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舞鳳山 이야기
한기범 교수의 우암 송시열의 생거지와 적거지
수원 만의는 우암이 서울에 가거나 또는 서울에서 회덕으로 낙향하는 길에 들러서 쉬거나 머물던 장소이다.
우암이 57세 되던 해인 1663년(현종4)우암은 이곳에 초단을 지어서 우거 하였는데,
이후 회덕 등 지방에서 서울로 오가는 길에는 항상 이 집에서 머물렀다.
만의 무봉산은
경기도 화성의 동탄 신도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봉산(봉황이 춤추는 형상) 산자락에는 한 폭의 그림처럼 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하천이 있고, 아래쪽 하천과 마주한 낮은 언덕에는 하천과 마주한 낮은 언덕에는 아담한 서재와 재실이 위아래로 사이좋게 줄지어 서 있다.
서재의 이름은 무봉산장이고 재실의 이름은 무봉재사이다.
대동여지도에는 수원 무봉산을 만의산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후에 이 산은 "무봉산"이라 칭해지는데 이것은 우암 송시열과 관련된다.
우암이 서울을 오르내릴 때면 늘 이곳에서 머물렀고, 산세가 마치 봉황이 춤을추는 듯한 자태라 하여 이 산의 이름을 舞奉山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후일 겸재 정선(1676~1759)은 여기에 와서 우암이 머물던 정사와 그 아래로 흐르는 하천을 함께 담은 그림을 그리고,
그 이름을 "舞鳳山中"이라 하였다.
지세와 하천의 굽은 모습, 하천과 정사와 거리, 정사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선비(우암 상정)의 묘사는
무봉산중의 우암의 생거 모습을 실감나게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이다.
2. 우암의 초장지와 이장지
우암의 초장지는 우암이 우거하던 수원 만의로 정해졌다.
일찍이 우암이 이곳에 자신의 장지를 잡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암이 후명을 받은 지 닷새 만인 6월 12일, 정읍에서 우암의 발인이 있었다.
이때 상여를 쓰지않고 다만 죽격(竹格 : 상여 대신 대나무로 만들어 메는 틀)에다 유지(油紙)로 시신을 덮었을 뿐이었다.
지나는 곳마다 사우들이 하인을 보내 운상(運喪)을 돕게 하였고, 평소 선생과 의견을 달리하던 사람도 간혹 와서 조상(弔喪)하고 하인을 보내 운상을 돕게 하고는
"이 어른의 상사에 어찌 차마 태연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이때 원근에서 호상하는 이가 매우 많았고 친지들은 혹 화가 더해질 것을 염려하면서도 상여의 앞뒤에 서기를 서로 다투었다. 북도(北道)의 선비도 와서 조곡하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15일에는 청년기 이후 우암이 머물었던 회덕의 흥농(興農 : 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 남간정사에 도착하여 24일 관을 바꾸었다.
우암의 시신을 입관할 때는 명성왕후(현종비, 숙종의 모후)가 하사한 홍사반령(紅紗盤領)과 녹사반령(綠紗盤領) 한 벌씩을 넣었다.
우암의 시신은 남간정사에 근 한달간 머물렀다.
그 후 7월 11일 새벽 2시에 빈소를 파한 다음, 조전(朝奠)과 상식(上食)을 올리고 나서 시신을 상여에 실은 후 발인제를 지내고 바로 길을 떠났다.
새벽 미명에 비바람이 몰아치다가 오래지 않아 조금 개었다.
상여를 메는 인부들은 대전 일원의 주산(注山), 마산(馬山), 사현(沙峴), 와지(瓦旨) 등 4개 마을과 배달촌(白達村), 대전(大田), 사오(沙塢), 초동(草洞)의 사창계(社倉契)가 차출되어 3패로 나누어 번갈아 메고 갔다.
여기에 나오는 "大田"이라는 이름은 오늘날의 대전의 지명을 전해주는 문헌상의 최초 용례로 알려져 있다.
대전이란 이름에 대해서는 이전에 동국여지승람(1487)에도 이미 "대전천(대전川)"의 용례가 있지만, 그것이 하천의 이름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대전이 분명하게 지명으로 사용된 사례는 이것이 처음이다(여기서의 대전은 지금의 대전역 인근으로, 곧 대전광역시 동구 인동으로부터 삼성동에 이르는 일원이 아닌가 한다).
우암의 시신을 모신 운구 행열은 7월 18일 수원 만의(萬義)의 무봉산(舞鳳山)에 당도하여 이곳에 임시로 우암을 장사지냈다.
이전에 부인의 장사 때 선생이 부인의 무덤 오른편을 비워두게 하여 자신이 묻힐 곳으로 삼았는데 마침 풍수가 합폄이 산운에 맞지 안는다 하므로 합장하지 못하였다. 우암이 유명에 따라 상례의 절차를 한결같이 사례(士禮)를 의거했으므로 달을 넘겨 장사지내는 ㅔ도를 적용하였고 원근에서 와서 구경한 자가 거의 1천여 명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