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 Golf
"21세 청년의 우승, 트럼프 당선만큼 놀랍다"
'제5의 메이저 대회'라 불리는 미국 프로골프(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 세계 랭킹 50위 이내 선수 대부분이 출전했다.
그런데 이들을 제치고 올해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던 나이 어린 챔피언이 등장했다.
민학수, 석남준, 김승재 기자, 편집= 뉴스큐레이션팀
김시우가 15일 '제5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연소 우승했다.
1974년 창설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세계 상위 랭커가 빠짐없이 출전하는 데다 상금 규모와 우승에 따른 특전이 메이저 대회와 비슷하다. 올해도 총상금 1050만달러(약 118억원)로 US오픈(1200만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상금 규모가 크다. 우승자에게는 PGA 투어 5년간 풀시드, 마스터스·US오픈·브리티시오픈 3년 출전권, PGA 챔피언십 1년 출전권 등이 부여된다
미국 골프채널 해설가 브랜드 챔블리는 "김시우의 우승은 영국인들이 유럽연합 탈퇴를 찬성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만큼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외국 전문가들 눈에도 경이롭게 보인 승리였다.
김시우의 티샷 - 장타와 정확성, 처음부터 끝까지 무심한 ‘포커페이스’에 미국 갤러리들도 감탄했다. 김시우가 15일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마지막 4라운드 8번 홀(파3)에서 티샷을 한 뒤 갤러리들이 일제히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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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우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잡으며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기록, 공동 2위인 이언 폴터(잉글랜드)와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을 3타 차이로 따돌렸다. 투어 2승째를 올린 김시우는 상금 189만달러(약 21억3000만원)를 받았다.
세계 랭킹은 75위에서 28위로 올랐다. 이날 21세 10개월 16일이 된 김시우는 2004년 애덤 스콧(호주)이 세웠던 최연소 우승 기록(23세 8개월 12일)도 2년 가까이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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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페이스의 승부사, "전혀 떨리지 않았다"
김시우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10년 신한동해오픈 6위에 올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천재 소년'이었다. 고교 2학년이던 2012년엔 미국 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도 통과해 골프 역사상 최연소 기록도 남겼다. 하지만 김시우는 만 18세 이상만 정규 회원으로 인정하는 투어 규정에 따라 생일이 되기 전까지 투어 카드를 받지 못해 오히려 슬럼프에 빠졌다.
▲김시우 인스타그램
고작 8개 대회에 나서 기권 한 번과 컷탈락 일곱 번에 그치며 힘겹게 딴 투어 카드도 잃었다. 하지만 2년간의 2부 투어 생활은 그를 더 단단한 골퍼로 만들었다. 김시우는 "2부 투어에선 하루에 7~8타씩 줄이지 못하면 우승 못 한다"며 "그곳에서 장타 능력을 기르며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PGA 투어에 복귀하자마자 윈덤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초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던 김시우는 이번 대회에서 엄청난 장타를 뽐냈다.
'집게 그립' 한달… 3m 퍼트 백발백중
"아마추어는 드라이버, 프로는 퍼팅에서 승부가 갈린다."
김시우는 그동안 아마추어 골퍼들이 흔히 하는 이 말을 가장 실감했을지 모른다. 마음먹고 치면 드라이버샷이 300야드를 훌쩍 넘기고, 아이언샷도 정상급인데 늘 퍼팅이 발목을 잡았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전까지 김시우의 세계 랭킹은 75위였지만 라운드당 퍼트는 29.23개로 125위에 머물러 있었다
오른손 힘 막아 그립 견고, 긴장될 때 특히 효과만점
김시우가 찾아낸 해법은 '집게 그립'이었다. 집게 그립은 악수하듯 양손으로 퍼터를 잡은 일반적인 그립과 다르다. 왼손은 일반적인 그립과 마찬가지이지만,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퍼터 샤프트에 살며시 끼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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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우가 집게 그립을 사용하게 된 건 지난 4월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의 집게 그립을 본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시우는 "아버지가 '잘하는 선수가 하는 거라면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했던 게 계기가 됐다"며 "(4월 중순부터) 1주 정도 연습하고 (지난달 23일 막을 내린) 텍사스오픈에서 처음으로 실전 적용을 했다"고 말했다. 집게 그립으로 바꾼 김시우는 이번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선 3m 이내 거리의 퍼트 15개를 모두 성공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정상급 퍼팅 능력'을 갖게 된 셈이다.
주말골퍼가 따라하면 역효과 오른손 사용안해, 거리감 못맞춰
마스터스와 '제5의 메이저'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자가 모두 집게 그립을 사용하면서 골프계에선 "집게 그립이 대세가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가르시아와 필 미컬슨(미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집게 그립 마니아'가 됐고, 지난해부터 롱퍼터 사용이 금지되면서 애덤 스콧(호주)을 비롯한 롱퍼터 사용자들이 대거 집게 그립으로 전향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주말 골퍼들로선 집게 그립이 퍼팅 고민을 해결해 줄 '특효약'처럼 생각할 수 있다.
'냉철한 표정'에 세계가 매료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냉철한 표정의 승부사 김시우가 전 세계 골프 팬들을 매혹시켰다. 김시우를 한국에서 온 '어린 풋내기' 정도로 여겼던 외신과 동료 선수들은 그의 역전승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영국 가디언은 15일 "김시우가 이번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다"며 "그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겁 없이 전진하며 특급 선수들을 줄줄이 물리쳤다"고 보도했다.
최종 4라운드에서 김시우와 한 조에 묶여 18홀을 함께 돌았던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0년 브리티시오픈 우승자인 우스트히즌은 "김시우는 PGA 투어 5~6년 차 선수처럼 경기했다"며 "큰 경기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점이 그를 위대한 챔피언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PGA 투어 동료인 빌리 호셸(미국)은 "그 나이에 이렇게 잘 치는 선수는 조던 스피스(미국)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2월부터 김시우를 지도하고 있는 타이거 우즈의 전 스윙 코치 션 폴리는 USA투데이 스포츠 인터뷰에서 "김시우는 자기에 대한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며 "그 친구는 특별하다"고 평가했다. PGA 투어는 홈페이지를 통해 "김시우는 최경주의 뒤를 이을 한국 스타"라고 했다./김승재 기자
최경주 "시우, 너무 고맙고 대견"
"요즘엔 비행기에서도 와이파이가 되더라고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김)시우의 우승 소식을 들었어요. 아,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2016년 10월 6일, 전설과 루키가 한자리에 섰다. 최경주(왼쪽)와 김시우가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용인 88컨트리클럽) 1라운드 2번홀에서 같은 곳을 응시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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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시우는 "주니어 시절 최경주 프로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웠고, 작년과 올해에는 대회에 앞서 연습 라운드도 함께해주신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며 대선배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최경주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강성훈, 김시우와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너희는 내가 우승할 때보다도 20~30야드는 더 멀리 치니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시우는 성격도 차분하고 샷이 워낙 좋아서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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