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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세린 브랜드 로고‘물’을 뜻하는 독일어 ‘바썰(Wasser)’과 ‘올리브 오일(Olive Oil)’을 뜻하는 그리스어 ‘엘라이온(Elaion)’의 결합어이며, 바세린의 블루씰(Blue Seal)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카테고리 | 생활소비재 > 화장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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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명 | 바세린 |
브랜드 국적 | 미국 |
설립자 | 로버트 체스브로 |
설립연도 | 1870년 |
주요인물 | 랄프 왈드(CEO, 1968~1987년) |
바세린(Vaseline)은 미국의 스킨케어 브랜드로, 석유에서 추출한 '페트롤리움 젤리(Petroleum Jelly)'를 주성분으로 하여 바디로션, 핸드크림, 입술보호제 등을 제조 · 판매하고 있다. 바세린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물'을 뜻하는 독일어 '바썰(Wasser)'과 '올리브 오일(Olive Oil)'을 뜻하는 그리스어 '엘라이온(Elaion)'이 결합된 것으로,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는 '바세놀(Vasenol)'이라고도 불린다.
1859년 화학자인 로버트 체스브로(Robert A. Chesebrough)가 페트롤리움 젤리를 정제해 상처치료제를 개발했고, 1870년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Chesebrough Manufacturing Co.)'를 설립해 이 상처치료제를 바세린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했다.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페트롤리움 젤리가 첨가된 헤어토닉(Hair Tonic), 콜드크림(Cold Cream)을 추가로 출시해 스킨케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1955년 경쟁업체인 '폰즈 액스트랙트사(Pond's Extract Co.)'와 합병해 '체스브로-폰즈사(Chesebrough-Ponds, Inc.)'를 설립했다. 1987년 미국의 식료품 및 화장품 업체인 유니레버(Unilever)가 스킨케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체스브로-폰즈사를 인수했고, 이후 바세린은 글로벌 광고 마케팅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로버트 체스브로는 1837년 미국 뉴욕(New York)의 부유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로버트 체스브로는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시절부터 석유 추출물에 흥미를 느꼈다. 1858년 22살의 로버트 체스브로는 펜실베이니아 주(Pennsylvania)에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사차 그 곳으로 향했다. 1850년대 말 펜실베이니아 지역은 유전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 들던 때였다. 1860년 12월까지 유전이 발견된 지역에서 '펜실베이니아 오일러시(Pennsylvania Oil Rush)'라고 불리는 약 75개의 석유 유정(油井)이 개발되었다.
1859년 로버트 체스브로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 찌꺼기인 '로드 왁스(Rod Wax)'라는 성분을 알게 됐다. 로드 왁스는 끈적이는 점성 때문에 석유 굴착기에 잔 고장을 일으키는 물질이었는데, 로버트 체스브로는 한 작업자가 로드왁스를 거칠어지고 상처 입은 피부에 발라 회복한 것을 보고 그것을 가져와 연구하기 시작했다.
로버트 체스브로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로드 왁스에서 페트롤리움 젤리를 추출해 냈고, 1865년 이 추출 기법으로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 1870년 로버트 체스브로스는 새로운 상처치료제의 성공을 확신하며 브루클린(Brooklyn) 지역에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를 설립했다. 그는 제품을 생산해 '바세린'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했다. 이것이 '바세린'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1870년 바세린을 출시한 후, 로버트 체스브로는 약사와 의사들에게 바세린 샘플을 대량으로 배포했지만 기대와 달리 주문은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로버트 체스브로는 바세린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했고, 바세린을 마차에 싣고 뉴욕 곳곳을 찾아 다니며 사람들에게 직접 시연행사를 열고 무료로 샘플을 나눠 주었다. 당시 로버트 체스브로가 6개월 간 시연행사에 사용한 바세린은 12개 마차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사람들은 샘플을 통해 바세린이 피부의 상처 치료에 효과적이고 피부 보습제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샘플이 동이 날 즈음 바세린을 사기 위해 약국으로 몰려 들었다고 한다. 뉴욕 주 약국에서는 바세린 주문 요청이 쇄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주에서도 주문 요청이 들어 왔다. 1874년 바세린은 미국 전역에서 1분에 1개씩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870년대 말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페트롤리움 젤리를 사용해 다양한 제품군을 개발했고, 바세린 콜드크림(Vaseline Cold Cream), 바세린 헤어 포마드(Vaseline Hair Pomade, 머리에 바르는 반고체형기름), 바세린 미용비누(Vaseline Toilet Soap), 베터러너리 바세린(Veterinary Vaseline, 가축용 상처치료제), 캠퍼 바세린(Camphor Vaseline, 관절염 치료제) 등을 출시했다. 이중 바세린 콜드크림은 바세린의 첫 번째 스킨케어 제품이었다.
1880년대 바세린은 미국 가정집 구급상자 안에 하나씩 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원래 바세린은 상처치료제로 출시 되었지만 사람들은 건조해진 피부에 바세린을 일상적으로 발랐으며, 신생아를 둔 엄마들은 아기들의 기저기 발진에도 바세린을 사용했다고 한다. 1880년대 초 바세린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시중에 모조품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바세린은 모조품들 사이에서 자사의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해 블루씰(Blue Seal, 푸른색 캔 뚜껑) 패키지를 개발했다. 이와 함께 바세린은 '가치 없는 모조품(Worthless Imitation)과 바세린 제품을 구분해 달라'는 내용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바세린은 미국에서의 인기를 기반으로 1880년대 후반에는 영국, 캐나다,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했다. 1904년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시장 규모가 확대되면서 수요가 급증하자 브루클린에서 뉴저지(New Jersey)로 공장을 확장 이전했으며, 1911년까지 유럽과 캐나다,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에도 지점과 공장을 증설했다.
1909년 로버트 체스브로가 은퇴하고 부회장이자 그의 조카였던 '오즈왈드 캄만(Oswald M. Camman)'이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의 CEO로 취임했다. 1933년 로버트 체스브로는 96세의 나이로 뉴저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1910년대 초반 바세린은 의료제품군을 확대했다. 인후염이나 감기가 걸렸을 때 가슴에 문질러 시원함을 주는 '캠시컴 바세린(Capsicum Vaseline, 고추 성분이 들어간 바세린)', 두통 완화와 신경통을 위한 '멘톨레이티드 바세린(Mentholated Vaseline, 멘톨을 첨가한 바세린)'과 목이 아플 때 섭취하는 '화이트 바세린(White Vaseline)', 그리고 소독용 거즈인 '카볼레이티드 바세린(Carbolated Vaseline)' 등을 출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시기 미국은 영국이 이끄는 연합군에 가담하면서 병사들을 유럽 대륙에 배치했고, 이를 계기로 바세린이 유럽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당시 소지하기 편한 알루미늄 튜브로 제작된 바세린은 미군 병사들이 전쟁 중 화상 및 상처치료제 혹은 부르튼 발을 위한 보습제 등으로 활용하면서 병사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바세린은 영국군이 담배와 교환했을 정도로 연합군 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바세린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유럽에 널리 보급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20년대가 되면서 미국에서는 미용산업, 영화산업 등이 번성했다.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의약품 시장에서 바세린이 포화 상태(당시 대부분의 미국 가정에서 바세린을 상비약으로 보관하고 있었음)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바세린의 브랜드 인지도를 기반으로 화장품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페트롤리움 젤리의 순도를 높여 바세린 헤어토닉, 소프리스 샴푸(Soapless Shampoo, 거품기를 뺀 오일 샴푸) 등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이중 바세린 헤어토닉은 남성들의 헤어 스타일링 제품으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를 계기로 바세린은 화장품 분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동안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미군의 의료용품 공급처가 되었다.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바세린 브랜드 이름으로 미군에 페트롤리움 젤리가 포함된 화상치료제, 소독용 거즈 등을 공급했다. 1943년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는 심각한 화상을 입은 75명의 미군이 바세린 의료품을 사용한 덕분에 화상에서 회복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러한 언론 소식들을 통해 바세린은 전쟁터에서 미국 군인을 지켜주는 애국적인 이미지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전쟁 중 개발된 제품들을 기반으로 전문 의료용품 부서를 신설하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의료품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쟁 중 개발된 제품 중 상당수는 미군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시판 허가를 얻은 상품들은 1951년부터 바세린의 이름으로 전문 의료용품 시장에 출시되었다.
1950년대 들어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스킨케어 제품 및 남성용품 상품군을 확장했다. 이때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가 의료용품을 시작으로 스킨케어 시장으로 진출한 것처럼 폰즈 엑스트랙트사도 '폰즈 크림(Pond's Cream)'을 앞세워 스킨케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라이벌 관계였던 두 업체는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1955년에 합병하여 체스브로-폰즈사(Chesebrough-Ponds, Inc.)를 설립했다.
당시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의 주요 시장은 북미, 유럽, 영국 식민지인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였으며, 폰즈 엑스트랙트사는 유럽과 남미, 특히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서 큰 시장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양사는 인수 합병을 통해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세계 시장으로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다. 타 업체의 유통망에 의존해 왔던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는 안정적인 유통 공급망을 얻을 수 있었고, 폰즈 엑스트랙트사는 체스브로 매뉴팩처링사의 다양한 상품군과 제조 기술 및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 1954년 두 업체의 총 매출은 4천 7백만 달러(4억 1백만 달러(2012년 기준), 4천 10억 원(1달러 1천원 기준))였지만 합병 후인 1963년에는 1억 1천 7백만 달러(약 1천 1백 7십 억원, 1달러 당 1천 원 기준)까지 늘어났다. 이후 1960년대에 바세린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 등지의 세계 시장으로 진출했다.
합병 후 바세린의 제품 라인과 홍보 전략도 크게 변화했다. 1960년대 후반 바세린은 치열해지는 스킨케어 시장에서 차별성을 얻기 위해 브랜드 리포지셔닝(Brand Repositioning,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들어갔는데, 당시 체스브로-폰즈사의 부사장이자 바세린의 CEO였던 랄프 왈드(Ralph Ward)는 바세린을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로 바꾸어 놓았다. 랄프 왈드는 '헤어 용품'에 국한되어 있던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를 '힐링(Healing)을 위한 스킨케어 제품'으로 개선하고자 했다. 그는 이를 위해 기존에 인기가 있던 바세린 헤어토닉을 과감히 정리했고(바세린 헤어토닉은 1968년 광고를 마지막으로 생산을 중단함), 7년 동안 새로운 제품 개발에 노력해 1970년 새로운 스킨케어 라인인 '바세린 인텐시브 케어'의 이름으로 로션과 핸드로션을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바세린 인텐시브 케어는 유분기가 많은 바세린 페트롤리움 젤리의 제형을 개선한 보습제 라인으로, 바세린의 브랜드 인지도를 비롯해 건조한 피부와 입술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 주는 효능을 인정받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체스브로-폰즈사는 1980년대 들어 바세린에 데오도란트(Deodorant) 라인과 바세린 립 테라피(Lip Therapy) 라인 등을 추가로 출시했고, 이 중 립 테라피는 편리한 튜브 모양의 패키지로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 유니레버는 스킨케어 사업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체스브로-폰즈사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1986년 체스브로-폰즈사를 인수한 후 바세린, 폰즈 등의 브랜드를 바탕으로 스킨케어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
유니레버는 1986년 바세린의 보습성분을 강화한 바디로션인 '바세린 더마케어(Derma Care)'를 론칭했고, 1993년 '바세린 크리미(Vaseline Creamy)'를 출시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미국 시장에 '바세린 핸드앤네일 포뮬라(Vaseline Hand & Nail Formula)'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중 바세린 핸드앤네일 포뮬라는 손과 함께 손톱의 보습을 동시에 충족시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바세린은 살균 및 영양공급 기능이 있는 바디워시(Body Wash)와 비누 같은 클렌징 제품도 론칭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화장품 전문매장들이 등장하면서 경쟁 브랜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부터 바세린은 '미(Beauty)'가 아닌 '케어(Care)'를 강조한 글로벌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중 2007년에 진행한 '키핑 스킨 어메이징(Keeping Skin Amazing, 놀랄만한 피부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광고 캠페인은 세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0년 탄생 140주년을 맞은 바세린은 남성 피부를 위한 '바세린 맨(Vaseline Men)' 라인을 론칭했고, 바세린 페트롤리움 젤리는 '바세린 퓨어스킨 젤리(Vaseline Pure Skin Jelly)'로 이름을 바꾸고 유선형 패키지 디자인을 적용해 시장에 내놓았다. 바세린은 2012년 '토털 모이스처 로션(Total Moisture Lotion)'을 리뉴얼해 세계시장에 출시했고, 파란색 뚜껑을 립 테라피 제품에 적용해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크기로 만들었다. 현재 바세린은 피부 보습 케어와 관련해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으며 전 세계 90개가 넘는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다.
페트롤리움 젤리는 로버트 체스브로가 1859년 석유 찌꺼기인 '로드 왁스'에서 추출한 물질로 1865년에 추출 기법으로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 페트롤리움 젤리는 탄화수소의 반고체 물질로 윤활작용, 코팅, 보습 등 다양한 기능이 있다. 또한 사람 체온과 가까운 37도에서 녹는 것이 특징으로, 상처부위에 바르면 그 부분을 코팅하여 세균 감염을 막고 보습작용을 해 치료 속도를 높여 준다고 하며, 공기 중에서 산화되지 않는 장점으로 장기간 사용할 수 있다.
1872년 로버트 체스브로는 페트롤리움 젤리를 활용해 만든 제품을 '바세린'이라는 상표명으로 미국 시장에 등록했다. 바세린은 낮은 온도에서도 얼지 않아 1909년 미국의 탐험가인 로버트 피어리(Robert Peary)가 북극 탐험시 가져가 사용했다. 바세린은 출시 이후, 자상과 화상 그리고 부르튼 피부뿐만 아니라, 입술 보호제, 아이크림 등과 같은 화장품으로도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바세린 퓨어스킨 젤리는 기존 바세린 페트롤리움 젤리를 2010년에 새롭게 변경한 이름이다. 구성 성분의 100%가 무향, 무취, 무자극인 페트롤리움 젤리를 기본으로 하여, 카카오에서 추출한 코코아 버터가 첨가된 '리치 컨디셔닝 젤리(Rich Conditioning Jelly)', 유아용 베이비 파우더가 첨가된 '베이비 젤리(Baby Jelly)' 등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베이비 젤리는 1880년대에 신생아를 두었던 엄마들이 아기의 기저귀 발진에 바세린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유아용으로 따로 출시한 것이다.
1870년대 페트롤리움 젤리가 처음 출시될 당시에는 유리병에 코르크 마개 뚜껑을 사용했으나, 1880년대에 코르크 마개가 캔 뚜껑으로 변경되었다. 바세린의 아이콘이 된 푸른색 라벨과 블루씰은 1888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반투명 타원형 플라스틱 용기는 197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 되어 현재 바세린의 아이콘이 되었다. 2010년 유니레버사는 탄생 140주년을 맞아 바세린의 패키지를 지금의 유선형 패키지로 변경했고, 이 때 열고 닫기 쉬운 플라스틱 플립(Flip) 형태의 뚜껑을 적용했다.
바세린 바디로션은 1970년 바세린 인텐시브 케어로션 라인으로 처음 출시되었다. 바세린은 소비자들이 지성 성분이 강한 페트롤리움 젤리를 매일 피부에 적용하는데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을 파악하고, 액상 타입의 보습 기능을 강화한 제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첫 번째 출시된 제품은 핸드로션이었다.
현재 출시된 제품군에는 기본 '에센셜 모이스처' 라인과 건성피부 타입을 위해 보습 기능이 강화된 '인텐시브 레스큐 스킨 케어(Intensive Rescue Care)', 여름철 가볍게 바디로션을 바를 수 있는 스프레이 타입의 '스프레이 앤 고 모이스처(Spray & Go Moisture)' 라인 등이 있다.
핸드앤네일케어 제품군 중 하나인 '핸드앤네일케어 포뮬라(Hand & Nail Formula)'는 1990년대 미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출시된 제품이다. 바세린은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 초점집단면접)를 통해 미국 여성들이 손뿐만 아니라 큐티클(Cuticle, 손톱을 덮고 있는 표피)이 일어나는 것과 손톱이 깨지는 현상 등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고, 손톱과 큐티클의 보습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제품 출시 이후 '손톱의 부러짐을 막는다'는 메시지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해 여성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핸드앤네일케어 포뮬라는 옅은 핑크색의 패키지를 사용하며, 피부회복 제품과 살균 효과 제품 2종류가 출시되고 있다. 내용물에 복숭아, 알로에, 코코아 버터 등이 첨가된 것이 특징이다.
바세린의 립케어 제품은 1919년 론칭된 이후 오늘날까지 출시되고 있다. 1984년에는 미국의 립케어 시장을 겨냥해 새롭게 개발된 바세린의 튜브형 '립테라피'가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국내에는 '립 에센스'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립케어 제품군은 페트롤리움 젤리 형태, 튜브 형태, 틴(Tin, 얇은 원통형) 형태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체리, 코코아 버터 등 다양한 향이 첨가된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1870년 출시 직후 바세린의 판매가 원활하지 않자, 로버트 체스브로는 뉴욕 곳곳에 바세린을 실은 마차를 끌고 다니며 효능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도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로버트 체스브로는 칼이나 라이터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 후 바세린을 발라 어떻게 상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지를 시연했다고 한다. 그는 모인 사람들에게 무료로 바세린 샘플을 나누어 주며 효과를 시험해 보게 했는데, 그것을 사용해 본 사람들이 약국 등에 찾아가 바세린을 찾기 시작하면서 바세린은 출시 4년만에 미국 전역에 팔려 나갔다.
1870년대 말 바세린은 콜드크림, 비누, 헤어 포마드, 캠퍼 바세린 등의 제품을 추가로 출시한 후 이를 알리는 해설광고(Informative Advertising)를 시작했다. 제품설명서 등을 제작해 바세린의 브랜드 포트폴리오(Brand Portfolio, 자사가 보유한 전체 브랜드에 대한 설명책자)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했고, 신문이나 잡지 지면광고로 게재했다.
① 1920년대 이후 광고
1925년 바세린은 헤어토닉을 출시하고 남성들을 타깃으로 한 광고를 진행했다. 당시 남성용품 광고에서는 공식처럼 스포츠카와 매력적인 여성들이 등장했는데, 바세린은 이러한 접근이 화장품 시장의 주요 소비자인 여성들에게 반감을 사고 있다고 판단했다. 바세린은 헤어토닉 광고에 제임스 본드(James Bond) 스타일의 남성 모델을 등장시켜 이 제품을 쓰면 머리 숱이 적은 부분에 머리를 빨리 나게 하고, 멋진 헤어 스타일을 제공한다는 내용으로 선전했고, 여성 소비자를 겨냥해 여성의 머리 건강과 스타일링에 도움을 준다는 내용의 광고를 동시에 진행했다. 이후 바세린은 1970년대 바디 케어 제품이 출시되기 전까지 헤어 토닉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주요 광고를 진행했다.
② 1970년대 이후
1970년 인텐시브 케어 로션 출시 이후, 체스브로-폰즈 사는 제품 홍보를 위해 여성 고객을 주 타깃으로 설거지 후 건조해진 손에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광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체스브로-폰즈사는 더 넓은 타깃을 겨냥해 바세린 브랜드를 알려야겠다는 필요성을 인식했고, '미국 작업자의 손(Working Hands of America)'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광고는 공사현장, 요리사, 주부 등 근로자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 바세린은 '드라이 리프(Dry Leaf)'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광고 캠페인은 건조한 잎에 바세린 인텐시브 로션을 발라 재생시킨다는 내용으로 '미용(Beauty)'이 아닌 '보호(Protect)'에 중점을 두어 소비자들의 반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후 이 캠페인이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깊이 각인되면서 바세린은 1984년까지 잎 모양을 적극 활용했다.
유니레버가 체스브로-폰즈사를 인수한 1990년대 미국의 스킨케어 시장은 크게 성장하고 있었고 경쟁 브랜드들이 대거 시장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바세린은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대규모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1992년 바세린은 미국 시장 내에서 '사이언스 업데이트(Science Updates)'라는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당시 아침 TV쇼의 호스트였던 조안 룬덴(Joan Lunden)을 모델로 기용해 진행된 이 캠페인은 바세린의 스킨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제품들을 시연하는 내용이었다. 조안 룬덴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도 덕분에 이 광고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각국의 인지도 있는 유명인사를 모델로 대체하여 글로벌 시장에 적용되었다. 이 캠페인의 성공으로 바세린은 페트롤리움 젤리, 인텐시브 케어, 핸드앤네일, 그리고 자외선 차단제로 구성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로 통합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7년 바세린이 진행한 '키핑 스킨 어메이징(Keeping Skin Amazing, 놀랄만한 피부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글로벌 광고 캠페인은 세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시 유니레버는 시장조사를 통해 여성 소비자들이 외부환경과 신체 내부환경에 따라 피부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싶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130년의 노하우와 지식을 가진 바세린은 피부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과 공유하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새로운 광고 캠페인인 키핑 스킨 어메이징을 기획했다. 이 광고는 여성의 신체를 시각적으로 활용해 바세린의 제품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피부를 지킬 수 있는 지에 대해 표현했다.
유니레버 그룹은 1930년에 네덜란드 마가린업체인 마가린 유니(Margarine Unie)와 영국 비누업체인 레버 브라더스(Lever Brothers)가 합병해 설립된 업체다. 이 두 회사의 합병은 마가린과 비누의 원료가 되는 야자유를 효율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영국의 마가린 시장과 영국의 비누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던 두 업체의 합병은 큰 이슈가 되었다. 회사 합병 이후 유니레버는 더 많은 양의 야자유 원료를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 받아 크게 성장했고, 공격적인 인수 합병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가며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웨덴 출신의 경영자인 마이클 트레쇼(Michael Treschow)가 2007년부터 회장을 맡아 유니레버를 이끌어 오고 있다. 공학자 출신인 마이클 트레쇼는 유니레버에 합류하기 전 가전제품 제조업체인 AB 일렉트로룩스(AB Electrolux)의 회장을 역임했다.
유니레버는 식품 · 음료, 가정 · 개인위생용품 2개의 사업 영역에 총 4백여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25여 개의 글로벌 브랜드가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러한 브랜드는 가정 · 개인위생용품 영역에는 바세린을 포함해 도브(Dove), 폰즈(Pond's), 브이오파이브(Vo5), 선실크(Sunsilk), 럭스(Lux), 라덕스(Radox), 액스(Axe), 서프(Surf), 오엠오(Omo), 트레제메(TRESemme), 토니앤가이(Tony&Guy), 선라이트(Sunlight) 등이 있으며, 식품 · 음료 영역에 립톤(Lipton), 하트브랜드(Heartbrand), 벤앤제리스(Ben & Jerry's), 베셀/플로라(Becel/Flora), 베르톨리(Bertolli), 크노르(Knorr), 헬맨스아모라(Hellmann's amora), 블루밴드라마(Blue band Rama) 등이 있다.
· 도브
1957년 유니레버에서 설립한 미용 · 위생용품 브랜드로, 당시 대부분의 경쟁업체들이 세정력에 중점을 둔 비누를 출시할 때, 모이스처라이징 크림(Moisturizing Cream)을 1/4을 첨가한 도브 뷰티 바(Dove Beauty Bar)를 출시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 세안제, 데오도란트, 바디워시, 바디로션 등 스킨케어와 관련된 제품을 제작 · 판매하고 있다.
· 폰즈
1914년 미국의 젊은 화학자인 테론 폰드(Theron Pond)가 설립한 스킨케어 브랜드로, 그는 풍년화(Witch Hazel)에서 추출한 물질을 활용해 상처치료제를 출시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수익성이 떨어지자 화장품 산업에 눈을 돌려 폰즈 콜드크림과 클린징 크림 등을 출시하며 인기를 끌었다. 1955년 체스브로 매뉴팩쳐링사와 합병해 시장 규모를 늘려나갔고, 1986년 유니레버에 인수되었다.
· 립톤
1890년 영국의 사업가인 토머스 립톤(Thomas Lipton)이 설립한 영국의 차(茶) 브랜드로, 1890년 값비싼 가격으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홍차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시장에 출시해 홍차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립톤은 출시와 함께 미국, 캐나다 시장 등 세계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38년 유니레버가 립톤의 미국 경영권을 사들였고, 1972년에는 립톤 전체를 인수했다. 이후 립톤은 아이스티, 허브티, 녹차 등 다양한 차 제품으로 출시되며 지금의 상품군을 갖추었다.
오늘날 바세린은 전 세계 90개가 넘는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다. 2008년 유니레버가 발간한 '바세린 브랜드 히스토리 북(Vaseline Brand History Book)'에 의하면 바세린의 매출 중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매출이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로버트 체스브로는 1883년 46세에 바세린의 유용성을 인정한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2008년에 발간한 유니레버의 브랜드 보고서에 의하면, 바세린 젤리는 전세계적으로 39초마다 1개씩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바세린은 2008년 인도 시장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인도의 미디어 기업인 '스타 인디어(Star India)'가 선정한 '프로덕트 오브 더 이어 어워즈(Product of the Year Awards)를 수상했다. 바세린은 파키스탄 시장에서의 높은 브랜드 인지도로 2011년과 2012년에 브랜드 컨설팅업체인 '익스히비터 그룹(Exhibitor's Group)'이 선정한 '올해의 브랜드상(Brands of the Year Award)'의 바디로션 부문에서 수상했다.
바세린의 지성성분은 피부 보호막을 형성하여 상처치료제 및 보습제 등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상온에서 산화되지 않아 장기간 보관 가능하며, 쉽게 얼지 않아 극지방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바세린은 1880년대 신생아를 둔 어머니들은 아기들이 기저귀에 살이 쓸려 발진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로도 바세린을 사용했는데, 이는 오늘날 베이비 젤리의 기원이 되었다. 1900년대 초에는 여성 소비자들이 바세린 페트롤리움 젤리에 석탄가루를 섞어 마스카라의 베이스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미용 시장에서 바세린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세린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남아프리카 지역에도 소개되었고, 이후 수풀 위를 맨발로 다니고 장작불로 요리를 하는 남아프리카 노동자들에게 피부나 머리가 건조할 때 쉽게 바를 수 있는 보습제 역할을 했다. 또한 외딴 지역에서 몸에 열이 빠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로도 사용 되었으며, 자전거 체인이 녹슬었을 때도 사용 되었다고 한다. 바세린은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삶에 유용한 필수품으로 인식되며, 강한 브랜드 이미지로 로열티를 확보하고 있다.
1980년대에 바세린이 스포츠 시장을 겨냥해서 따로 홍보 활동을 벌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세계에서 바세린은 필수품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1981년 런던 마라톤(London Marathon)에서는 수천 명의 마라토너들에게 바세린을 지급하기 위해 상당량의 바세린을 마라톤 트랙에 비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바세린은 문화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며 오늘날 전 세계 가정에 하나씩 비치되는 필수품이 되었다고 한다.
바세린의 브랜드 미션은 모든 사람들이 항상 건강한 피부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피부에 대한 바세린의 지식 및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바세린은 2008년 '바세린 스킨 펀드(Vaseline Skin Fund)'를 설립했다. '바세린 스킨 펀드'는 피부과 의료진이 환자들에게 피부 관련 질환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미국습진학회(National Eczema Association)와 협업하여 피부 교육 프로그램 웹 서비스를 만들어 습진 및 민감성 치료법과 실용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고 한다.
바세린 스킨 펀드는 습진과 어린선 등 민감한 피부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들을 지원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의과대학에서 피부과 전문의 및 전문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스킨 케어와 관련된 최신 전문 지식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인 CME(Continuing Medical Education)의 운영 자금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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