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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삼아 먹이를 줬더니 매일 같은 시간에 날아와
장관이다. 4백마리쯤의 까치떼가 경희여고「빌딩」의 옥상을 새까맣게 덮었다. 옅은 하늘색을 배경으로 검은 반점이 무수히 찍힌 것 같다.
녹색 교복을 입은「까치어멈」여고생 3명이 까치떼들 속에 파묻혀 먹이를 준다.
희한하게도 까치떼들은 도망가지를 않는다.
『친구애들이 우릴 보고「까치어멈」이라고 불러요. 선생님들도 출석 부를때 장난삼아「김(金)까치(김미숙(金美淑)·17·경희여고2)」「최(崔)까치(최정애(崔貞愛)·17·경희여고2)」「이(李)까치(이문자(李文子)·17·경희여고2)」라고 부르는 통에 웃음판이 벌어지죠』
이까치양이 최·김 까치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까치어멈」의 내력을 들려 준다.
까치떼들이 경희여고 옥상과 여고 근처 숲에 날아오는 시간은 무섭게 정확하다. 하오 4시30분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날개를 퍼덕이며 몰려들었다가 약 1시간에 걸쳐 식사(?)를 끝내면 모두 둥우리로 날아간다. 4시30분쯤 되면 맨먼저 한 마리의 까치가 옥상으로 날아온다.
아마도 이 녀석은 정찰병 비슷한 임무를 맡은 듯 옥상에 이상이 없나를 확인한 다음 다시 숲쪽으로 날아 간다.
이로부터 5분내에 4백마리 까치의 현기증나는 퍼덕거림이 고황산(高凰山)과 경희여고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어 버리는 것이다.
『금년 11월말에 우리 셋이 까치들이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장난삼아 도시락을 먹고 남은 밥을 옥상에 던져 주어 봤죠. 이튿날 올라가 봤더니 하나도 남아 있질 않더군요. 며칠간 밥을 남겨 두었다가 던져 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한톨도 남기지 않고 싹 치워버렸어요』
『싹 치워 버렸어요』하는 대목에서 최까치양은「제스처」까지 동원했다. 세 아가씨 까치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다.
12월 초순께부터 집에서 타낸 용돈을 모아 쌀·콩·팥·고구마 따위를 사서 옥상에 뿌려 주었다. 물론 까치들은 잘도 먹어댔다. 까치들 때문에 용돈도 남아나지 않았지만 세소녀는 신바람이 났다.
『저는 처음에 얘들이 추운 옥상에 자꾸 오르내려서 또 무슨 장난을 치는가 하고 야단을 치려 했죠』
그러나 알고보니 흐뭇한 일이더라는 생활지도부 학생주임 유홍조(劉洪祚)씨(36)의 말. 그로부터 까치떼들을 관심 있게 지켜 봤다. 까치떼들이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처음엔 10여마리 되던 것이 30여마리로, 다시 1백마리로 걷잡을사이 없이 늘어났다. 사람사회만큼이나 까치사회에도 소문이 빠른 모양인듯. 1개월 사이에 애초 10마리에서 4백마리(추산)로 선군작당(煽群作黨)한 것.
『까치들과 친해 보고 싶어서 먹이를 주워 먹을 때, 옥상에 올라갔더니 모조리 날아가 버리지 않겠어요? 우린 까치들이 우리를 싫어하는가보다 하고 낙심했어요. 의리도 없게…』
처음엔 10여마리가…
한달 사이 부쩍 늘어나
그뒤 작전을 바꿔 4시께부터 옥상에 올라가 부동자세로 앉아 기다렸다. 정찰병 까치가 날아오자 손끝 하나 까딱않고 앉았더니 5분쯤 뒤부터 날아오기 시작했다. 발이 저리고 허리가 쑤셨지만 참아냈다.「무드」가 익어가자(?) 슬그머니 손에 쥔 먹이를 던져 주었다. 처음엔 푸드득 날았다가 소녀들을 신임할만 하다고 판단(?)한 듯 하나 둘 다시 모여들어 뿌려 준 먹이를 쪼아 대는 것이었다.
소녀들과 친해진 까치들은 그래서 녹색제복에는 안심한듯 했다. 왜냐면 까치 사진을 찍으려는 교사들이 나타났다 하면 모두 날아가 버리기 때문.
경희「캠퍼스」는 모두 40만평. 이 엄청난 대지는 약 50%가 임야로 되어 있다. 매년 2천여만원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캠퍼스」뒷산인 고황산을 녹화한지 10년이 넘는다.
꾀꼬리·뻐꾸기·딱다구리·꿩등을 비롯하여 철새까지 무려 80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는 경희대 원병오(元炳旿)교수(조류학자)의 조사 보고. 세「까치 아가씨」덕분에「까치교장(校長)」으로 통하는 경희여고 교장 김준근(金駿根)씨(57)와 경희여중 교장 박정훈(朴貞薰)씨(51)는『73년부터는 내친 김에 예산을 반영시켜 까치 말고도 다른 야생조류를 보호, 육성할 계획』이며『이것이야말로 우리 학원이 목표로 하는 정서교육의 지름길』이라고 설계하기에 이르렀다.
『까치만 보면 언짢은 기분도 깨끗해지고 머리가 맑아져요. 까치 때문에 용돈까지 달아났지만 얻은 게 더 많죠』
『앞으로 까치「서클」을 만들어서 까치의 생태연구와 보존을 위한 운동을 펼치겠어요』
『까치가 날아들었으니 우리 고등학교 여학생들은 금년에 한사람도 대학 낙방을 않을 거여요』
어지럽게「까치 아가씨」들의 까치 예찬론들이『깍깍깍깍』하고 펼쳐졌다.
[선데이서울 73년 1월 1일호 제6권 1호 통권 제 2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