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루카 6,23)
교회는 오늘 4세기 안티오키아의 주교이자 학자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기념합니다. 349년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성인은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되어 성직자와 신자들의 생활 관습을 개혁하는 데에 힘을 쓰며 참 목자로서의 삶을 사셨습니다. 금구(金口), 곧 ‘황금의 입’으로 불리는 성인은 그를 부르는 이 칭호가 뜻하는바 그대로, 뛰어난 설교와 저술로 가톨릭 신앙을 해설하고 그리스도인 생활의 실천을 독려하였습니다. 이 같은 성인을 기념하는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참된 행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일러주시는 행복과 불행에 관한 선언, 예수님의 이 참 행복에 관한 선언은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에 등장하는데, 오늘 복음은 그 가운데에서도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진복팔단의 말씀을 전합니다. 4개의 행복 선언과 4개의 불행 선언이 정확히 대구를 이루는 구조의 이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ㄴ)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24)
그런데 예수님의 입으로 전해지는 행복과 불행에 관한 이 여덟 가지 선언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과 지금 울고 있는 이들이 행복할 수 있으며 모든 이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이가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불행에 관한 선언은 그 정도를 더합니다. 부유하고 배부른 이들, 지금 웃고 있는 이들이 불행하다고 선언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여러 구절이 이렇듯 이해가 쉽지 않으며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 가운데 단연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진복팔단의 말씀이야말로 그 가운데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행복과 불행의 기준과는 180도 다른, 아주 정반대의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행복과 불행에 관한 이 말씀은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복음의 내용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행복과 불행에 관한 선언을 통해 예수님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계시며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셨던 것일까요?
그 해답을 오늘 독서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믿어 고백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 생명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는 세상의 것에 매여 사는 옛 인간의 삶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으로 새로이 태어나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콜로 3,9ㄴ-10)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참 지식’, 곧 모든 구별과 구분을 없애 주며,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으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는 이 참 지식이 바로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준 그리스도 그 자체임을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힘 있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11ㄴ)
세상의 모든 것은 결코 우리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없습니다. 현세적인 모든 것은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고,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참된 것이 아닌 헛된 것에 마음을 쓰게 하고, 아름다움이 아닌 추한 것에 내 열성을 다하게 만들며, 선한 것이 아닌 악한 것으로 내 몸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과 참 기쁨, 곧 거짓 행복이 아니고 거짓 기쁨이 아닌, 참되고 진실되며 아름다움의 원천이 되는 것은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 오직 하느님의 외아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온 몸으로 우리 각자에게 전해 주신 그 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습니다. 오직 그 분 안에서, 그 분을 통해서 우리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더욱 더 힘 있게 우리 마음 안에 선포됩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11ㄴ)
오늘 영성체송 말씀 역시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과 한 목소리로 우리의 참 행복의 유일한 근거가 되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다.”(1코린 1,23-24)
오늘 우리의 귓가에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 이해하기 힘들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복음의 말씀은 바로 이 진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곧 우리 행복의 유일한 원천이자 근본이 되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참 행복과 기쁨을 누려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우리를 현혹하는 가짜 행복과 가짜 기쁨이 아닌, 참된 행복과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이 전하듯, 하느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새 인간으로 태어나 현세의 것에 눈을 두지 않고, 시선을 하느님께로 두어 그 분으로부터 참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