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날 이야기 -72-
(답십리 이야기 -3-)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2동은 나의 제2의 고향이다. 나는 차남이기에 분가를 하였다
그래서 호적에 본적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2동이고 원적은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되어있다.
1967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을 하여 이곳 답십리에서 조그마한 공
장도 차렸고 회사의 기반을 답십리에서 잡았다. 애들 사남매 모두가 답십리에 있는
전농초등학교를 졸업
했다.
그 당시의 전농초등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다고 하였다. 둘째인 승숙이
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21반에서 번호가 100번이었으니까 말이다.
봄에 초등학교 3학년인 승숙이네 학교서 소풍을 갔을 때의 일이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이 청량리서 답십리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애들을 뿔뿔이 해산
시키고 집으로 가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승숙이는 아직 버스를 탈 줄도 모르고 집으로 오는 길도 몰라 헤매다 해가
저물어 시대극장 앞에서 울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행인이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었
다 한다. (하마터면 승숙이도 이산가족이 될 뻔하였다)
다른 애들은 다 왔지만 승숙이만 컴컴해 질 때까지 오질 않아서 집에서 애를 태우
고 있었는데 어두워져서 승숙이가 울면서 들어왔다. 그때의 심정엔 어찌나 분하고
속이 상했던지 말로 표현할수 없도록 흥분되어 곧 교장선생님 자택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전농국민학교에 애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오늘 학교에서 소풍을 갔는
데 어린애들을 청량리 입구에 버리고 선생님은 혼자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동서남
북도 잘 모르는 어린애들을 버리고 말입니다.
우리애가 어두워질 때까지 집을 찾질 못하여 헤매다가 겨우 행인의 도움으로 밤늦
게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무책임한 선생님께 어떻게 우리 애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애들이 집까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가 아닌
가요. 교장선생님이 평소에 선생님들한테 어떻게 교육을 시켰기에 이러한 선생님이
이 학교에 있습니까”
교장선생님이 백 번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몇 반이며 애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
으나 끝내안 가르쳐 주었다. 그 담임선생은 아마도 견책을 받았을 것이라 본다.
첫째인 승희는 공부를 잘하여 뒷집 머슴애와 1.2등을 다투었다. 승희가 공부를 잘
하는 바람에 승희모가 학부형 회장까지 하였다. 승희는 답십리에 있는 전농초등학
교를 졸업하고 수도사대 부속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촬영소로 가는 고개를 넘어 장
안들 한복판을 흐르는 중량천을 건너 학교를 다녔는데 장마철이 되면 물이 불어서
배를 타고 간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대학은 홍대를 다녔다. 수석으로 합격하여 과대표도 지내고 불교청년회장
도 맡아 학교생활을 매우 활발히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아이러니 한 것은 승희
가 수도사대 부속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대를 다닐때 수도사대 옆으로 이사를
갔고 홍대를 졸업하고 나서는 다시 홍대 옆으로 이사를 간 것이다.
둘째인 승숙이도 전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 부속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대학은 수도사대를 졸업하였다. 한번은 승숙이가 중학교 때에 학교를 간적이 있었
는데 교실을 들여다보니 학생의 2/3가 안경을 쓰고 있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승숙이도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말이다.
셋째인 승수도 공부를 잘 하였다. 전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동 중학교와 경희고
등학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때는 하도 키가 작아서 버스를 타면 사람들 틈에 끼어서
밖을 볼 수 없었을 정도였다.
버스에서 내릴 때면 책가방이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내리지 못하고 한 정거장을 더갈
때가 여러 번 있었다한다. 그러던 것이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키가 크기 시작하더니
일 년에 10cm씩 컸다. 지금은 아마 178cm는 될 것이다. 대학은 중앙대 광고학
과를 졸업하였다.
막내인 승호역시 전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의 아주공대를 졸업한 후 일본에 가
서 2년 공부했는데 내가 중국을 오가니까 또 공부하고 싶다하여 천진시 마창도에
있는 외국어 대학을 다녔다. 지금은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잘살고 있다. 이렇게 4
남매가 모두 답십리에 있는 전농초등학교를 나왔다.
시골집에서 조카 승철이(뒷줄 중학생)와 우리애덜 4남매가 아버님, 박씨어머님과 함께
(앞애있는 맨 완쪽아이와 앉아있는 꼬마는 큰여동생의 아들)
(1963~4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