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6회
꿀벌 돌격대
계속 독도 지키기 서명운동만 하러 다니면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고 꿀벌을 먹이면서 서명운동 다녀보라는 이 경륜 목사님의 강권에 우리는 꿀벌과 동업을 해보기로 했다.
SBSTV촬영 팀이 4일간을 함께 다니며 촬영을 하더니 우리의 형편을 알고
하루는 은행에 갔다가 나오는데 갑자기 통장을 보여 달라면서 통장 촬영을 했다.
그 당시 통장에는 10만 원 정도의 잔금이 있었다.
“이 돈 가지고 전국으로 다니면 겁나지 않아요?”
“아뇨. 이보다 더 적은 돈으로 나올 때도 있었는데요.
기름 값, 도로 세만 있으면 되니까 걱정 없어요.”
하지만 촬영 팀은 방송내용에 우리 계좌번호를 넣어 전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우리 일에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 때 남편이
“의병은 각자가 자신이 가진 것을 최선을 다해 내어 놓는 것이 의병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모금해서 하는 것은 의병이라고 보기가 힘들겠지요?
제발 우리 계좌 번호를 방송에 내지 말아 주십시오.”
하니까 기자들도 나중에는 자신들도 의병이 되겠다고 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꿀벌과는 동업을 하는 것이 서로 좋을 것 같아 해보기로 했다.
목사님이 과거에 쓰시던 빈 벌통을 20여 개 주시고 꿀벌은 친정 아버지께서 세 통, 시동생이 열통을 준비해주셔서 먼저 그것을 가지고 한산섬에 갔다.
이순신장군을 생각하며 달이 밝은 밤에 한산섬에서 글을 한 편 쓰고 또, 서명운동도 하기 위해 우리는 무리한 여행을 감행했다.
그런데 이 여행으로 인해 꿀벌 한 통 정도가 질식해서 죽어 버렸다.
그래도 중단 할 수는 없었다.
꽃을 따라 다니다가 이번에는 강원도 고성군 통일 전망대를 방문했다.
전망대 소장님이 독도에 대한 관심이 많아 민통선 안 주민들까지 서명을 받아 보내 주시고 메시지를 보내 주셨기때문에, 우리는 남과 북을 오고 가는 꿀벌처럼 하루 속히 평화통일 이루어 이 민족이 다시 일어서 보자는 글을 쓰기 위해 통일 전망대를 방문하기로 하고 소장님께 전화를 했더니, 그곳에도 벌써 아카시아 꽃이 피었다고 해서 우리는 당장 준비를 해가지고, 밤을 새워 올라가서 아침 7시경 통일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소장님은 연락이 안 되고 벌들은 벌집에서 나와
차 안에서 왱왱거리며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데모가 일어났다.
우리는 너무 급해서 전망대 앞 명파 마을 입구에 벌통을 내려놓았다.
벌을 다룰 줄 모르다 보니 무방비 상태로 벌통을 내려놓고 벌집 문을 있는 대로 열었다.
얼마나 갑갑했느냐고 측은한 마음으로……
밤새 고생 시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마음으로……
남편이 벌집 문을 열어 주고 있는 동안 나는 옆에서 그 마을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벌통 주위가 시끄럽더니 망을 쓰지 않고 벌통을 들여다보던 남편에게 갑갑해서 성이 난 벌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남편은 황급히 피하라고 고함치며 망을 덮어 썼다.
순식간에 벌들은 곁에 있던 우리에게도 몰려왔다.
옆에서 얘기하시던 할머니가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을 치셨다.
나도 점잖게 걸어서 도망갈 처지가 아니었다.
마을 쪽으로 달려가면서 왱왱거리고 따라오는 벌들을 손을 흔들며 쫓았다.
벌들은 끝까지 따라오더니 내 머리와 목에 붙었다.
머리카락 속에 붙은 벌들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무조건 때려잡았는데 목에 붙은 벌은 쏘이고 나서야 알았다.
나의 이런 모습을 멀리서 쳐다보던 여학생이 갑자기 벌이 머리에 붙었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인 곳으로 도망을 쳤다.
그 모습을 보던 동네 아주머니들도 일제히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달려가서 그 여학생의 머리에 붙은 벌을 잡고 있는 사이에 그때까지 벌통 곁에서 벌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갑자기 마을 반대편 쪽으로 계속 수건을 흔들면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 영문을 모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언덕에서 내려오다가 벌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나는 먼발치서 그 모습을 보고 급해서 남편을 찾으러 달려 갔다.
그때 언덕 위의 교회 목사님이 차를 타고 내려오시다가 그 아주머니를 구출해서 우리 쪽으로 오셨다.
남편은 그 동안 벌침 맞으면 신경통에 좋다고 일부러 벌침을 맞기도 했는데 그날은 워낙 다급했는지 빨리 그 자리를 피하자고 했다.
그날 아침 꿀벌은 얘기 했다.
사람이 치면 힘없이 죽어가는 곤충이지만 합심해서 죽기 살기로 덤벼들면 오히려 사람들이 무서워 할 수도 있다고……
소년 다윗의 돌팔매질에 거인 골리앗이 무너지듯이 우리 민족이 힘을 뭉치면 절대로 독도는 빼앗기지 않는다고……
한낮 곤충인 꿀벌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 생명을 걸고 합심해서 공격을 하는데 사람인 우리는 어떤가?
선조들이 생명 바쳐 물려준 우리 땅 독도와 동해바다가 위태롭게 떨어져 나가려 하는데 전혀 감각이 없다면 저 곤충 꿀벌보다 못하지 않는가?
독도의병대(www.o-dok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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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7회
판문점, 강화도 철산동의 서명거절
진부령에서 출발하여 부지런히 판문점을 찾아 갔다.
판문점에 있는 한민족에게 독도 지키기 서명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몇 달 전에 이어 두 번째 방문했다.
몇 달 전에는 밤에 도착해서 안 된다면서 낮에 와서 임진각에서 신청 해가지고 오라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부지런히 달려서 낮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임진각에 가서 알아보니 국가정보원의 허락 없이는 안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국가 정보원으로 연락하니 이번에는 한 미 사령부 연락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그러면 한미 사령부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담당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알아보고 연락을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1시간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판문점 입구에 가서 헌병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우리는 꼭 판문점에 들어가야 하니 협조해 달라고 했다.
그 헌병은 탐지장교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면서 그 곳에 연락해 보라고 했다.
“장교님!
우리는 독도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 한민족의 단합된 결의를 나타내기 위해 마라도까지 다녀왔습니다.
민통선 안과 판문점의 한민족이 이 운동에서 제외되어서 되겠습니까?
그들도 참여시키기 위해 우리는 이곳을 두 번째 방문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파수병을 세우는 마음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판문점에 꼭 들어 갈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꼭 판문점에 들어가시려면 파주 시청에 가서 신청하십시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로워서 허가가 나오려면 한 일주일 걸릴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판문점 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힘없이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우리에게는 1주일 동안이나 그 곳에 눌러 앉아 허가 나오도록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판문점 안의 사람들은 독도 지키기 서명운동에 참여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판문점 방문을 거절당하고 우리는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도에 도착해서 가장 북쪽을 물어보니 철산동이라고 했다.
철산동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우리는 식사하는 시간조차 아껴서 점심, 저녁도 먹지 않고 계속 달렸다.
철산동에 도착하니 8시 30분!
어둡기 전에 도착하기위해 그렇게 달려 왔는데도 이미 주위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철산동에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끝까지 가니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헌병이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헌병에게 우리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 했다.
통제구역 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바깥쪽에 있는 최북단에 있는 마을에 가서 이장님께 서명운동 참여만 부탁 하고 우리는 돌아가겠다고 했다.
헌병들이 그것은 반대하지 않는 것 같아서 우리는 마을 쪽으로 차를 운전해 갔다.
그런데 우리가 마을 쪽으로 가자 갑자기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헌병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갑자기 마을에 가는 것도 안 된다고 막았다.
이유를 물으니 마을이 통제구역으로 들어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헌병들과 싱갱이를 벌리고 있는 사이에 배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결국 우리는 타협을 했다.
우리가 들어가지 않는 대신 그 헌병들이 독도 의병이 되어 이장님을 만나 이 취지를 설명하고 서명을 받아 보내주도록 하겠다고 했다.
판문점에서 되돌아온 안타까움을 그 헌병들이 씻어 주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차를 되돌려 나왔다.
하지만 결국 철산동 서명용지는 오지 않았다.
그 헌병들이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 거짓말로 따돌린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일본인들이 국익에 관한 한 군, 관, 민, 사회단체가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치는 것을 보면 이런 우리의 형편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지키는 자가 빼앗으려 하는 자보다 강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철산동을 나오는 길에 길을 안내 받으려고 차를 세웠는데 거기서 우리는 우리를 알아보는 여학생을 만나 차를 태워 주게 되었다.
그 여학생은 학교에서 우리 얘기를 듣고 이미 독도 지키기 서명에는 참여하였고 TV에서도 우리를 보았다고 하면서 우리를 만난 것에 대해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날 밤 하루의 여정을 풀 수 있는 장소를 그 여학생에게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그 여학생은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을 소개했다.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하니 시각이 밤 10시!
밤이 깊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착장엔 우리만이 쓸 수 있는 화장실과 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상첨화로 달빛에 일렁이는 바다까지 눈앞에 펼쳐져 있어서 우리는 그 바다를 바라보며 모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이틀 전 강원도 어느 시장에서 구입해 그날 저녁에 행복한 마음으로 먹은 홍어회 무침은 그 다음날 우리에게 식중독이란 반갑잖은 선물을 안겨 주었다.
독도의병대(www.o-dokd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