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재경진도군향우회 진도읍 -1
쩌번참 10월 15일날 안양천 갈대구장에서 있었든 제70회 재경진도군향우회 정기총회에서는
우리학교 제61회 장가단 동문이 제9대 군여성회장이로 취임하넌 경사가 있었구만이라.
전에 제4대 여성회장이로 59회 박선영(순애) 동문이 취임해서 봉사한 뒤로
그랑께 우리 학교서는 두 번차로 군여성회장이 나왔구만이라.
모도 알지라? 덜?
내나 61회 김주신 동문하고 요케 둘이가 한 집이서 한 이불 덮우고 자는 사인중 모도 알지라?
좋네! 늘 요케 행복하게 웃움시로 오래오래 해로하시게! 덜!
우리학교 제57회 동문이로 제19대 군향우회장을 역임하신 허성환 전 회장님이구만이라.
우리 학교 제55회 출신이로 재경총동문회 제3대 회장을 역임하신 이석진 전 회장님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로 분장하셨구만이람짜.
제6대 김정실(55회) 제7대 이형식(61회) 전임 회장님덜에 다정시런 모십이구만이라.
진실풍물단 단장인 60회 이수자 동문하고 67회 김연선 동문도 뵝구만이라
인자 읍향우회에 입장식이구만이라.
진도읍은 입장식 행사에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명량대첩에 빗대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목을 베는 퍼포먼스를 했구만이라.
그란데 사실 1597년 9월 16일에 울돌목에서 있었던 명량대첩은 국가적으로 대승을 거둔 쾌거였으나, 우리 진도에 있어서는 한편 가슴 아픈 희생의 대가(代價)였음을 진도인들은 잊으면 안 될 것이구만이라.
** 명량대첩 당시 많은 진도군민들이 힘을 모아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을 도와 싸운 결과 군선에 숫자가 13(조선군 판옥선):333(일본군 關船 세키부네 133척 직접교전, 安宅船 아다케 200척 후방 전개)이라는 열세에서 세계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대승을 거두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직후 우수영이나 벽파진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다음 날 진도를 빠져나가 17일에 어외도(於外島, 신안)에서 이틀을 머문 후 19일 법성포를 거쳐 21일 멀리 고군산도(옥구군)로 가서 그해 겨울을 나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이후 진도에 상륙한 왜군들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준 진도 주민들에게 분풀이를 했기에 당시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도륙되었는지가 기록상으로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때 희생된 분들을 모신 곳이 고군면 도평리와 오일시장 사이의 산기슭에 있는 [정유재란 순절묘역]으로 현재 이곳에 묻힌 분들은 확인된 봉분만 232기인데, 이 중 무덤 주인공의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1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그 이름조차 알 수 없이 희생된 그야말로 무명의 진도 백성들의 떼무덤인 것이다.(여기와 다른 왜덕산 떼무덤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음) *** 아래 글 내용 참고 ***
http://cafe.daum.net/jindo100/O6Rt/122
<59회 송현 출신 조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