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건강법에서 찾은 의학의 새로운 길
김 진 목 (의학박사, 신경외과 전문의)
가슴이 뛰었다. 어릴 적부터 의사가 주인공인 책이나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특히 주인공이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극적인 장면에서는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 내 의식 속에 의사는 너무나 ‘멋있는’ 직업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의사의 꿈을 키운 데는 치과의사이셨던 선친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꿈꾸었던 대로 의사가 되었다. 병원에서 처음 하얀 가운을 입었을 때 느꼈던 설레임은 (32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 속에 남아있다.
가슴속에 오래 품었던 꿈을 이루면서 보다 의미 있게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나 소설 같지 않았다. 의학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데도 치유할 수 없는 환자가 늘었고, 의학 이론은 실제 임상에서 맞지 않았고, 환자 앞에서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환자와 의사의 불신이 더해만 갔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린다’는 현대의학의 의학적 치료로 인해 오히려 병을 키우거나 얻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되면서, 환자를 대하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매달려온 현대의학의 모순과 한계를 비로소 하나씩 깨닫게 되었고 직업적 회의로 절망을 거듭해야 했다.
게다가 나는 스스로도 만성병 환자였다. 레지던트 1년차 때 환자에게 전염되어 만성간염보균자가 되었고, 중년에 접어들면서 간간이 보이던 아토피 증상도 직업적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심해져만 갔다. 내 병 하나도 제대로 치료할 수 없는 의사라니! 직업적 회의가 극에 달았고 마침내 나는 현대의학자로서의 길을 접었다.
현대의학자로서 살기를 포기했지만, 의사로서 길마저 모두 접은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대체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의학을 만났다. 식사와 운동, 생활습관을 바꾸어 난치병을 치료하다니! 오랜 세월동안 과학적(?) 의학관으로 무장한 채 살았던 내게는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1주일만에 지긋지긋한 아토피의 가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후 간염도 항체가 만들어져 ‘만성간염보균자’라는 무거운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기적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자연의학의 치유 메커니즘을 분자생물학과 생화학 등 현대의학의 과학관에 맞추어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나았다. 중요한 건 ‘나았다’는 사실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첨단의료 기술과 대단한 의학이론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질병을 낫게 해주는 것’ 이며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장두석 선생님을 만난 것은 10여 년 전이었다. 자연의학을 선택하면서 수 많은 대체의학자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강한 개성과 혜안을 가진 분들이었지만, 강하고 깊은 눈동자를 가졌으며 거침없는 카리스마로 주눅이 들게 만든 사람은 해관선생님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선생님이 지도하시는 민족생활학교에 참여하게 되었고,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광주 근교 유스호스텔에서 진행되었는데, 낡은 건물 탓에 분위기는 피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했지만, 식․의․주를 기본으로 한 생활건강법만이 바른 건강법이며 올바른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가르치고 자기 것이 되도록 지도했다. 더불어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역사와 전통에 대한 교육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였고, 의권(醫權)이 의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는 깨우침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특히 심신을 다스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해준다. 병의원이나 화학적 약물에 의지하게 되면 병주머니나 약주머니를 달고 살게 됨을 역설하며, 돈지갑만 넘나보는 병원의 실험대상자가 되어 돈 잃고 생명 잃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고 강하게 설파한다.
장두석 선생님의 민족생활의학은 질병에 대한 생각의 전환 뿐 아니라 난치병의 회복에 큰 영향을 끼친 모델로써 의학 역사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와 재조명이 필요한 자연의학으로써 우리 민족의 큰 업적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 여긴다. 아울러 바른생활건강법이 더욱 널리 알려져 민중들의 건강에 더 크게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