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0
다시 방문한 수청리
여성제 묘원과 생가터를 무조건 찾아야겠기에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왔다
그런데 이날은 예상치 못한 분을 만났다
바로 함양 여씨들의 묘를 관리하시는
선생님을 만났던 것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자 뭐 하는 사람인데
여기를 기웃거리냐 하셨다
여차저차 설명끝에 운 좋게 그분께서 초대를 해주셔서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여 씨 문중은 아니셨지만 이곳에 사시면서 애정도 많고 아는 것도 많으신듯했다
유리창 너머로는 고지도와 빈청각이라는 글자가 양각이 된 나무판을 볼 수 있었다
면담을 하고 나니 선생님께서는 여성제에 관해
이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을 처음 만나 반갑다시며
남한산성 맥주를 건네셨다
(선생님이 재배하신 허브가 들어갔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본 맥주였다
검색을 해보니 광주에 있는 브루어리에서 만든 것 같은데 어디 가서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고싶다)
사정을 말씀드리니
생가터로 가는 길의 개들을 잡아주셨다
길 끝으로 다니면 개들과 닿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사실 알고있었지만)
운포집이나 기타 관련 자료는 빌려보고 싶었으나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
첫 만남에 어떻게 빌려주실까
이해한다
이 길을 쭉 따라가다가
보이는 집 왼편으로 돌아가면 생가터가 나온다
원경을 담을 수 없어 동영상으로 대체했다
아쉽게도 생가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미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지금은 사유지일 수 있는 이 곳은
잡다한 부자재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 부자재를 갖다 둔 분에게
뭐라 할 수도 없는 일
그냥 아쉬움만 담아 한동안 이곳을 두리번댔다
광주시 인물전 정초 부편 中(왼), 시티뉴스 여덟 명당 터를 찾아서 2015 (오른)
대충 포토샵으로 이어붙여 만들어본 모습
뒤에는 산이 있고 왼쪽에는 삼전도의 비제를 쓴
여이징의 신도비가 수풀에 가려져있다
다른 곳에는 뭔지 모를 건물이
검은 막으로 싸여있다
다른 블로그에서 봤던 건물인데
그때보다 더 누웠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 누웠겠지...
철거하지 않고 싸놓은 이유가 있을 듯한데 모르겠다
오른쪽으로 빠져나오니 강물과 허브들이 보인다
아까 면담을 가졌던 선생님이 가꾸신 듯 하다
사유지라 들어가 보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뭐라고 하지는 않으신다
그리고 이제 진짜 숙제가 남았다
바로 여성제 묘역 찾기
찾는 과정 사진은 찍지 못했다
여유가 없었다
정말 어드벤처 다큐 한편 찍으며 겨우 올라갔다
(누군가 나의 그런 모습을 봤다면 진짜 웃겼을거다)
GPS 상의 위치만 머릿속으로 기억하며 무릎까지 들어가는 낙엽을 밟고 나무에 매달리며 올라가다가
길을 찾은 듯 하더니
드디어 찾았다!
실제로 찾을 수 있을까 싶었고 아무도 없는 산을 오르는 두려움이 컸는데 구릉에 올라오니
이렇게 양지바른 곳에 봉분이 있었다
최근 묘지 관리하시는 선생님(아까 만났던)이 묘지를 정비하셨다더니 관리상태도 좋은 편이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이는 안내 설치물도 있다
장명등은 조선시대 후기로 접어드는
과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화창이 작아지고 하대석 하단에 탁자다리 모양)
정자석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화문은 잘 남아있는 편, 수려하다
조선 말기로 갈수록 장명등은 그 기능을 잃고
점점 사라졌다고 한다
상석은 묘역 석물 중 유일하게 후손과 조상이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정면에는 '영의정여공상석' 이라고
쓰여있는 것 같다
현재 사진 상태로는
계체석 위에 상석이 걸쳐있고 앞에는
두 개의 북석이 상석을 받치고 있는 형태다
북석(고석)을 통해
망자의 영혼이 드나든다고 한다
혼유석은 봤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향로석은 조금 기울어져있지만 잘 보존되어 있다
향로나 향합을 올려놓는 향로석은 산자들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죽은 이를 공양하는 제사 등의 행사에
시동으로서의 의미를 가진 석물
불교의 영향도 있지만 도교 영향도 있다고 한다
불교의 화동, 문수·보현보살 등 다양한 의미의
동자상이 묘역 도상 형성에 영향을 줬다고.
여성제 선생의 동자들은 코도 없고
똥 머리가 모두 날아갔다
일제강점기 시절
사격 연습을 했다는 썰이 있는데 확실치 않다
크기가 아주 작지도 않고 비율과 몸집,
옷의 주름 등이 정돈되어 표현됐다
표정도 아이 같지 않다
와... 표현 방법이 수려하다
묘역의 석물들은 표현이 조선 후기로 넘어가는 시기
절정에 이르는데
그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가 여성제 묘역 같다
화려한 절정의 시기 전후가 다 섞여있지만
사대부 묘역중 최상의 솜씨를 보이는
석물들을 갖춘 것은 틀림 없어보인다
조복을 차려입은 문인석 금관과
뒤의 폐슬, 후수도 보시라..
구름이 감싸고 있다
정제된 자세와 얼굴도 잘 표현되었다
대박 대박..
다만 발은 날아간 듯하다
(반대편 문인석은 발이 있었던 듯 - 상석 사진 참고)
묘비, 묘표, 묘갈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다만 여성제 묘역의 비는 묘표라고 부르고 있다
죽고 나서 합친 부인 금천강씨와 합사되었나 보다
묘비의 보통 정식 자리는 묘 앞인데
이 묘표는 봉분의 좌측에 자리한 것이 신흠 묘역과는 다른 점이다
여성제의 묘역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표현기법이 수려해
숙종 대의 사대부 묘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는데 과연 그런듯하다
명당터로 알려진 이곳
나무가 울창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지리적 여건을 보면 명당이 맞는 듯하다
조선시대 지도 광여도에는
여정승묘와 정이 표시된 것으로 보아
꽤 알려진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는 정백창(여이징 처의 아빠 한준겸의 사위 - 소용 조씨를 인조에게 진납했다는 기록이 있음)의 정자 강한정도 보인다
정초부가 수청리와 함께 왔다 갔다 했던
월계도 보인다
한바탕 잘 돌아보고 내려왔다
이 가옥 뒤로 다니면 되겠구나 싶다
전체 답사 때는 이 길로 올라와야지
(했는데 또 헤맸다)
제 역할을 못한 스틱을 던지듯이 넣었다 ㅎㅎ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사용법을 몰랐다
돌아갈때는 검천리와 분원 쪽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얼마 안 가 수청2리가 나온다
와... 저 집중 하나가 내 집이었으면 좋겠다
묘를 찾게 해준 여성제 선생에게 감사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드라이브하며 귀가했다
2021.06.11
마지막으로 개인 답사를 한 번 더 했다
바로 몽양기념관을 방문했던 것
함양 여씨가 수청리와 그 맞은편 양평 쪽에도
세거를 하면서 서로 오갔기 때문에 수청리에 대한 정보를 한 토막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었다
몽양기념관은 건립이 잘 되어있었다
여운형 선생님은 헬창(?)이셨는데 그 성격에 맞게 공원도 재미있게 되어있었다
이곳에서 관리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한토막 들을 수 있었다.
여운형 선생님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이쪽 여씨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채 다 흩어지지 못한
수청리의 여 씨들은 많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
(검증된 이야기는 아님)
실제로 수청리에는 남은 여 씨 후손이 없으며
마지막 관리자로 되어있는 여빙구 선생님은
해외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가도 터만 남았던 것...시제는 지냄)
없는 시간에 급히 방문한 터라 기회가 없었지만
이곳에는 해설사가 배치되어 있다
다음에는 해설사님 설명 들으러 다시 와봐야지
2021.06.21~23
두둥!
드디어 해설사 선생님들 모시는 답사 날!
선생님들이 바람을 맞으며
보호수 아래 앉아 경청해 주셨다
날씨도 너무 좋고 답사 장소로서 딱 좋았다
관리소 선생님께서도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신기해하시면서 몇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수청리 마을 주민들은 배를 타고
맞은편에 있는 학교를 다녔었다
장도 맞은편으로 가서 봤다고.
이러한 지역 문화 덕에 여 씨 세거지가
맞은편에도 있고 정초부도 왔다갔다하고
그랬던 듯
지금은 다리가 생기고
배 운항을 중지 시킨 상태인데
주민분들은 배 운행 때 가 더 편하셨단다
(실제로 다리가 멀다)
문화 관광적 요소로서도 아쉬운 점이었다
정선의 경교명승첩속 녹운탄이었던 곳이자
여성제가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원자책봉을 말리러 한달음에
한양으로 달려갔던 물길
그리고 정초부와 소울메이트 여춘영이
수시로 다녔던 뱃길인 이곳을
나도 함께 느껴보고 싶다.
배 운행 다시 플리즈!
(광주시장님! 도와주세요~)
말년에 여성제 선생은 이불을 둘러싸고 앉아 이곳의 보름달을 가족들과 함께 즐겼다
내년에 또 보자 약속했건만.. 아쉽게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땅에 묻혔다
개인적으로 여성제 신도비의 이수 부분은 삼전도비 이수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향토사학자나 묘제 전공 전문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의견을 묻고 싶다
하... 답사를 그리 힘들게 했건만 초반에 헤맸다
(그래도 다행히 묘는 봤다)
원로 선생님들께서 그동안 찾지 못했던
여성제 묘를 볼 수 있어 의미가 컷다며
나를 대견해 해주셨다
(데헷)
이날 근처 주민이 우리를 서리꾼 취급해서 난감했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답사 성공!
(감격의 눙물이..)
답사 끝나고 좋은 기분으로 식사!!
뿌듯하니 더 맛있다
별것 없어보이지만
현지인들이 자주가는 로컬 맛집이다
특히 시골집은 다른 분들에게 소개시켜줄 정도.
가볍게 점심식사로서 괜찮다
여이징 신도비와 수청 나루 (2022.1.29 촬영)
이후 겨울에 여이징 신도비를 가까이서 다시 보고 싶어 (또) 생가터를 찾았다
작년 겨울엔 비신이 잘 보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겨울에도 실루엣만 보인다
생각보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
정초부와 여운형의 우정이 서린 곳,
정약용, 정선과 같은 많은 선비들이 들렸던 곳,
한양에 반나절만에 갈수있는 물길이자
수려한 경관이서려 조선시대 사람들이
많이 놀러다녔던 곳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콘텐츠의 힘이 있는 이곳
수청리,
지금도 매력 돋는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광주시청 > 광주의 문화유산 > 향토문화유산
*네이버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여씨세장지 정보: 블로그 야초의 문화유적답사(여성제), 블로그 화암의 세상만사(여이징)
*여성제관련 답사물: CNB저널 이한성 옛길답사가 제 683호[겸재 그림길 (62) 녹운탄]
*이태호의 답사 스케치6-남한강 흥원창, 수청탄 조선 후기 문인화가 정수영의 사생 여정을 따라, 세 번째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광주시사 4권
*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
*광주금석문대관
*너른고을광주인물전 2집
*인물관계정보: 한국학자료센터 > 인물관계정보
*여이징 서체관련: 우리역사넷
*조선왕조실록
*한씨 죽음의 경위: 연려실기술
*여성제저 운포유고 원문: 한국학연구DB, 한국고전종합DB
*신역사스페셜 88회 – 노비 정초부, 시인이 되다 (2011.11.17.방송)
*광여도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실학의 중심지 옛 광주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