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리비아에는 베르베르인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에 카르타고, 그 이후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7세기, 이슬람교에 바탕을 둔 아랍 세력이 서진(西進), 북아프리카에 침입해 옴에 따라 리비아는 아랍화했다.
15세기부터 4세기 이상 리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되었다가,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伊土戰爭)으로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차지하였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리비아의 식민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이탈리아령이던 트리폴리타니아, 키레나이카, 페잔의 3지역이 연합왕국을 구성, 1951년 12월 24일에 리비아 연합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1969년 9월 1일, 국왕의 외유 도중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카다피는 아랍 민족주의와 사회주의화 정책을 추진, 1972년에 이집트, 시리아와 연합하여 아랍 공화국 연방을 세웠지만, 1977년 이집트의 친 이스라엘 정책에 반발하여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카다피는 리비아를 그 자신의 독특한 이슬람 사회주의에 근거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으며, 그의 사상은 녹색서(the Green Book)에 잘 나타나 있다. 카다피 정권은 반미주의에 입각하여 미국과 서방 세계를 상대로 수차례의 테러를 감행했으며 (로커비 사건 등), 그 결과 1986년에는 미국의 공습을 받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도 핵무기 개발과 인권 탄압 등으로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이루어져, 카다피가 서방에 대한 개방을 선언한 2003년까지 계속되었다.
현재(2011년)는 민주화 운동이 벵가지에서 일어났다가 카다피 정권의 정부군이 벵가지에 폭격 및 공격을 감행하여 국제적 비난을 받았었다. 시민군이 생겨나 리비아 도시를 카다피 정권으로부터 해방시겼다. 시민군이 그후로부터 나토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시민군이 해방시키는 도시 수가 늘어남에 따라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수립되어서 카다피 정권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하여 트리폴리까지 공격을 하여 트리폴리를 해방시키고 녹색국기가 내려지고 리비아 왕국 국기였던것이 다시 올려졌다. 카다피 정권과 친카다피 정부군이 장악을 하고 있는 시르테, 사브하, 바니왈리드으로 축소됨에 따라 시민군과 나토(NATO : 북대서양 조약기구)군의 총공세가 이어졌다. 결국 2011년 10월 20일 카다피는 시르테에서 사망하였다
아랍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부에 소수의 베르베르인이 살고 있다. 리비아는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아랍어가 사용된다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리비아의 무슬림은 전체 종교인의 97%를 차지한다. 이 나라는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리비아의 과거 국기-자마히리야 시절의 녹색 오직 한 색으로 이루어진 국기 역시 이슬람교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에서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겠다라고 밝혔다.
기독교 교회의 대부분은 오리엔탈 정교회인 콥트교회(Coptic Orthodox)이며, 6만 명이 콥트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이다. 로마 가톨릭에서 신앙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은 4만 명이며, 두 명의 주교가 지도한다. 소수의 성공회 교회가 있으며, 이집트 교구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