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밉다고 빨괭이가 분명한 안철수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겠는가?
참모들의 농간에 휘둘리는 박후보가 '맹하게' 보이지만,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보수우익 국민(국민의 약 70%)은 어쩔 수 없이 박근혜외에 선택할 후보가 없을 것이다.-
-김피터 칼럼-
‘미워도 다시한번...’, 그래도 박근혜를 버려서는 안됩니다.
김 피터(국제언론인포럼,편집위원)
박근혜가 안쓰럽다. 어리석은 부하의 총탄에 쓰러진 아버지, 미친 좌익 청년의 흉탄에
맞아 비명에 간 어머니, 그런 부모를 생각할 때마다 박근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런데 대한민국의 구국의 아버지가 간지 33년이 지난 지금, 딸 박근혜는 아버지의
무덤을 향해 돌을 던지는, ‘9,24 사과 성명’을 발표하였다.
박근혜는 왜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을까?
첫째로 현재의 상황이 그를 그렇게 코너로 몰고 갔다. 민주주의는 여론정치가 중요한데 여론이 박근혜보고 ‘과거사’를 털고 가라고 계속 재촉을 하였다. 그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은 물론 언론매체이다. 각 매체마다 박정희와 연계'된 과거사를 계속 물고 늘어젔다. 아마 언론계에 좌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정치 평론가들도 TV에 나와 ‘박근혜’가 과거사를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여러번 들었다. 그저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넘어갈 수는 없는 형편이 되었었다.
다음으로 참모들이 문제다. 지금 박근혜 캠프의 참모 중에는 우파 애국인사는 하나도 없다. 과거사 문제를 정면 돌파하자고 주장할 참모는 한사람도 없다. 특히 캠프의 김종인 위원장이나 이상돈 ‘정치 쇄신위원’같은 사람이 문제다. 전에 박근혜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구국혁명’이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한강의 기적을 노래하고, 국민들에게 박정희 공과 중에 ’과‘를 인정하면서도 ’공‘을 더 부각시키고 강조하며, 그 시대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설득해 나가는 전략을 쓰자고 주장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수장은 참모들과 함께 일하고 그 참모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것이 결국 ’9,24 사과‘성명으로 나온것일 것이다.
더 중요한것이 있다. 문재인의 컨벤션효과, 안찰수의 등장으로 박근혜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거나 답보상태에 있는 것이였다. 2자대결에서는 ‘박- 문’구도나, ‘박-안’구도‘에서 문과 안이 박을 추월하고 있는 위기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더 이상 대세론에 안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언론매체나 정치평론가들은 그 원인을 박근혜의 과거사 인식 문제 때문이라고 모두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위기의 상황을 만나 박근혜는, 대선 고지를 오르기 위해서는 결국 아버지의 무덤을 밟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9,24 사과’성명을 발표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 ‘9,24 발표’를 통해서, 박근혜는 과거에 했던 박정희 시대의 역사인식 접근에서 중요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과거에는 (1) ‘5 16’을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고, (2)‘유신’에 대해서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한다고 했다. (3)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이 있다.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이 헙법가치를 훼손했으며 정치발전을 지연시켰다.”고 다른 소리를 했다. 그는 또 박정희 시대를 비판하는 격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수 없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것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정희 역사의 ‘정통성’을 전면 부인하는것 같은 언행이다. 이정현 공보단장이 회견직후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런 수위의 발언은 처음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번 작품은 박근혜 자신의 것인듯 하다. 과연 박근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제, 앞으로 박근혜의 이 ‘9,24’성명은 계속 박근혜의 ‘덫’이 될것이다.
이번 회견에서, 박근혜는 아버지의 ‘공, 과’ 중에, ‘공’에 는 별로 언급이 없었고, 오직 ‘과’만 부각시키며, 마치 큰 죄인의 딸 인양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만 보였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무릇 국가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에게는 역사적 평가에서 언제나 ‘공’과 ‘과’가 있게 마련이다. 등소평은 모택동의 ‘공 과’에 대하여 ‘과는 3이고 공은 7이다’라며, 그자신이 문혁의 희생자였음에도 모택동을 비판하지 않고 언제나 그의 공과 업적을 높이 평가했었다. 엄밀하게 판단하면 그 반대이다. 오히려 공은 3이고 과가 7이라고 할수 있다. 모택동이 국민을 잘살게 만들었는가? 국가 발전을 위해서, 세계평화를 위해서 어떤 공을 세운 것이 있는가? 그는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백만명을 죽이기도 했다. 그래도 중국의 국가지도자나 인민들은 모택동을 높이고 숭배한다. 그의 ‘과’는 얘기 하지 않는다.
박정희 통치에서 ‘공과’를 역사적으로 공정하게 판단한다면 ' 과'는 2정도이고 '공'은 8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세계의 많은 국가 지도자들이 박정희를 칭송한다. 한국민들은 역사에 없는 위대한 지도자를 가졌었음에도 그 위대한 지도자를 깎아내리려고만 하고, 연좌제도 없는 민주국가에서 그의 딸에게까지 억지로
‘과’를 과장해서 덮어씌우려고 한다.
그 ‘시대’에 상처와 고통을 당했다는 사람들에게 박근혜는 벌서, 전에 10번이나 사과를 했음에도 이번에 또 더 머리 숙여 사과를 했다. 그 ‘시대’에 소위 상처와 고통을 당했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선량한, 열심히 일한, 허리띠 졸라매고 ‘잘살아보세’ 외치며 국가재건에 땸흘린 국민들인가? 아니다. 권력의 야욕에 눈이 멀어 무조건 반대데모만 하던 정치인들, 적색분자들, 법을 어긴자들이 아닌가? 물론 혹 개중에는 억울하게 고통당한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희생없이 어떻게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수 있었겠는가? 무릇 모든 위대한 목적의 성취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 아닌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런 원론적 이론에만 매달려 있으면 아무런 발전도, 성취도 이룩할 수 없다.
나는 해병대 장교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해에 있는 해병 간부학교에 입교하여 거의 1년간 훈련을 받았다. 헌데 그 10개월간 내가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였다. 평균 매일 ‘빳다’(bat,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맞는것) 몇 대씩은 맞았다. 1월의 혹한 추위에도 ‘완전무장’한채 바닷물에 처넣어져 덜덜 떨었다. 매일 계속되는 기합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자 그러면 그런 나쁜, 인권유린적인 훈련이란 ‘수단’이 왜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백절불굴의, 임전무퇴의, 강인한 해병간부를 양성한다는 지고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년 동안 나의 '인권'은 없는 것이었다. 빳다를 맞고 기합을 받고, 고통을 당해도 그런 것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5,16’, 유신 시대에 조금 자유가 제약되고, 혹 어떤 사람들의 인권이 무시되고, 고통스러운 일이 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국가재건, 보릿고개를 해소하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자,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자“라는 그 당시의 국가 ‘목적’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었다. 그시대, 한국은 필리핀보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보다 더 가난한 나라였다. 그리고 북의 도발은 동해안 무장간첩침투, 북의 특수군이 청와대까지 처들어 올 정도로 그 위협이 너무도 컸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처럼 무한한 자유만 외칠수 있는가? 허나 사실, 선량한 일반 국민에게는 무슨 큰 고통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생업에 자유가 제한된 적도 없다.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잘살아보세’ 새마을 노래를 부르며 희망에 넘처 있었다. 어떤 지고한 목적 달성을 위한 '특수 상황'에서는 제약적인
‘수단’이 사용되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5,16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고? 이조 시대에도 몇 번의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성계 부대의 위화도 회군이었다. 연산군 때의 중종반정도 있었다.
그러면 이성계 시대에, 그 부패하고 타락하고, 유약하고, 국가가 엉망진창이었던 그
고려 말의 ‘정부’가 오늘날로 말하면 계속 지켜야만 할 헌법적 가치‘가 있는 것이었던가? 이성계의 쿠데타를 부정한다면 이조 500년의 조선 역사도 부정되는 것이다.
연산군의 정신 이상적 독재 통치, 학살, 음란, 도덕 윤리의 완전한 붕괴 등의 그 연산군 정부는 또 어떠했는가? 그것을 무너뜨린 박원종의 군사 쿠데타, 중종반정도 그러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잘못된 것인가? (현대말로 하면). 연산군 정부를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야 말로 (현대말로하면)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5,16 혁명은 물론 군사 쿠데타다. 그러나 그 당시 거의 무정부 상태였던, 그리고 온통 좌익 세상처럼 날뛰던, 그래서 국가를 백척간두의 위기로 몰고 갔던, 무능한 장면 정부야말로 국가를 지킬 능력이 없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던 실체였다. 왜 박근혜는, 좌익들이나
주장하는 ‘516 헌법훼손’ 사과 발언을 했는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박근혜 후보와 그의 참모들에게 묻는다. 이번 ‘9,24 사과’ 성명으로 인해 그동안 떨어지고 있던 지지율이 상승하리라고 기대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한국에는 진보 30%, 보수 30%, 중도 40% 구도로 되어 있다. 박근혜가 아무리 ‘좌클릭’해도, 김대중
노무현 무덤 찾아가도, 좌파쪽에서 박근혜쪽으로 올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중도 40%는 어떤가? 그 중에서 ‘역사인식’ 때문에 박근혜쪽으로 올 국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에게는 ‘역사인식’보다 자기가 받을 ‘혜택’이 더 중요할 것이다.
오히려 박근혜의 고정 지지층 30%에서 이번 사과성명 때문에 실망하여 떨어져 나갈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국민 대통합’ 아무리 부르짖어 보아야 소용없다. 차라리 고정 지지층 단속에 더 힘써야 한다. 소위 ‘국민대통합‘정책은 앞으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의 또 하나의 ’족쇄‘가 될 것이다. 이명박의 통합정책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좌익, 빨갱이들과는 ’대통합‘이 안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한국의 악질 좌익은 함께 손잡고 갈 수있는 ’대통합‘의 대상이 아니라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실제로, 이번 박근혜의 ‘9,24’ 성명으로 인해 많은 보수 우익 애국 국민들이 실망 내지 배반감‘을 느끼고, ’이제는 박근혜에게 희망이 없다. 차라리 안철수를 택하겠다‘라고 울분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수우익 논객들의 빗발치는 박근혜 성토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하지만!, 그래도, 우리 보수 우익 애국 세력은 박근혜를 완전히 버리면 안 될 것이다. 그가 이번에 부득이 떠밀려서 ‘9,24’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아버지 박정희의 딸이다. ’5,16은 구국의 혁명이다‘,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라고 말한 것을 취소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따라서, 그래도 우리는 박근혜 편에 서야 한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이 딴짓을 해도 버릴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여전히 우리 보수 정통 우익, 대한민국 정통성 ‘라인’에 서있는 정치인이다. ‘미워도 다시한번’ 노래가 있듯이, 그래도
우리는 박근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완전 좌파, ‘노무현 아바타’나,
철부지같은 대학교수 쪽에 희망을 둘수는 없지 않겠는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