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작고 더러운 코를 훌쩍거리며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까지 모두 떠나버리면, 난 집으로 가는
대신에 언덕 아래 우물가로 가서 조용히, 마음껏 아이들을 미워하곤 했다. 샘물이 퐁퐁 솟ㅇ나고, 햇볕이 조용히 나무들
사이로 기울고, 축축하게 썩는 나뭇잎과 새로운 흙냄새가 어우러진 곳이었다. 특히 생명이 움트는 이른 봄은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그냥 기억났을 뿐이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하루하루 저마다의 비밀과 이기적인 생각, 서로 낯선 피를 가진 아이들을 마주 대하면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죽음을 준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난 이런 생각을 내게 심어놓은 아버지가 미웠다.
그래서 아이들이 뭔가 잘못을 저지르기를 기대했다. 그러면 내가 그들을 흠씬 때릴 수 있으니까. 매질이 끝나면, 내
살 위에 그 아픔이 느껴졌다. 회초리로 후려칠 때마다 흐르는 피는 다름 아닌 나의 피였다. 회초리를 들 때마다 난
생각하곤 했다. 이제 네가 나를 알아주고 있구나. 이제 나는 너의 비밀스럽고 이기적인 삶 속에 하나의 존재가 되어,
너의 피에 내 흔적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중)
첫댓글 글 잘 쓰는 사람이 세상에 정말 많아여...
좋은 문장, 글 감사합니다.
너무 촘촘해서 몇 번씩 읽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