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패망한 일본에게서 빼앗아 이승만 정부에 이양한 재산이 귀속재산이다. 미국은 일본에서 한반도를 탈환하고, 조선에서 축적했던 재산을 전부 몰수하여 이승만 정부에 이양했다. 이승만 정부는 북한과 같이 국유화하거나 권력층에 불하하지 않고 민간에 불하해 자유경제의 기틀을 만들었다. 기업재산은 물론 일본인의 주머니까지 뒤져 지폐까지 압수해서 한국 정부에 넘겼다. 일본인은 조선에 건설한 수풍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의 공공시설, 산업시설, 각종 무형자산, 사회간접자본을 남겨둔 채 맨몸으로 추방당했다.
1945.8 당시 조선에 남겨진 일본재산은 공·사적 재산이 170,605건, 그 외 재산이 121,304건으로 총 291,909건이었으며 부동산이 98.5%로 287,555건이었다. 금액 기준 당시 가치로 52억4650만 달러로 남한 귀속자산은 23억 달러로 정부 총자산의 80~85%(북한 29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남한 정부에 공짜로 이양했다. 귀속재산 52억 달러는 일본의 총 해외 재산 219억 달러의 24%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귀국하는 일본인 개인의 현금도 모두 빼앗았는데 1인당 현금 소지 한도는 민간인 1,000엔, 군 장교 500엔, 사병 250엔이었다. 1945년 말까지 귀환한 일본 민간인은 47만여 명이었다.
미 군정은 1949년부터 귀속자산을 불하(19%)하였으나 이를 반대한 이승만 정부에 이양하였다. 제헌헌법은 공산주의에 승리하기 위해 통제경제를 목표로 사회주의 경제를 채택하였다. 운송, 금융, 전기, 수도 등 모든 자원과 산업을 국유, 공영화하고 대외 무역도 국가가 관리 통제할 수 있는 공산주의식 경제체제를 헌법에 넣었다. 헌법 조항과 국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상업 국가 목표로 국유화 대신 민간에 불하하여 자유기업 경제의 초석을 놓았다. 경제 활동 주체가 국가(사회주의 통제경제)에서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자유 시장 경제체제로 전환했다.
귀속재산은 선의의 유능한 연고자나 기업 종업원과 농지개혁에 참여한 지주들의 지가증권으로 우선 매각했다. 쇼와 기린 맥주는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 OB맥주가 되었다. 삿포로 맥주는 명성황후 인척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하이트맥주)가 되었다.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 화약공판은 관리인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 모태가 되었다. 삼척의 코레카와 제철소가 삼화제철로 상호 변경,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동국제강이 되었다. 조선제련이 구인회에게 불하 락희화학(LG화학)이 되었다.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은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되었다.
조선연료, 삼국석탄, 문경탄광이 김수근에게 불하되어 대성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아사노 시멘트 경성공장이 김인득에게 불하 벽산그룹이 되었다. 경성전기-남선전기-조선전업이 해방 후 합병되어 한국전력이 되었다. 조선우선 직원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대한해운이 되었다. 선경직물은 공장 생산관리 책임자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일본인 포목상이 만든 선만 주단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선경 이름은 선만 주단의 ‘선’과 교토직물의 ‘경’을 따서 지었다.
경기직물과 조선방직이 대구서 비누공장 운영하던 김성곤에게 불하되어 쌍용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동양방직은 관리인 서정익에게 불하되었다. 아사히견직은 부산 공장장 김지태에게 불하되어 한국생사가 되었다. 가네보방직 광주공장이 김형남,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일신방직이 되었다. 동립산업은 관리인 함창희에게 불하되었고, 제일제당(CJ)이 이를 흡수했다. 쥬가이 제약은 서울사무소 관리인에게 불하되어 현 중외제약이 되었다. 조선주택영단이 한국 주택공사가 되었다.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가 해방 후 한국미곡창고 주식회사가 되고, 후에 대한통운이 되었다. 조선중공업주식회사가 해방 후 대한조선공사가 되었고, 한진그룹에 편입되어 한진중공업이 되었다. 한국저축은행은 정수장학회 설립 멤버안 삼호방직 정재호에게 불하되었다. 조선생명이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삼성화재가 되었다. 조선화재해상보험이 동양화재 해상보험이 되었다가, 메리츠 화재해상보험이 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백화점이 되었다.
조지아 백화점이 미도파백화점이 되고, 나가오카제과는 직원이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되었다. 모리나가 제과와 모리나가 식품이 해방 후에 동립식품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1985년에 제일제당에 병합되었다. 토요쿠니제과가 해방 후에 풍국제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어오다가 1956년에 동양제과(오리온)에 병합되었다. 조선인의 큰 기업은 김성수 가의 경성방직, 삼양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회라는 명칭으로 화신상회, 개성상회, 경성벽지 등이다.
남한은 자유시장주의를 표방하여 개인에게 불하하여 기업을 키웠지만, 북한은 국유화하여 정권 치부수단으로 이용했다. 북한을 선점한 소련은 군정을 통해 북한에 건설된 발전소, 공장 등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그것들을 건설하거나 운영해온 일본인 기술자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소련 군정은 만주 주재 일본 피난민 단장과 협의하여 북조선에 있던 모든 기계설비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일본 기술자들을 북한에 남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엔지니어의 애착심에 호소하고 일부 기술자는 억류했다. 그 결과 1946.1 현재 총 2,158명의 기술자를 북조선에 잔류시켰다.
점령군은 민간인 사유재산을 몰수할 수 없다는 국제법에 근거해, 1965년 한일회담 당시 일본은 남조선에 두고 간 23억 달러어치의 민간인 사유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요구했다. 한일수교회담에서 상호 청구권을 상쇄하여 일본 무상 공여 자금을 3억 달러로 결정했다. 조선을 35년간 식민지배(직접)했던 일본은 조선 땅에 52억 달러어치 재산을 남겼다. 조선 518년간 모화사상에 젖어 자발적으로 중국 식민지배(간접)를 받으며 모화관, 만동묘, 대보단 등을 설치하며 중국을 공경했지만, 적군의 침략에 이용된다고 도로와 지도가 없는 조선, 초가집, 민둥산, 미신이 횡행하는 미개사회가 공존하는 조선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