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일은 '교황주일'이다.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가톨릭 교회 최고 사목자요 모든 인류의 영적 아버지이다. 교황주일을 맞아 역사 흐름과 함께 해온 교황들 자취를 살펴본다. 사진제공=한국교회사연구소 ------------------------------------------
▨ 초대 교황 사도 성 베드로 무덤
사도 베드로 무덤은 1939년 제259대 교황 비오 11세(1922~1939년 재위) 시신을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안장할 때 중앙 제대 밑 갈라진 벽 틈에서 발견됐다. 그의 무덤에는 150년경에 만든 천개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 벽에는 '베드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제260대 교황 비오 12세(1939~1958년 재위)는 1949년 8월 이 무덤을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발굴된 유골은 금실로 수놓은 자주색 천에 정성스레 싸여 있었다. 조사 결과 유골은 1세기경 골격이 큰 60대 중반 남자의 뼈로 밝혀졌다. 사도 베드로는 60대 후반의 나이로 순교했다.
제262대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년 재위)는 1968년 6월26일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서 출토된 유골이 성 베드로 유해임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발표한 후 다음날 유골을 다시 원래 무덤에 안장했다.
▨ 현 베네딕토 16세는 제265대 교황
초대 사도 성 베드로부터 현 베네딕토 16세까지 모두 265명이 교황직에 올랐다.이들 중 78명이 시성됐고, 9명이 복자품에 올랐다.
출신지별로 이탈리아 195명, 그리스 15명(예루살렘 출생 그리스계 포함), 독일 11명(이탈리아 출생 게르만계 포함), 아프리카 2명, 프랑스 14명, 영국 1명, 사르데냐 2, 스페인 2명, 달마치아 1명, 포르투갈 1명, 폴란드 1명, 네덜란드 1명, 미상 14명이 배출됐다. 또 제3대 아나글레토(79~90/92년 재위)와 제16대 갈리스도 1세(217~222년 재위)는 노예 출신이었다.
베드로 사도를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교황직을 수행한 교황은 제255대 비오 9세(1846~1878년 재위)로 31년 8개월을, 그 뒤를 제264대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가 이어 26년 6개월을 재임했다.
가장 짧게 재임한 교황은 스테파노 2세(752년)로 즉위식도 치루지 못한 채 선출 나흘만에 선종해 지금도 교황인명록에 그 이름을 넣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논쟁중이다. 그 다음으로 제228대 우르바노 7세(1590년 재위)가 12일간 재위했다.
또 평신도 출신으로 하루동안 모든 품을 받고 교황직에 오른 인물도 5명이나 된다. 이들 중 제131대 요한 12세(955~963년 재위)와 제147대 베네딕토 9세(1032~1045년 재위)는 모두 18살의 어린 나이로 교황직에 올랐다. 특히 베네딕토 9세는 1045년에 자신의 대부 요한 그라시아노에게 은전 100파운드에 교황직을 팔았고, 그라시아노는 제149대 그레고리오 6세(1045~1046년 재위)로 교황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 단 2명뿐인 대교황
역대 교황 중 '대교황'칭호를 받은 이는 제45대 레오 1세(440~461년 재위)와 제64대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 재위) 2명뿐이다. 레오 1세는 칼체돈 공의회(451년)을 개최해 그리스도에겐 오직 신성뿐이라는 네스토리우스와 단성론자들을 단죄했고, 훈족과 반달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했을때 직접 담판을 지어 군대를 철수시켜 시민들 생명을 구했다.
성 베네딕도회 출신으로, 수도자로 최초 교황이 된 그레고리오 1세는 빈민구제에 앞장섰고, 롬바르디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하자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또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을 영국으로 보내 앵글로색슨족을 복음화했고, 서방 교회 수도원을 부흥시켰다.
▨'면도한' 교황
제7대 교황 식스토1세(116~125년?재위)의 이름은 라틴어 '6'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희랍어 '익스토'(Xystus)였다고 한다. 이 말은 '면도한'이란 뜻의 형용사인데, 당시 로마에는 황제의 명에 의해 오랜 세월 이어져온 면도 관습이 밀려나고 턱수염을 기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교황은 이 유행을 따르지 않고 계속 면도를 했는데 깔끔한 맨 얼굴이 그의 특징이 돼 익스토라는 이름을 택했다고 한다.
▨ 작가 교황들
제210대 비오 2세(1458~1464년 재위)는 교황이 되기 전 폭넓은 소재의 작품을 쓴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소설 「두여자 이야기」, 희곡 「크리시스」 「아동교육에 관한 에세이」 「고트족과 보헤미안에 관한 역사서」 「프리드리히 황제의 전기」뿐 아니라 설교집, 주석서, 서간집 등을 남겼다.
제238대 클레멘스 9세(1667~1669년 재위)는 희극 오페라 「키 소프레 스페리」 대본을 직접 집필해 종교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희곡 「보석가게」와 네 편의 단행본, 500여편의 논문과 수필집을 펴냈다.
제225대 비오 5세(1572~1585년 재위)는 자신이 좋아하는 후식 '마르멜로 타르트'조리법을 소개한 「교황 비오 5세의 요리비법」을 출간했다.
34일만에 서거한 제263대 요한 바오로 1세(1978년 재위)는 동화책 주인공인 피노키오에게 팬레터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 편지는 그의 편지 모음집에 수록돼 있다.
한편 제186대 하드리아노 5세(1276년 재위)는 단테의 「신곡」에서 연옥에 떨어진 교황으로 묘사되고 있다.
▨ 스피드와 독서광이었던 고행자 바오로 6세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제262대 바오로 6세(1963~1978년 재위)는 스피드광인 동시에 독서광이었다. 그는 종종 교황 전용차 뒷좌석에 초시계를 들고 앉아 운전기사에게 차를 더 빨리 몰라고 채근하곤 했다. 또 해외 순방때는 75개나 되는 나무상자에 책을 담아 다니며 독서를 즐겼다. 그는 모직에 뽀족한 금속이 달려있는 고행셔츠를 즐겨 입었는데 특히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화려한 제의 속에 이 셔츠를 착용했다고 한다.
▨ 너무나 인간적인 요한 23세
제261대 요한 23세(1958~1963년 재위)는 '착하신 교황'으로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그가 임종때 남긴 것이라고는 주치의에게 마지막 선물로 준 만년필과 가슴에 달고 있던 십자가 뿐이었을 만큼 가난하게 살았다.
배가 유난히 나온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후 "모두들 내가 교황이 되기를 바라지만 이들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농담을 던져 옷치수를 재기 위해 잔뜩 긴장하고 있던 재단사들을 격려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교황을 사랑했고,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교황을 위해 파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요한 23세는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1시에 일어나 직무를 했는데 피곤해서인지 잠꼬대를 자주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나는 모른다. 교황에게 물어보겠다"고 잠꼬대를 했다고 한다.
▨ 최초라는 수식어가 가장 많이 붙는 요한 바오로 2세
제264대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는 최초의 공산국가 출신 교황이며, 최초의 폴란드인 교황이다. 또 역대 교황 중 최초로 전자시계를 차고, 스키와 등산, 카누 등을 즐긴 교황이다. 아울러 폴란드 법 때문에 10달러만 들고 콘클라베에 참석한 최초 교황이며. 커피와 빵을 먹는 이탈리아식 아침 식사 대신 베이컨과 계란을 즐긴 최초 교황이었다. 또 군중들 앞에서 저격당한 최초의 교황이며, 그때 입은 총상 때문에 일반 병원으로 이송된 최초의 교황이었다. 또 재임기간 중 가장 많은 해외 사목방문을 한 교황이다.
리길재 기자teotokos@pbc.co.kr
(사진설명) ▲ 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 계절별로 음식을 만들어 가난한 이들에게 전달했고, 병든 이들에게 자신의 식탁에 놓인 음식을 먹지도 않고 나눠줘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로 사랑받았다. 전승에 따르면 비둘기 모양을 한 성령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레고리오 1세가 해야 할 일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레고리오 1세의 초상화에는 항상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이 그려져 있다. ▲ '착하신 교황'으로 사랑받고 있는 요한 23세가 병원을 방문, 환자들을 축복하고 있다. ▲ 역대 교황 중 유일하게 타자기를 사용할 줄 안 비오 12세가 타자기로 연설문을 작성하고 있다. ▲ 공산국가 출신 첫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고국 폴란드를 방문, 자신의 희곡 「보석가게」를 공연한 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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