 고등학교에 올라간 아들한테 “야! 원불교 도학 과학 병진이라고 했다~공부해 일단, 공부!” 그래가지고 교당을 안오게 만들어. 이것은 교법의 이해를 잘못한 거예요. 무슨 이야기냐~. 당장 배고픈 사람한테는 뭐가 중요해? 밥이나 빵을 줘야지! 그때 뭐 일원상서원문이 뭔 소용 있어. 그 놈의 것이. 그렇지만 여기[主]가 영(靈)이고 도학이여, 여기[從]가 뭐여? 육(肉)이고 과학이여. 이렇게 다 해서 쌍전이여. 이해가 되십니까? 요 구분을 잘못하면 자기가 갔다 합리화하더라고~ 이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까. “교무님~~ 뭐 대종사님이 쌍전하라고 했는디요?” 쌍전은 쌍전이지만 쌍전 안에는 뭐가 있어? 분명히 주와 종이 있더라. 그리고 시(始)와 종(終)이 있더라. 시와 종. 이것도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우리가 시작은 신앙으로 들어가지만 또 한편으론 종(終)이 뭘로 들어 가냐? 무아봉공으로 나오는 거예요, 원불교 교리는. 불법시생활이고 무아봉공으로 들어가.
우리 훈련도 정기훈련으로 들어가, 그래가지고 어디로 나오냐? 상시 응용 주의사항으로 종(終)이 나오는 거예요. 이해가 되세요? 이 시종(始終)과 주종(主從)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벙벙해가지고 좋은 게 좋은 것이다~ 하고 자기 합리화할 데가다 딱딱 붙여. 그러면 안 된다 이게.
우리 신성품에는 이 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죠. 첫째가 신은 뭐다? 법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쬐깐하면 다 넘쳐버려. 신이 먼저 기초여. 신이 먼저 기초에 힘이 되어야 법을 담을 수가 있는 거예요. 법을. 신이 적으면 나중에 지 꾀에 넘어가. 누가 쏙닥쏙닥 딱 한마디만하면 넘어가 버리네. 너만 알아라 이랬단다, 그러면 법문 1시간 들었어도 저리 다 도망가버리고 단 몇초만에 끝나버려 그냥.
그리고 신이 있어야지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까 뭐냐면 철학은 의문으로 들어가서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그러나 이 신앙의 세계는, 종교라는 것은 먼저 신에 바탕해서 ‘그러면 왜 그러지?’ 하고 들어가는 것이 ‘의두’ 예요. 그래서 신분의성에서 신분‘의!’지. 아는 만큼 믿겠다? 이건 멍청이거든. 먼저 지가 어떻게 불생불멸의 자리를 알아? 어떻게 지가 성품자리를 알아? 어떻게 인과를 알 수가 있어?! 먼저 신(信)을 해라. 왜? 저 스승이 나를 속여먹진 않겠지. 그러니까 대종사님 당대에 “야! 안 난폭 잡아라~ ”이생에 안 낳은 폭 잡으란 말이지. 왜? 내 법이, 부처님의 이 법이 확실한 진리다. 니가 아직 모르지만 먼저 믿고 출발해라. 그러면 ‘왜 그러지?’ 하고 그것을 확인해 들어가는 것이 의심의 원동력이여. 그러니까 신은 이 신을 통해서 의심의 원동력이 들어가야 한다 그 말이여. 이해가 되시죠? 내가 한번 설명 드렸죠? 처처불상이 라고 해서- 내가 볼 때는 제 새끼가 그냥 부처님도 아닌데 어떻게 부처님여~ 그 얄미운 놈이, 저 도둑놈 같은 놈이. 근데 어떻게 부처님일까? 하는 저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니까 대종사님 말이 틀리고만! 이것은 불신이야. 근데 대종사님 말이, ‘아 저게 부처님이다. 내가 볼때는 부처님 아닌데!’ 그러면 부처란 무엇인가? 하고 의심의 들어가 줘야지.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아하~ 부처에는 정화신불이라는 부처님이 있고 즉 제불제성의 심인을 말해. 그리고 편화신불 이라는 게 있구나. 즉 일체 중생에 본성 자리를 말해. 편화신불이 있구나! 그것을 이제 스스로 체득해 들어가는 거야. 아~ 그래서 처처불상에는 이렇게 무조건 내가 생각하는 부처님만이 부처님이 아니라 이런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자기가 깨달아! 얻어 들어가야해! 이것을. 그래서 신이라는 것은 의심의 원동력인 거에요. 근데 이 신이 의심과 연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 이제 맹신으로 들어가. 맹신으로. 즉 이 신이 앎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깨침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실행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하나의 관념이요 맹신이예요. 이 신을 깨침과 어떤 해득으로, 오득으로 들어가 줘야 해요. 그래야 비로소 온전한 신앙이다 그것이.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신은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다.
그래서 공덕 중의 최고 공덕이 뭔 줄 아세요? 최고 공덕이 무엇인지 알아? 신심이 없던 사람을 신심나게 해주는 것이 최고 공덕이라 그랬어. 최고 공덕은. 그 제가 원불교 기관을 운영하는 교무님들, 저도 기관을 운영 해봤지만, 정말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 기관의 직원들보다 2배에서 3배를 해야 고개 숙입니다. 교무님이라고 호칭을 ‘님’자를 확실하게 우러나와서 해줘요.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안 해. 그래서 우리 기관의 교무님들 정말 어려워요. 고개 안 숙입니다. 그런데 잘못해버리면 그 원불교 기관에 근무하는 재가 교도로 하여금 영원히 원불교에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어요. 교화하자고 벌여놓은 기관에서 실망을 해서 원불교를 떠나게 된다면 얼마나 그게 참 안타까운 일이냐 하는 거에요.
이 신에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력에 대한 신이요 하나는 타력에 대한 신이 있다. 내가 설명 드렸어요, 정전 할 때. 근데 맨 먼저 자력이 중요해? 타력이 중요해? 시작은 타력으로 들어가고 근본은 자력인 거예요. 이것도 잘 아셔야 해요, 여러분들이. 이해가 될랑가 모르겠네요. 나 시간이 없네~. 시작은 타력으로 들어가!
타력도 네 가지가 있어. 하나는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이여. 여기서 또 출발이 누군지 아세요?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 중에? 첫째가 스승입니다. 스승이 있어서 있던 진리를 깨치셨고, 스승을 통해서 그 법이 나오게 됐고, 스승을 통해서 그 회상의 열리게 된 거예요.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항상 시와 종과 주종 구분을 잘 하셔야 해요. 그래가지고 그 중에 스승을 믿는 것이 가장 타력에 있어 출발지입니다. 그래서 이 스승을 통해서 진리와 법과 회상으로 연결돼 들어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그래. 나는 이 법은 믿겠다 진리는 믿겠다, 그런데 이 회상은 내가 갸우뚱! 스승을 믿지 않으면서 진리를 믿는다? 어불성설이다. 말이 안 된다~ 그건. 시작이 스승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신성품 1장에 보세요~ 뭔 이야기인지. 첫째 스승님으로부터 말합니다. 신성품 1장은 스승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와요. 그러면 왜 그러냐? 이 신이 없으면 이 법을 담는 그릇이 작아가지고 지 마음대로 지 마음대로 판단하고 계교하고 그래서 여기서 중근병에 걸리는 거예요. 100명이 달라 들면 이중근 병을 통과한 사람은 몇 명 안 됩니다. 손에 꼽아 버립니다. 다 지 꾀에 지가 넘어갑니다. 왜? 그릇이 작기 때문에. 원력이 작기 때문에 그래요. 그릇이 작고 원력이 작으면 중간에 다 지 꾀에 지가 넘어가서 떨어져나가는 거예요 이게.
주와 종에서 타력은 주가 아니여, 종(從)이여. 사실은 주는 뭐예요? 시작은 타력이지만 주는 뭐여? 자력이거든. 이게 자력신이여. 내 안에 나는 본래 일원상이라는 부처님이, 내 안에는 본래 원망구족 지공무사한 본좌구족한 일원상이 내 안에 있다는 이것만 가져도요, 이것만 확실하게 믿어 버려도, 어떤 외부의 경계가 와서 내가 힘든 경계가 와도 자기 생을 마감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와도 자기 스스로 자학하지는 않습니다. 되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바로 법신불일원상이라는 사실. 어떤 나여? 이 얄팍한 나가 아니라 본래 참 내 안에 본래 면목이라 그러지. 이게[얼굴]이 면목이 아니라 본래 면목이 따로 있어. 이게 낯바닥 말고 본래 낯바닥이 따로 있다고. 그걸 본래 낯바닥이라고 해요. 그것이 내 안에는 본래 원만구족 지공무사하게 다 갖추어져 있다는 신. 이것이 자력의 신이에요. 이것이 주여.
그래서 법문에 보면 대타 불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공식이, 불공의 공식이 자신불공이라 그러셨어. 이게 이기적 자신불공이 아니라 이 안에 자신불공, 즉 나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누구를 사랑할 수 있냐는 거예요. 내가 지금 아파 죽겄는데 어디 가서 세계 일을 해요. 자신 불공을 왜 해야 하냐? 자신이 부처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타 불공을 잘하기 위해서도 그런 거예요. 나하나 잘 먹고 잘 살자~ 해서 자신 불공을 하자는 것이 아니죠, 이게.
그래서 우리가 스승님에 대한, 타력신의 출발지가 스승님인데. 그러면 스승님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냐?
백지장을 내밀으란 말이죠. 어떤 사람은 지가 다 써 갖고 내밀어. 나 이렇게 할라요~! 내가 할 말이 없어 그러면. 백지장을 내밀어라. 왜? 스승이라는 분은 그 과정을 다 거쳤던 분이에요.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뭐라고 뭐라고 했 싸. 그러면 다 알지. 우리 아버지 학교선생님 하셨잖아요. 딱 담임 맡아 딱 들어가면 1등부터 꼴등까지 다 보인데. 우리 아버지가 그래 한번 나한테. 다 보인데요. 장사 많이 하신 분들 저 손님이 갈 사람인지 살 사람인지, 얼마짜리 살 사람인지 다 알거든. 내 방에 처음 온 사람들이 있어 교당에. 언제 몇 달 있다 뭔 사고치고 갈지 제가 다 알아요.
그래서 이 첫째 신앙인으로 살려면 먼저 스승에 대한 신이 있어야 하는데 스승이 시킨대로 내가 먼저 받들어 들이는 게 좋다. 왜? 손해 볼 거 없어. 여러분! 부모님 말 들어가지고 얼마나 손해 봤어? 부모님은 이 진리를 모를 수도 있고 집착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진짜 스승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나를 더 영생까지 봐줄 수 있는 그런 분이 스승이 것이예요.
그래서 이 스승하고 맥을 대준 게 뭐죠?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 인 거에요.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이여. 이게. 그래서 스승과 심신상연(心身相連)하고 심월상조(心月相照)하는, 그래서 나중에는 스승의 하는 일을 파수공행(把手共行)하는 이런 멋진 신앙인이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모시고 받들기만 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모시고 받드는 그 신앙에서 더 나아가서 함께 손을 잡고 이 세상을 위해서 한번 나아가는. 잡을 파(把) 손 수(手)자. 손을 맞잡고 공행, 함께 공(共)자~ 나아가는 그런 멋진 신앙인이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여기까지 좀 국을 좀 틔웠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 다음 두 번째 보면 <성실> 이라고 그랬어요.
저기 보시면 전심을 다하고 오매불망 실천하는 정성심이라고 했어요.
저는, 아까 신앙은 “믿어 받드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고, 이 성실은 “끊임없이” 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따라서 해보세요. 끊임없이!. 예, 정전에는 간단없이 이렇게 했는데, 요새 애들은 몰라, 뭔 말인지. 그러니까 끊임없이!
여러분~ 해가 오늘 피곤하니까 좀 늦게 뜨든가? 어? 해가 오늘 피곤하니까 좀 늦게 뜨자야! 그런 적이 있어? 이 같은 말이예요. 성자라는 분들은 정성스러운 분이 성자라 이 말이야. 그러면 그 다른 말로 기독교로 말하면 신이 뭐냐 신이? 이게 정성 신이라. 유교에는 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성즉지신이라. 다 같은 이야기예요. 여러분, 정말로 제가 볼 때는 무엇이 제일 어렵냐 할 때, 이 성인 것 같애. 참 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이 땡겨 환경이 땡겨 몸이 아프다고 땡겨, 뭐 마음은 또 어느새 작심삼일이여. 이 성(誠)이라는 게 참 어렵다. 그래서 성자들을 어떻게 보면 독종들이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독종들이 여. 왜 다른 사람은 하다가 그만 둬. 근데 우리 성자들은 그만두지 않아. 쭈욱~ 가는 거야 그냥. 따라서 해봐요~ 쭈~~~~~~~~욱! 쭈~~~~~욱! 가는 것이여. 하하하하. 가다 말다 안해. 이랬다 저랬다 이랬다 저랬다 말이지. 그런거 안한다 말이야, 그런거.
그래서 정성은 바로 진리 자체가 그러셨어. 아까 법문에 보면. 정성은 진리 자체다. 일원상의 진리 자체가 정성이다. 따로 그 양반한테 시간을 더 준 것도 아니고 따로 특별한 능력을 더 준 것도 아니여. 오직 그 스승에 대한 신을 바탕으로 해서 정성을 드린 것이더라, 이 말이여. 이게
그 다음 세 번째, <중도> 라고 표현해 주셨습니다. 중도.
아까 신앙과 정성은 우리 교법으로 말하면 신분의성을 설명한 겁니다. 사실은. 중도는 뭐냐면 이게 삼학의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은. 중도라고 표현 하셨지만. 종법사님께서 알맞게 한다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하하. 여러분, “알맞게” 가 얼마나 어려워! 나도, 누구나 다 알맞게 하고 싶어. 하하하. 하 근데 그게 되냐 말이죠 그게. 적당히 하고 착각하면 안 돼. 중간 하고 착각하면 안 돼. 이 “알맞게” 라는 건 적당히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야. 진짜 알맞게는 아까.
이 중(中)자가 원래 유가에서 희노애락미발지(喜怒哀樂未發地)를 말해요. 아직 희노애락이 발하기 전 자리는 중이라 그래요. 거기에 맞게 나타난 도예요. 그래서 그것이 쓰인 것이 이제 덕이 되는 거예요. 거기[中]에 바탕해서 그 도[道]를 쓸 때 나타나는 것은 덕[德]으로 화하게 되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중화(中和)인거죠. 그래서 삼학은 대중화력이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기 상황 상황에 수시변혁과 수시변혁 할 것이 있고, 즉 변할 것이 있고. 또 절대 안 변할 것이 있어. 우리 교단의 안 변할 게 뭘까? 안 변할게 뭐여? 저는 대종사님의 이 창립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구인선진님의 법인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리 시대가 우주로 가고 달나라로 가고 화성을 가더라도, 이 창립정신은 우리 교단에 살아 있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변 할 것이 있지. 시대에 맞게, 아까 이렇게 영상으로 대사식도 하고 이런건 변해도 돼. 그러나 그 정신! 원불교는 뭐냐? 저 일원상 자리는 원망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자리거든. 그래서 저 자리로 살자는 것이다. 왜? 나라는 존재가 본래 일원상이니까. 근데 나라는 이 작은 나가 자꾸 그것을 방해해. 욕심이 방해하고. 그래서 어떻게 되냐? 우리는 뭘로 살자는 거냐? 원만구족 지공무사하게 살자. 이걸 한마디로 말하면 뭐냐?
자 원불교는 말이죠, 일원주의라고 합니다. 일원주의는 뭐냐면, 대세계주의입니다. 그러니까 종교하나 얹은거 아니여. 그런데 그 세계주의는 결국 어떤 이야기냐면, 공도주의로 살자는 거예요. 그럼 왜 공도주의죠? 왜 공도주의죠? 나라는 존재가 본래 뭐여? 이 공(公)은 뭐라고 했어요? 공(空)에서 왔어. 비었기 때문에 전체인거예요.(空卽公). 그래서 이 공자는 전체다 이렇게 표현을 했죠. 그래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 라는 것은 이 안에 다 포함되어 있어. 무엇이 나여? 무엇이 나여? 이게[몸] 나여? 이건 나의 소유일 뿐이야~ 잠깐에. 진짜 나는 나랄 것이 없어. 그래서 모두가 나여. 그래서 우리는 이 정신으로 이 세상에 함께 멋진 낙원 공동체를 한번 이루고 살아보자 말이지. 이게 대종사님의 일원주의 사상이다. 이게. 내꺼 니꺼 해가지고 막 그렇게 살자는 게 아니다.
그래서 두 분(경산님, 전산님)이 똑같이 하신 법문이 있어요. 내용이. <사오백년 결복기>라는 표현을 하셨어요. 두 분이 똑같이. 사오백년 결복기. 사오십년 결실, 사오백년 결복! 그랬어요. 제가 볼 때는 결 복을 이해를 잘 해야해. 저는 사오백년은 초창기야 초창기. 제가 총부 가니까, 가난에 찌들어 갖고 80년대 자취방에 살으라고, 나한테. 어떤 사람이 그래~ “원불교 돈 많다며?”. 삼성에서 다 대준지 알아.
저는 원불교가 한편으로는 정말 고귀하다고 할까, 소중한 것이, 이 종교가에서 원불교 월급 제일 적거든. 제일 힘들게 살아, 교무들이. 근데 제일 맑아, 아직. 때가 제일 안 탔어. 솔직히 다른 종교, 그렇게 덜 맑아. 내가 보니까. 우리는 아까 그 맑은 정신이 아직도 있어. 그런데 양 어디가 찢어지게 가난하네.하따 참말로 양. 그래가지고 모으고 모으고. 세상에 어떤 사람이, 우리 여자 교무님들 적주공권이라고 하지. 맨손으로 어느 지역에 들어가. 죽어라고 안 먹고 안 써 가지고 교도님들하고 합심이 되어가지고 대궐같은 교당 지어놓고 딱 떠나. 한 교무님이 교당을 4개 5개 지어. 우리 밀타원님 4개인가 지으셨어요. 제가 전농에서 모신 교무님. 지금 인천교당 옛날에 그 분이 지은 거예요. 여수교당 그 분이 지었어요. 밀양 그 분이 지었어요. 다! 그리고 지금 모스크바, 퇴임하고도 계속 가서 날러 그냥. 뭘 위해서 그럴까? 뭘 위해서? 다 뭘 위해서 살죠? 행복을 위해 살죠. 그런데 그 행복을 내가 편안하고 내가 잘 먹고 내가 필요한 것 얻고 하는 이 자유가 행복인줄 아는데, 진짜 행복이라는 것은 이 세상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가 희사할 때, 아낌없이 내 역량 껏 내 능력껏 최대한 도움을 줄 때, 묘한 그 재미가 있거등. 왜 그렇죠? 그건 내 안에 본래 모습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 요걸 아셔야 되는데.
여러분들 여기에 오신 이유는 뭔지 알아? 내 안의 본래 그 간절한 그 맑은 영적 성장 또는 맑은 어떤 구도심 또는 내 본래 그것을 찾아서 오신 거여. 근데 왜 와 가지고 그걸 자꾸 주변만 맴돌아. 확! 들어가 버리지, 자껏 그냥. 확 들어가 버리면 되잖아요 그거. 안 들어가지지 근데 잘. (대중 웃음) 사실은 한 마음인데. 사실은 한 마음인데. 뭐 때문에 안 들어가지는지 알려 줘? 다 알잖아! 뭐 때문이여? 워매~ 잘 아네, 유타원님이. 욕심이야 욕심. 참~ 그 놈의 욕심 때문에 이 공도의 세계에서 딱 뭐가 나와? 사(私)가 나올 때 비로소 욕심이 나오게 되는 거여. 사욕이야 사욕. 이 사욕이 공도주의를 방해하는 거여. 근데 여기에 분명히 뭐가 들어가? 인과의 이치가 딱 들어가네. 사욕으로 살면 소탐대실로 니가 당한다. 그러나 대탐소실이라~ 큰 걸 탐해라!. 그건 뭐냐면 공도주의야. 이 공을 탐해버리란 말이야. 그러면 나중에 다 이루어진다. 그런 사적인 것도 다 이루어진다. 아 그런데 그 새를 못 참네, 이놈의 것이. 그냥. 그 새를 못 참어! 내 앞에 갖다 놔야 내 꺼여.
옛날 대산종사님도 맨 마지막, 법문의 맨 마지막이 뭔지 아세요? 기원문결어라고. 저는 이걸 보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우리 경산님도 맨 마지막에. 한번 보여주세요, 맨 마지막. 뭐라고 돼 있어? <대업이 성공하도록 합력하고 합력합시다.> 합력하자 두 번 써놨어. 아 저거 그냥 쓰신 거 아니에요. 경산종사님께서. 얼마나 합력이 중요한가. 아까 사욕이 있는 사람은 딱 지 것부터 챙겨버려. 선사후공이야. 합력 이라는 것은 지공무사에 근간해서 때로는 선공후사야. 그게 합력이여. 내 것부터 챙기는 게 합력이 아니여. 그건 선사후공이거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조금씩만 합력 해봐! 거기가 그냥 낙원 공동체 아녀? 아 지옥에 갔더니 긴 숟가락 젓가락으로 지만 퍼 먹을라고 하다가 서로 못 먹고 있다고 안 해. 아이 그냥 낙원을 갔더니 서로 먹여주더래야 긴 걸로. 아따~ 너 먹어라~ 너 먹어라 하니까 좋다고 서로 먹고 있어. 지만 퍼먹으라고 하니 지도 못 먹고 다른 사람도 못 먹고.
그 다음 이제, 전산종법사님께서 핵심 두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뭐였죠? 심통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뭐하라고 그래? 아 이거 어떻게 자존심이 있는데 바쳐? 신성을 바치래야. 제가 보니까요~ 이 신성을 착각하는 것 같애. 내 것을 바친다 생각하지요? 사실은 내 안의 나에게 바치는 거예요. 요걸 이해하셔야 하는데. 저 이거 교무된지 한참 있다 알았습니다. 진짜 신성은 스승을 통해서, 진짜 안에 더 들어가면 참 나에게 바치는 거예요. 이게 신이여. 이해가 되세요? 아 요런 건 그냥 알켜 주면 안 되는데. 아까워.
첫째, 두 마음 없는 신성을 바쳐라.
근데 아까 신이 없거나 그릇이 작은 사람은 ‘그럼 나는 어쩌라고!’ 하면서 자기의 주견 자기의 자존심을 세우더라. 우리 대종사님은 “야! 먼저 죽어버려라.” 그게 뭐여? 사무여한(死無餘恨) 이거든. 뭘 죽어라는 거야? 목숨을 내놓은 것 같이, 너의 욕심 너라는 상 너라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그 쾌락, 마음. 바로 그것을 죽여라 이 말이지. 니가 제일 아끼는 것 놓아 버려라. 그게 사무여한이거든. 그게 사무여한이여. 제가 그걸 조금만 더 설명하면, 법을 위해서는 이 몸을 잊어버려라.[위법망구(爲法忘鷗)] 그리고 공을 위해서는 사를 잊어버려라.[위공망사(爲公忘私)] 왜? 사(私)라는 것은 원래 실체가 없는 거예요. 근데 왜 사(私)에 집착 하냐? 이 사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사실은 무아지. 무아지. 이게.
그래서 아사법생(我死法生)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러면 아생법생(我生法生)이여. 이렇게[아사법생] 돼야 이렇게[아생법생] 되요. 그게 제가 옛날에 고혜경교우가 간사 시작할 때 적어 준 법문이었어요. 너 이렇게 간사 시작해라. 뭐냐? 너를 죽여라. 니 주장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대로 하지 말고, 니가 길들여 왔던대로 하지 말고. 너 그동안 대접받았지 않냐. 니가 거꾸로 대중을 대접하는, 너를 죽여서 대중을 향한 마음으로 바꿔 봐라~ 그랬어요. 먼저 죽여서 법을 살려라? 나를 주장하지 말고 법을 주장하란 말이지.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너도 살고 법도 산다. 아생법생이여. 근데 여기 까지 못가 사람들이. 이것[我]을 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내가 보니까 살아보니까.
어떻게 보면 원불교의 수행을 한 마디로 말해라! 결국은 끝없는 나와의 전투 아닌가. 끝없는 나와의 전투 아닌가. 어느새 올라와~ 편하고 싶고 안 하고 싶고. 어느새 핑계대려고 하고 합리화 하려고 하고. 진짜 책을 언제 써야할 텐데~ 핑계란 책을.
제가 이제 살아보니까 왜 대산종사님께서 마지막 법문에 살신성인을 내 놓으셨을까, 또 대합력을 말씀해주셨을까, 이런 걸 생각해 보면서.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3대 불공법을 내놓으신 적이 있어요. 대산종사님께서. 같은 이야기인데 그게 뭐냐. 불석신명(不惜身命)이라고 했어요. 불석신명. 신명을 아까지 마라. 신명을 아까지 마라. 이차돈이 그랬고 예수님이 그랬다. 우리 구인선진이 그랬다. 사실 기독교가 그 동안 이렇게 열심히 잘 됐던 게 뭔지 아세요? 순교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이 있어서 기독교가 이렇게 컸던 겁니다. 이제 그 기운이 거의 다 끝나가죠.
그 다음 금욕난행(禁慾難行)이라 하셨어요. 금욕난행.
금욕, 이건 뭐냐면? 어떻게 금욕을 하죠? 어떻게 해야 그 욕심을 내가 제어하기 제일 쉬운 방법이 뭔지 아세요? 퀴즈네 이거. 어떻게 욕심을 내가 제어 할까? 어떻게 해야? 간단해요! 어~ 그렇지! 아이구 너 돈 있으면 빵 사먹어라잉.
욕심을 자체로 욕심을 죽이려면 힘들어서 못해요. 근데 더 큰 놈을 내 놔 버린 거야. 그게 뭐여? 큰 서원입니다. 큰 서원이 세워지면 작은 욕심은 지가 잠자 버려. 저는 이걸 경험했잖아요.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몰라. 그 욕심 하나 놔 버리면. 욕심을 안 놓으니까 온갖 계산하고 힘들고 머리 아프다고 해요. “교무님 저 머리가 너무 아퍼요~!” 제가 “너 욕심을 놔라!” 그 말을 못하지. 진짜 정답 인데.
서원을 세우면 말이죠~ 묘한 이치가 있어. 마음에 걸림이 없어 버려요. 그리고 위력이 딱 자기한테 옮을 자기가 알아요. 그 신기해. 제가 다 말 못해. 나는 누구 미워도 못한다니까. 내가 미운 마음이 나면 그 사람 잘못되버려. 미워도 성질도 못내 내가.
대종사님이 참 그 언어를 그렇게 썼을까 생각도 들었거든. 아니 좀 쉽게 쓰지, <전무출신> 그래놨어.
아니 누가 한번 듣고 알겠어요? 지나가는 사람이 ‘전무출신’ 하면 먼 소린지 알겠어요? 아 근데 곰곰히 생각해 봤더니 정말 전무출신한 사람이 별로 없어. 얼마나 어려운 건가. 전체에 힘써!=>전무. 이 몸, 이 욕심을 벗어나서=>출신. 나라는 국한을 넘어서서 전체=여기에 올인 하는거, 이게 전무출신이란 말이죠. 그러면 재가는 거기 피하면 되냐? 아니다 이놈들아. 거진출진이다 그랬어. 하하하하하. 먼지 속에 살아, 세속에 살지만 뭐여? 그 세속을 벗어나서 출진이라! 탁! 그 먼지의 세상을 벗어난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살아라~~!! 같은 말이지 사실은. 사실 같은 말이야. 용어가 다르지만 같은 말이여.
제가 교무하면서 좋은 게 있어. 아까 스승님한테 이렇게 가까이 법문도 받들고, 이렇게 대종사님 만나서 이렇게 밖에 생각 안 했던 사람이 이 세상을 하나로 볼 수 있는 눈이 트이고 국이 트인 이 은혜를 진짜 얼마나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런데 말이죠~ 알뜰한 출가 교무님, 진실하고 정말로 출가 재가를 넘어선 재가교도님 만날 때 너무 행복해. 제가. 출가했다고 다 교무 아니고 재가했다고 다 교도 아니더라고. 진짜인 사람들이 있어. 많지는 않더만, 내가 보니까. 내가 다 알아. 신심있는 척 해봤자 내가 다 알아. 그런데 그런 분들을 만나서 이렇게 해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제가. 교무님 교무님 제가 이렇게 해서 참 안 쓰고 안 먹고 아껴 가지고 제가 이렇게 얼마 가져왔습니다. 그 양반은 뭐 쓸 일 없겠어요? 그 양반은 자식 없고 새끼들 없겠어? 하~ 고개가 숙연해져, 그럴 때마다. 야~ 이렇게 좋은 법연 좋은 인연을 또 만나는 재미가 있구나.
그래서 3대 불공법 법문 중에 이렇게 하셨어요. 우리가 불석신명을 하고 금욕난행을 해서 뭐하자는 거냐 말이야. 즉 서원으로 금욕을 해. 녹아 난다. 그래서 뭐하자는 거냐? 그러면. 희사! 따라서 해보세요. 희사! (희사) 만행! (만행) 몰아 말하자면 이게 뭐에요? <무아봉공> 이거든. 이게 <불법시생활> 이에요. 결국 우리가 뭐냐? 정신 육신 물질로 내 힘에 맞게 세상을 위해서 사은의 은혜 속에 살고 있으니 사은의 은혜가 내가 만분의 일이라도 희사해라, 기쁘게. 그 사람이 주인이고 그 사람이 세상을 낙원세상 만드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진짜 복 받을 사람이다 말이지. 희사만행.
근데 잘못 신앙한 사람 보면요~ 뭐 법문이 어떻고 마음공부가 이렇고 잘 해. 근데 딱 봉공할 일 있을때는 싹 빠져버리네. 뭐 어디 불사하자고 하면 싹 빠져버려. 교당 신축하면 한 10%는 쏙 빠집니다~ 아세요? 10%는 도망가 버려요. 불편 하거든. 내고 싶지는 않은데 자꾸 누구는 냈다고 하고, 에잇 짜증나 그냥 떠나 버리자! 한때 큰 소리 쳐봤자 결국 우리가 이 무아봉공 하자는 게 대종사님의 제일 큰 뜻이예요. 제일 큰 뜻이여.
근데 이 무아봉공을 하려고 했더니 어떻게 하느냐? 아까 신과 사원을 세워서 교법의 훈련을 해야 한다. 그 훈련의 방법은 이렇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통해서 결국은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하자 그랬어. 그래야지 내가 세운 서원을 이룰 수 있고n 또 내가 그 신을 꽃을 피울 수가 있고n 그리고 진짜 무아봉공을 해낼 수 있는 것은 훈련이란 말이지. 훈련.
그 훈련은 먼저 기본이 정시를 통해서 단련하는 거야. 수양 연구를 주축으로. 이게 정기훈련이야. 시간으로 따지면, 우리 일 년 따지면 한 2% 되요. 하하하. 그래서 법문에 뭐라고 하셨냐? 정기훈련은 예비훈련이라 하셨어. 새 종법사님이 예비훈련이다 하셨어요. 진짜를 위한 예비다~ 이 말이죠. 이게[정기훈련] 진짜가 아니딘 말이죠. 진짜는 여기[상시훈련]에 있다. 왜? 이 정기는 상시를 위해서 있는 거예요. 상시훈련 중에도 시와 종은 뭐예요? 제가 아까 타력이 시라고 했죠? 타력을 통해서 무엇이 꽃이 펴야해요? 종으로? 자력으로 가야해. 그래서 먼저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을 통해서 타력을 입어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두 번씩. 이것이 뭐냐? 교화단이예요 교화단.
종법사님이 훈련과 교화단 이야기 두 가지 하셨어요. 결국 한 이야기입니다. 훈련이야기 이셨어요. 종법사님께서. 그래서 교화단을 통해서 즉 단장이나 중앙을 통해서, 또 지도인을 통해서 종횡으로-종적으로 횡적으로 함께 하도록 해 주셨어요.
자! 교당을 안 오시면 기운이 떨어져. 맥이 떨어져. 제가 교당 안 온고 진급하신 분 본 족이 없어. 자기 핑계 대고 다 강급해. 절대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없어요. 어디까지? 상전급까지는 지가 저를 믿으면 큰 코 다쳐요. 지 꾀에 지가 넘어가요. 다 강급하게 돼 있어.
그래서 철저하게 우리가 타력을 통해서 이 자력의 세계로 가야 하는데, 이 자력의 세계. 자~ 보세요!. 제가 아까 2%라고 했는데, 요건 몇% 겠어요? 여러분 일 년 시간 중에 교당 전체 중 몇 % 온 것 같애? 내가 많이 써 주께. 2%. 좀 더 써주까? 3%. 에이 그냥 훈련 한번 나면 교당에 다니는 것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되요. 그러면 교당 일 년 내내 매주 한 번 내지 두 번 다니니까 3%. 즉 5% 밖에 안 되는 거여. 즉 95%의 시간은 상시응용주의사항이여. 즉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여. 그래서 종법사님께서 진짜 훈련은 뭐다? 상시 훈련이다! 이 말이여. 상시훈련 중에서도 1조! <응용하는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이게 무시선이다 이 말이여. 이게 유념이다. 그것을 위해서 2조 3조 4조 5조 6조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원불교의 교도로써 가장 잘 훈련 받아서 정말로 무아봉공을 실천할 수 있고 희사만행을 실천 할 수 있고 영생의 행복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바로 신과 서원을 세워서 신앙의 근간해서 교당내왕시나 정기훈련을 통해서, 즉 교당을 떠나고 훈련원을 떠나서, 집에서! 직장에서! 어떻게 내가 하루 일과 속에서! 더 들어가면 하루일과여. 하루 일과 속에서 상시훈련, 95%의 시간을 살고 있는 직장과 학교 가정에서 어떻게 요 시간을 쓸 거냐.
그래서 하루에 아침에는 뭔 시간? 잠자는 시간. 저녁에는? 뭐 보는 시간. 그러죠? 예~ 그렇게 하지 말고 아침에는 수양시간 가져라. 낮에는 뭔 시간? 보은시간. 아침에는 자는 시간, 낮에는 조는 시간, 저녁 때는 보는 시간. 그지? 마시는 시간.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 아침에는 자기를 돌아보는 수양 시간. 그리고 낮에는 적극적으로 사은님께 보은하는 동정일여를 실행하는, 영육쌍전을 실행하는. 정말 일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요. 일에 빠져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영육쌍전과 동정일여가 함께 어우러진 그 일 속에서 공부가 체가 되어서, 즉 온전한 내가 주인이 되어서 일심으로 일하는 사람, 이 사람이 보은봉공하는 사람이다 이 말이여. 그리고 저녁때는 뭐예요? ‘아따 피곤하다’ 하고 오늘 힘들었으니까 한 잔? 이게 아니라 참회 대조를 해서 일기를 하고 하루 점검을 해서 다시 죄복을 결산해라. 이것이 가장. 그래서 좌산상사님께서 종법사 시절에 무슨 법문 하셨어요? 득력? 옛날 불교는 득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적공이 뭐여? 이것[정기훈련]이 적공이여. 훈련원 가서 산 속에 가야 득력이여. 근데 좌산님은 뭐라고 했어요? 상시훈련, 이 상시훈련이 하루일과 거든요. 일과 속에서 득력하라고 했어요. 하루 일과 속에. 95% 시간을 활용하고 있는 여기에서 득력해라! 이렇게 법문해주신 거예요. 이해가 되시죠? 오늘 여기까지만 해야 되겠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