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初心)
서동평씨는 33살 총각이고 공권유술을 수련한지 5개월째입니다.
처음 공권유술 도장에 처음 입문했을 때 얼마나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인지 “호신”이라는 구호를 넣는데 만 거짐 한 달은 족히 걸렸을 듯 합니다. 기합소리도 모기소리만 해서 훈련이 끝나면, 그 양반이 함께 수련하고 있었는지 어쩠는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공권유술 훈련을 통해서 승부근성도 생겼고 적극적인 의사표시도 잘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수련이 끝나고 상의 할 것이 있다고 해서 그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가 하는 말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자신은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자금난에 허덕이다가 문을 닫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휴직상태였으므로 취직을 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쉽지 않아 한국인력관리공단에서 주선하는 중국취업알선에 참가해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중국의 베이징에서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연수비는 150만원이고 3개월간의 연수를 마치면 중국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그가 말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홈페이지도 찾아보고, 이야기를 잘 들어본 후,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보니까 서동평씨에게는 그다지 유리해보이지가 않아 나의 의견을 이야기 했습니다. 결국 반대를 하는 쪽이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에서 연수를 받는 비용이 국가보조금이 아니라 개인의 사비로 가는 것도 그렇고, 중국행 비행기표와 3개월간의 숙식비용도 자비로 부담해야 하므로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며 취직이 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회사, 어떤 직종에 취직이 되는지도 현재로선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다가 설사 취직이 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돈으로 120만원 정도의 월급이라면 굳이 중국에서 일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는 조언을 했습니다.
서동평씨의 안색은 실망한 기력이 역력했습니다. 서동평씨는 중국에서 대학원을 나왔고 중국말을 중국사람보다 더 잘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동평씨라면 분명히 조만간 좋은 취직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응원을 했습니다.
연수비 150만원은 이미 입금된 상태라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신도 고민되는 상항에서 주위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겠지만 어째든 결정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그의 마음은 몹시 심란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무실 문을 닫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좁은 어깨가 더욱 처져 보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서동평씨에 대한 일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수련을 마치고 양말을 신고 있는데 서동평씨가 음료수 상자를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옵니다. 말쑥한 양복차림에 단정한 머리스타일입니다.
“중국에 가지 않으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그가 멋쩍은 듯이 허리를 굳히며 소파에 앉습니다.
“제가 취직을 하게 되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장님의 조언을 듣고 그날 저녁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고생을 각오하고 중국에 있는 회사에 취직할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 정신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엊그제 대한항공 입사 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운 좋게 합격을 하고 면접을 보았습니다. 이력서에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공부한 내용도 지금 공권유술 노란띠지만 나이를 먹어서도 자기개발을 위해 무술수련을 한다는 것에 면접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제 몇 주 후 저는 인천공항에서 일을 할 것입니다. 관장님의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내일처럼 기쁩니다. 축하한다는 말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그가 걱정하는 또 다른 사안은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지 못해서 단체생활에 대한 감각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서동평씨는 직장생활을 잘 해날 것입니다. 내가 보장을 합니다. 분명 직장상사에게 신임도 얻을 것이고 동료들 간에도 인기가 많을 거에요!”
그가 웃습니다.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릴 것 같아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직장생활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그냥 공권유술 도장에서 수련하는 것처럼 하면 10점 만점에 10점이 될 거 에요.”
그가 또 웃습니다.
“우리가 서동평씨를 호명하면 어떻게 대답하나요? ‘호신’이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지 않습니까? 만약 직장에서 누군가 서동평씨를 부르면 큰소리로 네! 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아주 간단한 거에요. 그냥 큰소리로 넵! 하고 대답하면 되는 것 입니다. 그 사람이 서동평씨를 부른 것은 용무가 있어서입니다. 볼일이 없다면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그러면 나이와 직책을 떠나서 큰 소리로 대답을 해야 하고, 그 즉시 그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 거에요. ‘왜요?’ 라고 반문하지 마십시요! 그냥 쳐다보고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지 마세요! 만약 사무실에서 아침대용으로 김밥을 먹고 있는데 과장님께서 서동평씨를 부르면 입속에 있는 김밥을 삼키지 말고 바로 뱉는 겁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네! 라고 대답하는 거에요. 그리곤 즉시 과장님에게 달려가 앞에 서세요. 이런 행동이 과장님에게 직장동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게 사람이 지켜야할 기본 매너인데 사람들은 이걸 못합니다. 평소 이렇게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공권유술을 수련하면서 대답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잖습니까? 이러한 습관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나오는 겁니다.”
이번엔 그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는 수련하면서 늘 나의 파트너가 바뀔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나를 상대해주어서 나의 실력을 높이데 일조를 해주어서 감사하고, 파트너가 되어주어서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조그만 실수를 하면 어김없이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직장에서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진심을 담아서 동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세요. 조그만 실수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십시오. 도장에서 청소를 하는 것은, 지금 이후의 타임에 수련하는 사람들이 좀 더 쾌적한 환경 속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때문입니다. 도장에서 하는 행동처럼 직장에서 할 수만 있다면 서동평씨의 주변에는 언제나 즐거운 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동평씨가 최선을 다해서 직장 생활을 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짐합니다. 또한 인천공항과 공권유술 도장과의 거리가 아무리 멀다고 하라도 열심히 도장에 나와 수련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요즘 대학을 졸업한 젊은 청춘들이 취직을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같이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직장이 아니더라도 그저 열심히 일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직업을 구하고 있습니다. 정식직원이 아니더라도 그저 입사를 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에 취직을 하고 몇 년 만 지나면 초심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대체적으로 좀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싶어 하면서, 일은 조금만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월급이 적은 것이 한국의 정치판 때문이고 하기 싫은 일은 하는 것이 사회의 구조 때문이라고 불평불만을 합니다.
모든 원인이 나로써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투덜댑니다. 어차피 사직서를 내지도 않을 거면서, 툭하면 직장을 때려치워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이렇게 죽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면 하루하루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과거 내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절박한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합니다.
서동평씨가 그 동안 절박했던 심경의 일을 잊지 않고 초심(初心)의 마음으로 즐거운 직장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父母呼我 唯而趨進 (부모호아 유이추진) 부모님께서 나를 부르시거든 빨리 대답하고 달려 나갈지라.
四字小學(사자소학)에 나오는 말로 “아버지가 부르시거든 즉시 대답하여 머뭇거림이 없어야 하며, 만일 입속에 음식이 있거든 이를 뱉고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라.”라는 뜻.
첫댓글 초심만으로 인생을 살아가기에 힘이 들기에 열정을 보태어서 균형을 맞추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초심이 변하지 않더라도 힘이 들고 지쳐 있다면 그럴때 살포시 열정을 얹어 준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이 자주 듣니다. 지도자이기 이전에 수련생이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자 다른 이들에게는 조연 또는 엑스트라가 되는 것이 인생이기에 오늘 하루도 얼마 남지 않은 2013년을 보람차게 보내고자 합니다. 호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호신!!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요. 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