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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
虞舜者,1) 名曰重華.2) 重華父曰瞽叟,3) 瞽叟父曰橋牛,4) 橋牛父曰句望,5) 句望父曰敬康, 敬康父曰窮蟬, 窮蟬父曰帝顓頊, 顓頊父曰昌意:以至舜七世矣. 自從窮蟬以至帝舜, 皆微爲庶人.
우순(虞舜)의 이름은 중화(重華)이다. 중화의 아버지는 고수(瞽叟)이고, 고수의 아버지는 교우(橋牛)이며, 교우의 아버지는 구망(句望)이다. 구망의 아버지는 경강(敬康), 경강의 아버지는 궁선(窮蟬), 궁선의 아버지는 전욱(顓頊)이다.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意)인데, 순에 이르기까지 7대가 흘렀다. 궁선부터 순에 이르기까지 모두 미미한 서민이었다.
舜父瞽叟盲, 而舜母6)死, 瞽叟更娶妻而生象, 象傲. 瞽叟愛後妻子, 常欲殺舜, 舜避逃;及有小過, 則受罪. 順事父及後母與弟, 日以篤謹, 匪有解.
순의 아버지 고수는 맹인이었다. 순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고수는 다시 아내를 맞이해 아들 상(象)을 낳았다. 상은 매우 오만했다. 고수는 후처가 낳은 아들을 편애해 항상 순을 죽이려고 했다. 순은 이를 피해서 도망 다녔고, 순이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게 되면 곧 벌을 받았다. 순은 아버지와 계모에게 순종하며 잘 모셨고, 동생에게도 잘 대했으며, 날마다 독실하고 부지런히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舜, 冀州之人也.7) 舜耕歷山,8) 漁雷澤,9) 陶河濱,10) 作什器於壽丘,11) 就時於負夏.12) 舜父瞽叟頑, 母嚚, 弟象傲, 皆欲殺舜. 舜順適不失子道, 兄弟孝慈. 欲殺, 不可得;卽求, 嘗在側.
순은 기주(冀州) 사람이다. 그는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었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황하 가에서 그릇을 만들었다. 수구(壽丘)에서는 일용기구를 만들었고, 때에 맞추어 부하(負夏)에 가서 장사를 했다. 순의 아비 고수는 무도했고, 어미는 험담을 잘했으며, 동생 상은 교만했다. 모두가 순을 죽이려고 했으나, 순은 언제나 공손하게 자식된 도리를 잃지 않았고, 아우에게는 형의 도리를, 부모에게는 효도를 다했다.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었고, 찾으면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舜年二十以孝聞. 三十而帝堯問可用者,13) 四嶽咸薦虞舜, 曰可. 於是堯乃以二女妻舜以觀其內, 使九男與處以觀其外. 舜居嬀汭, 內行彌謹. 堯二女不敢以貴驕事舜親戚,14) 甚有婦道. 堯九男皆益篤.15) 舜耕歷山, 歷山之人皆讓畔;16)漁雷澤, 雷澤上人皆讓居;陶河濱, 河濱器皆不苦窳.17) 一年而所居成聚,18) 二年成邑, 三年成都.19) 堯乃賜舜絺衣,20) 與琴, 爲築倉廩, 予牛羊. 瞽叟尙復欲殺之, 使舜上塗廩, 瞽叟從下縱火焚廩. 舜乃以兩笠自扞而下, 去, 得不死.21) 後瞽叟又使舜穿井, 舜穿井爲匿空22)旁出.23) 舜旣入深, 瞽叟與象共下土實井,24) 舜從匿空出, 去.25) 瞽叟、象喜, 以舜爲已死. 象曰「本謀者象.」象與其父母分,26) 於是曰:「舜妻堯二女, 與琴, 象取之. 牛羊倉廩予父母.」象乃止舜宮居,27) 鼓其琴. 舜往見之. 象鄂不懌, 曰:「我思舜正鬱陶!」舜曰:「然, 爾其庶矣!」28)舜復事瞽叟愛弟彌謹. 於是堯乃試舜五典百官, 皆治.
순은 20세 때 효성으로 소문이 났고, 30세 때 요가 등용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사악이 입을 모아 우순을 추천하자 좋다고 했다. 이에 요는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어 집안에서의 행동을 살폈고, 아들 아홉을 보내어 함께 생활하게 해 순의 집 밖에서의 행동을 관찰했다. 순은 규예에 기거하면서 집안 생활에 근신했다. 요의 두 딸은 자신들이 고귀한 신분이라고 해서 감히 순의 가족에게 오만하게 대하지 않았고 부녀자의 도리를 다했다. 요가 보낸 아홉 아들들 또한 모두 더 성실해졌다.
순이 역산에서 농사를 짓자 그곳 사람들은 서로 밭의 경계를 양보했고, 뇌택에서 물고기를 잡자 그곳 사람들은 서로 장소를 양보하게 되었으며, 그가 황하 가에서 그릇을 굽자 그곳 그릇들은 형편없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순이 사는 곳은 1년이 지나자 취락을 이루었으며, 2년이 지나자 읍이 되었고, 3년이 지나자 도시가 되었다. 이에 요는 순에게 갈포로 만든 옷과 거문고를 하사했고, 창고를 지어주며 소와 양을 상으로 주었다.
고수는 여전히 순을 죽이려 했는데, 하루는 순에게 창고에 올라가 벽을 바르게 하고는 아래서 불을 질러 창고를 태워버렸다. 순은 두 개의 삿갓을 들고 뛰어내려 죽음을 면했다. 그 뒤 고수는 또 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다. 순은 우물을 파면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비밀 구멍을 함께 팠다. 순이 우물을 깊이 파들어 가자 고수와 상은 흙을 부어 우물을 메워버렸다. 순은 몰래 파놓은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와 도망갔다. 고수와 상은 순이 죽었을 것이라며 아주 기뻐했다.
상은 “이 계책은 원래 제가 생각한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부모와 함께 순의 재산을 나누어가지려고 했다. 그리고는 “순의 아내인 요의 두 딸과 거문고는 제가 가지고, 소와 양, 창고는 부모님께 나눠드리겠습니다”라 했다. 그리고는 순의 방에 살면서 그의 거문고를 뜯었다. 순이 와서 상을 보자 상은 깜짝 놀라며 “내가 형님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고 있었소”라 했다. 순은 “그랬었구나. 그렇게까지 하다니”라 했다. 순은 더욱 정중하게 고수를 섬기고 동생을 사랑해주었다. 이에 요가 시험삼아 순에게 오전을 실천하거나 백관을 통솔하는 부서를 맡겨보았더니 모든 일을 잘 처리했다.
사기 설에 따른 오제(五帝)는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당요(唐堯), 우순(虞舜)이다.
1. 황제(黃帝)
황제는 소전(少典)이라는 부족의 자손으로, 성(姓)은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 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소전국의 왕비가 들판에서 기도를 올리다가 큰 번개가 북두칠성의 첫째 별을 감싸도는 것을 보고는 그를 잉태하여 24개월 만에 수구에서 황제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헌원의 시대는 신농씨(神農氏 : 고대 제왕의 하나 그가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신농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염제(炎帝)라고도 한다.)의 세력이 쇠해져가는 시기였으므로 제후들은 서로 침탈하고 백성을 못살게 굴었으나 신농씨는 이들을 정벌할 힘이 없었다. 이에 헌원은 창과 방패 등 무기의 사용을 익혀서 신농씨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는 제후들을 정벌했다. 그 결과 제후들은 모두 헌원에게 복종했으나, 다만 치우(蚩尤)만은 가장 포악하였으므로 헌원도 그를 토벌할 수가 없었다. 염제가 제후들을 침범하려고 하였으므로, 제후들은 모두 헌원에게로 귀순했다. 헌원은 이에 덕을 닦고, 병사를 정비했으며, 오기(五氣 : 木, 火, 土, 金, 水)를 연구했고, 오곡(기장, 피, 벼, 보리, 콩)을 심어 백성들을 사랑으로 돌보았고, 사방의 토지를 측량, 정리하였다. 또한 곰, 범등의 사나운 짐승들을 훈련시켜서 판천(阪泉)의 들에서 염제와 싸웠는데, 여러 번 싸운 후에야 드디어 뜻을 이루었다. 치우가 다시 난을 일으키자 황제는 제후들로부터 군대를 징집하여 탁록(涿鹿)의 들에서 싸워서 결국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그러자, 제후들이 모두 헌원을 받들어 천자로 삼아 염제를 대신하게 하였으니, 그가 바로 황제이다.
황제는 하늘로부터 보정(寶鼎 : 제위를 상징하는 보배로운 솥)과 신책(神策 : 점칠 때 쓰는 자잘한 나뭇가지)를 얻었고, 풍후(風后), 역목(力牧), 상선(常先), 대홍(大鴻)을 등용하여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다.
2.전욱(顓頊) 고양씨(高陽氏)
황제는 헌원의 언덕에 살면서 서릉족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녀가 바로 유조(처음으로 양잠을 가르침)이다. 유조는 황제의 정실로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의 후손들은 모두 천하를 얻었다. 큰 아들은 현효(玄효), 즉 청양(靑陽)으로서, 청양은 강수(江水)의 제후가 되었다. 둘째는 창의(昌意)라고 했는데 약수(若水)의 제후가 되었고, 그는 촉산씨의 딸을 아내로 얻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창복(昌僕)이었다. 창복은 고양을 낳았는데, 고양은 성스러운 덕성을 지니고 있었다. 황제가 붕어하자 교산에 장사를 지냈고, 그의 손자이자 창의의 아들인 고양이 제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전욱이다.
그는 침착하여 지략에 뛰었났고, 사리에 통달했다. 또한 그는 적지를 골라 곡물을 생산하였고, 우주의 운행에 따라서 계절에 맞는 일을 하였으며, 귀신의 권위에 의지하여 예의를 제정하고, 백성을 교화하였으며,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신령에 제사를 지냈다. 그는 북쪽으로는 유릉, 남쪽으로는 교지, 서쪽으로는 유사, 동쪽으로는 반목에까지 다다랐다.
3.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
전욱은 궁선이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전욱이 붕어하자 현효(玄囂)의 손자인 고신이 제위에 올랐다으니 이 이가 바로 제곡이다. 제곡 고신은 황제의 증손자인데, 고신의 부친은 교극이며, 교극의 부친은 현효이고, 현효의 부친이 바로 황제이다.
고신은 나면서부터 신령스러워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또한 널리 은덕을 베풀어 남을 이롭게 했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으며, 귀가 밝아 먼 곳의 일까지도 잘 알았고, 눈이 밝아 자잘한 일들도 잘 관찰하였다. 그는 하늘의 뜻에 순종하였고 백성을 절박한 요구를 잘 알았으며, 인자하면서도위엄이 있었고 은혜로우면서도 신의가 있었으며, 깨끗하게 자신을 수양하였으므로 천하가 그에게 순종하였다.
그는 토지의 산물을 얻어 아껴서 사용하였고, 백성을 정성으로 가르쳐서 그들을 이롭게 이끌었으며, 해와 달의 운행을 헤아려서 역법을 만들어 영송하였고, 귀신으 권위를 이해하여 그들을 공손히 섬겼다. 그의 모습은 매우 온화했고, 덕품은 고상했으며, 행동은 천시에 적합했으며, 의복은 보통 사람들과 다름이 없었다. 제곡은 대지에 물을 대주는 것처럼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은덕을 천하에 두루 미쳤으므로, 해와 달이 비치고 비바람이 이르는 곳이면 다 그에게 복종하였다.
4.당요(唐堯)
제곡은 진봉씨(陳鋒氏)의 딸을 아내로 맞아 방훈(放勛)을 낳았고, 또 추자씨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지(摯)를 낳았다. 제곡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지가 제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지가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으므로 동생인 방훈이 대신 제위를 계승했으니, 그가 바로 요이다.
그는 하늘처럼 인자하고 신처럼 지혜로웠으며, 사람들은 마치 태양에 의지하는 것처럼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만물을 촉촉히 적셔주는 비구름을 보듯이 그를 우러러보았다. 그는 부유하였으마 교만하지 않았고, 존귀했으나 거드름 피거나 오만하지 않았으며, 황색의 모자를 쓰고 검은 색의 옷을 입고서 흰 말이 끄는 붉은 마차를 탔다. 그는 큰 덕을 밝히어 구족(九族)을 친하게 하였다. 구족이 화목하게 되자 백관의 직분을 분명히 구분하였고, 백관이 공명정대하니 모든 제후국이 화합하였다.
요는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명하여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정하였다. 1년을 366일로 정하고,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이용하여 사계절의오차를 바로잡았다. 요는 백관들을 계칙하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업적이 다 올라갔다.
만년에 이르러 자신의 아들 단주(丹朱)가 덕이 없음을 알고, 적당한 후계자를 찾았다. 결국 순을 찾았고 그에게 두 딸을 시집 보내었다. 순은 등용된 뒤, 요를 대신하여 정치를 하였다. 순은 계절과 한 달의 날짜를 바로 잡았고 하루의 시각을 바르게 정했고, 음률과 도량형을 통일했으며 오례를 제정하였다. 또한 십이주(십이주 : 기, 연, 청, 서, 형, 양, 상, 양, 웅, 방, 유, 관)를 처음으로 설치하였고, 물길을 잘 통하게 개수(改修)하였다.
요는 제위에 오른지 70년 만에 순을 얻었고, 순에게 천자의 정치를 대행하게 하고 스스로는 은거한 지 20년 만에 순을 하늘에 추천하였다. 요는 은거한 지 28년 만에 붕어하니, 백성들은 마치 자신들의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였다. 요는 아들 단주가 불초해서 천하를 이어받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에 권력을 순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순에게 제위를 넘겨주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고 단주만 손해를 보지만, 단주에게 제위를 넘겨주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단주만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따라서 요는 "결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 하고 한 사람만 이익을 얻게 할 수는 없다"고 하며 결국은 천하를 순에게 넘겨주었다.
5.우순(虞舜) 중화(重華)
요가 붕어하고 삼년상을 마치자, 순은 단주에게 천하를 양보하고 자신은 남하의 남쪽으로 피했으나, 제후들이 조근할 때 단주에게로 가지 않고 순에게 왔으며, 소송을 거는 사람들도 단주가 아니라 순에게로 해결해달라고 왔으며, 송덕을 구가하는 자들은 단주가 아닌 순의 공덕을 구가하였다. 그러자 순은 "하늘의 뜻이로다!"라고 하며 도성으로 가서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 이가 순임금이다.
우순(虞舜)의 이름은 중화(重華)이다. 중화의 부친은 고수이고, 고수의 부친은 교우이며, 교우의 부친은 구망, 구망의 부친은 경강, 경강의 부친은 궁선, 궁선의 부친은 전욱, 전욱의 부친은 창의이니, 순에 이르기까지 일곱 대가 흘렀다. 궁선부터 순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지위가 낮은 서민이었다.
순의 부친 고수는 맹인이었다. 순의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고수는 다시 아내를 맞이하여 아들 상(象)을 낳았는데, 상은 매우 오만하였다. 고수는후처가 낳은 아들을 편애하여 항상 순을 죽이고자 하였으므로 순은 이를 피해서 도망 다녔고, 순이 어쩌다가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게 되면 곧 벌을 받았다. 그러나 순은 언제나 아버지와 계모에게 순종하며 잘 모셨고, 동생에게도 잘 대했으며, 날마다 날마다 독실하고 성실하며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순임금은 우를 천거 받았고, 우는 전국 아홉 개의 산을 개간했고, 아홉 개의 호수를 통하게 하였으며, 아홉 개의 강의 물길을 통하게 했고, 전국 구주를 확정하였다.
순은 스물 살 때 효자로 명성이 자자하였고, 서른 살에는 요임금에게 등용되었으며, 쉰 살에는 천자으 일을 대행하였다. 그의 나이 쉰여덟 살 때 요임금이 붕어하자, 예순한 살에 요임금을 이어서 제위에 올랐다. 순임금은 제위를 이어 받은 지 39년 만에 남쪽을 순수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였다. 그를 강남의 구억산(九嶷山)에 장사 지냈으니, 이곳이 바로 영릉(零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