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타 보원사 주지 로담(路談) 스님
“고승(高僧)의 시로 설계한 ‘조사전 불사’ 면면히 이어갈 터”
“불교 망한다”에 정색, “내가 끝까지 지킨다.”
중학교 졸업 직후 입산, 현문 스님 은사로 삭발
1992년 문학공간으로 등단, 현실·정토 조화 시어 ‘탁월’
길상사 인수· 아셈협상 실무 예리· 결단 갖춘 인재 정평
컨테이너 두개 연결한 절서 기도 정진하며 시심 다듬어
불교문헌 속 ‘시승’에 천착, 한국·중국 시·찬·게송 집역
시 통해 수행자 삶 엿보길, 역대 최고 시인은 ‘부처님’
“역대 조사와 선승들도 자신이 닦아온 수행의 결정체를
함축적 문장으로 설하셨다”는 로담 스님은 “송(頌), 찬(讚), 게(揭) 등이
모두 시”라고 강조했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사람은 외로움에 흔들린다./
흔들림은 살아있는 한 모습이다.…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일이/
죽은 이가 간절히 느끼고 싶은 모습이란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로담 시 ‘이유는 없다’ 중에서)
무심히 툭 던진듯하지만
외로움의 끝에서 처절하게 사무쳐 본 사람만이 토해낼 수 있는 시정이다.
그렇다. 아파서 눈물 흘리는 것도 살아서의 일이요, 삶의 징표이다.
로담 정안(路談 正眼) 스님. 길(路)과 이야기(談)를 조합한
법호 로담이 이색적이다.
경기도 가평에 세운 절이 아가타 보원사(阿伽陀 寶園寺)인데
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아가타(Agada)’는 멸진정, 명약을 뜻한다.
보원사는 인도의 기원정사 즉,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인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의 전설과 맞닿아 있다.
외로운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들 모두 이 절에 와서
그 아픔 치유할 명약 하나씩 가져가 보라는 바람이 스며있다.
1992년 문학공간을 통해 등단했으니 시인 여정만도 30년에 이른다.
그동안 ‘나 너답지 못하다고’ ‘젊은 날에 쓰는 편지’ ‘뭐’ 등의 시집을 선보였는데
2015년 출간된 ‘아부지’는 스님이 지향하는 세계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산사에 이는 바람 한 점에도 시심을 담아 ‘바람이/ 난 꽃 사이로 분다/
향기가 벗되어/ 나비를 데리고 간다’고 한 스님은 바위 부딪치는 소리,
대숲에 바람 스치는 소리, 잔디 씨앗 터지는 소리, 솔잎 떨어지는 소리까지
귀 기울이며 우리 목전에 펼쳐지는 ‘지금’을 명징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 증오 방지법, 현충일 등을 소재로 한 현실 참여적 시도 곳곳에서 보인다.
본질과 현상,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맞춰가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문태준 시인이 정확히 짚었다.
“시편들은 정토를 꿈꾼다. 우리 모두가 공업의 중생임을 일깨우고,
우리 마음이 끊임없이 일으키는 천만 가지 의심과 분별과 집착을 불 끄듯 꺼뜨린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이 시원한 한 줄기 바람처럼 맑고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전남 광양 옥룡면에서 유년을 보냈는데 신심 돈독한 부모님 덕에 불심도 자연스레 다져졌다.
시집을 통해 전했듯 어머니 ‘말씀은 내 안에 진리이며/ 행하심은 그대로의 계율’이셨다.
‘구산(九山) 큰스님으로부터 무념(無念)이란 불명’을 받은 아버지는
‘아미타불을 만독 하시고/ 평생 금강경 독송하시더니
벗어놓은 육신마저도 황금빛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워,
어머니로서는 팔십 평생 처음 보는 일’이라 했다.
‘이 세상 떠나시는 마지막 말씀으로는 벗어놓은 헌 옷 같은 육신일지라도
보시하시겠다’며 생명나눔실천본부에 기증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시골마을에도 교회들이 서기 시작하더니
절로 향했던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어 갔다.
친구들이 어린 불자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교회에 사람 엄청 많아. 불교는 망할 거야.”
정색하고 맞받아쳤다.
“내가 끝까지 지킨다.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안 망한 거야!”
중학교를 마친 후 광양 법왕사(현 옥룡사)로 입산했다.(1972)
1년 후인 1973년 송광사에서 현문(懸門)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 했다.
해인사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철학을 전공했다.
학교법인 승가학원 사무처장, 한국문화연수원 본부장, 불교문화재연구소장 등의 소임을 보았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 전신인 대법사 인수 실무를 맡아 원만회향시킨 장본인이 로담 스님이다.
서울 삼성동 초고층 아셈타워(ASEM Tower) 건설에 따른
봉은사 수행환경 훼손 위기 상황에서 담판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던
실무자도 총무를 맡았던 로담 스님이다.(1997)
시심 품고 있던 시인이자 갈등과 투쟁으로 점철된 행정업무들을 처리해야 했던 로담 스님.
수행자에게 이사(理事)의 충돌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다.
사찰 소임 본다는 이유로 도심에 머무는 건 더 이상 무의미했다.
가평의 작은 산 중턱에 석조 부처님을 봉안했다.(2000)
그리고 컨테이너 두 개를 연결해 작은 공간 하나 내었다.
숙소이자 법당이고, 공양간이자 다실이다.
아가타 보원사의 무불전.
창건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무불전(無佛殿) 하나에 요사채 한 동이 전부다.
건축 불사보다는 법시 불사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집 출간은 물론 ‘한국의 시승-삼국’ ‘한국의 시승-고려’ ‘한국의 시승-조선’
‘중국의 시승’ 등의 시승 시리즈를 연이어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 가을에는
중국 송대(宋代)의 아홉 스님이 낸 시들을 번역한 ‘구(九) 시승의 시’도 출간했다.
‘시승(詩僧)’에 천착(穿鑿)한 연유가 궁금해 한여름의 볕이 들어차는 절로 향했다.
“선(禪)의 불교사상과 시(詩)라는 문학이 빚은 선시의 세계는 독특합니다.
시어 하나가 깊은 선정과 사유에서 끌어올린 무념무상의 정수입니다.
특히 고승들의 시에서 그 무한한 깊음이 느껴집니다.
자신을 둘러싼 질곡을 깨고 대자유의 세계로 내딛는
대전환의 찰나적 순간(오도·悟道)을 접할 때면 전율이 일곤합니다.”
당장이라도 한시 번역에 임하고 싶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고매한 시들을 전할 때마다 ‘승려이자 시인’이라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풀려 각종 문헌들을 파헤치다 동북아불교를 관통하는 열쇠어를 찾아냈다.
“시승(詩僧)이라는 단어는 중국 당나라 승려 교연(皎然·720∼729)의 시
‘양양의 시승 소미와의 이별에 대하여(酬別襄阳詩僧小微)’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악승(樂僧), 화승(畵僧), 서승(書僧)과는
확연히 구별된 승려시인들이 출현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발견했습니다.
신라·고려·조선 전기의 고승 60여명의 행장과 사상을 약술한
‘동국승니록(東國僧尼錄)’에 시승(詩僧)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전거가 확실한 만큼 더 이상 ‘승려 시인’ ‘승려이자 시인’ 등의 사족은 필요 없었다.
‘파한집’ ‘동국이상국집’ ‘동문선’ ‘해동고승전’ ‘동사열전’ ‘한국불교전서’는
물론 고승들의 어록과 문집을 구해가며 선기 넘치는 시들을 집역(集譯)했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회자된 ‘시승(詩僧)’을
이 시대에 생생히 되살려 놓은 로담 스님은 시승의 지평 또한 넓혔다.
“바기사(婆耆舍) 비구는
부처님 법문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비유와 은유로 부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실력이 얼마나 출중했던지 부처님께서도
‘여래의 덕을 찬탄하는 게송을 제일 잘 짓는 비구가 바기사’라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역대 조사와 선승들도 자신이 닦아온 수행의 결정체를 함축적 문장으로 설하셨습니다.
송(頌), 찬(讚), 게(揭) 등이 모두 시입니다.”
진영의 찬도, 염불 속 게송도 모두 ‘시의 바다’로 흘러들어갈 강물이라는 뜻이다.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세상’과 염불장엄의 세계를 연 ‘연방시선(蓮邦詩選)’
‘염불하지 않는 이 누구인가’는 그래서 빛을 보았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무불전서 바라 본 삼존불.
동진출가한 로담 스님은 산사의 일상에 젖어 들면서도 두 가지 의문을 품었다.
하나는 영각의 진영 조사 스님의 삶과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염불문 속 게송을 지은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2014년 불교문화재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첫 의문이 풀렸다.
연구소 내 불교미술실에서는 전국 사찰 문화재 일제조사를 끝낸 상태였는데
조사 진영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불교미술실장이었던 이용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함께
진영 속의 찬과 인물 스토리를 풀어갔다.
100여 고승들의 투철한 수행력과 자비 넘치는 삶을 올곧이 드러낸 명저다.
“진영을 마주하고 있으면 조사 스님을 친견하고 있는 듯합니다.
찬을 음미하다 보면 법석에 울려 퍼졌던 당시의 법어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염불 출처까지 철저하게 밝힌 ‘염불하지 않는 이 누구인가’도 소중한 책이다.
“그 유명한 ‘위 없이 깊고 깊어 미묘한 묘법,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워라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라는 개경게는
측천무후(則天武后) 작이라고 적시하고 실었습니다.
그러나 원효 스님의 게송이라 알려진
‘첩첩의 푸른 산은 아미타 법당이요, 망망한 푸른 바다는 적멸의 궁전
(靑山疊疊彌陀窟 蒼海茫茫寂滅宮)’은 담지 않았습니다.
김달진 선생이 원효 스님의 게송이라 했는데 그 연유가
향산(이광수)의 소설 ‘원효’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소설과 문헌은 다르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직감이지만 원효 스님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원효 스님이 보인 글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원효 스님의 작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게 아니라 분명치 않다고 본 것이다.
소장하고 있는 문헌을 다 뒤지고도 해결하지 못한
이 게송의 원작자는 후학이 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로담 스님의 단호함과 철저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로담 스님이 집역·번역한 저서들.
저서들 대부분은 초판 1쇄에서 그쳤다. 책의 귀함에 비하면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로담 스님은 근대 선지식들의 선시들을 모으고 있다.
“길을 나선 나옹 스님에게 사람들이 왜 출가하려 하느냐 묻습니다.
‘뒷사람을 위해서 간다!’ 저 역시 그러한 마음에서 책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고승의 시를 감상하며 무엇 하나라도 얻는 건 스스로의 몫입니다.
고승의 삶을 떠올리는 단초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선시를 읽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는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함입니다.”
첫 번째 시승 시리즈인 ‘한국의 시승-고려’가 출판된 게 2010년 1월이다.
그 책의 첫 장에 새겨진 글이 스쳐간다.
“아름드리나무를 깎아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와 서까래,
부연과 좋은 기와를 올려 법당을 짓고 관음전과 지장전을 짓지만,
나는 옛 고승의 시를 집역하는 것으로 조사전을 짓습니다!”
로담 스님의 최근 시 한 편 보고 싶다고 하니 ‘참선인을 위한 예찬’을 내놓았다.
‘일만 책의 시집을 읽고/ 오롯한 한 권의 시를 쓴들/
경전 일구만 할까만/ 참선은 밝은 명경(明鏡)이 되네.’
경전 일구도 부처님의 시라는 얘기일터다.
“역대 최고의 시인은 부처님이십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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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담 스님은
해인사승가대학·중앙승가대 졸업. 학교법인 승가학원 법인처장,
불교문화재연구소장, 한국문화연수원 본부장, 조계종 문화부장 등을 역임했다.
시집 ‘나 너답지 못하다고’ ‘젊은 날에 쓰는 편지’ ‘뭐’ ‘아부지’를 선보였다.
‘한국의 시승(삼국)’ ‘한국의 시승(고려)’ ‘한국의 시승(조선)’을 집역했으며
‘중국의 시승’ ‘연방시선’ ‘구 시승의 시’를 번역했다.
이외에도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세상’ ‘염불하지 않는 이 누구인가’
‘꽃에 향기를 더하다’ 등의 저서가 있다.
2021년 7월 14일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