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지난주 갈곶산에서 지친몸을 잠시 땅바닥에 누이면서 이제 고인이 되신 편한세상님과 함께 느끼고
배우고자 많은길을 걸었던 소백산 종주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소백종주길 날머리 봉황산 아래 천년고찰 부석사가 자리해서 다음 대간길을 이어 간다면 꼭 부석사에 가보고
그분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싶어 방향을 부석사로 향하게 된다.
대구에서 영주로 가는 버스로 이동후 영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부석면의 부석사로 가고
부석사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리니 영주땅도 덥기는 대구에 못지않게 화끈거린다.
익을듯한 날씨 작은 가로수 나무 사이로 태양빛을 피해 보지만 더운바람에 땀이 비오듯 흐른다. 잠시 그렇게 걸어 가니
일주문 현판에는 태백산 부석사(太白山 浮石寺)라 쓰여있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 잡은것 같은 부석사지만 소백산과 태백산은 고치령을 중심으로 서쪽은 소백산
동쪽은 태백산이다. 고치령 동쪽에 자리하는 부석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16교구 본사인 의성의 고운사 말사의 절이며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한 사찰이다.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라는 현판이 있었지만
조금 더 올라오니 봉황산 부석사란 현판이 또 나온다.
봉황산은 부석사절 뒷편에 자리하는 봉황을 닮은 산 아래 있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석사 물량수전 아미타여래 부처님을 모신 고려시대 건축물
잠시 부처님이 계시는 본당에 들어가 고인이 되신 편한세상님을 위한 절을 하고 나온다.
편한세상님과 함께 많은 곳을 다니며 산우의 정을 나누었는데
많이 보고싶고 그리운 분
무량수전 앞에서 인증 부탁해서 한장 담고
신라 마지막 왕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잃을 설음에 하늘도 부끄러워 삿갓에 짚신 신고, 베옷입고 올랐다는
소백산 국망봉으로 일몰보러 떠나본다.
아담한 부석사 절집을 나와 사찰 아래 주차장으로 가서 시내버스가 올때까지 점심겸 저녁으로 한끼 해결하고
얼음물 큰것 2개.작은것 2개.콜라2개.라면4개, 삶은 옥수수2개 그리고 부석사 인근 마을 할매분들이 길가에서
팔고 계시는 자두, 사과를 몇알 구입해서 배낭에 넣으니 대략 20kg의 무게가 넘을듯하다.
부석사에서 버스타고 부석면으로 나와 택시를 탔는데 지난날 대간 5구간할때 마구령으로 짬뽕밥 배달을 시키니
기분좋게 배달해주셨던 바로 그분이다.
택시는 좌석리 마을을 지나 고치령으로 오르는 산길을 돌고 돌아 지난주에 내렸던 고치령에 도착한다
오후 3시 30분 택시기사분께 인증 부탁해서 한장 담고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존경하는 준,희 선배님의 부탁으로
고치령 임도길 넘어 식수터 사진한장 담아 보내 드리려고 임도길 넘어로 간다.
고치령 식수터 가물어도 식수는 늘 잘 나오고
다시 고치령으로 올라가서 산행 복장으로 셋팅해본다.
산행출발 3시 40분 국망봉으로 가서 일몰 보려고 출발 하려는데 단양이 청뫼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국망봉 도착시간을 대충 말씀 드리고
고치령-국망봉 11km 대략 2시간 30분이면 올라가서 일몰 볼것같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고치령-죽령 25km
배낭무게로 속도가 안나지만 땀이 비오듯 흐른만큼 그에따른 열정으로 진행한다.
한시간 못걸려 이곳까지 진행
고치령에서 절반 가량 온것 같은곳
배낭무게로 어깨는 빠질듯하고 땀이 비오듯 흐른다.
늦은맥이 통과
국망봉 인근에 도착하니 상월봉이 반기지만 상월봉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소백의 마지막봉이다.
먼발치에서 한번 쳐다 보고
국망봉 아래에서 비박을 하고 계시는 젊은 남자분께 부탁해서 인증 담고
국망봉 오후 6시 25분
배낭무게가 무거워 고치령에서 쉬지않고 걸었더니 조금 일찍 국망봉에 도착한것 같다.
고치령에서 국방봉 11,5km 2시간 45분만에 도착하고 보니 일몰이고 뭐고 안개가 자욱하게 밀려온다.
이곳 국망봉은 935년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아들이 마의 태자가 이곳에 올라 천년고도가 자리하던
서라벌(경주)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삼국 개요]
신라: 박혁거세가 변한을 통일시켜 국가를 세우고 이후 약 700년간 삼국시대 돌입하게 되며
백제:주몽의 아들 온조왕이 백제의 부흥을 이루고 중국 산둥반도 일본 규슈지방까지 진출함 이후 의자왕(660년)까지 700년
고구려: 주몽에서 광개토 대왕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의 부흥과 고구려의 영토를 만주지방까지 진출 이후 보장왕(668년)까지
신라: 선덕여왕, 문무왕까지 당나라와 연합해서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킴.(668년) 경순왕에서(935년) 마감
신라는 그뒤에 400년 정도 부흥하다가 망함 이후 후삼국시대(892년-936년) 궁예.견원 왕건이 세력 다툼(약50년)
소백산에서 멀리 떨어진 월악산에는 마의 태자 동생인 덕주공주가 아버지 경순왕과 마의 왕자를 그리워 덕주사를 지었다는 곳이 있지만 지금 월악산 방향은 짙은 안개로 보이지 않는다
월악산 덕주사의 마애불
보물 제 450호로 지정된 덕주사 마애불은 거대한 암벽을 이용하여 조성한 입상이다.
신마 마지막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신라패망후 월악산 덕주골에 들어와 마애불을 조성하였다고 전하며
그 후로 부터 월악사였던 절이르이 덕주사로 불리웠다.한국전쟁때 마애불만 빼고 모두 소실됨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는 월악산 덕주골의 마애불은 덕주공주의 얼굴이며,
미륵리 매애석불은 마의태자의 상으로 하나는 남향, 하나는 북향으로 동생과 오빠가 서로 마주보며 서 있으니
패망후 도읍지 경주를 떠나 망국의한과 신라의 재건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하는곳이다.
공주와 태자는 동시에 관음보살의 현몽"(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터가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수 있으니 포덕함을 잊지말라)"으로 마의태자는 미륵리에서 미륵불을 조성하고
덕주공주는 덕주골에서 매애불을 조성했다고 한다
이후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떠나기 전 월악산에 올라 "월악 영봉이 강물이로 비치는날 구국의 한이 풀리리라고"
말했다는데 끝네 덕주공주는 오빠 마의태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충주호가 생겨 충주호에 월악영봉이 비치니
마의태자의 한이 이루어 졌는지 그건 모를일이다.
신라 역대 왕 족보
일몰시간이 아직 남았지만 일몰은 없을것 같고
잠시 국망봉 정상 바위에 걸터 앉아 뜨겁던 몸을 식히며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과 마의 왕자의 대화를 생각해 본다.
태자:아부지 나라 꼬라지가 와 이리 됐노
경순왕:내도 모른다 삼한 통일 해뿌고 나이 성골,진골 지뜯고 싸우는 통에 이래 안됏나
태자 :허구허날 포석정에서 술판 벌린건 아부지 아이가
경순왕:야야!~그래서 뭐 어야라꼬
태자:내도 왕 한번 해보고 싶었다.아이가!~아부지 잘 있어라 내는 이꼬자리 저꼬라지 안보고 갈란다.
이후에 신라는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고 천년사직을 고이 간직하던 신라는 935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사실은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해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던 경애왕을 피살하고 임시로 세운 왕이 경애왕의
고종사촌 동생 김부가 신라56대 경순왕이다.
경순왕은 즉위 9년(935년)군신들을 모아놓고 나라를 고려에 넘길것을 논의하자 마의태자(본명: 김 일)가 간곡히 만류했다.
"나라의 존망은 반드시 천명(天命)에 있는 것이니 충신 의사로 더불어 민심을 수습하여 스스로 굳게 지키다가 힘이 다한
후에 이를 의논함이 옳은 것이거늘 어찌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경솔하게 남(왕건)에게 주는것이 옳으리오"하였다 한다.
나라잃은 설음에 이곳에서 금강으로 향하던 슬픈 마의 태자를 뒤로하고
멀리 비로봉에서 만나기로 한 고향 친구 대진이를 만나러 비로봉으로 향한다.
죽은 마의 태자 생각보다 비로에서 라면 끓여 먹을것 생각하니 역시나 라면 면발 같이 꼬들 꼬들한 친구가 더 좋은모양이다
청뫼님께 전화를 드리니 50분이면 비로봉으로 간다고 하니 여기서 못본 일몰 혹시 비로에서는 일몰을 볼까하며
서둘러 길 떠날 준비를 한다.
가야할 비로 방향
지나온 국망봉 안개가 자욱했는데 지금은 많이 물러난 모습이다.
다시 가볼까
비로봉 인근의 나무 테크길에서 본 일몰
비로봉에는 야생화 천국이고
국망봉 정상에는 잠시지만 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
옅은안개가 많이 물러나 조망하기 딱 좋을것 같다.
뭐!~~샤방샤방
소백산 천문대 방향
비로봉 방향
국망에서 40분 조금더 걸려 도착한 비로봉
아직 친구 대진이는 안올라왔고 잠시 일몰처럼 보이는 일몰을 구경한다.
바람은 없으나 시원하고
비로봉에서 15분 정도 기다리니 이쁘고 착한 셀님과 대진이가 올라온다.
두분은 소백산 자락에 물놀이 갔다가 제가 소백에서 비박한다고 하니 어의곡 매표소에서 힘들게 올라오셨다.
고향친구 대진님
조용하던 비로봉에 대구 촌놈 산객 셋이 모이니 장날 난전판같이 시끄럽다
셀님와 인증 담아 보고
전혀 안어울릴것 같지만 잘 찾아보면 어울리는 두사람
두사람중 누가 갑(甲)인가 궁금하실것 같아 몇자 적어 본다.
두사람 자세를 보시면 알겠지만
셀님은 언제나 큰소리치는 갑이고
대진이는 말 그대로 찍소리 못하는 영원한 을(乙)이며 종놈이다.
지금 두사람은 동행 산사랑 카페를 운영하며 대간 북진중
가끔 저의집에 찾아오면 애들 용돈을 주기에 우리집 애들이 좋아하는 친구
비로에서 시원한 바람에 잠시 앉아 있다가 비로봉 주목 대피소로 가서 저녁밥을 먹으려 이동한다.
주목 관리 초소에 오니 산객이라고는 우리들뿐 까실까실한 나무테크 바닥에 둘러 앉아 저녁을 준비한다.
비박 배낭에서는 꺼낼께 얼음 물 뿐이고
셀님 배낭에서 먹고 남겨온 통닭 반마리 그리고 사과,복숭아, 밥
대진님 배낭에서 소고기.소주.상추..
소백에서 한끼 먹어 보려고 많이 싸들고 올라왔다.
이곳에서 밥해서 먹으며 두사람만 하산 시키기도 그렇고 잠시 고향친구와 주능선 야간 산길 걷기로 하고
대간길 여기서 정리한다.소백에서 시원한 날씨는 덤이고 친구하고 이야기 나누며 긴시간을 가져 본다.
초저녁에 별이 보이더니 짙은 안개로 별은 모두 사라지고
죽령에서 하산 하기로 하고 단양의 청뫼님께 "우리 죽령으로 하산 합니다".전화를 드린다.
연화봉
연화봉에서 죽령으로 가는길에 비가 조금씩 내린다.
자정이 지난시간 단양의 청뫼님이 맥주 한병과 수박을 이쁘게 썰어 죽령으로 오셨고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 차가 주차된 어의곡 매표소로 이동한다.
어의곡에서 차를 가지고 단양읍으로 나와 족발집에서 한잔더 하는것 보고 기다리다가 집으로 오긴왔지만
이번 대간길은 부석사를 찾아보는것과 소백에서 일몰과 도솔봉에서 일출보는 컨셉으로 비박장비를 가지고 갔지만
무거운 배낭때문에 골빙만 들어 온듯하고
이번주는 대간 19차와 같이 진행 해야하는 산길이 이어진다.
대간길 홀로 잘하시고 간간이 식구들 만나 즐거운 시간 보내니 참부럽네요
그배낭속에 머 들어있어요 그속에 작은 가방하나 더 들은거 같은데요
더위어 조금씩만 다니세요 그러다 탈나면 큰 탈남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배낭 무게 온통 물뿐입니다.
텐트 .침낭 버너 코펠... 먹을것
나중에 한번 가시죠
국망봉의 마의태자 전설 개골산 들가기전에 거기서 꺼이꺼이 울었겠죠
저도 거기서 마의태자 심정을 헤아려 보았네요 ~ 가신김에 돼지바위 들러서 코라도 만져보고
복권사면 대박터질것 같은데유 ~~ ㅎ 욕보셨습니다. 친구와의 우정도 보기좋구요 ~
글 감사합니다.
마의태자의 슬픈 역사 뒤에는 삼국을 통일하고 경쟁 할 상대가 없던 신라가 막판에 포석저에서 술판을 벌린 결과라 봐야겠죠
술 적당히 해야 역사가 조용하다는 사실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래전 소백종주때 날머리 부석사로 내려온 기억이 납니다
배낭을 보니 저걸메고 이 더운날 산길 걷는거는 골빙들것 같은 생각이..
나이가 먹을수록 그리움이 느껴질때가 많지요 편안세상님 생각을 잊고 있었는데
다시 그분과 함께했던 산길이 그리워집니다
그래도 친구는 고향친구가 최고인것 같습니다 소백산정상까지 방장님보러 올라오고
저녁은 만찬으로 드셨겠지요 더운날 건강 잘 챙기세요
대간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비박과 일출 산행
그꿈을 하나 하나 이루고 대간길로 갑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과 만나고 교류 하겠지만
진정한 산우가 과연 얼마일지...
야간에 지나는 대간길은 좀 시원하죠 다음구간도 안전하게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산정에서 친구님도 만나고 여유로운 산행이 여름 더위에 어울리는듯 하네요
고치령에서 국망봉까지 무거운 배낭메고 죽을듯이 달린것 같습니다.
이후로는 여유로운 산행이 되었구요
정맥길에 거침없이 진행 하시고 한구간 갈 수 있으면 동행 하도록하겠으니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더운데 고생 좀 하시구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한여름에도 소백은 추운곳인데 제가 찾았을때는 바람도 없고 시원한 날씨가 반겨 주었습니다.
야생화의 천국 소백산 언제나 포근함의 대명사며 우리같은 산꾼들에게는 최고의 휴식처이죠
글 감사드립니다.
지고 일어나지도 못할것 같은 크기의 베낭을 보니 헉~ 소기라 납니다.
방장님의 내공은 무게를 넘어 서시는듯 합니다.
얼마전 18차 우리가 한밤중에 렌터빛 만큼 보면서 걸었던 소백의 아름다움 을 방장님의 산행기로 느껴봅니다.
나라잃은 마의태자 의 슬픔도 같이 말입니다.
같은 대간길이지만 저는 혼자 진행 하다보니
늘 누군가 그립습니다.
그러다 보니 슬픈 마의태자를 생각하곤하죠
대간길 멋지게 이어 가시는 모습 그저 부럽구요 훗날 졸업때 찾아 뵈야 겠더군요
힘 있을때 힘 팍팍 써야 맞는건지? 힘 있을때 힘을 야껴야 맞는건지?
제 생각에는 힘 은 힘 있을때 써야 맞는듯...
힘 없으면 힘을 쓸수가 없으니...
아낀다고 남아 있다는 보장도 없구요..ㅎ
ㅎㅎㅎ 힘도 없고 아낄건 더 없구요
늘 골골하게 지냅니다.
대간길도 전반전이 거의 끝나고 후반전을 알리는 산행이 기다리는데
열심히 안전 산행해서 지리산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산행기보니 부석사 다시가보고 싶네요~가본지가 10년은 훨씬 넘은듯하고~ㅎ 싫네좋네해도 친구는 친구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