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김선일 씨 피랍 사실을 인지한 뒤 석방을 위해 모든 채널을 동원했지만무위로 끝났다. 무장단체가 파병 철회라는 우리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석방조건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정부의 협상력은 처음부터 한계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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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납치 시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정부는 초기 대응부터 미숙함을 드러냈다. 더욱이 김씨 시신이 발견되기 20분 전까지 정부 관계자들은 낙관론을 가질 정도로 정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사설 경호업체 사장이 중재역을자처하고 나설 정도로 정부의 석방 교섭 능력의 부재를 드러내 대중동외교의총체적인 부실을 보여줬다.
◆ 근거없는 희망론=정부는 22일 새벽 무장단체의 최후 통첩 시한을 넘기면서김씨의 생사에 대해 "단정할 수 없다"며 기대섞인 관측을 내놓았다. 22일 오전6시쯤 아랍 위성TV 알아라비아가 납치단체가 시한을 연장했다고 보도하자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는 "희망"과 "기대"를 얘기하는 등 희망적인 분위기에휩싸였다. 이 때문에 실제로 여론도 석방 기대감을 한껏 부추겼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밤 10시 외교부를 격려차 방문한 자리에서 최영진 외교부 차관은 알아라비아 방송 보도에 대해 "희망적"이라고 전제한 뒤 "남은 숙제는 방향을 확실히 확인하고 무사귀환하도록 조용하고 신속히 노력하는 것"이라고 보고했다. 노 대통령도 이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20분 뒤 물거품이 됐다. 22일 오후 10시 20분(이라크 현지 시간 오후 5시 20분) 이라크 현지 미군 당국이 서희제마부대에 김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고 통보했다. 이라크 대사관은 23일 0시 45분 이메일로 송부된 사진을통해 시신이 김씨임을 확인했다.
노 대통령의 외교부 방문 시점에 김씨는 이미 피살된 것. 대통령과 외교부 차관이 이 같은 상황을 모른 채 낙관론을 펼쳐 정보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 협상력 부재=정부가 이용한 중재자의 성격과 능력도 의문이다. 주이라크한국대사관은 김씨가 붙잡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팔루자를 중심으로 성직자단체와 이슬람계 정당 간부 등을 접촉 창구로 삼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씨를 납치한 무장단체는 알카에다 산하 정치 테러단체일 가능성이 높아 정부가 이라크 내부 종교지도자들을 접촉 창구로 활용했다면 애초부터 잘못된 접근이라는 지적이다. 반 외교부 장관은 "지난번에 납치된 일본인의 경우납치단체가 이라크 내 저항세력인 무자헤딘이어서 성직자들을 통해 석방에 성공했으나 이번에 김씨를 납치한 조직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유연한 정치적 제스처를 기대했지만 파병 재확인이라는 외견상 강경 방침이 나오자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는 김씨 피랍 발표 직후 신속히 파병원칙을 재확인하는 한편 제3자를 중재자로 내세워 석방협상을 벌이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올해 초 일본인 인질 석방 당시 일본 정부가 벌인 협상 전략과 유사하다.
한 중동 전문가는 "한국 정부의 강경방침 천명과 국내 언론의 과다한 보도가아랍언론에 그대로 전해지면서 납치단체를 자극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현지 대책반이 이라크로 대신 요르단 암단에서 상황을 총괄해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반영했다.
이같이 정부의 협상력이 미진한 탓에 사설 경호업체가 현지 동업자를 통해 납치단체와 협상을 전개했다고 밝히는 등 협상 창구의 혼선을 빚기도 했다.
◆ 교민 관리에 구멍=정부는 올해 4월 이라크 지역을 "특정지역"으로 지정하고 국민들이 이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도록 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왔다.
국내의 경각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지 공관에서는 미군에 납품을 하는 업체직원인 김선일 씨 실종을 업체 사장이 신고하기 전까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있었던 것은 현지 공관의 태만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현지에서 전화와 e메일을 통해 교민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하면서도일일동향을 체크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교민이 71명에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 결정으로 우리 국민이 언제든지 이라크 테러단체의 표적이 될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지의 교민 관리는 너무 무성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