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발언 유현주 (민주노동자전국회의)
10년 전 서울노동은 회원 수가 미미했고 현장 기반도 무척 취약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동지들은 건설과 학비, 공공연대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돌파했고, 요양과 배달을 개척했습니다. 그 결과 6월 18일 전국돌범서비스노동조합이, 6월 23일 1천 명 규모의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박영재 동지 10주기 추모제.
지난 10년은 단순히 버티고 견딘 세월이 아니라 새로운 현장을 개척하고 민주노조의 힘을 키워 이를 고스란히 진보당 역량으로 모아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박영재 동지가 수천, 수만의 진실한 당원, 참 노동자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 자리에 가장 많이 모였고, 이석기 의원님 석방 투쟁에서 큰 역할을 한 건설은 완강한 현장투쟁으로 서울과 경기북부에서 8,500대오로 확대되었습니다.
민중연합당 출범 당시, 전체 조합원을 당원으로 만들자는, 그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고, 그 어떤 담보도 없는 원대한 제기와 포부를 세우고 조합원 확대와 당원 가입을 동시에 밀고 나갔습니다.
"노조가 일 자리 많이 확보하고 임금 올리면 되지. 왜 정치를 해야 해?", 조합원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는 여러 과정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숱한 곡절과 시행착오의 결과, 이제 건설 노동자가 진보당 당원이 되는 것, 진보당 지지자를 조직하는 것, 이석기 의원님 석방 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건설은 모든 투쟁에서 확고한 중심부대, 주력대오로 성장했습니다.
"성찰이란 청년의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 청년정신은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이 없다. 50대 청년으로 살자!"라는 각오와 결심으로 새로운 현장을 개척한 10년이었습니다.
노동운동을 30년 넘게 한 동지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신의 인생에서 여덟번째 노동조합 설립 필증을 쟁취했습니다. 어버이날 조합원들은 "사랑하는 위원장 아부지"라며 감사인사를 전했고, 이제 60대 청년으로 다시 신발 끈을 묶습니다.
지역노조부터 출발해서 민주노총 임원을 한 동지는 요양보호사가 되어 돌봄 국가책임제를 쟁취하기 위한 새길을 개척했습니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낯선 영역에 뛰어들어 배달 라이더를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조직했습니다.
새로운 현장을 개척하는 50대 청년들이 있었다면, 청소년운동과 청년운동을 거친 동지들이 현장으로 진출하여 서울노동운동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개척자로 분투한 10년이었습니다.
일심단결의 기운이 높아질수록, 동지애의 구체적 실천이 더해질수록 대오는 확대되었고 우리 힘은 커졌습니다.
언제나 맨 앞 자리에 간부가 서고, 모두 집행책임자가 되자는 호소에 마음을 모으니 한 발 더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모진 탄압을 이겨내고 더욱 크고 단단해진 오늘,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닙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함께 가자고 했던 10년 전 결심 그대로 진보집권의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앞으로 10년, 더욱 과감하게 새로운 현장에 민주노조와 진보당의 깃발을 꽂겠습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