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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왔네
멀고 먼 하늘나라 혼자서 반짝이기 너무나 어려워
땅으로 내려와 꽃이 되었네
꽃이라도 하나둘이 아니라
여럿이 한데모여 다발꽃이 되었네”
<나태주의 ‘섬수국’>
시의 제목이 ‘섬수국’인 것을 보면 시인도 남해 연화도를 다녀와서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섬은 때묻지 않은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청정 휴식처다. 밤엔 별이 쏟아지고 반딧불이가 반짝인다. (실제로 4년전 서해 무녀도에 가서 직접 목격했다).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섬은 여정 자체가 도시인들의 ‘로망’이다.
더구나 그 섬에 계절의 꽃이 유혹한다면 '희랍인 조르바'처럼 무작정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경남 통영 ‘연화도’는 초여름을 대표하는‘수국의 섬’이다. 여러 개의 작은 꽃송이가 공 모양으로 뭉쳐서 피는 수국은 ‘물을 좋아하는 국화’다.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의미가 말해주듯 절정에 이른 수국을 보면 정서가 무딘 나도 감탄을 금치못한다.
연화도는 이런 수국을 마음껏 즐기면서 걸어서 섬을 일주 할 수 있는 섬이다. 초여름엔 전국 각지에서 수국축제가 열리지만 내륙과 달리 바다를 배경으로 화사하게 핀 수국은 이채롭다. 그래서 6월 하순이 되면 연화도행 여객선은 늘 탐방객들로 붐빈다.
수국 군락은 선착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연화사’에서 시작된다. 연화사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98년 8월에 쌍계사 조실이었던 오고산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조선 선조때 사명대사가 이 섬에 들어와 움막을 짓고 정진하며 큰 깨달음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수국은 연화사에서 해수관음상까지 2.5km에 걸쳐 길가에 눈부시게 피어있다. 입이 딱 벌어진다. 아마도 국내에선 가장 긴 ‘수국 로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 길에선 수국이 뿜어내는 향도 요란했다. 수국으로 절과 절을 연결했다면 누가 심었는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20여년전 스님들과 신도들이 정성껏 심은 수국은 이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수국은 새침한 처자처럼 변덕스런 꽃이다. 시간이 흐르면 꽃의 색깔이 변한다. 처음에는 초록이 살짝 비치는 흰색이었다가 파란색, 보라색(핑크색) 등으로 바뀐다. 토양의 성질에 따라 색도 달라진다. 알카리성 토양에서는 붉은색이 짙어지고 산성 토양에서는 청색을 띈다. 그래서 수국은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보덕사로 가는 길 양쪽에 핀 수국은 색상도 다채롭다. 산성 토양인지 주로 청색이지만 보라색 수국도 고운 얼굴을 내밀었다. 큐빅처럼 반짝이는 산수국도 드믄드믄 자리를 잡아 시선을 잡아끈다. 보덕암으로 내려가는 길에 수국 군락 사이에 동쪽바다에 보이는 용머리해안은 탐방객들의 포토존이다.
연화사~보덕암 해수관음상까지가 섬 트레킹의 1부 코스라면 보덕암에서 다시 돌아나와 연화봉 삼거리에서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울창한 숲을 지나 출렁다리와 용머리절벽으로 가는 2km 구간은 2부 코스다. 관광객들은 주로 1부코스인 '수국 로드' 만 걷고 돌아간다.
하지만 연화도엔 수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출렁다리를 건너 섬의 동쪽끝으로 길게 뻗은 용머리 절벽을 올라가면 연화도가 왜 한려수도의 보석같은 섬인지 알 수 있다. 사량도, 소매물도, 비진도도 나름 매혹적이지만 이 섬도 용머리해안과 우도처럼 숨겨진 비경이 있다. (다만 배시간 때문에 우도는 못갔다. 섬 전체를 걸으려면 6시간은 걸릴 것 같다)
용머리 절벽은 그리 높지 않지만 360도 각도로 스펙타클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에서 부는 부드러운 바람도 창공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햇볕도 무시했다. 잠시나마 눈앞의 풍광에 집중했다.
아마도 수국을 보러온 탐방객들은 용머리의 비경은 구경도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에 치어 이 좁은 절벽위에서 마음껏 경치를 바라볼 수 없다. 내려가는 길이 아쉬웠다.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국이 만발한 연화사 경내를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지은지 25년된 작은 사찰로 고풍스럽지는 않았지만 수국과 비숫한 부처님 머리처럼 곱슬곱슬한 불두화와 백일홍 때문에 운치가 엿보였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옆에도 수국이 붉을 밝히듯 환하게 피었다. 10여명의 50대 여성 탐방객들이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 중 한사람이 방긋 웃으며 폰카를 건네주고 촬영을 부탁했다. 대웅전과 수국이 조화롭게 배치된 구도는 대충 찍어도 근사한 그림이 나왔다. 초여름의 연화도는 연화사 덕분에 활기가 넘쳤다.
첫댓글 마이힐로 덕분에 평생볼 수국 이번에 원없이보았습니다.
다시한번 방문하고 싶습니다.
수국을 보러가는연화에서 보덕암을 거쳐 해수관음상까지 가는 길이 마치 웨딩홀 입장하는길같이 화려하고 멋드러졌습니다 형형색색의 꽃, 머리보다도 더큰 흐드러지고 무거워서 땅까지 드리워진 수국이 너무 탐스러웠습니다 평생볼것을 하루에 다 본듯하네요 즐감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