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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모 17주년, 늦은 봄의 스케치 ◆
김 내 동
2013년 5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부터 여러 회원들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17주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 든다. 남한산성 로타리 인근 ‘남문관’의 시원한 자리에 모여, 정다운 회원들 끼리 서로를 소개하고 정담을 나누며, 17주년 행사장소인 남한산성 행궁의 가장 돋보이는 ‘좌승당‘으로 오른다.
座勝堂! 앉아서도 이길 수 있다는 곳! 그 이름만으로도 이곳에 앉아 있다는 것이 경외스러운 곳이다. 사무국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수고로 뒷받침이 있는 앉을 의자에 폼나게 앉는다.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또한 무역업사업가인, 김진원 사무국장은 행사총괄기획자로서 멋지게 사회를 본다. 오늘 행사에 특별히 참석하신 분들이 소개된다. 17년 전 남한산성 복원에 거액의 예산을 배정한 임창열 전 경기지사 재직 시의 문화국장을 역임한 이인재(현 파주시장)님은 남한산성에 남다른 애정과 인연이 있다. 특별한 일정으로 본인 참석이 어려워서, 자치행정국장 정도락님이 왔다. 또 경기문화재단( 대표 엄기영, 단장 김문수)의 이강희 사무처장이 남한산성 관광사업단 초대 단장의 인연으로 참석했다.
최종섭 수석 부회장의 축사가 있고 정흥숙회원은 김소엽시인의 ‘그대는 아름다운 사랑을 연주하는 바다’란 시를 낭송한다. 회원들 모두 문학소년 소녀가 되고, 글자 하나하나의 시어들은 늦봄의 가슴을 울린다.
이어 공로패가 수여된다. 전보삼 회장님께서 파주시장 이인재님과 고문이신 공석봉님에게 감사말씀과 함께 정성이 가득담긴 남사모의 공로패를 전한다. 남사모로 인하여 남한산성이 단순한 산이 아닌, 수천 년 역사의 편린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고뇌와 기쁨이 쌓여져서 산이라는 모양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나도 수없이 올랐던 이곳은 전보삼 회장님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이렇게 깊은 이야기와 아픔과 사랑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한산성은 역사가 만들어 준 보배 같은 땅임을 깨우치게 되니, 남사모는 남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 온 것이다.
오늘 행사의 핵심인 특강시간으로 이어진다. 전보삼회장님의 파워포인트(PPT) 자료는 산성의 역사를 넘어 이 땅의 역사와 인물을 담고 있다. 수려하고 놀라운 설명력에 핵심을 찌르는 말씀은 회원들을 매료시킨다. 회장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회원들 눈에서는 빛이 나오고, 입에서는 침이 넘어간다. 명 강의다. 최상의 지성과 상상력이다.
실학자로서, 양천현감을 지낸, 겸제 정선의 송파진도가 대형 화면을 꽉 채운다. 남한산성이야말로 명나라와 청나라의 권력교체의 시기에 친명, 친청의 갈림길에서 우리 민족의 자아를 찾아 고민하던 실학의 산실이라고 설파하신다.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 다산 정약용등 근기학파(광주인근)의 산실이 바로 이곳이다. 이어서 해동지도와 광주부 지도가 크게 보여 진다. 광주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한강이남 거의 전체를 이름한 것이었다.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북한산, 남쪽에는 남한산이 있었다. 남한산은 한강 이남의 主山이고 聖山이며 眞山이었다. 전쟁이 국운을 좌우하던 시대에 城은 현대판의 核爆彈이었다. 남한산성은 조선후기의 조선을 지키는 核이었던 것이다. 조선에는 1,700여개 城이 있고, 그중 260 여개의 城은 문화관광자원화가 가능하다. 전보삼회장님의 특강은 계속된다. 참 재미있다.
벽암 각성대사는 조선 8도의 도총섭으로, 남한산성내에 8도 사찰을 건설하고 4개의 장대를 세워, 민족자존과 화합의 땅이 바로 남한산성임을 강조했다. 놀라운 해석이다. 지화문(남문)은 그 이름만으로도 화합과 통일을 뜻한다. 바로 국가 분열주의를 경계하는 남한산성의 의미인 것이다. 그는 서산대사, 사명대사와 함께 조선 3대 명승 중 한 분이시다.
따라서, 남한산성은 호국정신의 산실로써, 현절사에 3학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선비정신의 고향인 것이다. 또한 실학정신의 산실인 것이다. 병자호란이후 1200여회 사신이 오간 길, 조선의 사신만도 800여회 정도 오간 길인 사행로 답사의 길을 열어야 한다. 60만 명의 볼모가 청나라에 끌려가 죽음의 생지옥 고생을 한 그 아픔을 잊지 않게 만드는 출발점이 바로 남한산성이어야 한다. 조선의 선비정신은 주군에 맹종하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과는 그 출발점이 다른 것이다. 임진난 이후 사무라이정신은 조선의 선비정신을 배워가서야 비로소 문무의 정신체계로 다듬어진 것이다.
남사모는 1996년 그 시작이 움텄다. 1636년 병자호란 발발 360년 후( 60갑자*6회)인 1996년! 그 뜻 깊은 해가 되어 남한산성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된다. 누가 남한산성을 치욕의 땅이라 했는가? 이 산성은 단 한 번도 ‘패전을 당한 城‘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여러 차례 승전을 경험한 勝利의 땅인 것이다. 이 땅의 깊은 의미를 다시금 파악하기 위하여 남사모라는 이름으로 모인 것이다.
1995. 4. 5 식목일에 당시의 경기도 지사인 임창열님이 식목행사 차 남한산성에 왔고 수어장대를 방문했다.
전보삼 교수는 함께 하며, 산성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3시간여에 걸쳐 설명하고 임지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는다. 그 결과는 2000년 남한산성 종합발전 방안 연구보고서에 압축되고 , 향후에 남한산성 발전방향을 결정짓게 된다. 임지사는 1,455억원을 투여하는 통 큰 예산배정을 약속하고 ‘남한산성 복원정비 기획단‘을 출범시킨다. 이것은 오늘에 와서 유네스코 역사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는 쾌거의 출발점이 된다.
유럽의 캐슬을 보시라! 중세의 성을 호텔로 개조하여 중후한 역사스토리를 머금은 캐슬호텔에서 신혼부부가 명문가문을 꿈꾸는 신혼여행을 하고, 세계적 다국적 기업들이 글로벌 최고경영자들을 초대하여 최고급 행사를 하는 고품격 문화의 중심지로 변신하지 않는가? 이곳 남한산성에서 조선 궁중음악인 정악을 연주하고, 고품격 미술관인 화원을 돌아보며, 최고급 궁중음식을 나눠 먹는 세계적 문화선진국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꿈꿔볼 수는 없는가?
조선 사대부의 문화 중심이었고, 전통무예의 보고인 남한산성에서 배려, 나눔, 존중, 창의의 체험활동을 통하여 바른 가치관을 배울 수 있다. 이곳에는 약 20만평 소나무 군락지와 반딧불, 가재가 살고 있으니 자연친화 공간인 것이다. 산이면서 도시이고, 도시이면서도 산인 이곳은 고원 분지형으로 세계적 명소로도 변신할 수있는 땅인 것이다.
이곳은 전문가들이 아날로그적 지성과 디지털적 기술을 결합하여 창의시민시대를 여는 전진기지로서, 새시대 문화 콘텐츠의 꽃을 피워나가는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 그 일을 준비하는데 17년이 걸린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지정을 약 1년 앞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스토리로 둘러 쌓인 남한산성에는 스토리텔러 리더쉽이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이야기 하는 문화유산으로, 이야기 하는 인간 즉 호모사피언스를 지향해 보자.
남사모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 소재로 하고, 발로 걷고 몸으로 체험하며, 산속이지만 도시와 통하고 세계와 문화로 소통하는 이곳에서 21세기 문화융성의 블루오션을 만들어 나가자~
회장님의 웅변같은 강연은 남한산성과 남사모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깊은 곳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얼마나 멋드러진 모임인가하며 자랑스러움에 들뜬다. 남사모! 그 이름으로 너와 내가 하나되어 이 땅의 의미를 되뇌이며,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역사의 진면목을 들추어내는 임무에 스스로 위대함을 느낀다. 위대한 남사모! 영원하리라~
창립 17주년의 행사는 자리를 옮겨, 만해기념관으로 이어진다. 2부! 문화 나눔, 장기자랑의 시간이다. 정흥숙교수의 시낭송은 김재진 시인의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다. 박용규 사무국장은 남미의 카주악기로 연주하며 노래를 맛깔나게 부른다. 주미숙 총무, 정병숙회원으로 노래잔치는 이어진다. 시조작가였던, 고 정재열회원의 아들은 여자친구와 함께 인사를 한다. 섹소포니스트 피터님은 섹소폰 연주로 늦봄의 산성을 가을 느낌으로 물들인다. 얼마나 노력하였으면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담을까? 검은 선글라스에 야성미 넘치는 모습 그 자체로 예술이다. 키보드를 담당하던 김인섭 전 사무국장은 데니보이를 섹소폰에 담는다. 성동현 회원도 흥겹게 한 곡조 멋들어지게 뽑고 나니 이비인후과 의사이신 신현일 고문님은 남미 인디언의 악기인 팬풀룻을 불며 맑은 색깔의 향기로 우리들 가슴을 물들인다.
장기자랑대회의 심사위원은 최동욱님과 공석붕 고문님이시다. 최동욱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DJ이며 동아방송 ‘3시의 다이알‘사회자로, 우리나라 팝송의 선구자시다. 맨 먼저 3등상이 호명된다. 주미숙, 최용규, 정흥숙, 김인섭, 정병숙님이 수상하고 상품을 받는다. 2등상! 성봉현님! 1등상! 신선일님! 와 ~ 모두가 흥분감을 못 이기며 축하를 나눈다.
이것이 남사모다. 남사모 회원들이다. 역사와 문화의 그릇에 질펀한 예술의 향기를 담고 있는 모임! 어디를 가도 이런 모임을 만날 수 있을까? 반신반의다. 아니 못 만날 듯하다. 그러니 매달 마지막 일요일은 남사모를 찾아야 한다. 다른 곳을 찾는 다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차선을 찾는 일요일은 가슴 아프다. 최선을 찾은 오늘! 바로 남사모 17주년. 하루의 모든 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 많은 준비를 사무국에서 다했다. 너무도 감사하다. 그 헌신으로 빛나는 우리 모임은 영글어 가고, 20년 30년 50년을 이어 가리라~ 늘 이렇듯 행복함을 나누리라~ 수많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헌신으로 봉사해준 집행부의 완벽한 준비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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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
내용
사적 제212호. 지정면적 180,826㎡. 원래 그 자리에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백제시대에 청주목(淸州牧)이 상당현(上黨縣)이라 불렸고, 숙종 때 축성기록에 ‘上黨基址 改石築(상당기지 개석축)’이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8부능선에서 시작하여 성안의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동서의 등성이를 타고 사행(蛇行)하는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4.2㎞의 유구가 잘 남아 있는 서벽과 동벽의 높이는 약 3∼4m에 이른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성벽 위에 설치하였던 성가퀴[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성벽의 안쪽은 돌을 깨뜨려 틈을 메운 뒤 흙을 채우고 다지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3개의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2개의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겨 만든 성문), 2곳의 장대(將臺), 15개의 포루(砲樓)터 외에 성안 주둔병력의 식수를 대기 위한 대소 2곳의 연못이 있다. 정문인 남문 주변에는 3개의 치성과 장대, 4곳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숙종 때의 개축 이후에도 1731년(영조 7) 남문 문루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1802년(순조 2) 1,176개의 첩(堞)을 시설하여 산성으로서의 완벽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성벽이 퇴락하고 문루가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1971년 석축 부분을 개축하였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문·서문·동문의 누문을 모두 복원하였다.
일부에서는 이 산성을 삼국시대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전적지인 낭비성(娘臂城)으로 비정하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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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 역사 문화탐방 청주 고 인쇄박물관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이라 소개되면서 한때 잘못 불리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불교에서 ’경(經)’은 불교경전을 뜻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불경이 아니므로 「직지심경」은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판심제(版心題 )에 나타나는 가장 간략한 책의 이름으로 「직지」라고 부른다.
「직지」를 편저한 백운화상의 호는 백운이고, 법명은 경한(景閑, 1298∼1374)이다. 백운은 1298년(충열왕 24)에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1351년(충정왕 3, 54세) 5월에 중국 호주의 석옥(石屋)선사에게 불법을 구하였다. 석옥선사로부터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전해 받고 불도를 닦아, 1353년(공민왕 2, 56세) 정월에 마음을 밝혀 불도를 체득하였다. 또한 백운은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 황해도 해주의 안국사와 신광사 등에서 주지를 지내고, 후진 양성에 힘쓰다 1372년(공민왕 21, 75세)에 성불산 성불사에서 145가(家)의 법어를 가려 상·하 두 권으로 「직지」를 편집하여 저술하였으며, 1374년(공민왕 23, 77세)에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入寂)하셨다.
직지의 체제와 내용「직지」의 체제는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덕사에서 간행된 금속활자본은 현재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 1책(총 38장)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하고 있다.
취암사에서 간행된 「직지」 목판본은 상·하권이 완전한 1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및 영광 불갑사에 소장되어 있다. 금속활자본만으로는 알 수 없는 체제나 내용을 목판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직지」는 석옥선사가 전해준 「불조직지심체요절」에 「선문염송」과 「치문경훈」 등에서 그 내용을 보완하고 과거 7불(佛)과 인도 28조사(祖師), 중국 110선사 등 145가(家)의 법어를 가려 뽑아 307편에 이르는 게·송·찬·가·명·서·법어·문답 등을 수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사로는 유일하게 신라 대령선사(大領禪師)가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직지」의 중심 주제는 <직지심체>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불도를 깨닫는 명구(名句)에서 비롯된 것으로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직지를 간행한 사람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제작광경 「직지」를 1377년에 청주목(淸州牧) 밖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배포하는데 연화문인(緣化門人 ) 석찬(釋璨), 달잠(達湛), 시주 비구니 묘덕(妙德)이라는 간행 기록이 있다.
석찬은 「백운화상어록」 상·하권을 모아서 기록한 백운화상의 수행비서격인 시자(侍者)였다. 특히 비구니 묘덕은 흥덕사 금속활자본과 취암사 목판본의 「직지」 간행에 모두 관여한 인물이다. 석찬과 달잠은 모두 백운화상의 제자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해 묘덕의 시주를 받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하게 되었다.
직지의 프랑스 소장 경위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되어 있다. 그 경위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고서 및 각종 문화재를 수집하였는데, 그 속에 「직지」가 포함되었던 것이다.
「직지」의 수집경로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1901년에 저술한 「조선서지」의 보유판에 게재된 것으로 보아 1900년경에는 이미 수집되었으며, 1911년 드루오호텔에서 경매되었다.
쁠랑시가 우리나라에서 수집해간 대부분의 고서는 모교인 동양어학교에 기증하였다. 그러나 금속활자본 「직지」는 앙리 베베르(Henri Vever, 1854∼1943)가 180프랑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1950년경에 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직지의 재발견
「직지」는 1901년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저술한 「조선서지」보유판에 수록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실물과 내용은 확인되지 않다가 1972년 "세계 도서의 해(International Book Year)"를 기념하기 위한 ’책’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직지」의 간행 장소인 청주 흥덕사도 1985년 청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됨으로써 오늘날의 청주 흥덕구 운천동 866번지임이 확인되었다. 이를 계기로 1986년 충청북도 주최로 열린 <청주 흥덕사지 학술회의>를 통해 흥덕사가 학계에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992년에는 흥덕사 터의 정비와 함께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00년에는 「직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0청주인쇄출판박람회"를 개최하였으며,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직지」를 등재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 받게 되었다.
세계에서 최고 오래된 금속활자 본 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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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정모 결산(2013. 05. 26)~
◆수입 / 활동비-36명 ×3만원=108만원. 3명×2만원=6만원 합-114만원
찬조-1명×110만원. 2명×20만원=40만원. 8명×10만원=80만원. 1명×2만원=2만 원 찬조 합-232만원.
◆찬조 명단/ 전보삼-강의료 반환 30만원/ 찬조 80만원. 최종섭-20만원. 정완길-20만원. 이종화-10만원. 박연주-10만원. 신현일-10만원. 신동수-10만원. 문제길-10만원. 김내동-10만원. 신청-10만원. 이광석-10만원. 김동수-2만원
수입 총합=346만원
◆지출 / 식대-910,000원 / 강의료-30만원/ 책자 제작 발송-80만원 / 수건-20만원 / 초청장-23만원 / 상패-28만원 / 꽃-52,500원 / 물외 잡화-6만원 /상품-28만원 /떡-9만원 /사무국모임 3번 14만원 /피터연주자 페이 30만원.
지출 총합=3,642,500원
◆수입 / 지출 결산= (-)182,500원
~참석자 명단~
무순/ 조한숙. 전보삼. 김진원. 김종윤. 강현옥. 이종화. 이연주. 주미숙. 최종섭. 신청. 신동수. 박용규. 김경덕. 황규준. 박연주. 이민영 . 신현일. 정완길. 김인섭. 김영환. 최종대. 최동욱. 공석붕. 김태섭. 장미화. 리브박. 신창규. 김내동. 정흥숙. 이성숙. 김종권. 조유선. 성봉현. 정병순. 이민원. 이승수. 정겨운. 김광일. 성현례. 이광석. 김정숙. 박미화. 김동수. -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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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연회비 납입/ 신청. 최종섭. 공석붕. 문제길. 김진원. 신영수. 강상원. 박용규. 김태섭. 이종화. 이대훈. 최종대. 정완길. 신창규. 최동욱. 황규준. 이순임. 김내동. 고태우. 손종구. 전보삼. 신현일. 조한숙. 신동수. 정흥숙-2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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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모 동정~
* 다음카페 (남사모 청년포럼)에 회보 열람방이 개설되었습니다. 남사모 회보는 이곳에서 영구 보존되고 24시간 열람 가능합니다. 많은 방문, 흔적 바랍니다.
* 사무국장 김진원 이-멜 : kimjw59@naver.com 전화번호: 010-7502-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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