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1장과 2장
이 책은 실제 강의를 녹음한 것을 풀어낸 것이다. 훌륭한 선생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강의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공감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것은 머리와 가슴 그리고 발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머리로 생각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마음에 울림이 있어야, 이것이 진정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배움은 실천으로 옮겨져야 허무하지 않다.
문사철 시서화를 이야기하셨다. 고전문학과 역사와 철학도 중요하지만, 시詩의 언어와 사유가 핵심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시는 사유의 틀과 그릇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바닷물을 컵으로 뜨면 그것은 더 이상 바닷물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배움은 자기 생각의 틀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그 사람의 생각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은 오랫동안 삶의 과정에서 쌓여진 것이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면 오산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체계이므로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영복 선생님이 강의의 중점을 ‘공감’에 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사실과 진실을 말씀하셨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김소월의 시나 엘리엇의 황무지도 앞선 세대의 시에서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아인슈타인도 뉴턴과 갈릴레이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했다. 감옥에서 만났던 어느 노인의 이야기도 말씀하셨다. 새로운 재소자가 올 때마다 하소연하는 이야기가 부풀려졌는데, 사실보다는 그 노인이 살고 싶었던 진실이 더욱 다가왔다는 것이다.
담론 3장 방랑하는 예술가
<초사>를 읽는 시간이었다. <시경>이 북방의 언어라면, 초사는 남방의 언어였다. 남방은 날씨가 좋아 살기 편안했다 한다. 그래서 전쟁을 하면 고통과 좌절 속에서 단련된 북방이 항상 승리했다. 마오쩌둥은 남방파에 속하지만, 중국 역사 전체에서 보면 북방파가 맞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경은 사실과 진실을 말하고, 초사는 창조와 낭만을 이야기한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 시절에 만난 장기수 노인과의 만남에서 충격을 받았다 한다. 그 이유는 그분들이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라고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말하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라는 말과 같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것을 현실과 이상의 조화로 풀어내셨다. 현실을 따르는 사람들은 보수적이다. 그에 반해 이상을 따르는 사람들은 진보적이다. 인상적인 것은 한국은 아직 보수와 진보가 양극단에 있어 만나지 못하기에, 상대편 진영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추상과 상상력을 이야기하셨다. 추상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는 것이다. 빙하를 예로 들면 추상은 바다 지면 위에 빙하를 보는 것이라면, 상상력은 바다에 잠긴 밑의 빙하를 보는 것이겠다.
서양의 역사는 문사철로 대변되는 현실과 인과 관계의 논리였다. 이에 반해 동양은 시서화를 함께 공부하였다. 서양은 이성이고, 동양은 감성적이다. 그러니까 동양의 초사에서 보듯이 창조와 낭만의 언어와 개념이, 이성의 틀을 깨고 상호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사례다. 이 두 분은 따지고 보면 이성적 사고를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굉장히 도발적이고, 단호하다. 그리고 공자의 언설 또한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는 것에 있다. 이들이 사상가로는 성공해도, 실제 정치에서 실패한 이유는 언어의 레토릭과 문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언어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불편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인데, 이들은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는 것에 치우쳤다.
김신웅 독서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