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三國志 魏書 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 민족과 연관된 각 열국(列國)들의 위치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서진(西晉) 시기에 진수(陳壽, 233년 ~ 297년)가 쓰고 송(宋)나라의 배송지(裴松之, 372년 ~ 451년)가 보충한 위촉오 삼국시대의 역사서로서 동이전(東夷傳)이라는 항목을 따로 두어 동이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여 특징과 습속 및 위치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한 사료입니다. 이 내용을 근거하여 고구려(高句麗), 부여(扶餘), 옥저(沃沮), 예맥(濊貊) 등의 각 열국들의 위치를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현재 국사학계의 통설로 주장되는 강단사학자들이 비정한 열국들의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또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내용을 근거로 비정한 것인데, 문헌 사료의 내용과 맞는지 이를 검토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열국의 위치 비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요동(遼東)의 위치입니다. 현재 강단사학은 요동을 지금의 요령성(遼寧省)에 있는 요하(遼河)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고대의 요동은 현재의 요하가 아니라 하북성(河北省)에 있는 요수(遼水)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요수는 갈석산에 있다고 사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강단사학의 역사학 수준이 떨어지고 사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서진 진무제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
碣石山在漢樂浪郡遂成縣 長城起於此山 今驗長城東截遼水而入高麗遺址猶存
갈석산은 한나라 낙랑군 수성현에 있으며, (만리)장성이 시작된다. 지금은 장성 동쪽이 요수(遼水)를 가로막고 있으며, 고(구)려 로 들어간다.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통전(通典)』 「고구려전(高句麗傳)」
또한 요수(遼水)가 하북성(河北省)에 있다는 사실은 여러 중국사료의 고지도를 통해서도 쉽게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래는 서진(西晉)시기의 지도인 서진군국도의 요수(遼水), 낙랑(樂浪), 현토(玄兎), 대방(帶方)의 위치입니다. 모두 하북성 지역에 있습니다. 아직도 요하(遼河)를 요수(遼水)로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는 것으로 주장하는 강단사학의 역사학 수준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지 한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갈석산의 위치에 대해서는 『통전(通典)』에는 좌갈석과 우갈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按尚書云:「夾右碣石入於河。」右碣石即河赴海, 處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則高麗中為左碣石。
尚書(상서)를 살펴 보면, "右碣石(우갈석)을 끼고 河(하)로 들어간다" 라고 전하는데, 右碣石(우갈석)은 즉, 河(하)는 바다로 들어가는데, 위치는 지금의 북평군 남쪽 이십여리에 있다. 즉, 고구려 안에 있는 것은 左碣石(좌갈석)이 된다.
『통전(通典)』 「고구려전(高句麗傳)」
좌갈석은 고구려에 있으며 현재의 갈석산으로 추정되고 우갈석은 백석산(白石山)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갈석산 관련 내용에서 설명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요동군(遼東郡)과 관련이 있는 갈석산은 어느 것일까요? 사기 항우 본기에 한광을 요동왕(遼東王)으로 봉했는데 그 위치가 무종(無終)이라 하였습니다.
徙燕王韓廣爲遼東王. 『集解』徐廣曰:「都無終.」
연왕 한광을 요동왕으로 봉했다 [집해 : 무종에 도읍하였다]
『사기(史記), 항우본기』
중국 위키백과(偽基百科)를 보면 무종(無終)의 위치는 북경 남쪽의 천진시(텐진시) 일대로 보고 있습니다.
『偽基百科』 無終國, 是存在於周代時期由蠻族的山戎所建立的一個國家,位於天津一帶
보통 요양(遼陽)이라고 하면 요하의 북쪽에 있는 요령성(遼寧省) 요양시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요(遼)나라가 건국된 후에 요하의 북쪽으로서 요양(遼陽)이라는 만들어 진 지명이지 고대 지명이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 처럼 고대 요동군(遼東郡)은 하북성에 있습니다. 따라서 요동군에 소속된 요양현은 하북성에 있어야 맞습니다. 그리고 하북성에 라오양현 즉 요양현(饶阳县, 饒陽縣) 지명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라오양현은 기중평원(冀中平原)에 위치하여 호타하(滹沱河)가 중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지형이 평탄하고 자연기후가 우세하고 입지우위가 뚜렷하고 북경이 북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라오양현 중국 위키백과]
따라서 요동군(遼東郡)은 요수(遼水)의 동쪽에 있어야 하므로 요수(遼水)는 우갈석(백석산) 지역에 있어야 합니다.
고대 요동이 갈석산에 있다는 사실은 『사기 몽염열전』과 『수경주 하수주』를 통해 만리 장성을 쌓은 곳이 요동과 갈석산이며 같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始皇并天下,使蒙恬将三十万众,北逐戎狄,收河南,筑长城,因地形开附制塞,起临洮至辽东,处袤万余里
진시황이 천하를 병합하고 몽염 장군과 30만 명을 보내 북쪽 융적을 몰아내고 하남을 빼앗아 장성을 쌓았다. 서쪽 임조에서 일어나 동쪽은 요동까지이다. 길이가 만 여리이다.
『사기 몽염열전』
始皇令太子扶蘇與蒙恬築長城 起自臨洮至于碣石
진시황이 태자 부소에게 명하여 몽염과 함께 장성을 쌓게 했는데 임조(臨洮)에서 시작하여 갈석(碣石)까지 이르렀다.
『수경주 하수주』
이런 여러 기록을 보면 당시 요동의 위치는 고대 갈석산인 백석산과 가까운 지역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즉 요동과 요서를 가르는 요수는 호타하 서쪽 지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만리장성, 요수와 요동, 갈석산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런 내용을 근거로 하여 고대 열국들의 위치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여(扶餘)의 위치
삼국지에서는 부여(夫餘)의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夫餘在長城之北, 去玄千里
부여(夫餘)는 (만리)장성(長城)의 북쪽에 있으며 현토(玄)에서 천리를 넘어 간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夫餘」
또한 후한서에 의하면 강역은 2천리라 하였습니다. 부여의 위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장성(長城)의 북쪽과 현토군(玄菟郡)의 위치입니다. 먼저 이때 장성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말하는 것이고 서한군국도를 보면 현토군은 장성의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따라서 부여의 위치는 강단사학의 주장 처럼 길림성(吉林省) 지역이 아니라 하북성(河北省) 만리장성의 북쪽에 있어야 합니다.
2. 고구려(高句麗)의 위치
南與高句麗, 東與相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부여의)남쪽에는 고구려가 있고 동쪽에는 읍루가 서쪽에는 선비(鮮卑)가 있으며 북쪽에는 약수가 흐른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夫餘」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都於丸都之下, 方可二千里, 戶三萬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다. 남쪽은 '조선예맥'이 있고, 동쪽은 '옥저'가 있으며, 북쪽은 '부여'에 접한다. 도성은 '환도'로, 사방 이천리 이며 호수는 삼만이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高句麗」
또한 고구려가 부여의 남쪽에 있으며 강역의 시작이 요동 동쪽 천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동 동쪽으로 천리라고 하면 난하를 경계로 동쪽 부터 고구려의 강역이 됩니다.
고구려의 강역은 난하 부터 동쪽 부터 2천리임을 알수 있고 남쪽에는 '조선예맥' 동쪽에는 옥저에 있다 하였습니다.
3. 읍루(挹婁, 相婁)의 위치
읍루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相婁在夫餘東千餘里, 濱大海, 南與北沃沮接, 未知其北所極
읍루는 부여의 동쪽 천리에 있으며 큰 바다와 닿아 있으며. 남쪽으로 북옥저와 접해 있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相婁」
在夫餘東北千餘里
읍루는 부여 동북쪽 천여리에 있다.
『後漢書』 「東夷列傳, 挹婁」
부여 동북쪽 천리하고 하면 중심지로 부터 천리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부여는 만리장성의 북쪽에서 천리이고 강역은 2천리, 중심지로 부터 동북쪽 천여리가 읍루가 됩니다. 또한 읍루에 대해 불함산 북쪽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불함산은 고지도의 장백산으로 추정됩니다.
肅愼氏 一名挹婁, 在不咸山北
옛 숙신(肅愼)이 읍루(挹婁)라고 하며, 불함산(不咸山)의 북쪽에 있다
『晉書』 「東夷列傳 肅愼」
長白山, 在吉林鳥喇城東南, 古名不咸山.
[주석]장백산, 길림오나성 동남에 있다. 옛 이름이 불함산이다.
『三國志』 「東夷列傳 挹婁」
아래 내용을 근거로 하면 읍루의 위치는 대흥안령산맥의 험준한 산악지대로 추정됩니다.
未知其北所極. 其土地多山險
읍루는 북쪽 끝을 알 수 없는 넓게 펼쳐진 산악지역에 거주하여 살고 있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相婁」
그런데 학계에서는 읍루와 접해 있는 큰 바다를 '동해'로 잘못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륙에 있는 '북해'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요사에 보면 황륭부의 이전 이름은 '부여부'로 알려져 있으며 부여의 위치와도 동일한 지역입니다.
太祖所崩行宮在扶餘城西南雨河之間,後建升天殿於此,而以扶餘為黃龍府云
태조가 붕어한 행궁은 부여성(扶餘城) 서남쪽 우하(雨河) 근처인데 후에 승천전을 이곳에 건립하고 부여(부)를 황룡부(黃龍府)로 삼았다.
『요사지리지』
즉 사료를 통해 부여(扶餘)의 위치가 황룡부(黃龍府) 지역임을 알수 있으며 지리적 위치는 난하의 북쪽입니다.
이런 내용을 근거로 보면 부여, 읍루, 옥저 고구려의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강단사학의 학문적 주장이 얼마나 사료적 근거가 없는 지 알 수 있습니다.
4. 옥저(沃沮)의 위치
옥저에 대해서 북쪽에는 읍루와 부여가 있으며 남쪽에는 예맥이 있다고 하였는데 예맥이 '조선예맥'으로 생각됩니다.
北與相婁夫餘, 南與濊貊接
북쪽에는 읍루, 부여가 있고 남쪽에는 예맥이 있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沃沮」
其土地肥美, 背山向海, 宜五穀, 善田種
그 땅이 기름지고,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있어 오곡에 마땅하며, 밭농사가 좋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沃沮」
옥저(沃沮)의 한자를 보면 물댈옥(沃) 과 막을저(沮)로 되어 있다. 물을 대고 막는다 것은 비옥한 강 근처에서 농업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강과 인접해 있는 눈강(嫩江)’과 ‘송화강(松花江) 부근에 있는 옥토로 추정됩니다.
其地形東北狹, 西南長
북쪽과 동쪽은 좁고 서쪽과 남쪽은 길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沃沮」
지형에 대해서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태로서 북쪽이 북옥저, 남쪽이 남옥저가 됩니다. 강역은 천리로 되어 있습니다.
5. 예(濊)의 위치
예에 대해서는 삼국지에 보면 예를 말하면서 고조선의 연역을 기록하여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예는 '조선예맥'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沃沮接, 東窮大海
북쪽에는 고구려와 옥저가 있으며 남쪽에는 진한이 동쪽에는 대해와 접해 있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濊」
6. 삼한(三韓)의 위치
삼국지 후한서 모두 삼한을 방 사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사천리에 진한의 마한의 동쪽에 있으므로 진한의 위치는 북쪽 길림성 지역으로 비정합니다.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한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다. 동서는 바다로 막혀있으며, 남쪽은 왜와 접해있다. 방 사천리쯤된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한韓」
韓有三種. 魏志曰,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한은 3종류가 있는데 위지에 이르기를, 한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다. 동서는 바다로 막혀있으며, 남쪽은 왜와 접해있다. 방 사천리쯤된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한韓」
辰韓在馬韓之東, 馬韓割其東界地與之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마한인들이 그 동쪽땅을 나누어 주었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한韓」
至雞林 即吉林 雞與吉 音既相符 核諸地 里亦合
(신라)계림(鷄林)에 관하여는 오늘날의 길림(吉林)으로서 계(鷄)와 길(吉)은 음이 서로 부합하여 여러 지리 관계를 조사해 보아도 역시 부합한다.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삼한(三韓)에 기록된 국가들은 78개국인데 이는 문헌의 기록으로 전해지는 국명으로 추정되며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을 보면 서진(西晉) 시기에는 고구려(高句麗)나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는 독립적인 국가로 개별 독립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내용들을 종합하여 각 열국들의 위치를 비정하면 다음 같습니다. 강단사학의 위치 비정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삼국지(三國志) 원 사료에 근접한 내용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한반도 삼국은 완전 쌩거짓 말입니다.
중국도 삼국이라고 하죠?!
우리와 지명이 거의 같은 중국...
중국의 지명을 한반도에 그대로
구겨넣어 새로운 나라에 새로운
역사콘텐츠를 만들어 줫음을
아직도 모르시는 듯 합니다.
신라는 탁실라의 역사,종교등을
그대로 베껴 한반도 신라로 조작한
걸 공부 안 하시는 군요?
하기사 책이 있어야 공부를 하죠.
왜구들과 백인들이 만든 조선왕조
실록등 가짜 사서들은 버리시길
바랍니다. 미안하지만요.
죽어도 한반도에선 벗어나질
못하는 군요
벗어나야 겨우 한 뼘...
한반도는 우리 선조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근래에 강제 이주된 곳이
바로 한반돕니다.
삼한이 한반도에 있었는지 없었는지...삼국지 왜전 내용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대방군에서 대마도까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依山島爲國邑. 舊百餘國, 漢時有朝見者, 今使譯所通三十國.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왜'인은 대방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고, 산과 섬을 의지하여 나라의 읍이 있다. 예로부터 백여 개의 나라가 있어, '한'나라 때에는 알현하는 자가 있었다. 이제 그 역관이 통하는 곳이 삼십 나라이다.
(대방)군에서 나아가 '왜'에 이르는데, 물로 가서 해안을 따라 돌면 '한국'(삼한)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다 동쪽으로 가면 '구야한국'(금관가야)의 북쪽에 이르러 거리가, 칠천여리나 된다. 처음 하나의 바다를 건너 천여 리에 '대마도'에 이른다.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 倭」
대륙(이씨)조선설을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어떤 주장을 하는지 궁금은 한데~
말씀하시고 싶은 연구는 참고하시는 문헌 사료와 고고학적 근거 자료를 밝히시면서,
<동이>선생이 남긴 글처럼 설명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