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교 다리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이들은 아비규환 속에서도 이 말을 잊지 않는다. “너라도 살아야지.. 나가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에게 얘기해야혀“ⓒ PIFF
노근리 사건을 다룬 최초의 영화 '작은연못'ⓒ PIFF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만나는 사람마다 "진지 잡수셨서유"를 물어보던 정 많고 순박한 사람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피난을 종용하며 떠미는 미군을 만나면서부터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단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영문도 모르는 양민들을 향해 쏟아져내렸던 죽음의 폭우.
죽은 아이를 들처메고 총질을 피해 뛰는 이웃, 쓰러진 엄마를 붙잡고 우는 아이..
"미군정이 거짓말을 하겠어?"
"누가 쏘는겨? 빨갱이가 쏘겠제"
그러나 쏟아지는 미군의 총알에도 끝까지 미군을 아군이라 믿었던 순진무구한 양민들.
영화포스터처럼, 너무나도 순수하고 해맑아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노근리사건의 진실은,
60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 앞에 더욱더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수천억대의 블록버스터보다 더 소름끼치는 리얼함을 보여줄 '작은연못'
그 앞에 마주한 관객들이 누구든 충격과 슬픔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축소 은폐 연연하는 가해자 미국
- 노근리 사건'의 정식 명칭은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이다.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 부터 29일까지 4박 5일간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 일대에서 미군에 의해 300여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당시 노근리 근처에 주둔 중이던 미국 1 기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는 노근리 경부선 철교에 접근하던 한국인 피난민을 향해 공군기와 지상군이 함께 기총소사를 쏟아 부었다. 기록에 의하면 달아나는 민간인을 쫓아가 사살하기도 했다.
당시 생존자들이 1994년 관련 저서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출판 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노근리 사건은 1999년 9월 AP통신이 당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보도를 담당했던 AP 통신 특별취재팀은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2004년에는 학살사건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현재 특별법을 근거로 평화공원이 건립중이다. 이에 앞서 2003년에는 노근리 학살의 현장이었던 쌍굴 다리(개근 철교)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59호로 지정됐다.
가해 당사자인 미국은 양민 학살사건을 축소 은폐하기 급급한 실정이다. 지난 2001년 미국은 한국과 주한미군의 공동조사 후 펴낸 보고서에서 ‘군인들에 의한 우발적인 사건’이며 ‘군 지휘부의 사살명령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미군 병사의 증언과 사단장이 하달한 명령문서를 확인한 바 있다”고 강조하고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은 노근리사건의 진상을 축소, 왜곡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재조사와 더불어 손해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