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시대적 발전
역사 시대 이후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자리를 잡은 우리 민족의 언어는 북방의 부여계 언어와 남방의 한계 언어로 나뉘어 있었다. 삼국이 세워지면서 이들은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로 발전되어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면서 제각기 발전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시기의 언어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하여 그 정확한 실상을 알기는 어렵다. 그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부터는 경주를 중심으로 언어가 통일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시기의 한국어를 고대 한국어라고 부른다.
고려가 건국하면서 언어의 중심지는 개성으로 옮겨 갔다. 고구려어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크게 보아 고려의 언어는 신라어를 계승하여 발전하였다. 조선이 건국하면서 언어의 중심이 지금의 서울로 옮겨졌으나 언어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려의 건국부터 16세기 말까지의 한국어를 중세 한국어라고 부른다. 중세 한국어는 앞뒤로 전기 중세 한국어, 후기 중세 한국어로 더 나누기도 한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한글로 적은 문헌 자료가 많이 나온 시기가 바로 후기 중세 한국어이다.
17세기부터는 음운, 어휘, 문법에서 앞 시대의 한국어와는 꽤 다른 모습을 보인다. 모음 체계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여러 문법 현상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17세기 초기부터 19세기 말까지의 300년 동안의 한국어를 근대 한국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개화기를 거쳐 20세기 이후 지금의 국어를 현대 한국어라 한다. 현대 한국어 역시 앞 시대의 한국어와 견주어 보면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새로운 어휘가 크게 늘어난 시기이다.
앞서 우리는 언어 변화는 음운, 어휘, 문법 등 모든 측면에 걸쳐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제 이들을 차례대로 살펴 한국어가 변화해 온 구체적인 모습을 추적해 보기로 하자.
말소리의 변화
중세 한국어 이전 한국어의 음운 구조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자음의 경우 중세 한국어에 이르러서 현대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예사소리ㅂ, ㄷ, ㅈ, ㄱ, 된소리ㅃ, ㄸ, ㅉ, ㄲ, 거센소리ㅍ, ㅌ, ㅊ, ㅋ의 세 계열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세 한국어에는 현대 한국어와 달리 마찰음인 ‘ㅸ’, ‘ㅿ’와 같은 자음이 더 있었다. 그런데 15세기 말에 이르러 ‘ㅸ’는 반모음 ‘ㅗ/ㅜ’[w]로 바뀌었다. ‘셔
> 서울’, ‘더
> 더워’, ‘쉬
> 쉬운’ 등에서 그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ㅿ’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걸쳐 사라졌다. ‘
> 마음’, ‘처
> 처음’, ‘아
> 아우’ 등에서 그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세 한국어의 단모음은 /ㅣ, ㅡ, ㅓ, ㅏ, ㅜ, ㅗ, ㆍ/ 등과 같이 7개였다. 그 가운데 /ㆍ/는 점차 음가가 소멸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둘째 음절 위치에서 /ㅡ/나 /ㅗ/, /ㅏ/로 바뀌었다. ‘기
마’[鞍]가 ‘기르마’로, ‘
’[壁]이 ‘
람’으로 바뀐 것이 그 예이다. 나중에는 첫째 음절에서도 /ㆍ/가 /ㅏ/로 바뀌게 되었다. ‘
래’[楸]가 ‘가래’로, ‘
’이 ‘마음’으로 바뀌었다.
성조는 소리의 높이를 통해 단어의 뜻을 분별하는 말소리의 특질이다. 그런데 중세 한국어는 성조 언어였다. 중세 한국어에서 성조는 글자의 왼쪽에 점을 찍어 표시했는데, 이를 방점이라 부른다. 평성平聲은 점이 없으며, 거성去聲은 한 점, 상성上聲은 두 점으로 표시했다. 평성은 낮은 소리이고, 거성은 높은 소리였다. 그리고 상성은 처음에는 낮다가 나중에는 높아 가는 소리였다. 예를 들어 ‘곳’[花]은 평성으로 낮은 소리였으며, ‘․플’[草]은 거성으로 높은 소리였으며, ‘∶별’[星]은 처음에는 낮다가 나중에는 높아 가는 소리였다. 성조는 16세기 중엽 이후 흔들리기 시작하다가 16세기 말엽 문헌에서는 방점이 표시되지 않게 되었다. 성조는 적어도 16세기 말에 소멸하였는데, 대체로 평성과 거성은 짧은 소리로, 상성은 긴 소리로 바뀌어 현대 한국어에 이르렀다. 그러나 방언에 따라서는 성조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아서 현재 경상도 방언이나 함경도 방언의 일부에 아직 남아 있다.
어휘의 변화
다음은 어휘가 역사적으로 변화한 양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대 한국어의 어휘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다만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 땅 이름, 사람 이름, 관직 이름의 표기를 통하거나 한자의 새김을 통하여 그 흔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중세 한국어의 문헌에는 현대 한국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많은 고유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근대 한국어에서도 고유어가 많이 사용되었으나, 한자어와 외래어의 침투가 끊임없이 이어져서 고유어가 점차 소멸해 갔다.
우리말에는 고대 한국어에서 이미 ‘붇’[筆], ‘먹’[墨] 등의 외래어가 중국에서 들어왔다. 또한 한자가 유입되면서 한자어가 많이 쓰이게 되었다. 불교의 전파로 ‘부텨’[佛陀], ‘미륵’[彌勒]과 같은 불교 용어도 우리말에 들어왔다. 중세 한국어에서도 외래어들이 들어왔다. 전기 중세 한국어에는 몽골어에서 온 외래어가 많았다. 관직, 군사에 관한 어휘를 비롯하여, 말과 매, 그리고 음식에 관한 단어들이 몽골어에서 들어왔다. ‘가라말’[黑馬], ‘보라매’[秋鷹], ‘수라’[御飯] 등이 그 예이다. 후기 중세 한국어 시기에는 한자어가 많이 들어왔다. 이러한 현상은 근대 한국어에서도 계속되었다. 개화기 이후부터는 서양 외래어가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어휘의 의미도 역시 변화한다. ‘춘향전’에서 ‘인정人情’이 ‘뇌물’을, ‘방송放送’이 ‘석방’을 의미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이처럼 어휘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데, 의미 영역이 확장되기도 하고 반대로 축소되기도 하고, 단순히 다른 의미로 변화하기도 한다.
의미가 적용되는 영역이 원래보다 확장된 예는 많이 있다. ‘다리[脚]’가 처음에는 사람이나 짐승의 다리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책상’이나 ‘지게’의 다리 같은 무생물에까지 적용된 것은 의미가 확장된 결과이다. 또 다른 예로 ‘영감令監’ 같은 말을 들 수 있다. 이 말은 옛날에는 당상관에 해당하는 벼슬을 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남자 노인을 가리키게 되었다.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의미가 적용되는 영역이 원래보다 축소된 경우도 있다. 그 예로 ‘짐승’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이 말은 ‘
衆生’에서 온 말로서, 원래 유정물 전체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였지만 지금은 인간을 제외한 동물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놈, 계집’ 같은 말이 있다. 이들은 원래 일반적인 ‘남자,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던 것인데, 그 의미 영역이 축소되어 지금은 비속어로 사용된다.
문법의 변화
앞에서 살펴본 음운이나 어휘처럼 문법 현상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문법 현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바뀌기도 하고, 어떤 문법 현상이 없어지거나 반대로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다음 문장의 밑줄 친 부분이 15세기 한국어의 격조사이다.
위 문장의 ‘이, ㅣ’는 주격 조사로서 ‘
, 始祖시조’가 문장의 주어 구실을 하게 한다. ‘를,
’은 목적격 조사로서 ‘我后아후, 天下천하’가 문장의 목적어 구실을 하게 한다. 주격 조사는 15세기 한국어에서는 명사가 자음으로 끝나든 모음으로 끝나든 모두 ‘이’ 형태였으나, 현대 한국어에서는 자음으로 끝나면 ‘이’, 모음으로 끝나면 ‘가’로 나타난다. 이렇게 주격 조사는 중세 한국어에서 원래 ‘이’만 쓰였으나, 차츰 ‘가’도 사용되기 시작하여 근대 한국어부터는 본격적으로 이 두 형태가 함께 사용되었다. 목적격 조사는 15세기 한국어에서는 모음조화에 의해 ‘을/를 :
/
’로 나타났으나, 현대 한국어에서는 모두 ‘을/를’로 나타난다. 이것은 격조사가 역사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 준다.
15세기 한국어 문장 구조가 현대 한국어와 다른 경우를 볼 수 있다. ‘무엇-을 누구-를 주다’ 구문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무엇을 누구-에게 주다’로 바뀌었다. 또 ‘무엇-이 무엇-이
다’ 구문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무엇-이 무엇-과 같다’로 바뀌었다. 이것은 문장 구조가 역사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 준다.

의문문이 물음말의 존재 여부에 따라 ‘-ㄴ가’, ‘-ㄹ가’와 같은 ‘ㅏ’ 형 어미와 ‘-ㄴ가’, ‘-ㄹ고’와 같은 ‘ㅗ’ 형 어미로 달리 표현되었음은 중세 한국어의 특징이다. ‘ㅏ’ 형은 물음말이 없는 의문문에 사용되고, ‘ㅗ’ 형은 물음말이 있는 의문문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주어가 2인칭인 의문문에는 ‘-ㄴ다’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대 한국어에서는 의문문에 물음말이 있든 없든, 주어의 인칭이 어떠하든 의문형 어미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문법 현상이 역사적으로 없어진 예이다.
첫댓글 유익한 자료 감사합니다.
넘 어려워요 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