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나무틀에서 누른 수제 잣기름을 구한다고 지난 6개월여를 기다렸다. 그 기름과 첫만남이 예정된 날이다.
인터넷을 뒤졌다. 루넷(.ru)에서 잣기름을 판다고 제안하는 곳은 많지만, 거의 대개가 대규모 시설일 것이고, 금속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에, 내가 원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는 잣기름쟁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알게 된 사람이 시베리아 우랄산맥 기슭에 위치한 예까쩨린부르그에 사는 스베틀라나 벨린스카야. 사실 이 분이 사는 곳은 “derevnya treka”, 작은 시골마을이다. 잣을 줍는 숲은 “kachkanar”(google 지도 참고바람)
스베틀라나(빛, 밝다는 뜻)와는 지난 9월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 번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었다. 비자에 선편에 그쪽 호텔까지 다 예약을 해놓았는데, 그쪽에서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지금은 무리라고. 올 가을 9월말이면 잣 수확이 시작되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쩝…아쉽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12월 12일 내가 모스크바 출장 계획이 있다 하니, 하늘이 도왔다며, 자기도 이때 모스크바에 올 것이란다. 스베틀라나. 다음날 모스크바 전철역 근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가서 기다리는데 엄청 뜸을 들인다. 한 시간은 늦는다. 사람들이 놓아주지 않아 차마 일찍 못나왔다고…
스베틀라나 벨린스카야. 눈, 시선이 정말 맑다, 깨끗하다. 나이는 42세라는데. 유머가 있고 열린 가슴이 느껴진다. 아나스타시아를 알면 저렇게 되나. 암튼 그녀 덕에 항상 좋은 사람, 친구를 만나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