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변화된 일상)
대구에 2월 18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지 4개월, 바뀐 일 중 하나이다.
理髮所(Barber shop)가 서양에서는 18세기까지 이발이나 면도 외에 탈골, 골절 치료 또는 사혈을 하던 곳이었다.
이발소 상징 회전 봉은 빨강, 파랑, 흰색으로 동맥, 정맥, 붕대를 뜻한다.
1540년경 프랑스의 메야나킬이라는 이발사가 둥근 막대기에 3가지 색을 칠해 정문에 걸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계 공통 이발소 표시가 된 것이다.
대부분 남자는 이발소의 상징인 싸인볼을 찾아 이발, 면도, 염색, 드라이하러 간다.
코로나19로 변화된 일상 중 이발하던 곳이 바뀌었다.
대구에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할 때 영신스프링스가 50일간 휴업을 하면서 그곳에서 이발을 할 수 없었다.
머리는 깍아야 하고 지인에게 수소문하여 동네 영남아파트 상가 1층에 부부가 운영하는 화성이발소에 간다.
50일 기준 이발 요금을 비교해 본다.
명신사우나 이발부에서 이발, 염색 하고 본인이 감으며 3회 7만 8천 원(회당 2만 6천 원)을 지불한다.
동네 상가 이발소에서는 이발, 염색 후 사장이 머리 감겨 주고, 드라이해 주고, 스프레이까지 뿌려 마무리해서 4만 4천 원(회당 2만 2천 원)이다.
50일 기준 3만 4천 원 차이미면 연간 24만여 원으로 코로나19 때문에 용돈을 조금 절약한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난 머리수가 적고 곱슬이라 이발에 신경을 많이 쓴다.
도청 산격동 시절에는 구내 이발소를 이용했다. 특히, 총무과장 재직 시 간부회의 참석, 기관장 회의 주관, 행사 사회로 매일 드라이하고 출근했다.
당시 드라이하러 오는 김모 경북지방경찰청장과 지하 이발소에서 만난다.
도청 이발소가 없어지고 김모 사장이 지산동 지산중학교 앞에서 전원이발소를 운영할 당시 그곳까지 가서 이발했다.
경북지방경찰청장이 서울청장으로 영전하여 간 후 전원이발소 감모 사장께 보내 온 연하장을 거울 앞에 보관하며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서울청장이 대구에 올 때는 그 이발소에 들려 드라이하고 가며 사장을 격려해주는 자상하고 인정 많은 분이다.
나도 고령에 근무할 때 전원이발소에서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만나 인사 나눈 일이 있다. 지금은 모 지역구 재선 국회의원이다.
또 다른 이발사를 멀리까지 찾아가 이발한 경우도 있다.
상인동 광천목욕탕에서 이발하던 박모 사장이 소문없이 사라졌다.
여러 사람에게 알아보고 중앙고속도로 다부IC에서 내려 왜관 가는 도로 우측 칠곡도개온천에서 근무하는 것을 알고 그기까지 가서 이발한 일도 있다.
박모 사장이 예전에 금호호텔 이발부에서 일한 이름 있는 사람으로 성격이 활달하고 머리도 시원시원하게 깍아준다.
어릴 때는 8개동 학구 단위 이발소가 한 곳뿐이다. 명절이면 밤 늦게까지 기다려 이발하고 돌아오면 등잔불을 들고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던 엄마 생각이 난다.
얼마 후 고향 마을에 흥라이발소가 생겨 멀리 가지 않고 머리를 깍았다. 지금은 학구 단위와 고향 마을 이발소 2곳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이발하러 가는 날이다. 목욕하고 때 빼고 광내면 기분이 좋다. 거기에 더해 이발까지 하면 어떨지 상상에 맡긴다.
2020년 봄,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준 변화된 일상이다.
2020년 6월 24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