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문제로 골치가 아픈 요즘, 반일감정으로 분노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누구나 짐작하듯 일본의 독도 소유권 주장은 현재 한·일 간의 경제적 격차나 국가 전체 역량 차이를 무기로 한 뻔뻔한 약탈 행위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이자면, 그 이면에 지난 역사에서의 경험으로 우리 한민족을 무시하는 등의 선입견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누군가는 일본에 대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가지는 적대감은 쓸모없는 수구적 사상의 잔재라면서 나아감을 생각해야지 거기서 멈춰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을 지양하고 ‘지구촌민’이라는 지위를 강조하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풍조를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또 세계사를 살펴보면 그 당시에 제국주의, 전체주의라는 파괴적인 이념들로 인해 절망적인 지경에 처한 민족은 우리뿐만이 아니니 시대가 그랬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고통 받았던 것은 단지 일본의 책임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광기로 미쳐 있는 시대의 과오가 컸다.) 하지만 반일감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과거의 잘못들을 충분히 사과하고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한 반성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한·일 양국의 관계는 상쾌해질 수 없으며 ‘근접국’으로서 알찬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또 그런 ‘얕잡아 봄’으로 인해 계속 자행되는 독도문제는 양국의 상황을 더욱 파국으로 치닫게 할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서론이 길었지만 한·일 간의 경색이 불가피했던 요즘, 이렇고 저러한 골치 아픈 시국을 답답해 하던 내가, 김산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분하지만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인터넷에서 많은 네티즌들과 공론을 조성하거나 고작 마음으로 비는 것뿐이었는데 한·중·일 동아시아를 누벼 가며 주체적으로 살아간 김산의 일대기는 통쾌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11살에 가출하여 누명에 의해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크게는 전 인민의 해방을 위해서 행동을 멈추지 않았던 행동가로서의 그의 삶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나 자신과 고작해야 가족의 안위만을 바라며 공부하고 있음을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책의 초반을 읽을 때는 그의 생이 그저 낭만적으로만 생각되었다. 무언가에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 그 용기와 이유 있는 무모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므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꿈에 빠지도록 만들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자 그의 생애가 지극히 치열했고 무섭게 현실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책을 덮을 즈음엔 그가 살았던 시국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순히 영웅적인 그의 품성이 그를 그리 살게 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그를 그렇게 살도록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에게 대입해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 시대의 수많은 다른 김산의 삶을 생각해보며 결국, 더 이상 그 억압받던 시절의 위인들을 단순한 존경의 대상으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목숨을 바쳐가며 용감하게 싸운 많은 독립투사들은 무조건 기려야 하는 훌륭한 분들임이 틀림 없지만 시국이 극한 상황이었고 행동가로서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그러한 방식들이 나온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해 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 또한 내 상황에서 행동하려는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시대의 김산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러한 자신감은 분명 이 ‘아리랑’이라는 평전을 통해서 성립된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발언은 다소 건방지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고작 현실에 안달하며 묻혀 멈춰 있냐고 반박한다면 기여할 수 있는 힘이 미약하여 준비하는 중이라고 확언하고 싶다. 다만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는 나에게 시급히 수행해야만 하는 새로운 책무는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김산의 조국’처럼 무엇인가 최대로 가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흥미롭게 주목했던 것은 이성적인 행동가로서 감정에 애써 외면하려 했던 김산의 노력이다. 약해지지 않기 위해 사랑도 사치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이는 감정을 무시하려 하는 그의 노력이 왠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결국 그가 첫 여인인 ‘유령’에게 맘을 열고 마음껏 행복해 했을 때 그와 완전히 동화되어 내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떠올려 본다. 아내에 대한 의무감과 ‘미쓰 리’ 사이에서 그가 겪던 서툰 혼란스러움은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공로를 많이 세우고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가족이나 이성에 대한 따뜻한 맘을 가지지 못했다면 나는 그를 훌륭하지만 불쌍한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을지 모른다.
그의 말투로 전개되고 있는 이 평전 ‘아리랑’에는 주옥같은 많은 글귀들이 있다. 혁명가로서도 그랬지만 많은 경험을 겪은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다 소개하고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가장 감명을 받았던 글귀 하나만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다년간의 마음의 고통과 눈물을 통하여 오류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선이라고 하는 것을 배웠다. 오류는 인간 발전의 통합적인 일부분이며, 사회변화과정의 통합적인 일부분인 것이다. 사람들은 말을 믿을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지가 않다. 사람들은 실험을 통하여 비로소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실험은 사람들의 안전장치이며 권리이다. 거짓을 배우지 않는 자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 비극은 인생의 한 부분인 것이다. 억압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한 인간의 영광이요 굴복하는 것은 한 인간의 수치이다.’
김산 자신의 혁명 운동에서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은 확실히 승리하였다는 그의 고백과 함께 생각해 봤을 때, 저 글귀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는 여러 번의 실패와 비극을 통해 더욱 더 성장하였음이 틀림없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런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였음이 분명하다. 저 글귀는 어떻게 생각하면 흔히 떠도는 가벼운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의 족적이 증거가 되어 이 말에 힘을 실어 주었고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시대의 광기와 많은 아픔들을 고스란히 지고 살아간, 김산.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나는 그가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을 설계해 가며 행동할 수 있었던 용기와 끈기가 있었기에, 여러 번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서도 그는 성공적으로 그의 인생을 이끌어 나갔다. 억울하게도 누명을 쓰고 완벽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지만 목적에 따라 충실히 살아갔던 그의 인생은 영광으로 가득했으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치이고, 일본에 치이고 온통 우리 민족을 얕보는 눈들만 가득한 오늘날 국제 현실 속에서 김산의 행동력과 정신을 본받아 한국인 모두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대처해 나가길, 주체적으로 자존심만은 지켜가길 더불어 기원해 본다.
첫댓글 * 이이슬 : 모범적인 독후감입니다. 특히도 "나 또한 내 상황에서 행동하려는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시대의 김산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1) 한·일간의 경제적 -> 2) 적대감은 쓸모없는 잔재라면서 ->> 적대감은 쓸모없는 수구적 사상의 잔재라면서 3) 미쳐있는 -> 4) 상쾌해 질 수 -> 5) 독도문제로 / 독도 문제는 ->> * 띄어쓰기에도 일관성을 지켜야 하겠지요. 6) 한·일간의 경색이 -> 7) 누벼가며 -> 8) 무시하려하는 -> 9) 실어주었고 -> 10) 설계해가며 -> 11) 이끌어나갔다. ->
교수님, 모두 수정하였습니다. ^^ 띄어쓰기를 너무 많이 틀려서 부끄럽네요.ㅠㅠㅋ 다음부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