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여..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 자료가 필요해서..이렇게 도움을 요천해봅니다..
: 도서관을 찾아도 인터넷을 뒤져두 제한된 자료들 뿐이라..
:
: 티파니에 관한 자료가 있으신분들..어떤 자료든 다 좋습니다..
:
: pocahontasjr@orgio.net
------------------------------
안녕하십니까^^
티파니 보석, 인물, 디자인, 회사에 대해 몇가지 모아 보았습니다.
미흡하지만 참고바랍니다.
---------------------------------------------
세계에서 8번째 큰 다이아몬드 '빅토리아'
원석으로 457.5 올드 캐럿(현재의 469.6캐럿)이었던 이 다이아몬드의 발견에는 처음부터 미신적인 요소가 있었다. "임페리얼(Imperial)" 또는 "그레이트 화이트(Great White)"라고도 불리는 이 다이아몬드는 1896년까지는 남아프리카에서 채취된 8번째의 결정형을 한 다이아몬드 중에서는 최대의 크기였으나, 같은 해에 드비어스 광산에서 503.25 올드 캐럿(현재의 516.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발견됨으로서 그 기록은 깨어져 버렸다.
이 다이아몬드의 출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남아프리카의 야거스폰테인 광산에서 발견된 최고 품질과 유사한 블루 화이트(Blue-white)계열이라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있게 전해지고 있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1884년 6월인가 7월에 남아프리카의 킴벌리에 있는 센트랄 마이닝 회사의 감사원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당시 서(西)그리키 랜드의 엄한 다이아몬드 거래법에 의하면 200파운드(약 50만원)의 돈을 지불하고 라이센스를 취득해야 했고 또 500파운드(약 112만원)의 보증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거래 자체를 할 수 없으며 모든 거래는 매주 정부 관계자의 확인과 함께 특별 장부에 기록을 하도록 했다. 하여간 최초의 소유자로부터 이 원석을 취득한 시점의 가격은 300파운드(약 674만원)였으나, 이 원석은 결국 라이센스를 갖지 아니한 어느 바이어에 의해 케이프 타운으로 옮겨져 19,000파운드(약 4,267만원)에 거래되었고 런던의 최대 다이아몬드 시장인 해튼 가든에서 자그마치 45,000파운드(약 1억)가격에 비밀리에 운반되어 거래되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래가 이루어진 후 이 다이아몬드는 연마를 위해 암스텔담으로 옮겨져 잭 메츠 회사에 의뢰되었다. 연마시 먼저 원석의 일부분이 클리빙(벽개 작업)되어 그 조각은 19올드캐럿(현재의 19.5캐럿)의 브릴리언트로 연마되어 최종적으로 포르투칼 왕에게 팔렸고, 확실한 소재는 알 수 없으나 리스본에 있는 마주다 궁전에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빅토리아의 최대 부분의 연마는 네덜란드 여와이 보는 가운데 1887년 4월 9일에 시작되어 작업은 약 1년 걸렸으나 이 기간도 여러 예비공정을 전부 생략하고 스카이프(Scaife)만을 사용하여 연마한 시간이라고 한다.
완성된 다이아몬드느 58면의 패싯을 가진 약산 오벌형의 브릴리언트 커트로 길이 39.5mm, 폭 30mm, 두께 23mm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한 그 유명한 티파니(Tiffany)커트를 지휘한 우수한 보석학자인 쿤츠(Kunts)는 빅토리아의 형상은 전체적으로 균일한 것이 아니라 연마시의 보석 중량을 최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극단적으로 평탄한 원석인 채로 미연마된 면의 거들의 한편쪽에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최종적인 중량은 184.5매트릭 캐럿이었다.
이 다이아몬드는 하이데라버드의 니잠(Nizam)이 구입하였으나 그때부터 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미스테리의 제2장이 시작하게 된다.
1947년에 영국이 인도로부터 철수하여 인도 대륙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되었을 때 빅토리아 다이아몬드를 매입한 사람의 아들로서 하이데라버드 시대의 통치자였던 니잠은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고 독립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결국 교섭 결렬이 된 후 결과적으로 인도군이 무력 개입했기 때문에 하이데라버드는 인접한 3개의 주로 분할되어 있었다.
니잠은 당시 1300만 파운드(약 292억원)에서 1500만 파운드(약 337억원)로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보석 컬렉션을 두 그룹으로 분할하여 신탁재산으로 하였다. 하나는 40개 정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재산관리인들이 거래할 수 있도록 하였고, 또 하나는 보다 큰 것들의 컬렉션으로 니잠 자신의 말에 의하면 자기 가족에 불의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팔지 않을 보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빅토리아"에 대해서는 어느것도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야콥(Jacob)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는 재 2그룹에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잠깐 야콥(Jacob) 다이아몬드에 대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이 야콥은 오랜기간동안 하이데라버드의 니잠의 "빅토리아 다이아몬드"와 동일한 다이아몬드로 취급되어 왔었다. 1951년에 28만 달러(약 3억 6400만원)에 인도의 은행으로부터 경매에 붙여졌고 어느 미국인 업자는 당시 "블루가 아니라 화이트"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그가 본 중에서는 최상의 광채를 나타냈던 다이아몬드보다는 떨어진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며 그 중량은 100-150캐럿, 또는 184.5캐럿이라고 전해진다. 최후의 숫자인 184.5캐럿은 빅토리아의 중량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후세의 많은 사람들은 이 야콥 다이아몬드는 "빅토리아 다이아몬드"를 누군가 중간에 이름만 바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편 1977년에 니잠이 사망했을 때 그의 보석류가 다시 뉴스 거리가 되었다.
재산 관리인들이 소유한 그의 소유 보석을 경매에 붙였고 그 경매에 세계의 백만장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 경매는 국민의 절대적 반대에 부딪혀 전부 무산되었고 많은 인도인 들은 니잠의 보석류는 영국 왕실의 보석품이나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보석품 컬렉션과 같이 인도의 국가적 재산이기 때문에 인도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경매는 진정되었고 매각의 이야기는 전혀 전해지고 있지 않아, 아쉽게도 현재 이 빅토리아 다이아몬드의 소유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
바뀌는 보석 트렌드
신세대 신부들의 결혼 예물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장식용보다 평소에도 착용이 가능한 실용형으로 구매패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결혼 반지의 경우 전통적으로 사랑 받아오던 디자인은 티파니 세팅.6개의 다리가 다아아몬드를 공중에 띄워 떠받드는 형태다.다이아몬드가 돌출돼 있어 화려한 모습이나 평상복에 착용하기는 어렵다.그래서 대부분의 신부들은 예식 때만 착용하고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기 일쑤.
이 때문인지 최근 신세대 신부들은 베젤세팅을 선호하는 추세다.다이아몬드를 세팅이 감싸주므로 착용감이 뛰어나고 평상시도 착용할 수 있다.또 티파니 세팅보다 다이아몬드의 사이즈가 실제보다 커보인다.
시어머니들도 유색석을 포함한 다양한 보석이 든 세트보다는 단색을 선호하는 추세다.과거에는 목걸이·반지·귀걸이 등을 루비·사파이어·에메랄드 등 유색석과 다이아몬드 등으로 혼용해 구입했으나 최근에는 단색 세트를 구매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드비어스 다이아몬드 정보센터 김경아씨는 "신세대들은 평상복에도 착용할 수 있는 모던한 디자인의 예물을 선호하고 있다.이는 장식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이들 세대의 특성 때문으로 보이다."고 말했다.
------------------------
전세계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티파니 (Tiffany)"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하얀 리본의 블루 박스를 슬며시 뒤로 감추고 있는 남성. 그 여인 앞으로 내미는 하얀 리본의 블루박스 안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눈부신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다. 이건 티파니의 대표적인 광고 내용이다. 전 세계 여성이라면 이 광고를 보고 누구나 한번쯤은 티파니 보석과 함께 프로포즈 받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될 것이다. 생애 최고의 선물, 영원한 사랑의 고백, 프로포즈의 승락. 인생의 가장 설레이고 축복된 순간엔 언제나 티파니라는 명품 보석브랜드가 있기에 그 순간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이다.
티파니의 역사
보석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인 “티파니”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왕위 계승식이 있었던 1837년 찰스 루이스 티파니에 의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설립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사회적으나 경제적으로 부상하던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유럽의 화려한 장신구를 수입해서 판매하던 그는 1848년에 뉴욕 최고의 은 제조업자인 존 무어를 영입해 수입에 의존하던 사업방식에서 탈피 직접 장신구 제작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1867년 파리에서 계최된 국제 장신구 전시회에서 은 공예부분 금메달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티파니의 다이아몬드 반지와 포장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티파니가 전세계 여성들의 맘을 흔드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티파니의 다이아몬드 제품과 티파니만의 독특한 포장색상이 아닌가 싶다.
1880년대 창업주인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지도 아래 개발 소개된 “티파니 세팅” 또는 “육지세칭”은 벤드에서 분리한 다이아몬드를 6개의 발이 떠받들게 하는 독특한 세팅법이다.
이는 다이아몬드를 통과하는 빛의 반사를 보다 완벽하게 구연해 광채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아나도록 하는 기법으로 이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전통적인 반지 스타일로 자리잡혀 다이아몬드 제품 하면 가장 먼저 티파니가 떠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티파니 만의 전통적인 티파니 세팅 외에도 티파니를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게 만든 것이 바로 “티파니 블루”로 불리우는 포장색상이다. 1880년대 말 이 유명한 티파니의 블루는 쇼핑백과 포장 상자의 색상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연하늘빛 빛깔에 네모난 종이상자, 그리고 하얀색 리본은 티파니 세팅과 더불어 티파니의 또 다른 상징이며 자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티파니는 보석 및 장신구의 대표 브랜드이자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품 브랜드인 것이다. 165년의 시간동안 세상 가장 빛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세계 모든이의 기쁨과 희열을 같이 해왔기에 티파니가 더욱 갚진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자료참조 웹 패션
------------------------
티파니 Charles Lewis Tiffany (1812-1902)
미국의 보석상. 역사적으로 유명한 보석과 예술작품 등의 수입을 전문으로 했다.
티퍼니는 1837년 존 B. 영과 함께 뉴욕 시에 장신구 상점을 개업했다. 1841년 이 가게는 티퍼니·영·엘리스의 공동소유가 되었고 보석제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후 1853년 티퍼니사로 재조직되었다. 티퍼니는 1851년 영국 은화의 표준단위인 스털링을 채택했고 이로 인해 미국에서 '스털링'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되었으며 티퍼니사의 높은 명성이 입증되었다.
1858년에 티퍼니는 새로 부설된 애틀랜틱 케이블의 남는 부분을 얻었고, 이것을 산산조각 내어 기념품으로 판매했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남북전쟁 초기에 그는 재산의 대부분을 칼과 훈장, 그리고 다른 전쟁물자를 제조하는 데 사용했다.
1868년 회사주식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런던과 제네바에 지사를 설립했다.
1887년에는 프랑스 왕실 보석 중 일부를 구입했다. 유명한 아르누보 디자이너인 루이스 컴퍼트 티파니가 그의 아들이다.
티퍼니 (Tiffany, Louis Comfort) [1848.2.18~1933.1.17]
미국의 공예가.
국적 : 미국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미국 뉴욕
주요작품 : 백악관 접견실 실내장식, 멕시코시티 미술회관 유리 ·커튼 ·벽
뉴욕 출생. 장식미술회사 티퍼니 스튜디오의 설립자이다. 고미술 ·보석상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미술교육을 받았고, 파리에 건너가 L.베리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5년간의 유럽 체재 때 특히 장식미술에 큰 관심을 가져 유리예술을 착안하였고, 귀국 후 스테인드 글라스 ·모자이크 ·유리공예의 신경지를 열었다. 아르 누보를 대표하는 장식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유리 ·금공(金工) ·염직 ·자기 등의 공예에 뛰어났으며, 복잡한 빛을 지닌 파브릴 유리를 고안하여 이름을 떨쳤다. 주요 작품에 백악관 접견실의 실내장식, 멕시코시티 미술회관의 유리 ·커튼 ·벽 등 외에 미국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걸작이 많다.
TIFFANY & CO.
주소 5015 Westheimer, Houston, TX 77063
전화 (713) 626-0220.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 전문상점.
-----------------------------------
<아르누보>
19세기 중반 순수미술과 장식미술이 전통주의와 복고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인 아르누보 운동에 관해 고찰한 책이다.
건축분야의 빅토르오르타, 앙리 반 데 벨데, 안토니 가우디, 가구분야의 찰스 레니 매킨토시, 유리공예가인 에밀 갈레,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 보석공예가 르네 랄리크 등의 젊은 미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시작한 이 '새로운 미술'운동으로 건축,가구,유리,공예,도기공예 및 그 밖의 응용 미술분야에서 1895년경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의 생명에너지 속에서 우주의 질서를 발견한 아르누보 디자이너들은 자연의 원리에 반하는 정체된 것, 직선적인 것을 거부하고 식물형태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선인 곡선적인 것, 여성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또한 기존의 이원론에서 해방되어 대립과 모순의 개념을 하나로 융합하여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값비싼 돌과 하찮은 돌이 나란히 박힌 장신구, 정갈한 음식이 담길 그릇에 붙어있는 곤충 장식, 도예가의 치밀한 계획성과 함께 유약과 불이 말들어낸 우연성 등 아르누보의 작품속에는 문화와 자연, 이성과 우연, 질서와 무질서 등의 개념이 상호보완적으로 승화되어있다.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은 아르누보의 역사와 전개과정을 품부한 작품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시공아트, 2백29쪽, 1만2천원
------------------------------------
우리나라에 가장 잘알려진 보석상을 설문조사한다면 아마도 티파니가 1위에 올라있을 것이다.
미국 보석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티파니는 미국뿐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품격높은 보석상으로
1837년 Charles LoutsTiffany에 의해 설립되었다.
1847년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후에는 시대적 추세를타고눈부시게 발전하여
1850년에는 파리에
1868년에는 런던에 지점을 설치하여 세계의티파니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티파니는 세계 최초로 푸롱형태의 반지를 디자인하여 결혼반지로 대단한 호응을 얻었던 업체이다.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라는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미국 최고의 보석점 티파니는
뉴욕 5번가에 자리잡고 있다.
티파니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는 파리 출신의 장슈랑 벨제.
그의 보석 작품들은 2층의특별실에 진열되어 있다.
특별실의 출입문은 컴퓨터로 조작되는 견고한 2중 문이라고 한다.
1층의 넓은 홀에는 전속 디자이너들의 작품이진열된다.
'티파니의 대향연장' 이라고 일컬어지는 이곳은 비교적 소박하게 꾸며져 있어
평범한 시민들도 부담감없이 쇼핑을 할 수 있다.
이 보석점의 상호와 같이 티파니로 명명된 이 황금색 다이아몬드는 당시 287캐럿짜리 원석이었으며
다이아몬드 업계에서 가장 치열했던 경합이벌어졌던 남아프리카 소재 킴벌리 광산에서
1877년에 발견된 것으로 안다.
티파니는 프랑스로 보내져 128캐럿, 너비 27mm, 길이 28mm, 높이 22mm의 쿠션커트로 연마되었다.
이를 티파니 보석상의 파리 분점장이었던 GideonReed가 18,000달러에 구입하여 1879년에 미국에 들여왔다.
연마된 122개면에서 찬란하기 그지없는 노란 불꽃의 광채를 발하는 티파니는짙은 노란색의 다이아몬드로는
세계 최대의 것이며 다른 노란색 금강석은 여기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것은 티파니 보석상의 1층 홀에서 빛나고 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미 유명해져있던 티파니를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Grant가 영국의 Glandstone,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인물의 하나로 지적했던 중국의 이홍장이
이 다이아몬드를 보고 싶어해 소원을 이루므로써 티파니 다이아몬드는 더욱 유명해졌다.
티파니는
1893년의 Chicago Columbia,
1901년의 Pan-American,
1933년의 Chicago Century of Progress,
1939년의 뉴욕세계 박람 회등
약 70여년에 걸쳐 수 많은 대중들에게 전시되었다.
이 다이아몬드를 장신구로서 처음사용한 사람은
1957년에 로드 아일랜 드 뉴포트에서 열린 티파니 무도회에서 사회를 맡았던 셀던 화이트하우스 여사이다.
1971년에는 처음 티파니가 발견된 킴벌리광산 설립 100주년을 기념 하기위해 남아프리카에서 전시되었었다.
다른 유명 다이아 몬드에 비해서 특기할 만한 화제거리가 없는 황금색의 티파니 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951년에 티파니의 새 회장이 이 다이아몬드를 팔려고 내놓았으며
수 차례에 걸친 비밀스러운 혹은 공공연한 흥정이 성공치 못했고 그 이후
1973년에는 뉴욕타임즈 에 오백만달러에 티파니를 팔겠다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었다는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련의 사태들에도 불구하고 막상 티파니의 어느 열성적인직원이
`티파니를 팔게되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해고' 라고 사장이 대답했다는 일화에서도 나타나듯이
보석상 티파니와 황금색 다이아몬드 티파니는 결국 영원한 동음이의어이지 않을까 한다.
--------------------------------------
http://music.bugsmusic.co.kr/play/oneasx.asp?music_idx=kor0O14892
Story
뉴욕 맨하탄의 새벽 거리, 한 여인이 택시에서 내린다. 소매가 치렁한 이브닝 드레스, 얼굴을 반이나 가린 검은 안경. 그녀는 티파니 보석상을 활보하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보석을 바라본다. 한 손에 빵을 들고, 우아한 몸짓으로 새벽거리를 리드미컬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이름은 홀리(Holly Golightly: 오드리 헵번 분), 사실 그녀는 택사스 농부의 아내로 어떻게 그녀가 맨하탄에 정착했는지 알 수 없다. 가난한 작가인 폴(Paul Varjak: 죠지 페파드 분)은 홀리의 이웃으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부자인 여인의 후원을 받으며 곤욕스러운 애인 노릇을 하던 중, 귀엽고 매력적인 홀리에게 점차 호감을 갖게 된다. 마음에도 없는 중년 남자가 귀찮게 군다며 한밤 중에 폴의 침대 속으로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팔에 안겨 잠드는 그녀의 모습에서, 길잃은 고양이를 귀여워하고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비상 계단에서 기타를 치며 "Moon River"를 흥얼거리는 모습에서, 폴은 홀리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홀리가 갑자기 미남 중년 외교관의 사랑을 받아 남미로 떠나겠다고 한다. 홀리를 사랑하기 시작한 폴에게는 슬픈 충격이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거리를 산책한다. 그러나 그들은 헤어지지 못한다. 폭우가 내리는 맨하탄. 돈과 행운을 내던진 홀리가 가난한 폴의 품에 꼭 안기는 라스트신이 우리 가슴에 짜릿하게 파고든다.
캐포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뉴욕 5번가에 있는 보석상 티파니를 세계적인 패션 스토어로 만든 이 작품은 화사한 도시 감각이 오드리의 개성과 잘 어울리며 뉴욕의 상류 사회에 들어가려는 밑바닥 인생의 삶과 애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를 더욱 유명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선율의 주제곡 "Moon River"로, 자느 메르세가 작사하고 헨리 멘시니가 작곡했다. 아카데미-작곡, 편곡, 주제가상과 그레미-올해의 노래, 레코드, 편곡상의 3관왕을 차지하였고 6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이 되었다.
원제 '티파니스(Tiffany's)'는 뉴욕에 있는 유명한 보석상의 이름(Tiffany & Co.)이다.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이 영화 시작 부분에서 티파니의 진열장을 들여다보면서 가지고 온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는 데에서 나온 제목이다.
------------------------------------
참고하세요
http://www.cleopatra.co.kr/shopping/shopping_diamond_1.htm
하얀 리본의 블루박스를 슬며시 뒤로 감추고 있는 남성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까? 생애 최고의 선물, 영원한 사랑의 고백, 프로포즈의 승락.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티파니 다이아몬드 반지.
1877년 287.52캐럿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절반 이상 잘라내어 128.52캐럿으로 연마하여 90면을 만들어내는 신화를 창조한 티파니는 크기보다 광채 위주로 다이아 몬드를 깎는 오랜 전통을 만들어 왔다.
1880년대에 개발된 ‘티파니 세팅’이라고도 불리는 ‘육지 세팅’은 밴드에서 분리한 다이몬드를 6개의 발이 떠받들게 하여 다이아몬드를 통과하는 빛이 반사를 보다 완벽하게 구현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티파니의 새로운 다이아몬드 반지 ‘루시다’에서도 그 아름다운 단면의 광채로 계승되고 있다.
-----------------------
티파니 (Tiffany) *미국*
영화 "문 리버(Moon River)"의 우울한 멜로디와 함께 떠오르는 뉴욕 5번가의 티파니.
티파니는 1837년, 25세의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친구 영과 함께 뉴욕에 문방구와 도자기를 취급하는 작은 가게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디어는 티파니를 점차 보석점으로 변신시켜 나갔다.
티파니는 1845년 처음으로 거래에서 주문방식을 채택했다. 이것은 보석점뿐 아니라 일반 소매상에도 커다른 영향을 미쳤다.
1858년에는 대서양의 해저 전선사업이 성공하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쓰다남은 케이블로 기념 문전을 제작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1878년 킴벌리 광산에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카나리아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티파니는 즉시 이것을 사들였다.
128.51캐럿이나 되는 이 희귀 다이아몬드는 현재 뉴욕 5번가의 티파니 본점 특별실에 진열되어 있다.
특별실의 출입문은 컴퓨터로 조작되는 견고한 이중문이라고 한다.
일명 "티파니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카나리아 빛깔의 유명한 황색 다이아몬드가 1층 홀에서 신비로운 광채를 발하고 있다.
1902년 창업자 티파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뒤를 이어 1955년에 회장으로 취임한 월터 호빙은 파리의 슈란바자, 이탈리아의 페레티 등 유명 디자이너를 초빙해 "티어 드롭(Tear Drop)", "다이아몬드 바이쟈아드"와 같은 명품들을 제작, 티파니의 명성을 한층 드높였다. 그후 파로마 피카소도 가세해 부유층뿐만 아니라 만인의 사랑을 두루 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고 힘써 왔다.
미국 최고의 보석점 티파니는 시대적 추세를 타고 눈부시게 발전하여 1850년에는 파리에, 1968년에는 런던에 지점을 설치 세계의 티파니로 성장하였다.
도시인의 심플한 감각이 돋보이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
풍요로운 아메리칸 스타일
1837년 Charles Louts Tiffany에 의해 오픈되었다. 항상 최상급의 원석과 재료에 탁월한 디자인, 그리고 철저한 장인정신이 결합된 티파니의 제품은 당시 미국에 유행하던 "풍요로운 아메리칸 스타일"에 부응하여 눈부신 발전을 이룬다. 1847년에는 브로드웨이, 1850년에는 파리에 1868년에는 런던에 지점을 설치하였고 현재는 전세계에 100개가 넘는 매장을 경영하며 전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초기 티파니에서 가장 유명했던 것은 다양한 크기와 커팅의 다이아몬드. 기존의 브릴리언트 컷에 비해 32면이 더 많은 90면으로 커팅되어 불꽃이 춤추는 듯 화려하고 눈부신 광채를 발한다.티파니가 판매하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전세계 다이아몬드 총 생산량의 상위 1%안에 드는 품질을 자랑한다. 또한 세계 최초의 Six-prong(육지) 디자인 링은 다이아몬드를 밴드에서 분리시켜 6개의 발이 다이아몬드를 떠받들고 있는 디자인으로 다이아몬드를 통과하는 빛의 반사를 완벽하게 구현하여 자연스러운 광채가 최대한 발휘되도록 하여 최고의 웨딩 링으로 대접받고 있다.
티파니의 역사 이래 가장 인정받은 디자이너는 파리 출신의 Jean Schlumberger(1907~1987)였다. 세계 각국의 명사들이 그의 작품을 collection으로 소장하고 있다. 5번가 본점에는 그의 작품들이 2층의 특별실에 진열되어 있고 컴퓨터로 조작되는 견고한 2중 출입문으로 출입을 통제한다. 1층의 넓은 홀에는 전속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진열되었다. '티파니의 대향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이곳은 비교적 심플하게 꾸며져 있어 부담없는 window shopping이 가능하다.
Tiffany's VS Tiffany
1877년 남아프리카 소재 킴벌리 광산에서 287.52캐럿의 최상급 다이아몬드가 채굴되었다. 이것은 프랑스로 보내져 1년간의 정밀검사 끝에 절반이상을 깎아낸 128캐럿, 길이 28mm, 너비 27mm, 높이 22mm의 쿠션커트로 연마되었다. 이를 티파니 보석사의 파리 점장이었던 Gideon Reed,rk 18,000달러에 구입하여 1879년 미국으로 들여왔으며 보석점의 상호를 따서 "티파니"로 명명되었다. 이 122면을 자랑하는 황금색 다이아몬드는 역사상 가장 크고 아름다운 팬시 옐로우 다이아몬드로 티파니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고 현재는 5번가 티파니 본점 1층에 전시되어 있다.
대중의 관심과 동경에 부응하기 위해 티파니는 1893년의 Chicago Columbia, 1901년의 Pan-American, 1933년의 Chicago Century of Progress, 1939년의 뉴욕세계 박람 회등 약 70여년에 걸쳐 전시되었으며 1971년에는 처음 티파니가 발견된 킴벌리광산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남아프리카에서 특별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1951년에 티파니의 새 회장이 이 다이아몬드를 팔려고 내놓으면서 몇 차례에 걸쳐 흥정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 이후 1973년에는 <뉴욕 타임즈>에 오백만달러에 티파니를 팔겠다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었다.
티파니의 어느 직원이 "티파니를 팔게되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사장이 "해고"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옐로우 다이아몬드 "티파니"는 Tiffany's의 상징물로 대중의 영원한 사랑과 동경을 받고 있다.
"삶의 행복하고 축복된 순간들에 함께 한다"
이제 하늘색 박스에 크림색 리본으로 포장된 티파니의 상자는 여자라면 한번쯤 꿈꾸어보는 로맨틱한 순간을 상징하며 전세계 연인들을 설레이게 만든다. 아침마다 티파니 매장앞에서 크로아상을 먹으며 창을 통해 티파니를 바라보는 오드리 헵번처럼 결코 티파니를 가지지 못해도 그 심플하고 우아한 디자인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아름다움과 축복을 느끼게 해준다.
오늘날 티파니는 전세계 100개 이상의 매장을 통해 보석 이외에도 시계, 도자기, 액자 등 인테리어 용품을 판매하며 "삶의 행복하고 축복된 순간들에 함께 한다"는 티파니의 모토처럼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같이 나누는 동반자 같은 명품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
Tiffany & Co. (티파니)
하늘색 박스위에 십자로 묶여진 흰색 실크리본은 모든 여성들이 평생에 한번은 꿈꾸는 가슴 설레는 순간을 상징한다. 천마디의 고백보다 황홀한 프로포즈. 바로 그 유명한 티파니(Tiffany)의 포장이다.
티파니사는 지난 160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 제조업체겸 전문소매업체의 자리를 지켜왔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호주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16개국에 100여개 매장을 내고 있고 있으며 72년 일본에 매장을 낸것을 필두로 홍콩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등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에 진출했다.
국내에도 진출해 91년 롯데 호텔 면세점을 시작으로 92년 롯데백화점 본점에 매장이 들어섰다. 이후 현대백화점 본점과 97년 하얏트 직영점을 오픈하여 현재 7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우리에게는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친숙한 티파니의 역사는 1837년 당시 25세이던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조그마한 보석점을 내면서 시작됐다.
이후 티파니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보석디자인 대회에서 미국회사로는 처음으로 은공예 부문의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티파니는 미국에서 최초로 은순도 925/1000 규격을 채택했으며, 이 규격은 미 의회에서 미국의 법정 스털링 실버기준으로 인정됐다.
이들의 은세공 작업실은 미국 최초의 디자인학교가 됐으며 1886년 개발한 육발세팅은 “티파니 세팅”으로 불리며 가장 대표적인 다이아몬드 세팅 가공법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95% 백금을 사용한 육발세팅 다이아몬드는 반지는 첫 출시 이후 전세계적으로 젊은 여성들이 결혼 또는 약혼반지로 가장 선호하는 디자인이 됐다.
다이아몬드 반지에서 부터 시계, 스털링 실버로 된 액세서리, 유아용품, 식기류 및 테이블웨어 등에 이르기까지 티파니의 제품은 다양하다.
또한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의 은제식기, 슈퍼보울 NBA PGA투어골프 등 각종 스포츠대회의 우승컵들이 모두 티파니제품라는 사실, 그리고 뉴욕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맨해턴의 본점 앞에 개점시간에 맞춰 줄지어 서는 풍경은 당연해 보인다.
티파니는 고급품으로서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함께 갖춘 흔치 않은 회사다.
영화 “시애틀의 잠못드는 밤“에 티파니 매장에서 반지를 고르는 장면이 나왔는가 하면 최근 한 록그룹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제목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함께 내놔 인기를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