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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수레사원, 화강암 나무 다듬듯한 조각솜씨 빛나
마하발리푸람의 6세기 중반에 만든 석조건축물에 홀려
드라비다인과 시바(Shiva)의 세상, 남(南)인도(셋)
(2012년 3월 11일 ~ 3월 20일)
산토메 성당, 힌두교 ․ 기독교문화 융합된 곳
산토메 성당(Santhome Cathedral).
성 토마스 성당(St. Thomas Cathedral)이라고도 불린다.
신 고딕양식인 이 성당건물은 새하얀 외관이 너무 매력적이다.
이 성당은 힌두교와 기독교문화가 이색적으로 융합된 곳이기도 하다.
(마하발리푸람의 ‘다섯 라타(Five Rathas)사원’ 전경. 4번 탑은 보이지 않는다.)
(‘다섯 라타(Five Rathas)사원’ 의 표지판. 왼쪽은 타밀어, 오른쪽은 영어표지판이다.)
힌두사원을 찾을 때 모든 사람이 다 맨발로 참배하듯 이 성당 역시 다른 나라의 성당과는 달리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기도를 할 땐 꼭 성모마리아상이나 예수님 상을 만지며 기도한다.
이 또한 힌두 신을 만지며 기도하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기도방식이다.
성상을 쳐다보면서 고개 숙여 기도드리는 외국인신교들이 볼 때 의아하게 느껴진다.
(토마성당 안 높은 금색원통기둥 꼭대기엔 십자가가 선명하다.)
(토마성당 안의 모습. 기도를 드리는 인도인들이 보인다.)
성모마리아상에 인도의 고유민속의상인 사리(Sari)를 입혀놓았다.
물론 한국의 성당에도 한복을 입힌 마리아상을 볼 수 있긴 하지만.
또 목엔 꽃목걸이를 했다.
이는 인도인들이 힌두사원을 참배하러 갈 때 반드시 꽃목걸이를 사 신에게 봉헌하는 의식이 성당에서도 전이된 것이리라
(이 사진은 빌려온 것임을 밝힙니다.)
(지하 소 성당 안에 안치된 성 토마스의 모형시신.)
이 성당의 위치는 벵골 만 해안이다.
2004년 12월 쓰나미(tsunami)가 서남아시아해안을 휩쓸었지만 성당은 용케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따라서 성당 뒤 해안 쪽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표지판과 ‘성 토마스 폴(ST. THOMAS POLE)’을 기념물로 세워뒀다.
(성당 뒤편 해안쪽에 세워진 '성 토마스 폴'의 모습.)
성당 외관은 서구나 동양의 다른 성당과는 독특한 모형이지만 성당 내부는 거의 같은 구조다.
지하 소 성당 제대 위에는 성인 토마스(St. Thomas)의 모형시신이 붉은 천에 씌워져 유리관에 안치되었다.
유리관 위에는 “MY LORD AND MY GOD”라고 쓴 흰 천이 덮였다.
성당 뒤편엔 자그마한 박물관도 있다.
팔라바왕조 무역 ․ 군사항구 마말라푸람으로
성당에서 30여분을 머문 일행은 해안도로를 따라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으로 이동한다.
첸나이 변두리지역은 해안도로 변에 10여분가량 이어진다.
그리곤 열대림이 들어선 평원이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다.
1시간 10여분을 달린다.
조그마한 바닷가 어촌이 눈에 들어온다.
(토마성당을 떠나 10여분 간 이어지는 첸나이 변두리지역의 한 장면.)
(첸나이와 마하발리푸람 사이의 열대림지역.)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이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56km 떨어졌다.
마말라푸람(Mamallapuram)이라고도 부른다.
3세기 후반에서 9세기 말까지 타밀나두(Tamil Nadu)주 일대를 다스린 팔라바 왕조(Pallava dynastyn)의 두 번째 왕도다.
(자그마한 어촌인 마하발리푸람의 중심지 모습.)
(팔라바왕조시대 무역항이며 군사항이었던 마하발리푸람 해안 모습.)
지금의 조그마한 이 어촌은 팔라바 왕조의 대표적인 힌두유적지다.
당시엔 항구도시로 아주 번창해 먼 나라까지 교역을 한 중심지였다.
무역선이 줄을 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캄부자(Kambuja : 앙코르)왕국 ▷말레이시아 ․ 수마트라 ․ 자바 등지를 지배했던 스리비자야(Shrivijaya : Srivijaya)제국 ▷참파(Champa : 안남)제국 등의 배다.
뿐만 아니다.
군사도시였다.
큰 목조군함이 연안을 메웠다고 전해진다.
마말라푸람엔 세계문화유산인 기념물군 가득
무역으로 국가의 부가 축적되자 630년 ~ 728년 1백여 년 사이 ‘마하발리푸람의 기념물군(Group of Monuments at Mahabalipuram)’이 만들어진다.
힌두교 시바(Siva)신전인 이 기념군은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일행은 오후 1시를 조금 지나 마말라푸람(Mamallapuram)의 중심가에 닿는다.
(마하발리푸람의 중심지 이름난 먹을 거리 골목.)
해변으로 가는 도로변은 많은 수의 레스토랑과 호텔 ․ 상가가 밀집된 지역이다.
2층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음식 맛이 일품인 ‘먹을거리 골목’으로 이름난 곳이다. 해산물이 주요메뉴다.
정 사장님과 둘은 바다가재와 민물 게 요리를 주문한다.
물론 반주로 와인이 뒤따른다.
명성에 비해 나그네 입맛을 받쳐주지 못해 아쉬웠다.
일행은 바로 해변 남쪽에 위치한 ‘다섯 라타(Five Rathas)사원’으로 향한다.
석굴 ․ 수레모양사원 등 고혹적 자태에 홀려
◆세계문화유산 ‘마하발리푸람의 기념물군(Group of Monuments at Mahabalipuram)’이란? : 팔라바 왕조(Pallava dynastyn)가 7 ~ 8세기에 벵골 만 코로만델(Coromandel)연안에 자연적으로 솟은 화강암지대의 바위를 깎아 만든 힌두사원들을 말한다.
(다섯 라타(Ratha : 신여차(神輿車) : 수레)사원의 출입구에서 본 전경.)
이 기념군은 대략 다섯 범주로 나누어진다. ①다섯 라타(Ratha : 신여차(神輿車) : 수레)사원 ②부조가 조각되어 있는 여러 개의 만다파(Mandapam : 석굴) ③‘갠지스강의 하강(Descent of the Ganges)’ 일명 ‘아르주나의 고행(Arjuna`s penance)’이라는 거대한 야외암석부조 ④해안사원(Share Temple) ⑤화강암덩이를 다듬어 만든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인 6개의 라타(Ratha)사원이다. 이들 라타 사원의 건축 형태는 ▷4각형 3곳 ▷직4각형 2곳 ▷반원형 1곳 등 3가지 유형이다.
‘다섯 수레사원’, 화강암바위 나무 다듬듯 조각
◆‘다섯 수레(Five Rathas)사원’ : 판차 판다바 라타(Pancha Pandava Rathas)라고도 부른다. 라타(Ratha)는 ‘신이 타는 수레(神輿車)’를 말한다. 수레모양의 사원을 말한다.
라타사원의 원형은 4개의 수레바퀴가 달렸다. 특별한 행사 땐 두 마리의 코끼리가 끌고 다닌다. 함피(Hampi)의 비탈라 사원에 가면 수레바퀴가 달린 라타사원의 원형을 볼 수 있다.
(함피 비탈라사원에 있는 라타사원의 원형 모습.)
작은 사당을 닮은 형태의 다섯 개 건축물은 모두 화강암 바위덩이를 쪼아 만든 것이다. 이곳의 다섯 라타사원 모두 수레바퀴는 없다.
사원경내 입구 쪽부터 ▷드라우파티 라타(Draupai Ratha) ▷아르주나 라타(Arjuna Ratha) ▷바르마 라타(Bhima Ratha) ▷다르마자르 라타(Dharmaraja Ratha)가 일직선으로 서있다. 단 ▷나쿨라 샤하데바 라타(Nakula Shadeva Ratha)는 첫 번 째 드라바티 라타 앞쪽에 따로 떨어졌다.
(다섯 라타(Ratha : 신여차(神輿車) : 수레)사원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표지판.)
이 다섯 라타사원의 명칭은 인도고전의 하나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주인공인 ‘판다바 5왕자’ 이름을 따온 것이다. ‘판다바 5왕자’는 ▷유디스트라(Yudhishtira) ▷비마(Bhima) ▷아르쥬나(Arjuna) ▷나콜라(Nakula) ▷사하데바Sahadeva)다.첫 번째 라타사원의 명칭은 5왕자의 공동아내인 드라우파디(Draupadi)다.
부드러운 여성상 표현, 지붕은 고혹적
▶첫 번째 드라우파디 라타(Draupadi Ratha) : 정방형에 4각형 둥근모양의 지붕을 가진 사원이다. 시바(Siva)의 비(妃) 두르가(Durga)상이 안팎으로 조각돼 있다.
사원 내부는 삭발 준비 중인 여인상 옆에 여신(女神) 두르가가 서 있는 조각이 새겨졌다. 또 사원 바깥쪽엔 출입구 양쪽과 나머지 3면엔 반 나신의 두르가 부조가 있다.
(지붕이 매혹적인 첫 째 사원. 아래는 사원 안 두르가의 조각상.)
(여신 두르가의 탈것인 사자상이 앞에 있다.)
이 사원 앞쪽엔 두르가가 타고 다니는 실물크기의 사자상이 버틴다.
5왕자 공동아내의 사원이라 전체적으로 여성적인 표현을 담아 조각한 듯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을 갖추었다. 특히 지붕은 고대 주택의 지붕형태를 닮아 고혹적인 자태를 보여준다.
시바(Siva)상 부조 둘러, 난디도 함께
▶두 번째 아르주나 라타(Arjuna Ratha) : 높은 4각 기단 위에 3층 탑 모양의 사원이다. 지붕은 8각형이고. 1층 벽면엔 시바((Siva)상 부조가 둘러져 장식됐다.
(두 번째 사원의 전경.)
(이 사원 벽에 새겨진 시바신상과 그의 가족들.)
(시바신의 탈것인 난디상.)
사원벽면 중앙엔 시바가 다리를 꼬고 난디(Nandi)에 기댄 모습의 조각이 새겨졌다. 탑 뒤쪽에는 시바(Siva)신이 타고 다니는 실물 크기의 수소 난디가 버티고 앉았다.
보석함 모양 박공지붕의 미완성 건물
▶세 번째 비마 라타(Bhima Ratha) : 보석함 모양의 대형사원이다. 박공(牔栱)지붕(gable roof)을 한 큰 전각(7.6×14.5m)과 흡사하다. 비슈누(Visnu)신전이지만 4개의 기둥부터 사원 안팎에 모두 사람형상에 사자머리를 한 조각상이 새겨졌다.
(보석함을 닮은 세 번째 사원 전경.)
(네 개의 기둥에 조각된 사장상.)
(미완성 부분인 복도.)
기둥 안의 복도는 미완성인 채 남아있어 사원은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조각했음을 보여준다.
시바 ․ 파르바티 결합상 너무 특이해
▶네 번째 다르마라자 라타(Dharmaraja Ratha) : 직4각형 4층 사원으로 돔형 시크라(Shikhara)지붕이 이색적이다. 시바를 위한 사원이다. 모양이 두 번째 아르주나 라타와 비슷하지만 규모가 더 크다.
사원 북쪽 왼편 벽엔 시바와 비슈누의 결합 형태인 하리-하라(Hari-Hara : 시바가 도끼를 든 모습.)의 조각상이 새겨졌다.
또 사원 동쪽 오른편엔 시바와 그의 비(妃) 파르바티의 결합 형태인 아르다나르-이스와라(Ardhanar -Ishvara : 시바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모습.)의 부조가 있다. 이 부조모양은 시바가 오른손에 도끼를 들었고, 왼쪽가슴은 특이하게 여자유방이다.
(네 번째 사원의 전경.)
(시바와 그의 비(妃) 파르바티의 결합조각상. 왼쪽 가슴은 여자유방을 조각했다.)
서쪽 오른편엔 이 다섯 수레사원을 건립한 팔라바왕조 나라시마바르만 1세(Narasimhavarman I : 일명 ‘Mamalla’ : 재위 630 ~ 668)의 부조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팔라바왕조 나라시마바르만 1세(Narasimhavarman I : 일명 ‘Mamalla’ : 재위 630 ~ 668)의 부조상)
이 사원 옆엔 석공들이 바위덩이에다 정으로 일직선의 작은 구멍을 뚫어 쪼개려다가 그대로 남겨두기도 했다. 또 라타 뒤쪽엔 계단공사를 벌이다가 그냥 둔 곳도 보인다.
코끼리 거느린 4각3층 비대칭 형태
▶다섯 번째 나쿨라 샤하데바 라타(Nakula Sahadeva Ratha) : 4각형 3층사원이다. 앞면은 3층이며, 뒷면은 둥근 3층으로 비대칭 형태를 이룬다. 불교에서의 차이티야(Chaitya : 塔院)와 흡사한 모양이다.
(홀로 떨어진 다섯 번째 사원 전경.)
(사원 안의 조각상들.)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동물 코끼리상.)
그 옆엔 힌두교의 상징인 실물크기의 큰 코끼리상이 서 있다. 코끼리를 탈것으로 한 신은
‘전쟁의 신’ 안드라(Indra)다. 외롭게 홀로 서있다.
7세기 중반 석조사원, 미술사적 평가 높아
‘다섯 수레(Five Rathas)사원’에 머문 시간은 30여분.
이 사원들은 팔라바 왕조(Pallava dynasty)의 최전성기인 나라시마바르만 1세(Narasimhavarman I : 일명 ‘Mamalla’ : 재위 630 ~ 668) 시절의 유적이다.
촐라 왕조(Chola Dynasty)의 문서에는 이 도시의 이름이 마말라푸람(Mamallapuram)이라고 적혔다.
(사원 중간중간에도 화강암바위덩이들이 놓였다.)
화강암으로 부드럽고 유연하게 다듬은 이 다섯 수레사원은 외관은 물론 건축형태가 모두 다르다.
특히 당시 목조건물 모습을 그대로 전해 미술사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견문이 일천한 나그네는 ‘라타(Rathas)형 사원’을 인도가 아닌 스리랑카에서 먼저 보았다.
스리랑카 담불라(Dambulla)에서 다섯 석굴사원(세계문화유산 등록문화재)을 둘러보고 캔디(Kandy)로 가는 중 나란다(Nalanda)에서 ‘게디게 라타 사원(Nalanda Gedige Vihara)’을 만난다.
(스리랑카 나란다의 게디게 라타사원의 전경.)
이 사원은 9 ~ 10세기에 축조된 것이다.
바위덩이 하나를 깎아 만든 것이 아니라 수천 개의 사암을 다듬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그러니 마말라푸람의 ‘다섯 수레(Five Rathas)사원’에 비해 2세기 뒤에 만든 것인데도 스리랑카인 석공솜씨가 남인도 드라비다족 장인에게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걸 알게 해줬다.
한국 탑의 정수라 일컫는 다보탑과 석가탑, 그리고 신라장인들의 빼어난 솜씨가 일구어낸 토함산 석굴암도 통일신라시대인 75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 ‘다섯 수레(Five Rathas)사원’보다 1세기 뒤의 작품들이다.
남인도 타밀족장인들이 화강암을 마치 나무 다듬질 하듯 한 이 걸출한 솜씨는 통일신라시대불교문화를 압도하는 듯 느껴짐은 석조예술에 대한 나그네의 무지함만의 소치일까?
제례의식도 봉헌물도 없어 의아심 자아내
이곳은 사원이라지만 공양을 올리는 푸자(puja) 등 제례의식을 전혀 치르지 않는 곳이다.
푸자를 주제할 힌두사제도 없는 사원이다.
참배객들 또한 여러 신에게 꽃 ․ 음식 ․ 물 ․ 과일 ․ 등불 등 봉헌 물을 올리지도 않음은 물론이고.
(쪼개려다 그대로 둔 바위들.)
이곳을 참배하는 인도인은 각 사원의 안팎을 돌아보면서 부조를 만지거나 구경하는 게 전부다.
또 난디(Nandi)상과 사자 상, 코끼리 상에도 올라앉거나 귀나 코 등을 붙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원 안의 신상과 바깥 벽면에 새겨진 조각품도 많이 만져 손 떼가 묻어 까맣다.
그러니 두 손 모아 경배하는 장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나그네를 어리둥절케 했다. 젊은이들은 마치 유원지를 찾아 즐기는 장소로 여기는 듯 웃고 떠들고 장난까지 쳐 더욱 의아심을 자아냈다.
(사원 꼭대기에 설치될 칼라샤가 조각만 된 채 바위덩이에 그대로 붙어있다.)
특히 네 번째 다르마자르 라타(Dharmaraja Ratha) 앞엔 사원 꼭대기에 올려 져야할 칼라샤(kalasha)가 땅바닥 바위덩이에 조각된 채 그대로 버틴다.
만약 이 사원이 건축도면대로 완공되었더라면 더 걸출한 모습이 아닐는지?
또 빼어난 건축물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돋웠다.
◆두르가(Durga)신이란? : 시바(Siva)의 비(妃)다. 힌두신화에서 두르가는 ‘성스러운 여전사(女戰士)’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두르가는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아가 악마를 물리치는 게 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용감하다. 금빛 나는 열 개의 팔과 신들에게 받은 무기를 손에 들고 사자 등에 올라 전쟁에 임한다.
그녀는 힌두여신(女神)으로는 가장 숭배 받는다. 인도전역에 그의 신상이나 이미지가 발견될 정도로 그에 대한 신앙은 보편적이다. 특히 벵갈 ․ 아쌈 ․ 데칸지방에서는 모신(母神)으로 숭배되고 있다.
그녀는 아홉 가지의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가우리(Gauri : 조용하고 우호적일 때의 모습) ▷챤디(Chandi : 무시무시한 형태) ▷안나뿌르나(Annapurna : 음식을 나누어줄 때의 형상) ▷따라(Tara : 용서를 해줄 때의 모습) 등등이다.
(전쟁에서 싸움하는 두르가의 모습. 이 그림은 네이버에서 빌려옴.)
두르가와 관련된 신화는 흥미롭다. 《옛날 옛적 마히샤(Mahisha)라는 역발산의 악마가 있었다. 그는 많은 신들을 제압하고 신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면서 신들을 천상에서 쫓아내 버린다.
지상에서 떠돌던 신들은 힌두의 삼신(三神)인 브라흐마 ․ 비슈누 ․ 시바에게 찾아가 “피난처를 구해주십시오.”라고 간청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삼신은 입에 광휘를 내뿜어 여신 두르가를 만들어낸다. 그리곤 자신들의 무기도 그녀에게 준다.
두르가는 악신 마히샤(Mahisha)와 싸운다. 그녀의 무기를 든 천 개의 팔과 그녀가 탄 사자가 마히샤의 군대를 무찌른다. 마히샤는 버팔로 ․ 코끼리 ․ 무서운 인간 등의 형상을 취하면서 공격해왔지만 결국 그녀에게 살해되고 만다.
(여신 두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졌다.)
신들은 여신 두르가를 찬양하며 간청한다. “오~ 위대한 여신이여!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원해주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라고. 그녀는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한다.
지금 인도에서 강력한 여성상을 추구하는 힌두 근본주의 여성단체들은 두르가를 그들의 상징으로 이용하고 있을 정도다.
2013/02/12 09: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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