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는 관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집니다. 불교에서는 관상을 무시하진 않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하죠. 운명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각자 자기 관상이 안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운명은 관상대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공덕을 짓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바뀐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옛날 중국에 매우 유명한 관상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어느 큰 부자가 자기 아들 관상을 봐 달라면서 관상가를 집에 초대했어요.
“이 아이의 관상을 좀 봐주십시오. 저희 집안이 부자이긴 합니다만 아직 벼슬에 오른 사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그래서 항상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아들이 큰 벼슬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관상가가 아들 얼굴을 보니 소위 말하는 떡두꺼비 상이었어요.
“이 아이 관상은 제가 본 관상 중에서도 제일 좋습니다. 그냥 둬도 알아서 잘 크고, 나중에 큰 벼슬에 오를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자는 무척 기뻤습니다.
이때 부자 아들의 친구인 아이가 집에 놀러 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지나가다 관상이니, 떡두꺼비 상이니, 큰 벼슬자리에 오르니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지요. 아이는 부잣집 대문 밖으로 나가서 관상가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후하게 대접받은 관상가가 대문을 나서자 아이는 관상가에게 쪼르르 달려가 말합니다.
“나리, 아까 제 친구 관상 봐주셨지요? 저도 큰 벼슬을 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데, 제가 벼슬할 수 있을지 제 관상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아이의 얼굴을 훑어본 관상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도저히 벼슬할 얼굴이 아니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농사 지으면서 입에 풀칠할 궁리나 해라.”
이후 수십 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관상가도 나이가 많이 들었죠.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고을을 다스리는 현감이 관상가를 대접하고 싶다면서 사람을 시켜 불렀습니다. 관상가는 의아했죠. 현감과 자기는 아무 인연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관아에는 아주 위엄 있어 보이는 현감이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관상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감은 관상가를 반갑게 맞이했지요.
“어르신,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기 상석에 앉으시지요.”
관상가가 물었습니다.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습니까?”
“어르신께서는 오래전에 어느 부잣집에 오셔서 그 집 아들 관상을 봐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날 관상을 보신 뒤 부잣집을 나설 때 한 아이가 어르신에게 와서 자기 관상도 봐 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때 어르신께서는 그 아이에게 ‘너는 벼슬할 상이 아니니 입에 풀칠할 궁리나 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십 년 전의 일이긴 했지만 현감의 말을 들으니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관상가가 기억이 난다고 하자 현감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때 어르신께서 농사나 지으라고 했던 아이가 바로 접니다.”
관상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까지 관상을 잘못 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리둥절한 관상가에게 현감이 말했습니다.
“제가 어르신께 드릴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예전에 어르신께서 앞으로 큰 인물이 될 테니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 그 부잣집 아이를 기억하시는지요?”
“예, 기억납니다.지금쯤 큰 벼슬을 하고 있겠지요?”
“아닙니다. 폐인으로 살다가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그 친구는 그날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만에 빠졌습니다. 집안이 부자이니 주색잡기에만 몰두하고 공부는 하지 않았지요. 부모님이 걱정을 해도 ‘관상가가 분명 큰 벼슬을 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때만 기다리십시오.’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났지만 주색과 놀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그는 결국 집안 재산을 다 날리고 폐인이 되어 쓸쓸하게 죽었습니다.”
관상가는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좋게 이야기했던 말이 씨앗이 되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관상가가 말했습니다.
“그럼 현감께서는 어떻게 이 위치에 오르셨습니까?”
현감이 웃었습니다.
“그때 저는 어르신에게 모진 말을 듣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지요. 그래서 저도 관상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관상이 좋은 것은 골상骨相이 좋은 것만 못하고, 골상이 좋은 것은 심상心相이 좋은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더군요. 저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심상을 좋게 하면 관상이 나쁜 건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결국 마음을 잘 써야 한다는 말이지요. 현감은 당시 ‘그래, 내 관상을 극복하려면 마음 잘 쓰는 방법밖에 없구나.’하며 절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몇 년간 그 절 큰스님 밑에서 마음 공부를 했다고 하죠.
어느 정도 공부를 마치니 큰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세속에서 뜻을 이뤄야 할 사람이야. 모든 욕심을 버리고 출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으니, 마음 쓰는 법을 잘 활용해서 네 뜻을 이루어라.”
그렇게 하산한 이후 주변 사람들의 힘든 일을 자기의 힘든 일처럼 생각하고 매일 봉사하면서 살았습니다. 무언가 댓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닌, 순수하게 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나도 꾸준하게 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그에게 모이기 시작했고, 20년이 지나자 그에 대한 칭송이 조정에까지 전해졌습니다.
하루는 황제가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각 지방에 사는 덕 있는 사람들을 천거해라. 마땅히 심사해서 벼슬을 내리겠노라.”
그때 조정에서는 이 사람을 천거했습니다. 황제가 심사해 보니 과연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덕이 있는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기쁘구나. 이 사람을 그 고을 현감으로 제수하겠노라.”
관상이 나빴던 아이는 이렇게 해서 결국 현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현감의 이야기를 들은 관상가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저도 일찍이 젊었을 때 ‘아무리 관상이 좋아도 심상 좋은 것만 못하다. 아무리 관상이 나빠도 심상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실천한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에야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군요. 현감께서는 정말로 위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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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이 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극락도사 아미타여래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