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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열.린.나.무♧ [참생명自然醫學] 원문보기 글쓴이: 열린나무
도듬. |
봄에 나는 모든 싹은 나물이다. 바닥에 넙죽 엎드린 연한 풀, 땅 속에 머리를 팍 처박고 있는 바알간 싹, 가녀린 몸체를 살짝 드러낸 노오란 들꽃,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는 파르스름한 넝쿨, 이 모든 것이 봄의 미각을 한껏 돋구는 나물이요 반찬이다.
때론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듯 하여 흠칫 놀라 주워 담으면 그것 역시 나물이니 이 산천에 나물 아닌 것이 무엇이랴? 미각을 돋구기 앞서 후각을 간지럽히니 밖으로 나가 "흠, 흠, 흠" 하지 않아도 세상은 저만치 달려가 있다.
시인은 봄을 노래하고 주부는 나물을 캐고 식탐을 즐기는 이는 나물 반찬에 한량없이 입안이 즐겁다. 향긋하기 그지없는 봄 손님에 상큼한 양념 옷을 입히면 '향큼하다', '놀라워라' 야단법석. 가가호호 밥상마다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비벼대기 일쑤다.
냉이꽃 |
'봄동'과 '냉이', '광대나물', '코딱지나물'은 하마 꽃이 피었다 졌겠다. 맨 먼저 다가온 첫사랑의 느낌은 꽃 피니 먹잘 것도 없고 슬픈 사랑처럼 벌써 쓰디쓴 느낌으로 다가와 내 곁을 떠났다. 결국 "이제 자네들에겐 관심 없네. 소용없으니 다음 봄에나 보세나"하고 작별을 고하는 수밖에 도리 없다.
냉잇국 끓일 땐 '좁쌀뱅이' 같이 썰어 넣어 틉진 쌀뜨물에 끓여야 제격이었지만 이 또한 하얀 꽃을 피워대니 우리의 인연도 다음 세상에서나 이어지려나….
쑥 |
돌 틈을 쑥쑥 비집고 올라 온 희뿌연 '쑥'이 푸른빛 더 할 때 잡티를 골라내며 정성스레 캐온 '쑥'이 마냥 쓰지만은 않은 호시절이다. 칼자루로 콩콩 찧어 들깨가루 집어넣고 된장 풀면 쑥국이요, 가난한 아이 손에 반달떡 물들여 소풍 보내면 들에 산에 올라 맘껏 자연을 음미하고 돌아올 게다.
달래 |
굳이 호미나 칼을 들이대지 않고 손을 푹 집어넣어 뭉쳐 있는 '달래' 뿌리까지 캐오면 집 간장이 기다리고 있다. 간장에 송송 썰어 넣어 고춧가루 풀고 깨소금 넣고 참기름 한두 방울에 따끈한 밥 한 그릇이 "뚝딱"인데 가녀린 아가씨 나물 캐다말고 어딜 갔는가?
돌미나리 |
밭고랑에서 캐다 재미없거든 냇가로 나가 보자. 시냇물이 졸졸 속삭이며 흐르는 개천을 따라 자작자작 물 고인 흙무더기 구렁에 가면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았다. 술 좋아하는 그이가 먹으면 해독에 좋다했으니 잔돌을 멀찌감치 밀어 버리고 쑥싹쑥싹 쓱쓱 한꺼번에 베어 여러 님 함께 가지런히 모셔온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을까? 무쳐 먹을까? 매운탕에 넣어 볼까?
돌나물 |
'새비하고 돌나물은 돼지에게 주지 않는다'고 했다. 새비를 주면 허리를 받치고 있는 뼈마저 녹인다하니 머릿고기 먹을 때 새우젓을 주는 이치요, 마디마디 끊긴 '돌나물'을 먹으면 척추 마디마디가 분리될지도 모른다. 엉금엉금 기었다가 언덕배기 나오면 고개를 쳐들고 속도를 내서 타고 올라가는 '돌나물' 캐기는 귀찮기 한도 끝도 없다.
줄기 째 둘둘 걷고 말아서 집으로만 가져오면 조심스레 잎을 하나하나 떼어내야 하는 수고로움 쯤이야! 살림하는 사람 소일거리 따로 필요 없게 손이 이만 저만 가는 게 아니다. 무를 얇게 사각으로 썰어 파 좀 넣고 물김치를 담가 소금에 절이지 않고 맨 것을 넣어주면 시원하다 못해 깔끔하고 노인네들 잇몸만으로도 자근자근 씹히니 이 얼마나 좋은가? 남은 것은 된장고추장 섞어 풋내 나지 않게 뒤적이면 덜 으깬 된장 콩이 더 큰지 나물이 더 큰지 알 수 없어도 맛만 있더라.
엉겅퀴 |
산비탈에 가시로 제 몸을 보고하고 있는 '엉겅퀴' 싹을 만나면 도망치지 말고 칼로 툭 찔러 서너 뿌리만 캐와도 한 그릇 나오니 씁쓸한 맛에 약된다하니 먹어 둘 일이다.
머위 |
세상에 쓰다한들 이처럼 대단할까? '머구'대가 하늘을 향해 치고 뻗어 올라가면 이미 쓴맛으로 가득하다. 앉은뱅이일 때 서둘러야 붉으족족한 '머위' 순 뿌리까지 조금 따라온다. 생으로 무치면 '소태 맛 저리 가라' 하니 춘곤증에 어리어리한 정신을 화들짝 놀라 바짝 깨이게 하니 약국에 갈 일 없다. 데쳐서 된장에 무쳐도 한두 시간은 향이 입안에 가득하니 용기를 내야지.
작년 가을 김장 배추밭 가에 덜 캔 '고들빼기'는 '씀바귀'와 사이 좋게 하얀 뜨물을 머금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싹도 싹이지만 뿌리가 더 탐난다. 매콤하게 무칠까, 시큼하게 무칠까? 산촌에선 고기보다 씹히는 맛이 있으니 이 봄에는 따로 할 것 없이 한 데 모아 무쳐 씁쓸한 맛에 빠져 보아야겠다.
쳐다보지도 않던 달걀 꽃 풍년초 '개망초', '민들레'라고 나물이 아닐 수 없다. 주먹보다 더 크기 전에 툭툭 잘라와 데치면 이 또한 즐겁다. 소가 먹어 탈이 없으면 사람 먹어 지장 없으니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나물이요, 반찬이다.
취나물 |
'취나물'도 가지가지라 한 번 맛보려면 따로 시간을 잡아서 산으로 들어가야 하니 나물 캐는 사람들이 건강할 수밖에 없으리라. 보자기든 망태기든 넉넉한 걸 준비해 가볍게 도시락 장만하고 초고추장을 따로 마련하자.
참취, 곰취, 떡취 마구 뜯어 망태에 주섬주섬 담아와 집에서 가지런히 추리면 되잖은가? 뭐니뭐니 해도 봄나물 중 최고는 취나물이요, 취나물 중 최고는 '참취'니 생으로 무쳐먹고 조금 뻣뻣하면 삶아서 무치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남으면 명년 대보름날 먹게 남겨두게나.
'곰취'는 조금 기다려야 하네만 눈 좋으면 한 번 찾아보게. 쌈거리로는 참나물과 함께 최고라네. 나물 뜯다 잎 아래쪽이 바람에 살짝 넘어지면서 하얀 털이 보숭보숭 나 있거든 '떡취'니 주저 말고 주워 담아 살짝 삶아서 널어뒀다가 인절미에 같이 넣고 푹푹 찧으면 일반 콩떡은 맛없어 못 먹을 지경이네. 끈덕지고 차지기가 쑥떡 저리 가라네.
땅두릅 |
산에 들면 온갖 나무 싹이 "오서 옵쇼!" "혼저옵서예!" 하지. 오랜만에 사람 만나니 반기지 않겠는가. 옻나무를 상처나지 않게 살짝 구부려 '옻' 싹에 초고추장 싸악 발라 입으로 낼름 해도 좋다. 나무도 아닌 것이 나무인 체 하는 강활(羌活) '땅두릅', 가시가 덕지덕지 붙은 '참두릅' 싹만 툭 따고, 더 깊은 산중에 들어가 '개두릅' 만나면 "오! 자네가 '엄나무'인가?" 하고 여쭤 보면 틀림없이 그렇다 할걸세.
참두릅 |
깊은 산 습한 응달쪽에 가면 간혹 '오갈피'를 볼 수 있네만 아는 사람 많지 않으니 욕심부리지 말게. 이런 약되는 나무 싹을 가장 윗동 하나만 따서 오소. 집에 오거든 내가 사이다를 조금 섞어 초고추장을 맛있게 만들어 놓을 테니 조금 지친 몸 어여 뭉그려 내려오게나. 전을 붙이지 않아도 이놈들만 있어도 혼자서 탁주 한 되는 꼴딱꼴딱 잘 넘어 갈 걸세.
땅 속 고사리 |
벌써 삶아 말리기 시작한 고사리. 봄비가 더디 마르게 하니 습한 일본과 예전에는 재에 비벼 말렸으므로 암에 잘 걸릴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건조에 큰 문제가 없으므로 먹어도 별 탈이 없답니다. |
'고사리'는 때 이르다네. 아이들 기관지에 좋다는 '도라지'를 캐면서 보니 아직 땅 속에 묻혔더니만 집에 와 보니 이웃집은 벌써 고사리를 한 무더기 꺾어 왔더구만. 부럽더라고. 고사리 꺾을 때가 되면 나에게도 꼭 연락을 취하소. 고사리도 고사리지만 어릴 적 엄마가 꺾어다 주신 한 팔 길이쯤 되는 '칡'싹을 해강, 솔강이에게 쥐어주면 껍질을 벗겨 자근자근 잘 씹는 모습을 보고싶네. '꼬침'이라 했던가? 고비도 물기 있는 곳에 가면 있으니 젯상에 한 접시 올리게 준비하게나.
도라지 |
정말 한 번 나가면 왜 이리 꺾고, 뜯고, 자르고, 훑고, 뽑아서 올 게 많은가? 내려오다 아직 덜 핀 '화살나무 잎'과 '다래넝쿨 잎'도 좀 따오소. 딱주라는 '잔대', '더덕'은 바빠서 캘 틈이 없었겠지. 마을 어귀에 올 시간이면 내 마중 나감세. 밭가에 당신이 쉬고 있으면 밭에 심어둔 부추 잘라와 솔지(부추김치) 조금 담그고, 쏙쏙 보드랍게 올라온 대파도 한 번 숙주나물을 만들어 먹으면 이 봄 끝내줄 것 아닌가? 하여튼 수고했네.
딱주라고도 하는 잔대 싹 |
그리고 산에 갈 때는 뱀을 조심하게. 독 없는 뱀이 없고 상식이 사람 잡는 경우 허다하니 응급처치 하고 얼른 손을 써야 한다네. 봄나물 먹고 기운 차리길 간절히 바라며...
부추 밭에 재를 뿌리면 더 잘 자랍니다. 좁은 언덕에 만들어도 충분하지요. |
꽃이 피기 전에 얼른 뽑아서 숙주나물 만들어 드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