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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먼저 연천군을 방문해 주신것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여러분을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로서 전곡리선사유적에서 근무하고 있는 000입니다.
방문객이 미리 알아두어야 할점
전곡리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석기는 모두가 매장문화로서 경복궁, 불국사에서와 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것을 볼수가 없습니다. 약 30만년전 인류의 먼 조상이 사용했던 석기가 땅속 3-6m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1978년 발견이래 20차례에 걸처 8천여점의 석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전곡리선사유적지
전곡리선사유적지는 1979년 국가사적 26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선사유적지 중에서 유적지가 제일 큰 23만평에 해당하고 유적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지구에서 5지구까지 구획을 정리하였는데 여러분이 서 있는 이곳은 제2지구가 되겠습니다.
발견동기
전곡리 구석기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다음과 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에서 미2사단에서 공군하사로 근무하던 그렉보웬은 영내클럽에서 사귀던 한국애인을 데리고 1978년 1.14일 한탄강 강가로 놀러오게 됬니다. 그렉보웬은 미국인디에나 대학에서 사케타보르다즈라는 석기전공교수에게 고고학을 전공한후 학비를 벌기위해 군에 입대하게 된다. 이들은 점심을 먹기위해 흙을 뒤집어 놓은 묘역근처에서 주먹도끼3점과 찍개류1점이 발견되면서 전곡리유적이 역사의 긴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가 전국네티즌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베스트 그곳을 찾아라' 이벤트에서 대한민국 최고 여행지로 선정됐다고합니다 . 한탄강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살아난 재인폭포 절경은 관광객들이 감상해야할 명소로 소개되었으며 K-water는 연천 7경 중 하나인 재인폭포의 관람여건 개선을 위해 총 사업비 26억원을 투입, 6개월간의 공사를완공했습니다. (신문스크랩)
한 줄광대의 아내를 탐낸 사또가 큰 잔치를 베풀고 폭포에 줄을 매놓은 다음 광대에게 줄을 타고 폭포를 건너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광대가 폭포의 중간에 이르렀을 때 미리 숨겨놓은 부하에게 줄을 끊어 버리도록 지시하였다. 이같은 고을 원님의 흉계로 재인은 그만 폭포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사또는 광대의 아내를 강제로 취하려 하였으나 이미 사건의 전말을 눈치 챈 광대의 아내는 사또의 코를 물어뜯고는 폭포 아래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하여 코문리라 했는데 후에 고문리로 변했다.
인류의 진화그림입니다. 인류의 직립원인인 왼쪽의 루시 부터 오른쪽 상기인까지 모형이 있는데 먼저 팔을 볼까요 , 인류가 진화하면서 팔이 점점 더 짧아지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두개골의 용량이 점점 더 커져왔습니다.
고생인류에서- 현생인류로 진화하는과정에서 뇌의 크기가 점차 커졋는데
오스트랄로피데쿠스의 뇌용량은 360-650ml. 호모하빌리스 750.
호모에렉투스는 780-1230ml 호모샤피엔스 1430-1480 호모샤피샤피엔스 1220-1740정도입니다.
세 번째는 털이 점차 없어지는것입니다
193종의 유인원과 원숭이 가운데 오직 우리인간만이 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털이 없으면 이나 진드기 벼룩같은 기생충이 숨을 만한 곳이 없으며 털이 없음은 자신이 기생충없는 건강한 사람임을 이성에게 광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 구애 도구라는 것입니다.
털하나 걸치지 않는 몸은 벌거벗은 몸은 섹시하게 인식되고 그러면서 인간은 서서히 진화해 왔습니다.
생물의 분류단계 = 종.속.과.목.강.문.계
인간은 동물은 과에서부터 다른길로 들어선다.
사람 = 영장목 인류과 호모속
동물 = 영장목 유인원과 판속
①루시: 350만년 전
에티오피아의사막에서 발견했다. 전골격의 반정도가 수습되었으며, 신장 1m 몸무게 28kg가량의 20세 전후의 여성. 직립 2족보행을 했으며, 뇌 용적은 작다. 루시라는 이름은 발견된 날 밤 조사대의 캠프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비틀즈의 곡명에 유래한다.
②파란트로푸스보이세이 : 230만년전
건과류나 뿌리같은 질기고 단단한 음식을 씹어먹은 것으로 보이는데 튼튼한 턱 근육을 지탱하기 위해 머리에는 근육의 돌기가 올라와 있다.
③ 루시앙: 루시가 발견된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두개골의 크기가 커서 남성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으로 볼때 이때에도 남성과 여성의 신체크기가 다르다는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④투마이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 600∼700만년
중앙아프리카의 차드에서 에서 발견된 초기 인류화석. 2002년 프랑스의 연구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투마이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투마이란 '삶의 희망'이라는 뜻이다.
화석은 바로 700만년 전후, 인간- 침팬지의 공동조상에서 종이 분기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인류 발생지에 관한 학설도 재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발견된 인류 화석은 남오스트레일리아와 동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이번의 화석 발견은 700만년 전부터 중앙아프리카에도 고인류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⑤자바의 호모에렉투스 : 80만년전 불을사용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발견된 인류화석, 에렉투스는 똑바로 서서걷는사람이란 뜻으로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하였음을 보여준다.
⑥ 베이징 원인(호모에렉투스) 70~30만년전 불을사용
깊고 경사진 앞이마 두꺼운 눈두덩이뼈 뒷머리는 짱구가 특징
⑦ 네안데르탈린: 20만년전 네안데르탈린은 시체를 부장품과 매장
빙하기의 추운기후를 이겨내고 유럽과 서아시에서서 번성. 현생인류와 공존하다 멸망했는데 원인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⑧ 만달인 : 12,000년 전후
후기구석기에서 끝무렵에서 - 신석기로 넘오는 시기에 살았다. 한반도 직계조사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앞머리뼈에는 현생인류에게서만 잇는 화살융기가 들어있다. 이 만달인은 석기와 골기를 사용했다. 체질인류학 검증을 통해 만달이늬 나이는 30살정도이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한반도의 인류조상은 민족의 뿌리가 평양을 중심으로 뻗어나갔다는것을 강조하면서 남,북대비 역사우위론을 합리화하기위한 수단이다.
우선 유적지 주위를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한탄강이 유적지를 감싸면서 동에서부터 남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30만년전 이곳에서 인류가 번성한것은 다음과 같은 천혜의 조건이 있습니다 . 우선 식수와 고기를 잡아먹을 한탄강입니다.
이곳 강가로 내려가 고기를 잡아먹고 조개류를 채집하고 돌을 깨트려 석기를 만들었습니다. 석기는 한탄강에 널리 분포한 석영, 규석, 사암등의 돌로 날카로운 석기를 만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북쪽을 바라봐 주세요 전곡에서부터 연천까지 넓은 용암평원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곳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열매를 체집하고 나무뿌리의 구근을 캐어서 식생활을 해결했습니다.
이렇듯 전곡 한탄강의 선사유적지는 고인류가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습니다.
한탄강의 특징
한탄강은 이름이 주는 느낌이외도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특이한 지형을 같고있으며 형성과정도 특이하고 우리나라의 강은 일반적으로 범람원 즉 충적평야가 넓게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논,밭이 주택이 강수위와 거의 같아 큰비만 내리면 강이 범람해 큰 피해를 가져다주고는 합니다
그런데 한탄강은 평원분지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계곡이 좁고 깊게 파인것이 특징이다며 물살이 다른강에 비해 빠른편으로서 전체길이가 110km 평균강폭 60m인 이강은 웬만한 홍수에도 범람하는일이 없습니다. 또한 계곡에 바짝다가서지 않는한 물길을 좀처럼 볼수없다. 물과 계곡을 보기위해서는 절벽에 다가서거나 30-40m의 강가로 내려서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강이 평원 한가운데를 좁고 깊게 깍아내려갔기 때문이며 이곳에는 기암괴석이 많아 재인폭포, 순담계곡, 고석정, 직탕폭포, 등 상류쪽에 명승지가 많이있습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우리가 여기를 연천,전곡리선사유적지라고 부르는데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됩니다. 이는 문자를 사용했느냐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느냐로 구분되는데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 신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까지를 말하고 역사시대는 기록이 있는 시대 즉 철기시대부터를 말합니다. 전곡리유적지는 기록이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선사가 붙어 전곡리선사유적지라 부릅니다. 어린이날에 맞추어서 매년 구석기축제가 성황리에 펼처지고 있으며 올해로 21회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 올해도 5.3일 ~5.3일까지 펼처져 백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으니 축제를 못보신 분들은 내년도에 꼭 한번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거지 = 비, 바람과 맹수의 습격을 벗어나고져 자연동굴을 택했던 사람은 집이 필요없겠지만 들판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주거가 필요하며 막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막집은 비, 바람을 피할수있게 막지은 집이고 움집은 땅을 파고 지은집이며 움막은 땅을파고 막지은집입니다.
구석기인들의 거주지는 동굴과 토굴 막집에서 살며 이동을 하였으며 구석기인들이 살았던집은 동굴만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며 강가근처에서 나뭇가지와 돌을엮어 막지은집에서도 살았습니다.
석기와 구석기
사람이 어떤 사용할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든 도구를 석기라고 합니다. 구석기란 오랜 옛날 인류가 어떤 사용할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든 돌의 도구를 구석기라 합니다. 또는 말뜻 그대로 구석기는 오래된 돌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돌이 아무리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다 구석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돌에 인공적인 동기를 가한 흔적 즉 목적이 있었나 없었나를 보고 석기와 짱돌로 구별짓게 됩니다. 짱돌이 아무리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구석기가 될수없는 이유는 인공적인 동기를 가한 흔적이 없어서 짱돌로 남아 있는것입니다. 또한 구석기시대구분은 지금으로부터 1만년전을 구석기라 하고 1만년 이후를 신석기라 하고 3천5천년 이전을 청동기시대라 합니다.
석기와 짱돌
전곡리유적지에 오시는 분중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지표에서 주운 깨진 돌을 들고 와서 이게 석기냐 아니냐를 물어보는 일입니다. 돌이 석기로 인정받으려면 고고학자들이 기술학적 특성과 지질학적 특성을 꼼꼼히 살펴서 발굴합니다. 여기서 기술학적 특성이란 돌이 깨진 형태, 쓰인 용도로 구분짓는 것이고 지질학적특성이란 어떤 지층에서 출토되었느냐하는 것을 따져 살펴봅니다. 고고학자들이 땅을 팔때면 아무런 순서없이 파지는 않습니다. 네모나게 땅을 파거나 하얀선을 그어 넣는데 각각의 칸속에서 어떤 유물이 나오는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방안법이라고도 하는데 grid(격자눈금)법이라합니다. 땅속에다 하dis선을 그려놓고 보는것은 흙 색깔에 차이가 있다는 뜻인데 이렇게 표시하면 구덩이인지 기둥자리인지 집자리인지 쉽게알수 있습니다.
도구의 사용은
인간에게 대담성을 부여했으며 몽둥이가 연장이자 무기가 되어 몇 명씩 무리를 지어다니면서 위험이 닥치면 협력하여 맹수에 대항하기시작했고 먹을것을 찾아 멀리까지 나감으로서 인류의 생활공간을 확대시켰습니다. 도구의 사용으로인하여 종전 하루종일 음식을 구하던 채집가에서 사냥꾼으로 변화여 식량을 구하는데 드느 시간을 절약할수 있었으며 종전 먹지도 못하던 동물들의 살점을 맛보았습니다. 이렇듯 인류에게 먹는시간에서 많은 시간을 해방시켜주어 인류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죠,
전곡리의 구석기인은 우리의 조상인가
전곡리구석기유적지에서 살았던 고인류는 인류의 먼 조상쯤에 해당하지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닙니다. 이때에는 지구에 빙하와 간빙기가 순환적으로 찾아와 지구의 온도에 따라 또는 먹이의 증감에 따라 고달프고 긴 이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조상은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살았을까요? 우리조상은 4천년전 인 청동기시대의 단군이 아니라 2만5천년 좀돌날 몸돌이라는 석기를 사용한 구석기인이라고 합니다. 2만5천년은 마지막 빙하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로 중국과 한반도사이의 서해는 걸어서 왕래할수 있는 육지였습니다. 따라서 우리조상들은 중국으로 부터 걸어서 한반도로 이주해왔다고 볼수 있으며 그들은 한반도에 정착해 살면서 서해벌판에 바닷물이 들어오는것을 직접 목격했을것입니다.
은대리 물거미
연천 은대리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제412호인 물거미 형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1속 1종만이 존재하는 희귀한 거미로 공기주머니를 만들어 물속에서 거의 모든 생애를 보내는 독특한 생활사를 가지며 수명은 1년으로 일반적인 거미는 암컷이 큰데비해 물거미는 숫컷이크며 7 ~15mm정도 크기입니다.
연천의 상징물
연천의 상징물은 고롱이와 미롱이다. 고롱이는 옛날을 뜻하며 미롱이는 미래를 뜻하며 과거와 미래를 잘 조합하는 발전된 연천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측량 기준점으로서 발굴할때 모든점의 좌표가 됩니다.
전곡리구석기 세계 고고학계의 비중
전곡리선사유적지가 세계고고학계에서 높은비중을 차지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주먹도끼가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1978년 전곡리에서 그렉보웬에 의해 주먹도끼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고도로 발달된 무기인 주먹도끼가 발견되고 동아시아에서는 원시형태의 찍개만이 존재한다는 이론인데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출토됨에 따라 아프리카와 유럽의 석기제작 기술이 동급반열로 올라서게 됩니다. ㉡고인류의 지적 사고능력이 유럽과 아프리카가 월등하다는 것인데 전곡리에 주먹도끼가 출토됩에 따라 거의 같은 동급수준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것을 요즈음 말로 바꿔서 말하면 유럽과 미국에서는 고도로 발달된 스마트폰이 만들어지고 동아시아에서는 그보다 훨씬 뒤진 디지털 핸드폰이 만들어진다는 것인데 한국에서 스마트폰을 만들게 됨에 따라 세계적인 이론이 깨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주먹도끼(hand axe)란
손에 쥐고서 찍고, 파고, 때리고 자르는 만능도구였으며 인류역사상 가장오랫동안 사용한 석기이며 인간은 두뇌가 발달함에 따라 직접떼기로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다가 한면만 떼어낸 외날찍개를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중기에는 두면을 떼어내어 보다 날카로운 날을 갖춘 양날찍개를 만들어 사용했고 후기에는 간접떼기를 이용하여 좀 더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주먹도끼를 만드는 방법
강가의 돌을 주어다가 큰 파편을 떼어낸 다음 양면을 돌아가면서 엇갈리게 타격하면 알맹이만 남게 되는데 이를 양면핵석기 도는 주먹도끼라고 합니다. 주먹도끼는 아무렇게나 순서없이 만드는게 아닙니다. 먼저 어떤것을 만들어 내고자 먼저 머릿속에서 밑그림을 그림 다음 제작한 석기가 되겠으며 지금의 만능 맥가이버칼 용도로 쓰여서 한손으로 잡아쥘수 있고 자르고 파고, 찍고, 때리고 찌를수 있는 만능석기입니다.
왼쪽은 후기구석기 시대의 세석기입니다.
전기구석기는 갈수록 석기가 크고 둔탁하며 후기구석기로 내려올수록 경박단소 합니다
우측은 중기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석기로 프랑스 무스테리의 이름을 땄습니다.
먼저 웃부분을 타격하여 뚜껑을 떼어낸후 돌아가면서 타격하는 수법입니다.
석핵이라고도 하며
몸돌이라 부르며
원돌에서 박편이나 격지를 떼어내고 남은돌을 석핵이라 합니다.
서양 주먹도끼와 전곡리 주먹도끼의 차이점
그럼 서양의 주먹도끼와 전곡리의 주먹도끼가 어떻게 다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럽, 아프리카주먹도끼는 타격면 작고 타격점의 깊이가 깊지 않습니다.
반면 전곡리의 주먹도끼는 타격점이 거칠고 크며 깊습니다. (윗 사진 석핵참조)
다시말해 유럽과 아프리카 주먹도끼는 성형이 잘되 있고 정형화된 도구인 반면 전곡리 것은 투박합니다. 이런 형태를 띄고있는 것은 석기의 재질에서 또는 손의 섬세한 손놀림에서 차이가 나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석기의 재질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전곡리는 규암. 석영, 사암, 맥암 등의 석재를 사용하고 서양에서는 플레이트 재질의 석재를 사용하여 만들고 가공하기가 쉽습니다.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인 오스트랄로피데쿠스로서 약 3백만년전 활동했던 고인류다.
원숭이종에서 분파된 첫번째 인종으로 오스트랄로피데쿠스는 남쪽의 원숭이라는 뜻
호모하빌리스: 230만년전 출현
오스트랄로피데쿠스에서 진화되었으며 손쓴사람이라고 불리운다.
호모 에르가스터 (일하는 사람): 160만년전 출현
호모하빌리스가 진화
호모에렉투스 :(50만년전) 출현
호모에렉투스 =(북경원인) =시난트로푸스
석기를 만들었으며 불을 사용
네안데르탈린 : 20만년 ~4만년
호모샤피엔스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두개골이 컸고 정교한 석기를 만들어 사용 . 후에 사멸되었다.
매장풍습이 발달하게 되고 종교적관념이 나타났다
호모샤피엔스 : 3만5천년전 출현
현대인의 선조이며 동굴에벽화 잔석기 골각기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