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프락칼라로 가다.
토프락칼라(Topraq-Kala 진흙)는 엘리크칼라(50개의 성이라는 뜻이며 지명이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성채라고 한다.
1930년 러시아 탐험대가 토프락칼라에서 다양한 시대의 도자기, 비단, 양모직물, 금제 장신구, 유리구슬, 호박, 산호 등의 사치
품, 다양한 국가의 동전을 발견하였고, 성채의 북쪽에서 주변의 성을 다스렸던 주지사의 궁전을 발굴하면서, 이 성이 4세기에 이르
러 외침으로 엘리크 칼라 지역이 무너지기 전까지 일레크갈라의 50개의 성채를 다스렸던 일종의 주도(州都)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한다.
토프락 칼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아무다리야 강
자동차에서 내리면 이런 성터가 보인다.
새로 만들어진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주변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토프락 성 전체를 조망할수 있다.... 이 성이 이곳에 있는 50개 성의 주도 역할을 했던 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토성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근처에서는 성을 쌓을 수 있는 돌을 구할 수도 없고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에 흙으로 쌓은 성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 동쪽 창고지역에서 목판과 양피지로 된 기록문서가 116개나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이중 세 개의 문서는 기록일을 분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기록은 207년, 231년, 232년의 궁전 내탕비(內湯費)의 지출입 기록문서라고 하니 3세기까지 활발하게 주도로의 기능을 수행하
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흔적만 남아 분간하기 쉽지 않지만 이곳도 동, 서, 남, 북으로 나뉜 구역에 따라 기능이 달랐는데 주지사 궁전이
위치한 북쪽, 창고가 위치한 동쪽, 거주지역인 서쪽, 남쪽엔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사원이 차지했었다고 한다.
성이 용도별로 구분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지금은 그 흔적을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성주변의 농지들...아마도 성이 있을 당시에는 거주지였을 것이다.
성 위를 이곳 저곳 둘러고지만...
그냥 관광객들에게는 잘 알 수가 없다.....군데 군데 각 진 부분은 보수가 된 부분들이다.
모든 성들이 방어목적으로 지어지지만 이곳도 문명의 교차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수 많은 전쟁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학자가 아닌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기념사진을 찍는 장소일 뿐이다.
토프락 성에서 보이는 키질 성...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토프락 칼라에 들러서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난 다음 토프락 칼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키질칼라(Kyzyl-kala 붉은 성이
라는 뜻)로 간다.
키질 칼라는 아야즈칼라나 포프락칼라와는 목적이 다른 요새였다고 한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다른 성채와는 다르게 정사각
형의 형태를 띠고 있고, 각모서리마다 높은 감시탑(방어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키질칼라는 토프락 칼라의 위성 요새로 외침이 발생하면 두 성체가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방어선을 구축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탐사대가 발견을 하지는 못했지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키킬칼라는 토프락칼라와 지하로 연결되는 터널이 있었고 지하로 자
유롭게 왕래가 가능했었다고 한다. 즉 주변 평원에서 포도, 과일, 밀농사를 지으면서 살다가 외침이 발생하면 주민들은 토프락칼
라로 대피하고 군사들은 키질칼라에 집결했다가 어느 한쪽이 포위를 당하면 지하로 병력을 이동시키든지 성문을 열고 나가 포위
망을 펼친 적의 뒤를 치든지 했다고 한다.
엘리크 칼라의 많은 성채는 쿠샨-사산왕조 이후 겨우 4-6세기에 걸쳐 완전히 방기(放棄)되어지만, 토프락칼라와 함께 이곳 키질칼
라는 사만왕조-호라즘 왕조를 거쳐 13세기 몽골의 호라즘 원정으로 완전히 몰락할 때까지 방대한 오아시스 지역을 지키는 최전방
요새로 기능을 했다고 한다.
키질칼라...이곳도 앞에 보았던 두 성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들이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정비를 해 놓은 곳도 있고...
성벽에 아이들이 올라가 있는데...관리를 하지 않는 듯...
서 안에는 관목만 자라있다.
가이드가 성 안에 있는 나무의 약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키질성 내부...
주변의 평원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이 성에서 지켰다고 한다.
이무다리야 강 유역
벌통을 놓고 들여다 보는 사람....처음에는 무덤의 비석을 찾아온 사람인 줄 알았다.
일부를 복원해 두었다.
이성도 지금은 새들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구멍은 새들이 뚫어 놓은 것이다.
꿀벌이 이런 꽃에서 꿀을 얻는다....가이드말로는 약초라고
일부를 복원해서 옛날 성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성을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
내려온 곳을 올려다 보고....우리는 반대로 성을 구경한 셈이다.
성벽 사이에 박아 놓은 나무는 용도가 있었을 것이나 물어보지 못했다.
성 바로 앞에 보이는 풍경...이런 평원을 지키기 위해서 아야즈 성이나 토프락 성이나 키질 성이 만들어 졌다.
키질칼라를 끝으로 성채투어는 끝이 나고.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구경했음에도 세 성을 구경하고 나니 두 시가 다 되어 간다.
히바로 들어가는데 두 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아무다리야 강가에 있는 유원지의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여 갔더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오후에 이찬칼라의 나머지를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점심을 포기하고 그냥 히바로 돌아왔는데 네 시가 다 되어 간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는 강가의 유르트...리조트인 셈이다.
음식점이 있는 아무다리야 강가...시간이 걸려서 식사를 포기한다.
히바로 들어가는 길에 달장수로부터 생닭을 사는 현지가이드
길가에서 파는 수박과 메론...이곳도 메론이 많이 나는 곳이고 달다.
구 소련 시절에 지어진 획일적인 모양의 집들
아무다리야 강을 건너서
히바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