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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card님의 다시 쓰는 여름향기 엔딩 (11회)
혜원이 응급실 침대에 놓여졌다. 잠시후 짙은 뿔테 안경을 쓴 자그만 한 사람이 청진기를 걸치고 응급실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의사의 넓 은 이마가 불빛에 빛나고 있었다. 혜원의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대는 의사의 미간이 좁아들고 있었다. 그는 다시 청진기를 빼고 맥박을 짚 었다. "박간호사, 체온 재 봤어요?" "네, 체온이 30도예요. 자꾸 떨어지는것 같아요." "심폐소생술할 준비해요!" "저..선생님, 우리가 아까 차안에서 심폐소생술을 시도 해 봤는..데요." 정아가 말했다. "그래요?" 의사가 정아를 한번 돌아보더니 손에 수술용 고무장갑을 끼고는 혜원 의 입을 벌리고 입속을 들여다 보았다. "박간호사 시작합시다. 전기 충격기 어딨어요?" "선생님, 그거 지금 고장났잖아요." "아직도 고쳐놓지 않았어요?" "녜..." "이런 제기럴...도대체 그거 고장난지 언젠데...한두번도 아니고..." 욕지꺼리를 뱉어내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는 의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간호사가 혜원의 목에 베개를 받쳤다. 이런일이 한두번이 아닌듯 간호사의 동작은 익숙해 보였다. 의사가 혜원의 가슴에 두 손바닥을 겹쳐 갖다 대자 간호사가 혜원의 머리위에 자리하고는 혜원의 코를 막고 혜원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갖다 댔다. 간호사가 혜원의 입에 거센 공기를 불어넣자 의사가 혜원의 가슴을 거세게 눌렀다. 혜원의 몸이 공중으로 한번 치솓았다가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그 동작을 한동안 반복하고 있었다. 대풍, 정아, 상열이 응급실 귀퉁이에서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는 마치 젖먹은 힘까지 동원하는지 한번씩 가슴을 누를때마다. 혜원의 몸이 거센파도에 요동치는 배 처럼 흔들렸다. 그들의 행동은 끝이 없을것 같았다. 어느순간 혜원의 입에서 이물질이 튀어나왔다. 의사와 간호사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면서 굻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가슴을 누르던 의사가 어느순간 동작을 멈췄다. "박간호사, 그만해요. 됐어요. 이제 코를 막고 입만 벌리고 있어요." 의사의 손을 벗어난 혜원의 가슴이 불규칙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 은 눈에 확연히 띌 정도였다. 그러자 의사가 다시 혜원의 가슴을 겹친 두손바닥으로 한순간 세게 누르자 혜원의 고개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입 에서 뭔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목 깊은곳에서 쿨럭하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혜원이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입에서 위장 물을 쏟아내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대풍과 정아, 상열은 마치 눈 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벌리고 바라만 보 고 있었다. 간호사가 혜원의 입주위를 닦아내자 의사가 인공호흡기 를 혜원의 입에다 씌웠다. 혜원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풍과 정아, 상열이 반사적으로 혜원에게 다가갔다. 정아가 혜원의 몸 에 묻은 구토물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 "혜원아....너...살았..어. 흑흑.." 정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대풍과 상열도 눈시울을 붉혔 다. "박간호사,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깁시다." 의사와 간호사가 혜원이 누워있는 침대를 밀며 문을 나가려 하자 정아 가 한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의사의 팔을 잡았다. "선생님...살았..죠? 정말 고마워요." "아니오. 아직 속단하긴 일러요. 환자가 의식이 없어요. 기다려봐야해 요" "녜? 의식이 없다..구요?" "이 환자 심장질환 있죠?" "녜, 있어...요." "환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죠." "녜..." "쇼크상태가 장시간 진행되다가 그것이 의식상실로 이어졌어요. 그러 다가 최종적으로 심폐기능이 마비된 상태였어요." "서...선생님, 의식이 분명 돌아오겠죠?" 대풍이 물었다. "제가 금방 말씀드렸잖아요. 기다려봐야 된다고....더이상의 방법은 없어 요. 이 환자가 깨어나느냐 그렇지 않으면......" 의사가 말을 멈추고 장갑을 벗으며 혜원을 내려다 보았다. "이환자의 생명력에 달렸습니다. 확률은 반반입니다." "그...그럼 이대로 죽을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대풍이 초조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요." "그럼 깨어난다면 언제 깨어 날까요?" "그것도 알수 없습니다." 세사람은 기쁨도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심폐소생술을 시도 하셨다고 했는데 아가씨가 했어요? 누가 심 폐소생술을 했어요?" "녜....제가 했는데요...왜..요?" "그래요... 아까 심폐소생술을 했다길래 환자 목안을 봤더니 목에 위장 물이 조금걸려 있었어요. 잘못했으면 기도가 완전히 막힐뻔 했어요. 배 울려면 제대로, 완전하게 배워야죠. 환자가 구토를 할때까지 했어야죠." "녜, 저도 알고는 있었지만 해도해도 안되길래..." 정아가 머쓱한지 머리를 긁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데 환자가 저렇게 된지 얼마나 됐어요?" "모르겠어요. 우리가 첨 발견했을 때 체온이 따뜻한걸로 봐서는 그렇게 오랜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요? 어쨌든 환자가 살아난건 기적입니다. 심폐기능이 멈춘지 수분안에 심폐소생술을 해도 효과가 없으면 가망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환자는 심폐소생술이 효과를 봤어요." "정아씨, 선무당이 사람 잡을뻔했어요. 가라로 배웠나 보죠." 대풍이 쓴 웃음을 지었다. "글...쎄...그게 그렇게 되었네요. 대학 동아리에서 자원봉사 나갈때 잠깐 배웠는데..좀 서툴렀죠?" 의사가 침대를 밀며 나가려하자 맞은편 현관문이 부서질듯 요란한소리가 나면서 열렸다.
사람들이 현관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민우가 한쪽문틀에 몸을 의지 한채 서있었다. 그의 이마에서 턱까지 선혈이 낭자했다. "민우씨..." "민우야.." 민우가 의사한테 다가서는가 싶더니 두손으로 의사의 멱살을 잡고는 벽으로 밀어 붙쳤다. 그의 눈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아...아니 다..당신 뭐야?" "야!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대풍이 민우의 등뒤에 달려들어 그의 몸을 두팔로 안았다. 의사가 까 치발을 한채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민우를 올려다 보았다. "뭐야, 죽는다구!...죽긴 누가 죽어! 다시 한번 말해봐!" "이...이거 놓읍시..다." 겁에 질려 얼굴이 새파래진 의사가 두 다리를 버둥거렸다. "저 여자 살려놓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죽여버릴거야!" "상열씨! 뭐해! 빨리 이놈 말리지 않고." 상열이 돌발 상황에 당황을 한듯 혼이나간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의사의 멱살을 잡고 있는 민우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민우의 팔에 엄청난 기운 이 몰려 있었다. "팀장님! 제발 이팔 놓으세요!" "민우씨! 대체 뭐하는 짓이야!" 정아가 악을 쓰듯 고함을 질렀다. 대풍과 상열이 민우를 떼어놓으려 하지만 민우의 몸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퍽!" 대풍이 민우의 왼쪽빰을 향해 주먹을 날리자 민우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상열씨, 민우 빨리 데리고 나가!" "아...알았어요." "선배, 정말 미쳤구나 미쳤어!" 정아와 상열이 쓰러진 민우의 두 어깨를 잡아 끌며 응급실을 나갔다. "죄....죄송합니다 선생님....정말 죄송합니다. 저놈이 이 환자때문에 제 정신이 아닙니다." 대풍은 연신 의사에게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다. 의사가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손으로 목을 만지며 민우가 나간 문쪽을 쳐다보았다.
어느덧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일반 병실은 히터가 제대로 작동되 지 않아서 실내는 차가운 냉기가 밤새돌고 있었다. 정아는 어깨가 저 려오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희미한 조명아래 맞은편 침 대에 홑이불을 덮은 대풍과 상열의 얼굴이 보였다. 두사람은 웅크린 체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민우씨 어디갔지?" 정아가 병실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민우는 없었다. 그녀는 복도를 나 와 2층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중환자실 문틈으로 한줄기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민우가 희미한 조명아래 곧은 자세로 눈을 감고 혜원의 침대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 민우의 모습은 마치 정아의 눈에는 수도승같아 보였다. 정아 는 의식없이 빈사상태로 누워있는 혜원과 결연한 자세로 앉아있는 민우를 보자 가슴한켠이 찡해오면서 눈물이 핑돌았다. 정아는 다시 문을 닫고 문 에 몸을 기댔다. 심장하나로 만난 두사람이 이제는 그 심장때문에 영원한 이별을 할지 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정아는 알고있다. 혜원이는 의식이 깨어나도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그건 혜원이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우씨는 혜원이가 없으면 살수가 없을 것이다. 얄굿은 운명이란거 이런경 우를 두고 하는건 아닐까. `혜원아, 넌 친구의 사랑을 훔쳐가더니 그 사랑을 이제는 죽음으로 몰아넣는 구나...못된 기집애....` 정아의 가슴 한켠에는 생사를 오가는 친구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옛사랑을 처절한 자기사랑으로 만든 친구에 대한 미움이 동시에 자리잡고 있었다.
먼동이 트오고 있었다. 병실 창문으로 차가운 햇살이 비춰들고 있었 다. 정아, 대풍, 상열이 혜원의 병실로 올라왔다. 민우가 혜원의 침대 에 업드려 있었다. 세사람은 인공호흡기를 쓴 혜원의 얼굴을 살폈다. 혜원은 아직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살아있음은 미미한 가슴의 움직임이 전부였다. "대풍 선배님, 의사선생님 부를까요?" "........" 대풍은 혜원을 내려다보며 입술만 지그시 깨물뿐 아무런 말이 없다. 가 정아를 돌아보았다. "정아씨, 어서 정아씨 부모님한테 연락해요. 이렇게 있다가 정아씨 부 모님이 아시면 노발대발 하실 겁니다. 그리고 혜원씨 서울로 데리고 갑시다." "알았...어요. 하지만...." 정아가 혜원을 한번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휴대폰을 꺼낸다. 대 풍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정재씨 죽은지 며칠되지도 않는데 이번엔 혜원씨마저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정아씨 부모님이 아시면 이런 비극 적 사태를 과연 어떻게 감당하실까.... 혜원씨일을 보고해야하는 정아씨 마음도 오죽 괴로울까...
"때르르릉.. 때르르릉...." 박재덕씨가 거실에 앉아있다가 전화를 받는다. 그의 표정이 수척하다. 간밤에 잠을 설쳤는지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아빠...저..정아예요." "너...대체 어디냐? 소서방 집이냐? 전화해도 전화도 안받고 소서방 도 니가 어제 집에 안들어 왔다고 하던데... 안들어올것 같으면 집에든 여기든 전화라도 해줘야 할거 아냐! 애비가 다 큰 딸때문에 밤새 이 러구 있어야 하냐?" 박재덕씨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했다. "아빠..미안...해요. 경황이 없었어요. 여기..음성이..예요." "음성이라니..대체 그게 무슨소리니! 어제 안간다더니 그긴 왜 갔어?" "아빠...그게 아니고..." 정아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그긴 뭐하러 갔었어!" 박재덕씨가 추궁하듯이 다그쳤다. "실은...아빠 놀라지..마세..요. 혜원이가 쓰러...졌어요." "혜원이가 쓰러지다니...그게 무슨소리..니?" "혜원이가 정재오빠묘에 쓰러져 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니? 혜원이가 정재묘에 쓰러져 있었다니, 혜원이 병원 갔다가 보성인가 어디에 내려가지 않았어!" 박재덕씨가 수화기를 바꿔지며 고함을 질렀다. "아니예요 아빠, 혜원이 내려가지 않았...어요." "그럼 혜원이가 정재의 죽음을 알아버렸단 말이냐?" "녜...아빠..." 박재덕씨가 오른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질끈 깨문 입술사이로 한 숨이 새어나왔다. "그래 혜원인 지금 어떤 상태니?" "지..금 음성세브란스 병원인데요. 의식이 없..어요." "지금 빨리 이호준박사가 근무하는 서울병원으로 데리고 오도록해! 어 서 서둘러!" 박재덕씨가 수화기를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의 음성이 거실을 쩌렁 쩌렁 울렸다. "여보...아침부터 왜 그래요? 무슨 일이..예요?" 정아모친이 안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머리에 하얀띠를 두르고 있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흐느적거렸다. "혜원이가 정재의 죽음을 알아버렸나봐. 지금 쓰러져 병원에 있대" "예? 그게 정말... 이예요?" 정아모친이 맞은편소파에 털썩 주저 앉으며 쓰러졌다. "여보!"
"대풍씨, 얘기했어요?" 대풍과 상열이 병실로 들어섰다. "예, 얘기했어요.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엠블런스로 혜원씨를 서울로 좀 데려달라구 했어요. 처음엔 안된다구 하더군요. 여기도 무슨일이 생 길지 모른다구....하지만 자기들도 어쩔수 없었을 겁니다. 여기서 혜원씨 를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겁니다. 교대하는 엠블런스 기사가 출근하면 바로 올라가라더군요." "그래요." 혜원은 여전히 인공호흡기를 쓴채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그녀의 몸에 는 여러개의 굻고 가늘은 호스들이 기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심방세동기 모니터에는 실핏줄같은 검은 파형이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민우씨, 그만 올라갈 준비해." 정아가 등을 돌린채 창문에 기대어 있는 민우에게 다가갔다. 민우는 한결 냉정을 되찾은것 같은 표정이었다. 창문밖에는 출근하는 승용차 들이 병원을 들어서고 있었다. "민우씨, 지금 민우씨 심정 어떠한지 다 알고 있어. 하지만 현실을 인 정해야해. 앞으로 이보다 더한 일이 생길지도 몰라." 민우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지만 촛점이 없었다. "선배! 뭐라고 말좀해봐! 답답해 죽겠어!" 정아가 어제부터 계속되는 민우의 침묵에 화가나는지 소리를 질렀다. "대체 선배만 혜원일 걱정하는줄 알아? 혜원이가 저렇게 됨으로해서 여러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어. 하지만 민우선배가 계속 그러고 있으 면 민우씨나 혜원이한테 좋을것 하나도 없어. 그리고 민우씨도 어느정 도는 이런사태를 예상을 했을거 아냐. 3일동안 혜원이와 보성에는 뭐 하러 내려가 있은거야. 아련한 옛 추억이나 되새길려구 내려간거야? 그게 아니잖아. 이런일을 예상치 못했다면 혜원이한테 정재오빠 죽음 을 모르게 할려구 난리법석을 떨지도 않았을거야!" "정아씨, 그만해요. 저녀석 성격이 원래 저렇잖아요." 대풍이 침대에 기대어 정아를 쳐다보았다. 상열은 혜원의 침대에 눈길 이 박혀 있었다. "정아야.... 이게 어쩌면 다 내 책임인지도 몰라... 혜원씨가 저렇게 된것 도, 정재씨가 죽은것도...." 민우가 여전히 창문밖에 시선을 둔채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왜 선배 책임이야." "내가 혜원씨와 다시 만나지만 않았어도... 혜원씨가 정재씨 옆에서 많은 정신적인 도움을 줬을거야. 그럼 정재씨가 죽음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울러 혜원씨도 저렇게 되지도 않았을거고..." "유민우, 너 비약하는데는 도가 텄구나. 대체 그런 바보같은 말이 어디있어! 자신의 미래를 예단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단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어리 석은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있어! 자신의 미래가 불행한지 행복한지 아는 사람이 어디있냐구! 그걸 예단하면서 살아간다는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길이야. 그건 신만이 알고 있는 신의 영역 이야. 넌 그런말이 널 얼마나 위험에 빠트릴지 생각이나 해봤어? 니 말대로라면 애초에 혜원씨를 만나지 말았어야지!... 그래... 정말 이럴줄 알았으면 너와 혜원씨 가 다시 만나는걸 적극적으로 말리는 건데 우리도 잘못했다. 됐어 이제?" 대풍이 날카롭게 쏘아붙쳤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서고 있었다.
대풍의 차와 엠블런스가 서울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앞에는 정아부모, 그리고 혜원의 주치의인 이박사와 간호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엠블런스 뒷문이 열리면서 침대가 끌려 내려왔다. 정아모친이 인공호흡기를 쓴 혜원을 보자 침대를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구 혜원아 이제 너까지....." 그녀는 결국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엄마!" "여보!"
혜원이 병실로 옮겨졌다. 이박사가 음성세브란스 병원에서 보내온 소견서를 보더니 가운에 손을 찔러넣은채 한동안 혜원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표정에 착잡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의 흰머리가 불빛에 유난히 희어보였다. "이박사, 그래 어떤가?" 박재덕씨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뭐라고 얘기하기가 좀 그러네." "그게 무..슨 소린가?" "의식이 깨어나야 뭐든지 할수 있을것 같아. 지금으로선 의식이 깨어 난다고 장담할수도 없어. 어쨋든 혜원씨가 깨어나는게 급선무야." "휴......." 박재덕씨가 고개를 숙이고 긴 한숨을 쏟았다. "26일에 혜원씨가 병원에 왔었어. 그때 심장병관련 검사를 다시 했는 데.... 박간호사, 카드 좀줘요." 이박사가 간호사로부터 진료카드를 받아들었다. "혜원씨의 심부전증이 재발하고 있어." 이박사가 혜원이 다리를 덮고있는 이불을 살짝 걷어내더니 혜원의 종 아리를 가리켰다. "자네, 여기 좀봐, 다리에 부종이 생기기 시작했어. 더군다나 어제는 실 신까지 했다니 거의 최악의 상황이야. 폐에도 부종이 생겼어. 그래 서 호흡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호흡곤란이나 부종이 생기는 것은 심 부전의 특정한 질환이라기 보다는 심장병에 의한 여러 가지 증상중의 하나라고 보면 돼, 합병증이랄수 있지." "그럼 의식이 돌아오면 앞으로 치료를 어떻게 해야하나?" 이박사가 다시 차트를 들여다 보았다. "다리에만 부종이 생긴게 아니라 폐에도 부종이 나타났기 때문에 이건 사람이 물에 빠져 호흡기 내로 물이 찼을때와 흡사한 상태라고 할수 있어. 일단 의식이 돌아오면 폐에 찬 물을 빼주는 것이 급선무야. 다행히도 심하지 않아서 수술않고 약물치료만으로 끝낼수 있어. 그 후 에도 계속 약물치료를 해야하구....그리고 분명한건 앞으로 치료를 마치 더라도 현상유지는 할수 있어도 더 나아지지는 않을거라는 거야. 그리 고 앞으로 이런일이 한번더 생기면 혜원씨는 생명을 잃어. 심부전증 이 악화되어 더이상 돌이킬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거야. 심장이식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것이고. 그리고......" 이박사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뭐..? "혜원씨 앞으로 살더라도 얼마 못살아. 지금 상태라면 깨어나서 치료를 받더라도 길어야 2 , 3년이야. 심장이식한사람 대부분 오래 못사는거 자네도 알고 있잖아. 심장이식한사람들은 3년이나 5년이 고비인데 혜원씨는 3년의 고비를 못넘기고 위험에 빠졌어. 하긴 두번째 심장인 데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만도 기적이랄수 있어. 자넨 그걸 위안으 로 삼게나." 박재덕씨가 혜원의 옆에 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자네 집에 자꾸 우환이 생기는거 보니 푸닥거리라도 한번 해야 겠어." 이박사와 간호사가 병실을 나갔다. `혜원아, 몇년만 살아도 좋으니까 제발 깨어나기만 해다오. 내가 널 이렇게 보낼순 없어. 너한테 사업이라도 하나 넘겨줄려구 했는데 대체 이게 뭔 날벼락이니, 어제밤 꿈에 너희 아빠 엄마가 나타나서는 한동안 아 무말도 없이 날 쳐다보다가 사라졌어. 혜원이 아빠 엄마가 날 많이 원 망하나봐, 그러니 제발 나를 봐서라도 꼭 일어나야해`
"엄마, 괜찮아?" 정아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친을 걱정스런 눈길로 보고 있었다. 정 아 뒤에는 민우, 대풍, 상열이 서있었다. 정아모친이 눈을 가늘게 떳다. "혜원이... 어떻게 됐...어?" "............." 네사람은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민우씨가 원망스럽네. 그렇게 신신당부 했건만 이게 뭔가 대체..." "엄..마." 민우는 아무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제 혜원이 심장이 잘못되면 영영 방법이 없다던데... 또 초상치르게 생겼어..." "엄마, 혜원이 꼭 살아날거니까 걱정마." "이젠 어떡하겠냐, 살아도 지 운명이고 죽어도 혜원이 운명이야. 운 명을 어떻게 거부할수 있겠니." "민우야, 어디가냐?" "........" 민우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대풍과 상열이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혜원이 한테 가겠죠 뭐." "정아야, 근데 민우씨 이마와 입술이 왜 저러...냐?" 정아모친이 민우의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서 묻자 정아가 대풍을 돌 아보며 알듯모를듯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혜원이가 쓰러지자 충격을 받아서 그래."
"민우씨!" 민우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장미가 뛰어오고 있었다. "..........." "민우씨, 혜원이 어딨어요?" 저쪽 코너를 돌면 중환자실이 있어요." "혜원이 깨어...났어요?" ".........." "알았..어요." 장미가 민우의 눈치를 보며 뛰어갔다. 심장진료실 복도에는 진료받으려는 사람들 몇명이 간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민우 가 진료실 문을 열자 간호사가 나왔다. "저, 손님, 호명하실때까지 차례를 기다리세요." "전 환자가 아닙니다. 잠깐만 박사님 좀 뵐께요." "저...소..손님..." 민우가 간호사를 밀치고 방으로 들어가자 이박사가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앉으세요. 어디 불편하신가요?" "박사님 저 기억...하시죠 유민우라 합니다.?" 이박사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의자에 앉는 민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니.. 자넨 며칠전에 혜원씨 진료내용 좀 가르쳐달라고 생떼쓰던 사 람 아닌가?" "예, 맞습..니다." "아까 자네 혜원씨와 병원에 들어오는거 보면서 혜원씨와 가까운 사람 이라는거 알았어." "........." "그래, 혜원씨 상태를 알고싶어 그러나?" "아닙니다. 박사님... 박사님 제발 혜원씨 살려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사정 합니다." 민우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두눈에서 이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허 이사람이, 젊은사람이 이러면 쓰나. 어서 일어나게나. 감정이나 감성에 호소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닐세, 난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 야." "박사님 그 여인은 제 인생의 전붑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혜원씨가 단 몇개월 살아도 좋습니다. 제 심장을 떼어달라면 떼어주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어허...이사람..이." 이박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혜원아....너 며칠전의 혜원이 맞냐? 대체 이게 다 뭐니? 니 인생이 왜 이렇게 기구하니." 혜원을 칭칭두르고 있는 호스와 의료기계들을 보자 장미는 사지가 풀 리는것 같았다. 정아, 대풍, 상열이 장미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문밖 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누군가 들어온다. 시선들이 문 쪽으로 쏠렸다. "여기가....어머! 여기 다 있네?" 예림이었다. 그녀가 목발을 짚고 겨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예림..아." 정아와 대풍이 깜짝 놀란다. "정아야 안녕, 잘있었어? 정재오빠 장례식때 못가서 정말 미안해. 이해 해줘." 예림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아냐. 니 코도 석잔데 뭐...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뭐하러 왔 어." "대풍씨도 안녕하세요?" "예림씨, 시비걸사람 없으니 심심했던 모양이죠?" 대풍이 천장을 보며 탐탁치 않은듯 껄렁껄렁한 투로 말했다. 예림이 싸늘한 시선으로 대풍을 쏘아보았다. "혜원씨 괜찮어?" 예림이 혜원의 침대쪽으로 다가갔다. 예림은 혜원의 상태를 예상 못했 던지 심히 놀란듯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얼마전까지 멀쩡하던 혜원씨가 왜 이모양이니?" "그렇게 됐어. 근데 예림아, 누구 연락받고 왔어?" "제가 연락했어요." 상열이 말했다. "혜원씨가 이럴게 될줄 알았다면 좀더 잘해 주는건데 정말 그동안 내 가 혜원씨한테 너무 살살맞게 군거 같아 너무 미안해." 예림이 혜원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찔금거렸다. "후회한들 때가 늦었어요." 대풍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컴컴한 어둠이 쌓이는 눈속에 묻히고 있었다. 민우가 침대에 앉아있다가 창가로 갔다. 제법 굻은 눈이었다. 민우는 저 희디힌 눈이 세상의 모든 아픔과 고민을 죄다 덮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어쩌면 최악의 경우엔 혜원 씨와 장미빛 희망을 얘기할수 없을지도 모른다. 천장이 유리로 된집, 그리고 결혼도...그녀의 너무나 아름다운 천연의 웃음도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민우는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여기서 저 아래로 떨어지면 꿈 이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 꿈이 깨면 얼마나 좋을까......민우는 현실 을 부정하고 싶은지 자꾸만 고개를 흔들었다. 민우는 그렇게 오랫동안 창틀에 기대어 움직일줄 몰랐다. 그를 움직이게 한건 고요한 병실의 적막을 깨는 듯한 작은 소리였다. 혜원이 누워있는 침대에서 신음소리 같은 나즈막한 소리가 민우의 귀를 파고 들었다. 그는 문쪽으로 다가가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눌렀다. 혜원의 머리가 움직이고 있 었다. "혜....혜원씨..." 침대로 다가간 민우는 믿기지 않는듯 떨리는 목소리로 혜원을 불렀다. 인공 호흡기를 쓴 혜원의 눈이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순간 민 우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민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빰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혜...혜원씨, 깨어....났어..요? 혜원씨...왜 이렇게 사람 피를 말리는 거예요." 민우의 눈에서도 눈물이 조금씩 맺히고 있었다. 꼬박 하루를 넘겨 혜원의 의식이 돌아온것이다. 병실 벽시계가 새벽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서 이박사와 간호사가 들어왔다. 이박사가 심장박동측정 기 모니터를 보더니 혜원의 입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는 가슴에다 청진기를 갖다댔다. 간호사가 혈압과 체온을 재었다. "박간호사, 어때요?" "혈압이 조금 낮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부종제거제 약좀 먹여요. 그리고 호흡하기 곤란하면 바로 인공호흡기 를 다시 씌워요. 아마 내일까진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어야 할지 모릅 니다." "어때요. 이제 좀 괜찮죠?" 이박사가 혜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혜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 다. "그래요. 이제 괜찮을 거예요. 당분간 입원해서 치료 좀 받아요. 별거 없어요. 부종제거제 약 복용하고 영양 주사맞으며 휴식을 취하면 되 요." 이박사가 민우를 돌아보았다. "유민우씨라고 했나? 자네 정성에 하늘이 감동먹었나봐." 이박사가 민우의 어깨를 한번 만지고는 병실을 나갔다. 간호사가 혜 원의 팔에 주사를 놓고는 민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환자분 좀 일으켜 주실래요? 약을 드셔야 겠네요." 민우가 혜원의 상반신을 안고 일으켰다. 순간 민우는 가슴이 예리한 뭔가에 찔리는듯한 통증을 느끼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몸이 새의 깃털처럼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간호사가 나가자 민우가 가만히 침대에 걸터 앉았다. "민우씨, 여기 어디예요? 병원같은데.. 제가 어떻게 병원에 왔..죠?" 혜원이 자유로워진 목을 움직여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어디 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요?" 민우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혜원은 뭔가 기억을 되살리려는지 눈을 껌벅거렸다. "어디 좋은데 갔다 왔어요? 나도 좀 데려가지." 민우가 애서 웃음을 지어보였다. "모르..겠어..요. 하나도 기억에 없...어요. 정재오빠 선영에 간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부터는 기억나지 않아요. 누가 날 그기서 데 려 왔죠?" 민우는 대답대신 잔잔한 미소만 흘렸다. 혜원은 민우를 애잔한 눈길로 쳐다보는가 싶더니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로소 정재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혜원씨..." 민우가 혜원의 어깨를 안았다. 그녀는 민우의 품에 몸을 맡긴채 하염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민우의 어깨가 그녀의 눈물로 젖어들고 있었다. 민우는 그녀의 울음이 멈추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껏 울게 하고 싶었다. 그럴리는 없지만 눈물샘이 마르도록 울어서 그녀의 슬픔이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정재오빠 만났..어요." 오랫동안 민우품에서 서럽게 흐느끼던 혜원은 고개를 들고 눈물젖은 얼굴로 민우를 쳐다보았다. "그래, 정재씨가 뭐라하던가요?"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다시 오면 그냥 두지 않겠다구 했어요." 그녀가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앞으로 혜원씨가 죽을일은 없겠네요?" "왜요?" "정재씨 무서워 죽을수 있겠어요?" 혜원은 눈물을 씹으며 힘들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의 입술이 가볍게 떨고 있었다. 민우는 영원히 못볼것 같았던 혜원의 맑은 미소를 보자 가슴속 깊숙히 얼어붙었던 아픔과 슬픔의 엉어리가 풀리는것 같았다. "민우씨...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민우가 이마와 입술을 만지며 겸연쩍게 웃었다. "술 먹고 넘어졌다면 믿겠어요?" "정말..이예요?" 민우는 웃기만 했다. "에이..말도 안돼요."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입을 쑥 내밀었다. "왜 말도 안돼요?" "민우씨는 술을 취할만큼 많이 마시지 않는다는걸 아는데요 뭘." "왜요? 이렇게 혜원씨하고 숨박꼭질 할라치면 안 마실수가 없죠." "녜? 그게 무슨 얘기...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런일이 좀 있었어요." "민우...씨....." "왜요?" "나 한번만 더 안아..줄..래요?"
편집-여름향기최고 포토출처- 드라마 여름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