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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이 행운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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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 경쟁력이다. 스크랩 강신주의 감정수업 <41> 확신
연담(만다라) 추천 0 조회 36 13.09.15 10: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의심은 사라져도 그 흔적은 남는 법

강신주의 감정수업 <41> 확신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 1907~1989) 20세기 영국 소설가. 그의 추리소설은 “팝과 예술의 경계에 선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앨프리드 히치콕은 그녀의 작품 중 『자메이카 여인숙』 『새』 『레베카』를 영화로 만들었다. 특히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연상시키는 베스트 셀러 『레베카』(1938)는 오스트리아 뮤지컬로 각색되어 대표적인 빈 뮤지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작가는 『레베카』의 맨덜리 저택의 배경이 되는 영국 서쪽 해안 콘월 지방에서 지냈다.
우리는 아무나 의심하지 않는다. 내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의심은 생길 수조차 없다. 나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 사람도 강자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는 강자다. 아무리 가녀리고 약한 여인이라도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는 강자일 수밖에 없다. 하긴,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 아닌가. 하물며 부유한 귀족이면서 매력적이기까지 한 남자를 사랑하여 결혼에 이른 어린 여인에게라면 사랑의 위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런데 결혼식을 올린 뒤 함께 들어간 남편의 대저택에는 그토록 유명한 남편의 전 부인 레베카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이미 비운의 사고로 죽었건만, 레베카는 여전히 저택의 모든 공간과 모든 식솔, 심지어는 남편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왜 나랑 결혼한 거지?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대저택의 새로운 안주인이 된 ‘나’는 결혼 생활에 적응하기는커녕 너무나 불안했다. 물론 이런 불안감의 핵심에는 남편 드 윈터, 즉 맥심의 사랑에 대한 깊은 의심이 깔려 있다.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로도 더 유명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Rebecca)』는 ‘나’라는 화자, 즉 젊은 드 윈터 부인이 아름다운 전 부인 레베카를 잊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맥심은 ‘나’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레베카는 모든 사람에게 현모양처의 연기를 했을 뿐 사실 악녀의 화신과도 같은 여자였다고. 심지어 맥심은 그것을 결국 못 견디고 레베카를 총으로 쏴 죽이고는 보트 사고로 위장해 버린 것이다.

“당신은 나를 경멸하겠지? 내가 당한 치욕과 자기혐오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두 손을 내 가슴에 끌어당겨 쥐었다. 난 그의 치욕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생각만 계속 메아리쳤다. 맥심은 레베카를 사랑하지 않았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 함께 행복했던 순간도 없었다. 맥심은 계속 말하고 나는 계속 들었지만 다른 말은 의미가 없었다.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 “여보, 맥심, 내 사랑.” 나는 그의 손을 가져다 얼굴에 대었다. 그리고 거기 입술을 대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있소?” “그래요, 이해해요.” 하지만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얼굴을 돌렸다. 내가 그를 이해하고 안 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내 마음은 깃털처럼 공중을 날았다. 그는 레베카를 사랑하지 않았다.

모든 의심이 봄눈 녹듯 사라지자 드 윈터 부인의 마음은 그녀의 말대로 “깃털처럼 공중을 나는” 것처럼 가벼워졌다. 이제야 그녀는 남편 맥심이 전 부인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당연히 지금까지 오직 자신만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드 윈터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확신’이란 감정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확신(securitas)은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기쁨이다.”(『에티카』중)

스피노자의 말대로 확신은 의심이 없다면 발생할 수도 없는 감정이다. 의심을 충분히 일으킬 만한 원인이 사라져야 확신의 기쁨이 찾아오니 말이다. 낯선 여행길을 지도에 의지해 가고 있다고 하자. 교차로에서 호텔로 가는 길을 고르고 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한다. 그렇게 선택한 길을 갈수록 의심은 커지기 마련이다. 가지 않은 길이 호텔로 가는 진짜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더 들 테니까. 그렇지만 갑자기 저 멀리 호텔이 보인다면, 우리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의심이 크고 깊었다면 확신은 그 어떤 감정보다 더 강한 희열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신에는 어떤 흉터, 그러니까 의심을 품었다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그래서 드 윈터 부인의 확신에는 무언가 비극적인 결말이 예감되어 있는 것 아닐까. 더군다나 레베카가 악녀였다는 사실은 오직 그의 남편 맥심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레베카가 유혹했던 남자들을 제외하고는, 저택의 모든 식솔들은 레베카를 완벽한 현모양처로 기억한다. 어떻게 그토록 완벽하게 허점 하나 남기지 않고 연기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어느 폭풍우 몰아치는 날 우연히 바다 속에서 레베카의 시체와 보트가 발견되면서 사고사로 종결이 났던 사건은 다시 맥심을 위기에 몰아넣는다. 이런 위기 속에서 맥심은 아내에게 레베카의 전모를 고백했던 것이다.

혹시 맥심은 나약한 악마가 아니었을까? 아내를 죽인 자신의 죄를 변명하기 위해 레베카를 악녀로 만든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제 남편의 사랑을 확신하던 드 윈터 부인이 악마의 두 번째 희생양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의심과 확신의 드라마를 펼쳤던 『레베카』가 끝날 때 쯤 남편이 자랑하던 대저택은 화염에 휩싸인다. 레베카의 저주일까, 아니면 그녀를 따르던 하녀가 저지른 복수였을까. 새로운 의심, 과거보다 더 깊은 의심은 소설이 끝나도 여운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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