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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9주기_소유의 포기가 제자의 길
누가복음 14:28-33
28.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29.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30. '저 사람은 집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때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적을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 먼저 앉아서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32. 만일 당해 낼 수 없다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청할 것이다.
33.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9주기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사건을 부르는 말입니다. 전체 탑승자 476명 중 172명만이 생존하고 299명이 사망, 5명이 실종된 대형 참사였죠.
세월호는 당일 오전 8시 49분경 급격한 변침으로 침몰이 시작되었으나, 선내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반복됐고 구조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초기 대응 시간 지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의 소극적 구조 등 총체적 부실로 발생한 최악의 인재라 할 수 있습니다.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거센 요구에 세월호 선체 인양 작업은 3년이 지난 2017년 3월 22일 시작되었고, 한 달여 만에 인양 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 세 차례에 걸친 해양 수색 작업으로 미수습자 9명 가운데 4명의 유해가 수습되었죠. 추가 수색을 원하는 유가족 등의 요구로 수색 작업이 10월 19일까지 연장되었음에도 5명의 유해는 수습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9주기가 되는 지금까지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이어진 진상규명 시도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보수 정치권의 방해로 성과를 내지 못했죠. 가장 최근에 발족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도 끝내 세월호 침몰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지난해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국민의힘의 반대로 실효적인 조사권을 갖지 못한 법적 한계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참위가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안했던 권고안도 지금껏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책임자 처벌도 참담한 수준입니다. 수사를 방해하고 진실을 은폐했던 국가 책임자들은 전원 무혐의 판단을 받았고, 참사 당시 구조 책임을 방기했던 해경 지휘부도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사참위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도 전원 무죄를, 세월호 참사 당시 최초 보고 시간과 관련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를 받았던 이들도 전원 무죄를 받았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는 사이, 지난해에는 국가의 책임 방기로 또다시 159명이 목숨을 잃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8일)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기억연대 등 시민단체가 모여 세월호 참사 9주기 시민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세월호 참사 전후 발생한 잘못과 국가 폭력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 ▲진상규명을 위한 추가 조치 ▲사참위가 권고한 재발 방지 대책과 추가 조사 등의 권고 이행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및 국가와 공무원 처벌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혐오 및 2차 가해 중단 ▲세월호 참사 기억과 추모 사업의 차질 없는 이행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 당연한 요구가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정상적인 세상이 오길 기도합니다.
<한겨레>가 지난 10일, 3월 기준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소득 불평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소득 최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포인트 증가한 11.7%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비교 가능한 30개국 중 멕시코(8.7%) 다음으로 큰 증가 폭이었습니다.
또 소득 최상위 10%의 비중도 같은 기간 2.5%포인트 증가한 34.4%를 기록했죠. 최상위 계층으로 소득 집중 현상은 금융위기,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세 정책을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가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입니다. 특히 경제 위기 때는 저소득층이 받는 충격이 고소득층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정부의 재정 투입을 통한 저소득층 지원은 더 절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에도 우리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은 인색하기만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복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팬데믹에 이은 인플레와 저성장, 고금리 등 복합위기를 맞이한 윤 정부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걱정이 큽니다.
윤정부 들어서서 부자 감세와 경기 침체로 올해 세수가 최소 20조 원 가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적자를 메꾸기 위해 유류세 인하 폐지 등 서민 증세를 통한 해결을 꾀하고 있습니다.
윤정부 들어 작년 무역적자는 478억 달러였습니다. 올해 3월까지의 무역적자는 241억 300만 달러로 작년 무역적자의 절반에 이르고 있죠. 이대로 간다면 무역적자가 천억 달러에 달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전망도 있습니다. 무역적자의 원인은 반도체 수출 부진과 가격하락, 대 중국 무역 적자가 주된 이유입니다. 반도체 수출 부진은 미국이 대만과 손을 잡고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에 영향이 큽니다. 대 중국 무역적자는 윤정부 스스로 미일 동맹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중국에 적대적 행동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극심한 경제 위기 속에서 각각의 블록을 형성하며 질서 재편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경제패권을 두고 분쟁이 끊이질 않았죠. 우크라이나 전쟁은 신냉전 질서 형성을 통한 미국의 패권 전략에서 비롯 되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결제를 루블화로 받고 있고, 사우디는 원유 결제를 위안화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국제 경제 동맹인 브릭스(BRICS)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달러의 글로벌 패권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공동 통화 창출에 나서고 있습니다
세계의 외교 무대도 달라졌습니다. 미국이 인도 태평양 지역에 집중하는 동안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고, 중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브라질 중심의 브릭스 국가들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고, 유럽 연합도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력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2000년까지만 해도 세계 GDP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0.3%와 3.6%였을 정도로 절대적 격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1년에는 미국 24.2%와 중국 18.4%로 격차가 많이 줄었습니다. 이 수치는 미국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지나갔음을 보여줍니다.
G7(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5%에서 2021년에는 44%로 1/3이나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브릭스 국가들은 2000년 8%에서 2021년 26%로 증가하였죠.
미국은 지금 그들이 마구 찍어낸 달러의 여파로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고 여겨졌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실리콘밸리(SVB)은행이 파산하며 매우 심각한 금융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연준은 이 위기가 별거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붕괴가 시작된 것으로 보는 거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일이 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는 물음을 주시며 병자를 고쳐주십니다(3-6). 또 손님들이 저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누가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가서 앉지 말라“고 권면하죠(8-11).
11-24절에는 잔치 자리에 대한 말씀을 들려 줍니다. 잔치 자리에 핑계를 대고 오지 않는 사람 대신 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같은 사람을 초대하라고 가르치시죠. 그래야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해야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26-27).
이 장황한 이야기 뒤에 오늘 본문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요절은 33절의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두 가지 예를 들죠.
하나는 망대를 짓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겠느냐?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집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가 벌인 상수도 공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매우 악랄하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주후 30년경 빌라도는 예루살렘 동남쪽 성 밖에 큰 망대를 세웁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이 늘어나자 실로암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 드리는 대단위 상수도 공사를 감독하기 위한 망루였습니다. 그런데 이 망대가 부실공사로 무너져 내려 인부 18명이 압사당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이 상수도 공사는 빌라도의 주먹구구식 행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상수도 공사의 재원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고르반라고 불리는 성전 헌금을 빼내 자신의 배를 채웁니다. 유대인들은 고르반에까지 손을 대는 빌라도와 마찰을 빚게 되고 곧 폭동으로까지 번지게 되죠. 빌라도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합니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고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죠.
재위기간 동안 사사건건 유대인과 마찰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한 빌라도는 그 학정과 성전의 재물까지 노리는 탐심으로 결국 총독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 3대 황제인 칼리귤라에게 사형 판결을 받고 자살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예수님은 또 한 가지 비유를 더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때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적을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 먼저 앉아서 생각해보지 않겠느냐? 만일 당해 낼 수 없다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청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소유의 포기를 강조하시며 든 두 가지 예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첫째, 빌라도의 망대 이야기는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탐심에 눈이 멀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을 죽게 만드는 삶에 관한 것입니다. 빌라도에게 상수도 공사는 자신의 치부에 좋은 사업이었죠. 백성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한다는 명목으로 성전 금고를 털어 축재할 수 있었던 겁니다. 더 많은 돈을 착복하기 위해 부실 공사를 강행한 빌라도에 의해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기는 참사가 일어납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떠 올리게 됩니다.
왕의 평화협정 이야기는 그와는 반대로 전쟁의 승리라는 과욕에 빠지지 않고 수치스럽지만 백성과 나라를 살리기 위해 한일이라고 강변하는 지도자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억지 명분을 만들어 민족과 나라를 팔아먹은 지도자들의 이야기죠. 일제 강점기의 을사오적이나 지금 나라를 송두리째 미국과 일본에 넘기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이런 자들입니다.
이 두 가지 태도가 제자들의 삶 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의 것을 탐내서도 안 되지만 진리의 길을 간다면서 자신의 소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굴종하는 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만 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버린다’라는 아포타세타이(ἀποτάσσεται)란 동사는 용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즉, 사람에게 쓰일 때는 ‘절교하다’의 의미이고 물건에 쓰일 때는 ‘포기하다’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소유를 버리라는 말은 보이는 재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비롯한 모든 무형의 것들과의 절연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집착이나 욕망 같은 것들을 모두 제거하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결국 소유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재물을 탐내지도 말아야 하지만 재물을 배격하지도 않는 것이죠. 예수님은 가난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가난해져서 평등과 평화를 구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소유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야 하죠. 즉 이 세상에는 내 것이라 할 재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물은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은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와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나 처자, 형제자매라는 혈연 역시 나에게 있어서 모든 피조물과 동등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이 말은 나의 친지들을 위해서 다른 피조물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내 자식을 서울대 보내기 위해 학교 폭력을 감추거나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또 다른 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제자의 길이라는 것이죠.
부활절 2주,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제자의 길을 기꺼이 걸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늘리거나 지키기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치 않는 이 시대의 페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떨쳐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조선일보 처벌입법을 요구하는 도보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을 걸어서 방문하여 처벌입법 설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00년이 넘는 동안 나라를 팔아먹고, 독재를 찬양하고, 기득권의 꼭대기를 차지하며 백성들을 괴롭힌 범죄집단인 조선일보 처벌이 공정한 세상을 세우는 첫걸음이 되리란 것입니다.
지난 100여 년 넘게 친일, 친미 행각을 통해 구축된 기득권 카르텔이 무너지고,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는 세상을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이끄심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202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