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베스크
아라비아풍(風)이라는 뜻으로서,
이슬람교 사원의 벽면장식이나 공예품의 장식에서 볼 수 있는 아라비아
무늬. 문자·식물·기하학적인 모티프가 어울려서 교차된 곡선 가운데
융합되어가는 환상적인 무늬이다. 후에 그리스도교 미술에도 응용되고,
이슬람교에서는 금지되고 있던 동물·인간상도 혼합한 당초(唐草)무늬를
만들게 되었으며, 이런 종류의 것도 광의의 아라베스크라고 한다. 한편
이 용어는 후에 다른 분야의 예술양식을 나타내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음악에서는 하나의 악상(樂想)을 화려한 장식으로 전개하는 악곡(樂曲)을
말하며, 슈만은 1839년에 작곡한 피아노 소곡(작품번호 18)에 이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드뷔시의 초기 피아노곡(88)이 이 계열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무용용어로서는고전 발레 자세의 하나를 지칭하는데,
한 발로 서서 한 손은 앞으로 뻗고 다른 한 손과 다리는 뒤로 뻗은 자세를
아라베스크라고 한다.
아리아
오페라·칸타타·오라토리오
등에서 나오는 선율적인 독창부분(드물게는 2중창). 영창(詠唱)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레치타티보(서창)와 대조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많은
경우 기악의 반주가 따른다. 레치타티보가 대사(臺詞)를 노래하는 것인데
반하여, 아리아는 모든 음악적인 표현수단을 구사하고 가수의 기량을
나타내는 일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소위리트처럼 그 자체로서
완결된 노래가 아니라 오페라·오라토리오 등의 내용의 극적인 진전과
유기적인 연관성을 지니고있다. 17세기 초엽 이탈리아에서 생겨난 오페라는
처음 극시(劇詩)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입장에서 스틸레 레치타티보(낭창양식)로
시종 일관하고 있었다. 그 반동으로 18세기 나폴리악파의 오페라에서는
아리아의 여러 가지 형식이 발달하였다. 그 전형은 ABA의 세도막형식을
따른 다 카포 아리아(da capo aria)이다. J.S.바흐의 종교작품의 아리아도
이 형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 많다. 19세기 이탈리아오페라의 작곡가들도
아리아로써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 주는 일에주력했는데, 바그너의 혁명적인
악극 이후 무소르그스키나 드뷔시 등의 근대오페라에서는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데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기교적이며 장식적인 아리아는 쇠퇴하였다.
이 밖에 선율적인 기악의 소품을 ‘아리아’로 부르는 일도 있다.
아베마리아
성모 마리아를 칭송하는 가곡. 대개 천사축사(天使祝詞)의 라틴어 원문을
가사로 하여 종교적 열정을 노래한 장중한 곡들이다. 16세기에 아르카델트가
작곡한 것은 그의 세속곡에 후세의 가사를 들어맞춘 것이며, C.F.구노의
곡은 아름다운 선율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다. 슈베르트의 독창곡은
W.스코트의 시 《호상(湖上)의 미녀》를 작곡한 것으로 천사축사와는
다르다.
아인자쯔
교회또는 연주개시의 지시.
카논이나 푸가에서 각 성부의 주제와 응답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보통 지휘법에서 연주개시 직전의 예비 박을
가리킨다.
아 카펠라
반주가 따르지 않는 합창곡.
‘예배당 또는 성당식으로’ ‘성당을 위하여’의 뜻으로, 원래는 16세기경의
교회용 합창곡(팔레스트리나)의 무반주 폴리포니양식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요즘은 교회음악에 한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무반주 합창곡을 가리키게
되었다.
악극
바그너에 의하여 창시된 오페라양식.
독일의 오페라는 바그너에 의하여 새로운 형태를 얻게 되었는데, 그
새로운 형식을 일반 오페라와 구별할 때 이렇게 부른다. 바그너는 종래의
오페라형식에 반대하여 ‘전체예술작품’을 제창하고, 오페라는 단순히
음악·연극·조형예술 등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실현하는
데 있어 다른 모든 예술이 이를 거들어주어야 하며 그 것이 참된 예술이라
하였다. 이 때문에 대본의 가치가 존중되고 극적 내용이 강한것, 고도의
사상성을 가진 것이 선택되었다. 또 종래의 아리아 편중의 번호오페라의
방법을 버리고 음악 전체가 단락감을 피해 무한히 계속되는 무한선율양식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라이트모티프[시도동기(示導動機)]가 쓰이는 것이
특징이며 이것은 음악적 동기를 단어와 같이 일정한 의미를 갖게 한
것으로, 이로 인하여 음악이 항상 극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진행된다. 이 밖에 가곡풍의 멜로디나 레치타티보는 배제되고 대사의
억양을 음악의 흐름 속에 이입시키는 방법에 의해 음악적 표현능력과
언어를 융합시키려고 하였다. 또 관현악의 표현 범위도 확대되고 편성도
커지는 경향이 있다. 바그너 이후, R.슈트라우스나 H.피츠너의 오페라도
이렇게 불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바그너 자신은 이 명칭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악장
하나의 악곡이 2개 이상의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각 부분이 제각기 완결적인 독립성을 갖고 있을
때의 그 각 부분. 이 용어가 가장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소나타·교향곡·협주곡·실내악곡
등으로, 이 곡들은 보통 3,4 또는 그 이상의 악장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다악장형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 악곡이 악장의 명료한 끊임새를
갖지 않고 계속되는 경우는 특히 1악장형식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악장의
호칭으로는 제1악장·제2악장 등 외에, 느린악장·빠른악장·양단(兩端)악장·끝악장
등이 있다. 또 모음곡도 일종의 다악장형식이지만 모음곡에서는 제1곡,
제2곡으로 부른다.
안자츠
노래 또는 연주 시작의 조정과
시작 방법
①취주악기에서 마우스피스를 입술에 대는 방법
②현악기에서
활을 대는 방법
③노래 시작할 때 목소리의 조정.
성대 상부 공명감의 상태를 조정하는 것
안티포나
그리스어의 'antiphonos(앞에
내는 음)'에 유래. 2개의 합창대나 기악군(群)이 교대로 연주 하는 형식
본래 가장 오랜 가톨릭 성가의 한 형식으로서 시편을 2개의 합창대가
교대로 불렀다.
알바 브레베
C로써 나타내는 2/2박자. C의 수직선은 쓰여진 음계의 길이 가 절반으로
된다는 뜻.
알렐루야
헤브라이어로 ‘야훼를 찬양하라’의
뜻. 그리스도교의 전례에서 쓰였는데, 《70인역 성서》에서 ‘알렐루야(allelouia)’라고
그리스어로 고쳐 썼기 때문에 라틴어에서도 ‘알렐루야(alleluia)’로
쓰게 되었다. 음악에서는, 중세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기의 폴리포니
악곡에 많은 ‘할렐루야’제목의 곡이 있다. 특히 17세기 이후의 합창
작품에서는 웅대한 푸가 형식에서 채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헨델의 《메시아》(1741)
가운데 ‘할렐루야 코러스’와 모차르트의 모테토 《엑술타테 유빌라테》의
마지막 장의 ‘할렐루야’가 특히 유명하다.
알르망드
'독일 무곡'이라는 뜻
①독일에서 기원하며 16세기 중엽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행한 보통파르기의
무곡.
②17~18세기 모음곡을 형성하는 대조적인 4개 무곡의
처음이자 전주곡에 계속되는 1악장에 사용되었다.
③18세기 후반
3박자의 활발한 무곡으로써 렌틀러와 비슷한 왈츠의 전신적인것.오늘날에도
쉬바벤이나 스위스의 농민사이에서 행하여 지고 있다-하이든[트리오
No.5],베토벤[바가텔르op119]
알토
알토랩소디
독일 작곡가 브람스의 작품으로, 반주가 딸린 합창곡(작품번호 53).
원제목은 《괴테의 겨울의 하르츠여행의 단편에의한 알토독창·남성합창
및 관현악을 위한 랩소디》로 1869년에 작곡되었다. 《겨울의 하르츠여행》으로도
알려졌으며 괴테 시의 단편 제5∼7절에만 곡을 붙인 것이다. 당시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의 셋째딸 율리에에게 애정을 품고있었는데 그녀는 다른
백작과 약혼해버렸다. 브람스는 실의와 슬픔에 잠겨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알토색소폰
색소폰족의 알토악기. 색소폰에는 합주편성을 위해 최고음 소프라노에서
최저음 베이스색소폰까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음색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에 알토색소폰은 선율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 가는
것에 테너색소폰이 있다.
앙상블
'함께 동시에'라는 뜻
그룹연주로써성악에서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중창,기악에서는 여러 가지
악기가 결합된 중주.
앤덤
16세기 헨리 8세가 영국 국교회의 수장(首長)이
되었을 때 국민의 새로운 전례가로서 장려한 것. 가사는 성서에 의한것이며
짝수 박자를 즐겨쓰며 화성적이다.헨델의 앤덤이 화려하고 극적인 작품이다.
에스탕피
12∼14세기에 유행했던 기악
형식. 성악의 반복진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4∼7구(句)로 이루어졌으며
각각 두 번씩 되풀이된다. 이 형식의 최초의 예는 트루바두르의 《오월:Ka1enda
maya》에서 볼 수 있으며, 이는 두 사람의 종글뢰르가 연주하는 에스탕피의
선율에 드 바케이라스가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다른 예는 기악곡에서
볼 수 있으며 13∼14세기의 작품은 에스탕피가 무도곡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되풀이되는 AA, BB, CC,…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에코세즈
18세기 후반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19세기 초엽 크게 유행한 무곡. ‘스코틀랜드 무곡’이라는
뜻이나 실제로는 스코틀랜드지방의 전통적 민속무곡과는 아무 상관도
없으며 오히려 잉글랜드의 전원무곡(田園舞曲)에 속한다.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등에게도 같은 이름의 곡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2/4박자로 된 빠른
속도의 소품들이다.
에튀드
연주기교의 연습용으로 작곡한
곡. ‘연구’ 또는 ‘습작’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음악에서는 보통 연습곡으로
번역된다. 기악이 성행하기 시작한 16세기 초에 나타났으며 특히 많이
작곡된 것은 18∼19세기 들어서이다. 당시 새로 개량된 피아노가 나타나자
작곡가·교수들은 새로운 연주법을 창안해 내는 데 주력했고, 공개 연주회가
성행함에 따라 단순한 연습용이 아닌 보다 높은 예술성을 지닌 연주회용
에튀드를 쓰는 데 전념하기 시작했다. 쇼팽의 에튀드를 비롯하여 슈만,
리스트, 스크랴빈, 드뷔시 등의 에튀드가 예술적으로 차원 높은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에피소드
삽화. 그리스어의 에페이소도스(epeisodos:추가해
넣는 것)가 그 어원이며 고대 그리스에서 합창대의 노래와 노래 사이의
대화 부분을 에피소드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
규정되어 있다. 오늘날의 문학이나 영화에서 원줄기에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가 삽입되어 작품에 변화를 주거나 내용을 풍부히 하기 위하여
이용되기도 하나 때로는 플롯에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도록 삽입하는
수도 있다. 음악에서는 간주(間奏)·삽구(揷句)라고 하며 악곡에 있어
한 주제로부터 다른 주제로 옮겨가는 사이에 삽입되는 부분을 말한다.
엘레지
음악에서 슬픔을 노래한 악곡.
비가(悲歌)로 번역되어, ‘원래는 슬픔의 시’, ‘죽은 이에 대한 애도의
시’를 뜻하였으나 18세기경부터 슬픔을 나타내는 악곡의 표제로 많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가곡(歌曲)으로 헨델의 오라토리오《사울》(1737)
가운데 <이스라엘인의 비가>, 마스네의 《복수의 여신들:Les
긮innyes》(1873)가운데 <세 여신의 비가>, 기악곡(器樂曲)으로
포레의 《엘레지》(1883) 등이 유명하다.
영국 데스캔트
13~14세기 영국의 3성 서법.
M부코프처가 도입한 말로 2성부 밑에
최저성부또는 테너와 6도,3도 병진행한다.
오라토리오
17∼18세기에 가장 성행했던
대규모의 종교적 극음악. 보통 성담곡(聖譚曲)으로 번역된다. 일반적으로
성서에 입각한 종교적인 내용을 지녔으며 동작이나 무대장치가 따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오페라처럼 독창·합창·관현악이 등장하나 오페라에
비해 합창의 비중이 더 크며, 이야기의 줄거리는 내레이터가 낭송(朗誦)한다.
오라토리오라는 말은 본디 이탈리아어로 가톨릭성당에서 ‘기도소(祈禱所)’를
뜻했으나 16세기 후반에 로마의 성필리포 네리가 기도소의 집회에서
사용한 음악이 계기가 되어 특정한 음악형식을 가리키게 되었다. 17세기에는
반종교개혁의 신도 강화책과 결부되어 이탈리아에서 발달, 카리시미를
정점으로 한 라틴어 오라토리오와 베네치아악파의 오페라양식을 받아들인
속어(이탈리아어) 오라토리오의 2개 파가 나타났다. 전자는 샤르팡티에를
마지막으로 쇠퇴하고, 후자는 스카를라티를 비롯한 나폴리악파를 중심으로
19세기 초엽까지 지속되었다. 독일은 처음 이탈리아어 오라토리오의
영향 아래 있었으나 17세기의 슈츠 이후 독일어의 오라토리오가 확립되고
J.S.바흐, 텔레만으로 계승되었다. 또 헨델은 《메시아:Messiah》(1742)
《마카베우스의 유다:Judas Maccabeus》(46) 등 많은 명작을 썼으며,
영어 오라토리오를 확립함과 동시에 오라토리오사(史)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하이든은 헨델의 웅대한 합창양식과 고전파 기악양식을 함께 살려 《천지창조》(98)
등의 걸작을 남기고 19세기 낭만파에서는 멘델스존, F.리스트, 베를리오즈
등이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오라토리오의 개념은 시대와 함께
확대되어 반드시 종교적인 제재가 아니더라도 관현악이 따른 규모가
큰 성악곡은 오라토리오로 불리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오네게르의 《화형대의
잔 다르크》(1938)와 같은 그리스도교적인 오라토리오와 함께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쇼스타코비치 등이 넓은 뜻에서의 오라토리오를 쓰고 있다.
오르가눔
⑴ 병행 오르가눔:9세기경에 행해진 가장 오래된 형태로,
주요성부(vox principalis)에 대하여 대성부(vox organalis)가 1음표
대 1음표로 아래 5도나 4도에 병행해서 움직인다. 그러나 4도의 오르가눔에서는
곡 전체에 병진행이 엄수되는 것이 아니라, 곡의 처음과 끝은 같은 음을
취하고 중간부만이 병진행을 취하는 것도 있다. 또 두 성부 모두 옥타브를
중복하는 일도 허용되었다. 이와 닮은 기법으로 중세 영국에서 행해진
3도병행의 형태는 지멜(gimel)이라 불리고, 또 14∼15세기에 나타난
6도병행은 포부르동(fauxbourdon)이라 불린다.
⑵ 자유 오르가눔:11∼12세기에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대성부는 역시 1음표 대 1음표의 형태를 취했으나
반진행이 많이 쓰이고, 성부의 교착(交錯)도 자주 보인다. 주요성부는
아래에 두어지고 때로는 1음표에 대하여 2∼4음표의 것도 볼 수 있다.
⑶ 멜리스마적 오르가눔:12세기에 들어와서 주요성부는 테너라 불리고,
대성부는 테너 위에 놓여, 길게 늘여지는 테너의 1음표에 대하여 풍부하게
장식된 악구를 연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태와 1음표 대 1음표가
뒤섞여 사용된 것도 있다.
⑷ 리듬적 오르가눔:13세기에 들어와서는
리듬적 선법에 의한 규칙적인 리듬의 대성부가 길게 늘여진 테너 위에서
불리게 된다. 이 무렵의 것에는 제3성부나 제4성부에 놓인 것도 있다.
그러나 다성음악의 곡 종류가 증대하고 세분화됨에 따라 오르가눔이라는
명칭은 차차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오르간
건반악기이면서도 파이프나
리드를 진동체로 하는 기명악기(氣鳴樂器).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오르간이라고
부르는 경우에는 리드 오르간을 가리키나 원래는 파이프오르간을 일컫는
말이다.
【분류】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① 2단 이상의 매뉴얼(손건반)과 페달(발건반)을 갖춘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이는 건물과의 밀접한 관계하에 제작된다. 교회 오르간, 콘서트
오르간, 극장오르간 등 용도에 따라 구분된다.
② 소형이고 무게가
가벼운 1단 매뉴얼을 포지티프 또는 레갈이라고 부른다. 또 모양이 매우
작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주하는 것을 포르타티프라고 한다.
③ 파이프가 없이 프리 리드를 사용한 건반악기가 리드 오르간이고,
유럽에서 많이 쓰이는, 바람을 내서 소리내는 것이 하모늄이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람을 받아들여 소리내는 것은 아메리칸 오르간이다.
송풍장치는 발로 밟아서 바람을 보내는 것과 전기로 보내는 것 등의
두 가지가 있다.
④ 스피커를 통해서 소리내는 오르간을 전자 오르간이라고
한다. 엄밀한 뜻의 오르간은 ①이고, ②는 합주용·반주용 악기, ③과
④는 넓은 뜻에서 오르간에 포함된다.
【역사】 오르간의 기원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리코더·피리 등을 음계순으로 나열해 만든 피리류,
즉 시링크스나 팡적(pan-pipe) 등은 기원전 수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것들은 모두 입으로 부는 것들이다. BC 26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크테시비오스는 물의 힘으로 일정한 압력을 보내는 송풍장치를
만들어 돌핀이라고 하는 삼각판(三角瓣)을 사용해 손가락으로 연주할
수 있는 시링크스를 발명하였다. 이것을 물 오르간이라고 불렀는데 오르간의
원시적인 모양으로 여겨진다. 물 오르간은 후에 아라비아인이나 그리스인의
애호를 받아 차차 개량되었다. 물에 의한 송풍장치는 점차 풀무로 대체되어
뉴매틱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파되어 8∼9세기
무렵부터 그리스도교회에서 많이 쓰이게 되었다. 교회악기로서의 오르간은
14∼15세기에 크게 발달하여 대형(大型)의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파이프 오르간의 기초는 이 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16세기의 르네상스시대에는
구조적인 개량도 이루어졌다. 교회용뿐 아니라, 일반 음악용의 포지티프도
많이 제작되어 합창음악이나 현악기·관악기와의 합주 등에 많이 쓰였다.
이 시대에 파이프나 스톱은 거의 오늘날 쓰이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제작되고, 17∼18세기의 바로크시대는 오르간의 전성기로 악기의 왕자로서
거의 완전한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 무렵에 부크스테후데, 파헤르베르,
바하 등 오르간음악의 거장이나 슈니트거, 지르버만 등 유명한 제작공이
나왔다. 19세기 낭만파시대의 오르간은 관현악의 음색이나 음량(音量)의
영향을 받았고 피아노음악의 기법을 받아들여 연주효과를 주로 하는
음악이 유행하였다. 프랭크 레이거 등이 그 대표자이다. 20세기는 낭만파가
벽에 부딪쳐 바로크가 그리던 이상(理想)으로 되돌아가고 있는데 힌데미트,
메시앙 등이 이의 선구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파이프 오르간】
오르간은 보통 케이스(상자)에 의해 분리된 몇 개의 파이프군(群)이
복합되어 하나의 악기를 이루고 있다. 파이프군의 모양이나 위치는 건물,
음향사정, 의도나 목적에 따라 다르다. 각 파이프군은 바람상자 위에
있으며 송풍상자로부터 일정한 바람을 보낸다. 바람상자는 공기판(空氣瓣)이
내장(內藏)되어 있어 오르간 앞부분에 놓인 연주대와는 액션으로 연결되어
있다.
① 연주대:콘솔이라고 하는 조작장치이다. 연주대는
매뉴얼·페달·스톱, 연주보조장치인 스웰 페달·콤비네이션 스톱 등을
갖추고 있다. 매뉴얼은 소형 오르간에서는 2단, 중형에서 3단, 대형에서
4단 이상 구비되어 있고 각기 특징이 있는 음질과 음색을 지녔다. 음색을
조작하는 장치는 스톱으로, 연주자가 스톱을 조작함으로써 건반이 특색있는
음색을 나타낸다. 스톱의 수는 소형 오르간은 20∼30, 중형은 40∼50,
대형은 60 이상이다.
② 건반:각 파이프군(群)을 지배하고
파이프군의 음향 특성에 의해 이름이 붙어 있다. 매뉴얼은 주건반(主鍵盤)·포지티프
건반·스웰 건반의 3가지가 있고 여기에 페달이 붙는다. 그리고 건반의
종류와 스톱의 변화에 의하여 오르간의 특색이 나타난다. ③
스톱:실동(實動) 스톱과 기계 스톱의 두 가지가 있다. 실동 스톱은 고유한
파이프열(列)을 지배하고 음색을 나타내는 명칭과 스톱의 음높이를 나타내는
피트율(律)이 기입되어 있다. 피트율은 8피트가 보통의 기준음을 나타내고,
4피트의 스톱을 사용하면 1옥타브가 높아지고, 16피트의 스톱을 사용하면
1옥타브가 낮아진다. 기계 스톱에는 건반간의 결합, 옥타브 위아래를
동시에 소리내는 장치, 트레몰로를 일으키는 장치 등이 있다.
④
파이프:플루 파이프와 리드 파이프가 있다. 플루 파이프는 세로 플루트(리코더)처럼
되어 있어 공기주(空氣柱)를 진동시키도록 되었고, 이것은 오르간의
주요 파이프이다. 리드 파이프는 금속 진동판에서 생긴 진동을 공명
파이프로 울리게 하는 것이다. 파이프에는 금속관(납과 주석의 합금)과
목관(木管)이 있다.
⑤ 액션:연주대와 파이프, 송풍부(送風部)를
맡는 장치로 건반과 바람상자의 판(瓣)을 연결하는 연주 액션, 스톱과
파이프군(群)을 연결하는 레기스터 액션이 있다. 그리고 기계 액션(나무로
된 지레), 공기 액션(공기의 압력), 전기 액션(전자기)과 이를 병용(倂用)한
것이 있다.
【리드 오르간】 파이프 대신에 하모니카나 아코디언의
음원(音源)과 같은 리드를 사용하는 것을 리드 오르간이라 하며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오르간이 나타나기 전에도 리드는 오르간에
사용되어 왔었다. 파이프 오르간의 일부에도 리드 파이프가 15세기부터
있었다. 또한 이와 같은 무렵에 만들어져 17세기까지 수녀원 등에서
애용된 레갈은 파이프 대신에 타황(打簧:구멍보다 큰 리드)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처음에 손을 조작하는 풀무로 바람을 보냈으나 발로 조작하는
풀무가 발명되어 오늘날의 리드 오르간의 선구가 되었다. 오늘날의 리드
오르간은 자유황(自由簧:구멍안을 자유롭게 진동할 수 있는 리드)으로,
독일의 음악학자 리만은 동양의 생(笙)의 리드를 모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840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도뱅(1809∼77)이 자유황을 장치한
리드 오르간의 특허를 받았다. 이것은 하모늄이라고 불리었는데 C-c4의
5옥타브를 갖고 4열의 리드와 많은 스톱에 의해서 음색을 조절할 수가
있었고 바람은 발로 밟아 불어내는 방식이었다. 유럽에서는 보통 하모늄을
리드 오르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도뱅은 후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흡입식(吸入式)
리드 오르간을 발표하여, 1860년 보스턴에서 알렉산더 오르간이란 이름을
붙여서 판매하였다. 이것이 아메리칸 오르간이며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리드 오르간은 파이프 오르간의 기능을 간소화시킨 것으로 음색을
바꾸기 위해 몇 개의 스톱을 갖춘 정식 구조로 된 것과 스톱이 없는
보급형이 있다. 건반에는 C스케일(C-c4), F스케일(F-f 4)의 두 가지가
있는데, F스케일이 일반화되어 있다. 요즈음에는 발로 밟는 방식 대신에
전동(電動) 오르간이 시판되고 있으며 오르간음악을 위해서는 C스케일로
발로 밟는 방식이 적당하다. 리드 오르간의 사용과 보존을 위해서는
습기와 지나친 건조, 동요나 충격은 피해야 한다. 또한 먼지는 리드가
울리지 않게 되는 원인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오르간 음악
오르간 연주를 위해서 작곡된 음악이나 오르간에 의해 연주되는
음악. 오르간 연주의 역사는 멀리 고대나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좁은 의미에서의 오르간음악, 즉 오르간을 위해서 작곡된 음악은 16세기
말에서 18세기 중엽에 이르는 바로크시대에 그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중세 이후 오르간은 주로 교회에서 많이 사용됨으로써 오르간음악도
교회에서 많이 연주되고 또 한편으로는 성가·찬송가 등의 전주·간주(間奏)·후주로서,
한편으로는 모테토(성악곡)·샹송 등 다성성악곡(多聲聲樂曲)의 편곡으로서
시작되었다. 15세기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많은 수사본(手寫本) 가운데
오르간 고유의 음악을 볼 수 있고, 독일에서는 콘라트 파우만(1409∼73),
아르놀트 슐리크(1455∼1525), 파울 호프파이머 등 오르간음악(작곡)의
대가가 나타났다. 이어 16세기에 들어서자 이탈리아에서는 지오반니
가브리엘리,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크라우디오 메를로 등이 리체르카레·칸초나·토카타·푸가
등의 여러 형식으로 오르간 고유의 이디엄을 발전시켰으며, 에스파냐에서는
조용하고 깊이 있는 작풍으로 에스파냐의 바흐로 칭송받은 카베손이
나타나 우수한 오르간곡을 썼다. 바로크시대의 오르간음악은 독일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북부독일·중부독일·오스트리아를 포함하는 남부독일의
세 악파를 낳게 되었다. 북부독일 오르간악파는 네덜란드의 스벨링크에서
출발하여 그의 직계 제자인 할레의 샤이트를 중심으로 한 오르간코랄(코랄前奏曲·코랄變奏曲
등)과 발트해 연안 도시인 뤼벡의 부크스테후데로 대표되는 대규모적인
토카타·전주곡·푸가를 발전시켰다. 특히 풍부한 상상력에 넘치는 환상적인
악상(樂想)과 페달의 솔로를 포함한 화려한 연주기교가 북독일 오르간음악의
특징을 이루었다. 한편 중부독일에서는 바흐의 선조들과 파헤르베르
등에 의해서 조용한 표현과 친숙해지기 쉬운 정서를 담은 내면적인 오르간코랄이
많이 작곡되었다. 남부독일에서는 이탈리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의
거장 프레스코발디의 칸초나·리체르카레·토카타 등의 양식이 그의
제자인 포로베르거에게 전해져 남부독일 오르간음악의 양식이 되었다.
이상의 세 악파를 종합해서 바로크 오르간예술의 정점(頂點)을 구축한
것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이다. 바로크시대의 이탈리아에서는 프레스코발디
이후 치폴리 정도가 알려졌고, 영국에서는 부르, 퍼셀, 클라크, 크로포트
등이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 초 티틀루즈에서 시작하여 뒤몽,
니베르, 지고, 르 베그, 레송, 쿠프랭, 마르샹, 당드리외, 다캥 등이
18세기 후반까지 오르가니스트의 계열을 잇고, 이들 중 훌륭한 전례용(典禮用)
오르간곡을 남긴 이도 있다. 교회의 지위가 후퇴함에 따라 바흐 이후
오르간음악도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나 낭만파음악이 대두한 1840년대부터
바흐에 대한 관심 및 종교감정의 부활과 때를 같이 해서 대작곡가들이
또다시 오르간음악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 가운데 멘델스존, 브람스
등은 바흐의 여러 오르간음악의 형식을 되살린 데 반하여 피아노의 거장
리스트는 오르간음악에서도 화려한 관현악적 색채와 어려운 연주기교를
강조하였다.
오르케스타 티피카
아르헨티나 탱고를 연주하는 표준 오케스트라. 원래는 ‘전형적인 오케스트라’의
뜻으로 어떤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데 가장 표준적인 편성의 악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발생 초기의 탱고는 바이올린·플루트·클라리넷·아코디언
등의 그룹에 의해 연주되었으나, 반도네온이 곁들고 피아노가 추가되어
1910년대에는 오르케스타 티피카의 스타일이 확립되었다. 그 중심을
이룬 악기는 바이올린·반도네온(통상 각각 3∼6개)·피아노·베이스의
4종류이다.
오블리가토
연주에서 생략할 수 없는
악기나 성부(聲部). 본디는 ‘의무화된’이라는 뜻이며 임의로 생략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아드 리비툼(ad 1ibitum)과 대비되는 말이다. 이
밖에 오페라에서 아리아를 반주하는 바이올린 오블리가토라고 했을 때는
특히 조주(助奏)라고 번역하기도 하나 적절한 역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스티나토
어떤 일정한 음형(音型)을
같은 성부(聲部)에서 같은 음높이로 계속 되풀이하는 수법, 또는 그
음형. 이 수법은 상당히 일찍부터 나타나 13세기의 모테트 《Amor potest
conqueri》의 테너성부에서도 볼 수 있다. 유명한 예는 14세기 영국의
카논 《Summer is icumen in》의 베이스성부에 Fes음으로 더해져 있는
것으로, 여기서는 위 4성이 이 곡의 선율에 의한 카논을 전개하는 동안,
베이스는 음형에 의한 오스티나토를 2성 카논으로 노래하는 2중 카논(canon)형식을
취하고 있다. 오스티나토는 흔히 베이스에 나타나며 이때는 바소오스티나토(basso
ostinato), 또는 그라운드(ground)로 불린다. 그러나 다른 성부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며, 프레스코발디의 《Capriccio soprai1 cucco》는 소프라노오스티나토의
예이다. 16세기에는 오스티나토의 수법이 춤곡에도 가끔 쓰여져 리듬의
강조에 공헌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이 수법은 힌데미트,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오르프, 메시앙 등에 의해서 애용되었다. 재즈에서 말하는
리프(riff)도 오스티나토의 일종이다.
오케스트라
여러 가지 악기로 이루어진
합주체(合奏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근대의 교향관현악(symphony orchestra)으로서
관·현·타악기를 포함한 60∼120명의 연주자로 이루어지며, 지휘자의
통제 아래 연주된다. 특수한 것으로는 15∼30명 정도의 실내관현악(chamber
orchestra), 현악기만으로 이루어진 현악오케스트라(string orchestra)
등도 있으나 각 파트가 복수의 연주자를 지니고 있는 점에서 실내악과는
구별된다. 특히 관현악을 위하여 작곡된 음악을 보통 관현악곡이라고
하는데, 관현악은 이 밖에 오페라나 발레 등에 서도 없어서는 안 될
구성요소이며 종교음악이나 가곡의 반주에도 사용된다.
【어원】
관현악, 즉 ‘오케스트라’란 말은 그리스어 오르케스트라(orkhestra)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에서 무대와 관람석 사이에
마련된 넓은 장소를 뜻하며 코로스(무용수)가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악기연주자가 자리한 장소였다. 그 후 고대 그리스 말기에는 무대를,
16세기에는 무용을 뜻했으며, 18세기에는 극장에서 악기가 자리하는
장소를 가리켰다. “여러가지 악기의 집합체”라는 정의는 J.J.루소의
《음악사전》(1767)에서 처음으로 쓰였다.
【편성】 관현악의 악기편성은
시대·용도·장소 등의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지나 오늘날의 교향관현악은
일반적으로 100명 안팎의 연주자로 이루어지며, 그것들은 현악기군(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목관악기군(피콜로·플루트·오보에·잉글리시호른·클라리넷·파고토
등), 금관악기군(호른·트럼펫·트롬본 등), 타악기군(팀파니·큰북·작은북·트라이앵글·탬버린·심벌즈·목금
등)으로 대별된다. 그리고 1명의 연주자가 2개 이상의 악기를 맡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연주자수와 악기수가 반드시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이상의 악기군 가운데 18세기 이후의 관현악에서 주체를 이룬 것은 현악기군이며,
관악기군은 여기에 색채를 곁들이고 타악기군은 주로 리듬을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 또 특별한 경우에는 하프·피아노·오르간·첼레스타 등을
곁들일 수도 있다. 근대의 관현악에서는 이들 악기군 사이에 거의 일정한
비례관계가 존재하며 1961년의 빈 필하모니관현악단을 예로 들면 현악기군
68, 목관악기군 20, 금관악기군 23, 타악기군 6으로 이루어졌다. 편성규모는
각 목관악기의 수에 따라 2관편성·3관편성 등으로 불리며 다른 악기도
여기에 비례하여 증감된다.
【배치】 각 악기의 배치는 지휘자의
기호나 연주회장의 음향효과 등에 좌우되나 18세기 이후의 관현악이
거의 공통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은 지휘자를 중심으로 현악기군을 전면에
배치하고 관악기군을 배후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유럽에서는 지휘자
좌우에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각각 나누는 배치를 많이 썼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제1·2바이올린을 함께 왼편에 두는 미국식 배치법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다.
【역사】 여러가지 악기의 집합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존재해 왔으나,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관현악은 18세기
유럽에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악기편성의 지정은 16세기 말의
G.가브리엘리(1557∼1612)나 17세기 초의 C.몬테베르디(1567∼1643)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그 후 J.B.륄리(1632∼87)의 오페라와 A.코렐리(1653∼1713)의
콘체르토 그로소에서 현악기 중심의 편성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까지의 관현악은 통주저음(通奏低音)에 기인, 실내악과 관현악의
구별도 극히 유동적이었다.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편성규모가 작아
J.S.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1718∼21년경)은 17명 이하, F.J.하이든의
초기의 교향곡도 23명으로 연주되었다. 관현악의 정비와 확장은 대회장에서의
공개 연주회의 발달과 더불어 18세기 말엽부터 급속히 발전하고 19세기에
들어서는 악기의 개량에 따라, 특히 금관악기의 역할이 커지고 그와
함께 W.R.바그너, G.말러, R.슈트라우스를 대표로 한 대규모적인 근대
관현악으로 팽창되었다.
[교향악단(管絃樂團)]관현악을 연주하는
단체. 10여 명으로 편성된 실내관현악단에서, 100명이 넘는 인원으로
편성된 대악단까지 포함된다. 100명 안팎으로 편성된 것은 교향악단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 상임지휘자와 고정된 멤버가 있어 정기적으로 연주활동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밖에도 어떠한 기회에 임시로 편성되는 것도
있다. 상설 관현악단을 다시 분류하면
① 연주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악단이다. 세계적인 것으로는 베를린 필하모니관현악단·뉴욕 필하모니교향악단·보스턴교향악단
·클리블랜드교향악단·필라델피아관현악단 등을 들 수 있다. 독일 등의
국립·시립의 연주회용 관현악단은, 실제로는 그 도시 오페라극장의
관현악단과 동일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함부르크 필하모니관현악단은
함부르크 국립오페라극장 관현악단의 별명이며, 바이에른 국립관현악단은
뮌헨오페라극장,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관현악단은 라이프치히오페라극장의
관현악단인 것이다.
② 구미에서는 상설 오페라극장이나 발레극장이
저마다 전속 관현악단을 가지고 있다. 드레스덴 국립오페라극장관현악단·밀라노
스칼라극장관현악단 등, 그리고 빈 국립오페라극장관현악단은 빈 필하모니관현악단과
거의 같은 멤버로 이루어져 있다.
③ 방송국 전속 관현악단이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방송국도 전속 관현악단을
지니게 되었다. 오래된 것으로는 BBC교향악단·NBC교향악단 등이
유명하며, 근래에 와서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프랑스 국립방송관현악단
등이 널리 알려졌다. 유럽의 관현악단은 대부분이 국가나 주·시 등의
지방자치단체에 의하여 설립·운영되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는 민간단체나
유지들의 기부금에 의한 재단(財團)으로 설립·운영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④ 음악학교 졸업생이나 교수들에 의해서 편성되어
있는 관현악단이다. 파리 음악원관현악단·취리히 음악원관현악단 등이
이에 속한다. 또 임시로 편성되는 관현악단은 말할 것도 없이 지휘자가
일정하지 않으며, 악단의 명칭도 그때그때 적당하게 붙이게 된다. 여기에는
음악제 같은 것이 개최될 경우에 편성되는 바이로이트 축제관현악단·피렌체
5월제관현악단 등과, 레코드 취입이나 방송에 임하여 임시적으로 편성되는
것, 기설(旣設)의 관현악단이 임시 다른 악단명을 가지고서 출연하는
것들이 있다.
오페라
음악을 중심으로 한 종합무대예술.
가극(歌劇)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오페라는 단순히 음악극이라는 뜻은
아니다. 음 악을 주로 한 극이라면 오페레타나 뮤지컬도 있지만,
그것들을 오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즉 오페라는 다음의 두가지 조건을
구비해야만 한다. 첫째,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 유럽에 있었던 종교적인
음악극은 오페라가 아니며 또 이 흐름에 속하지 않는 음악극, 예컨대
창극 같은 것도 오페라가 아니다. 둘째, 대체로 그 작품전체가 작곡되어
있어야 한다. 즉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페레타나 뮤지컬은 이런 점에서 오페라가 아니다. 그러나 간혹 예외가
있어서 징슈필계열에 속하는 《마적(魔笛)》 《피델리오》 《마탄(魔彈)의
사수(射手)》 등과 민속 오페라 계열의 《팔려간 신부》 등, 그리고
오페라 코미크로서의 《카르멘》 등은 노래 아닌 대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오페라에 포함시키고 있다. 오페라는 원래 라틴어 오푸스(opus:작품)의
복수형이다. 오페라 발생기에는 드라마인 무지카(dramma in musica)
또는 드라마 페르 무지카(dramma per musica)라고 하였다. 이것은 ‘음악에
의한(을 위한) 극’을 의미하는데 나중에 오페라 인 무지카(opera in
musica)가 되고 다시 오페라로 약칭되었다. 오페라는 복잡한 종합무대예술로
음악적인 요소는 물론이요, 문학 또는 시적인 요소(대사), 연극적인
요소(극으로서의 구성·연기), 미술적인 요소(무대장치·의상), 무용적인
요소 등이 합쳐진 것인 만큼 매력도 큰 데 비하여, 자칫 작품으로서의
통일성을 잃게 되기 쉽다. 특히 음악적인 요소와 극적인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또는 어느 편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는 지금까지
항상 오페라의 숙제가 되어 왔다. 오페라는 원래 대사에 음악을 붙인
것이며 음악은 독창과 합창 및 관현악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독창은
등장인물이 맡고 성역(聲域)에 따라서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알토·테너·바리톤·베이스
등으로 나뉜다. 그들은 독창을 하거나 중창을 한다. 전통적인 오페라에서는
그 부르는 노래 하나하나가 완결된 독창곡이 많으며 극중의 순서를 따라서
번호가 붙어 있는(번호 오페라) 것이 많다. 이들 독창자가 부르는 노래는
선율의 아름다움을 주로 한 아리아(괂?영창)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르는
레치타티보(Q唱)로 나뉜다. 합창은 오페라 중의 군중역으로 등장한다.
관현악은 성악의 반주를 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성격·행동을 묘사하며
무대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등, 여러 가지 구실을 하지만 관현악만으로
연주하는 부분도 적지 않고 오페라 전체의 서두에는 서곡이나 전주곡이
붙는 것이 많다. 또 전주곡은 제2막이나 제3막의 처음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오페라 속에 삽입되는 발레음악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리브레토라고
하는 오페라의 대본은 작곡을 위하여 특별히 쓰여진 것으로, 옛날에는
오페라대본을 쓰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보통 운문으로 쓰여지며 막·장(場)·경(景)
등으로 나뉘는데 이는 일반 희곡과 마찬가지이다. 작곡을 위한 대본이
아니고 완성된 희곡에 따라 작곡한 예외적인 작품(R.슈트라우스의 《살로메》)도
있다. 바그너는 대본을 스스로 쓰기도 하였는데 그 이후, 특히 현대에
이르러서는 작곡자가 직접 대본을 쓰는 경우도 많다. 오페라 가수는
목소리의 높이, 종류(리리코·드라마티고 등)에 따라서 배역이 결정된다.
오페라의 남녀 주인공은 소프라노와 테너인 경우가 많다. 관현악은 대개
오페라극장에 전속되고 대규모 오페라인 경우는 100명 또는 그 이상의
연주자가 필요하다. 또 일류 오페라극장에는 전속 발레단이 있어 발레만
단독으로 상연할 때도있다. 오페라를 상연할 때 최고의 지도자는 지휘자로서
가수나 합창단원 그리고 무용수 등은 모두 그의 지휘에 따른다. 합창지휘자는
합창의 훈련을 담당하고, 극적 연출은 연출감독이 담당하며 연기를 비롯하여
중요한 것을 지도한다. 무용이 삽입될 때는 무용지도자가 안무나 무용지도를
한다. 기타 도구·의상·조명 등 담당자와 프롬프터 등은 일반 연극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며, 오페라 상연에는 대단히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특히 가창(歌唱)에서 뛰어나 벨 칸토라는 발성법이
발달하였다. 초기 오페라에서는 막간에 익살스러운 내용의 짧은 연극을
삽입하고 인테르메초라고 하였는데 후일 독립하여 오페라 부파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정통적인 비극적 오페라를 오페라 세리아라고 하여 이 두
가지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 형식이 되었다. 독일에서는 처음에
이탈리아 오페라의 형식을 따랐으나 민속적인 오페라로는 징슈필이 있고
정통적인 오페라의 영역에서는 베버 이후 낭만적 오페라가 전통적 형식이
되었다. 그리고 바그너의 악극에 의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프랑스에는 일찍부터 독자적인 형식이 확립되어 비극적 오페라의
영역에는 그랜드 오페라가 있고 부파의 계열에는 오페라 코미크가 있으나
이것은 반드시 희극적 내용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고 또 노래가 아닌
대사가 들어 있다. 영국에는 희극적 오페라의 영역에 발라드 오페라가
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러시아에도 국민오페라가 출현하여
내용이나 음악에서 독특한 러시아양식을 만들어냈다.
【역사】 오페라는
르네상스 말기인 1597년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바르디 백작 저택에서
탄생하였다. 바르디 백작 저택에 모인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극의 부활을
목표로 그리스신화에서 취재한 새로운 음악극 《다프네》를 만들어서
상연하였다. 이것이 오페라의 효시로서, 독창을 주로 하고 악기 반주가
따르는 단성음악적(單聲音樂的)인 작품이었다. 이 악보는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가장 오래 된 오페라는 1600년에 상연된 《에우리디케》로서
대체로 앞서의 작품과 같은 사람들(대본 카치너, 작곡 페리, 리누치니)이
제작을 담당하였다. 이 두 작품이 성공을 거두자 비슷한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피렌체로부터 이탈리아 전역에 보급되어 오늘날 오페라의
기원이 되었다. 다음에 오페라는 베네치아에 보급되어 번창하였으며
베네치아악파(樂派)의 작곡가 몬테베르디는 오페라의 극적 성격을 높였다.
이 도시에는 1637년에 최초의 오페라극장이 개관되고 17세기 말에는
그 수가 약 15개소에 달하였다. 18세기 들어서 오페라는 나폴리에서
성행했으며 스카를라티나 페르골레시 같은 뛰어난 작곡가가 나타났다.
그러나 오페라는 벨 칸토 창법이 발달하여 그 후 점차 명가수의 기교(技巧)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으로 기울어져 갔다. 오페라는 17세기 후기부터
유럽 각국으로 옮겨가 프랑스에서는 륄리, 라모 등이 오페라의 프랑스양식을
확립하였다. 영국에서는 퍼셀이 오페라를 작곡하고, 독일에서는 슈츠가
작곡을 시도했으나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글루크는 빈에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1762) 이후의 작품을 가지고
극과 음악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오페라의 대개혁을 이룩하였다. 또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오페라의 테두리 안에서 독일음악의 특색이 풍부한 명작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적(魔笛)》 등을 작곡하였고, 베토벤의 작품으로는
《피델리오》가 있다. 19세기에 이르자 오페라에도 민족적인 색채가
짙어졌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1821)에 의하여 독일 낭만파의 오페라가
시작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의 3대 거성이 현대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식을 완성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그랜드
오페라 양식이 성하여 마이어베어가 활약하였으며 오페라 코미크도 출현하였다.
19세기 중반에는 두 사람의 대작곡가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타나
오페라를 독특한 무대예술로 향상시켰다. 바그너는 종래와 같은 번호
오페라의 양식을 배제하고 종합예술작품으로서의 악극을 대성하였다.
대표작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가락지》 《파르치발》 등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르디가 《리골레토》《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오셀로》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구노와 토마가 우아한 오페라를 남겼으며 비제는
청신한 극적 음악을 작곡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에도 뛰어난
오페라가 나타났는데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무소르크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이 유명하다. 바그너와 베르디의 영향은 다음 시대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또 19세기 말의 이탈리아에는 베리스모(현실파)의
경향이 나타나서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푸치니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독일에서는 R.슈트라우스가 바그너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프랑스에 드뷔시, 라벨, 뒤카가 있고 독일에서는
베르크의 《보체크》와 힌데미트가 유명하다. 러시아에는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등이 있고 미국에 있는 스트라빈스키도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영국에서는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즈》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슈윈 이래 많은 오페라가 제작되고 있다.쳬한국의 오페라 한국에서
오페라가 처음 공연된 것은 1940년 조선오페라단에 의한 《흥부와 놀부》가
효시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연주회 형식의 공연이었으며,
본격적인 오페라 운동이 시작된 것은 48년 1월 국제오페라사가 주최한
《라 트라비아타》 공연부터이다. 50년대 이후에는 창작 오페라가 등장했는데,
50년 초연된 현제명의 《대춘향전》이 최초의 창작오페라이다. 이후
김대현의 《콩쥐 팥쥐》, 김달성의 《자명고》, 홍연택의 《논개》,
장일남의 《원효대사》 등 많은 창작오페라가 발표되었다. 또한 서울오페라단·한국오페라단·푸리마오페라단·고려오페라단·대한오페라단·김자경오페라단
등 많은 오페라단이 생겨나면서 오페라운동은 활기를 띠었다. 특히 62년
창단된 국립오페라단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장일남의 《왕자 호동》을
시작으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도니체티의 《루치아》, 푸치니의
《라보엠》과 《아이다》, 공석준의 《결혼》, 이영조의 《처용》 등을
공연하였다.
오페라부파
18세기에 발생한 희극적 오페라.
곧 오페라 세리아(正歌劇)의 상대적 호칭으로서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가벼운 내용의 희극적인 오페라를 가리킨다. 초기의 베네치아 오페라에서는
막간에 익살스러운 내용의 짧은 연극을 넣고 인테르메초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인기를 얻어 그 뒤 나폴리시대에는 독립된 오페라가 되어 오페라
부파로 불렸다. 제재(題材)는 서민적인 일상생활의 유머를 다루고, 음악은
현악합주의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독창·중창을 중심으로 한 명랑한
내용으로 되었다. 서창(Q唱)부분에서는 쳄발로 등의 건반악기가 반주를
맡는 것이 특징이다. 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1733)는 본래
그의 오페라 세리아의 막간극으로 작곡, 상연한 것인데 오히려 이것이
더 유명해져 오페라 부파의 가장 오래 된 걸작으로 꼽히며, 이후 로시니가
《세비야의 이발사》(1812)에 의해 오페라 부파의 마지막 대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나 《돈 조반니》는
내용적으로 반드시 가벼운 것은 아니나 양식상으로는 오페라 부파에
속한다.
오페라 세리아
그리스신화나 고대의 영웅담을 제재로 한 엄숙하고 비극적인 이탈리아
오페라. 오페라 부파(희가극의 하나)에 상대되는 말로 정가극(正歌劇)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오페라 세리아에서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특히
중시하고 중창이나 합창을 그다지 쓰지 않는다. 그리고 18세기 나폴리파
오페라에서 발전하여 고전파에서 쇠퇴하였다. 반주는 현악합주에 의한
간단한 오케스트라가 맡고, 음악은 독창자의 기교를 극도로 중시했기
때문에 극적인 박력이 부족하였다. 헨델은 40곡 이상의 오페라를 남겨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의 최고봉으로 불리고 있다. 또 오페라 세리아에서는
여주인공역을 맡는 남성가수로서 카스트라토(去勢男性歌手)가 16∼19세기에
걸쳐 성행하여 인기가 있었다.
오페라 코미크
프랑스의 희극적 오페라. ‘익살스러운 오페라’란 뜻이지만 프랑스에서는
희가극의 총칭인 영어의 코믹 오페라와는 다른 특수한 의미를 지녔다.
즉 반드시 희극적 내용이 아니더라도 대화로 이루어지는 대사가 있는
오페라는 오페라 코미크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비제의 《카르멘》은
비극적 내용이지만 그 원보(原譜)는 연극적 대사가 있어 원래 이 장르에
포함되는 작품이다. 오페라 코미크의 원류(源流)는 13세기 후반 트루베르(북프랑스의
음유시인) 아당 드라 알의 연극적 대사와 음악으로 된 목가극, 17세기부터
들어온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의 자극을 받고 일어난 오페라 부프(bouffe)라는
희가극, 18세기 초 대화와 노래로 된 보드빌이란 희극 등으로 생각된다.
오페레타
소형의 오페라. 희가극(喜歌劇)
또는 경가극(輕歌劇) 등으로 번역된다. 오페레타의 내용은 희극적이지만
희극적인 오페라를 모두 오페레타라고 하지는 않는다. 즉 오페라 부파도
희극적인 내용으로 되었지만 오페레타는 아니다. 또 오페레타는 일반
연극과 같은 대사가 있고 무용이 많이 들어 있으나 그것만으로 오페레타로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말로 표현하는 대사는 오페라코미크나 독일의
민중 가극 징슈필에도 있고 무용적 요소는 그랜드 오페라에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페레타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규정된다. 그것은 첫째 파리에서
오펜바흐가 시작한 희가극의 계통을 잇는 프랑스의 오페레타로, 이 유대계
작곡가가 1855년에 소극장 ‘부프 파리지앵’을 개관하였을 때를 기점으로
하여 58년 《천국과 지옥》이 성공을 거둔 후 많은 작품이 나왔다. 둘째
계열은 빈 오페레타로서 60년 오펜바흐가 이 도시를 방문하여 그의 작품을
상연하면서 성행되었으며 뒤이어 프란츠 주페, 요한 슈트라우스, 칼
밀뢰커 등의 대가들이 나타났고 다시 프란츠 레하르에 이르러 헝가리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빈 오페레타의 특징은 아름다운 왈츠가 많이 들어
있는 점이다. 셋째의 흐름은 영국으로서, 1870년대에 오펜바흐의 작품이
유행하면서부터 길버트와 설리번이 만들어낸 《미카도》 등의 오페레타이다.
이 밖에 미국에서는 빈이나 파리의 오페레타를 소개한 뒤 이윽고 독자적인
오페레타를 만들어내게 되었다.《알칸타라의 의사》를 작곡한 아이히베르크에
의하여 미국 오페레타의 역사는 시작되는데, 어빙 벌린, 제롬 칸 등의
뮤지컬 플레이가 이 범주에 속한다. 또 빈 오페레타에 자극되어 독일에서도
퀴네케 등의 오페레타 작곡가가 나타났다.
오페르토리움
봉납창(捧納唱)미사 고유문의
일부분크레도 후에 승려가 빵과 포도주의 성찬을 봉납할 때 부른다.
봉납하는 사람의 기쁜 마음을 나타내므로 멜리스마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많다.
오푸스
음악에서 작품의 뜻. 복수는
opera, 작품번호를 나타낼 때는 op.로 약하는 일이 많다.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의 작품에도 op.를 붙인 것이 있으나 op.가 작곡가의 창작상의
발전단계를 나타낸다 해서 중요시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 이후부터이다.
그러나 op.가 작품의 출판 순서를 나타낸 작곡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
때도 있다. 또 op.post(opus postumus의 준말)는 유작(遺作)이란 뜻이다.
왈츠
원무곡(圓舞曲).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무곡으로 19세기 유럽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왈츠라는 이름은
대개 독일어의waltzen(구르다, 돌다)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으나 프랑스
프로방스의 옛 춤 볼타(volt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무곡으로서의
왈츠는 직접적으로는 오스트리아의 무곡 렌틀러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왈츠의 템포는 대별하여 렌틀러계의 비교적 완만한 것과 빈왈츠처럼
빠른 것으로 나뉜다. 전자는 빈왈츠 이전의 것과 오늘날 많이 추는 왈츠이다.
19세기의 전형적인 왈츠의 최초의 예는 특징적인 리듬과 반주형 면에서
베버의 《무도에의 권유》(1819)를 들 수 있으며, 이에 비하면 같은
무렵의 베토벤, 슈만 등의 왈츠는 렌틀러와의 유사성이 강하다. 무도로서는
파트너들끼리 안고 추는 최초의 무용으로서 중요하며, 그 무곡은 빈을
중심으로 한 J.란너, J.슈트라우스부자에 의하여 ‘빈왈츠’로서 완성되어
19세기 내내 크게 유행하였다. 또 무도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예술작품으로서도
L.H.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제2악장 <무도회>, 쇼팽의 14곡의
《발스》, 브람스의 《사랑의 노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R.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M.J.라벨의 《라발스》 등, 넓은 분야에서 특징 있는 왈츠가 작곡되었다.
유모레스크
유머가 넘치는 들뜬 기분이
드는 기악곡.드보르작의 피아노곡 op101 7곡이 유명
유절가곡
가곡에서 가사의 각 절이
같은 선율로 되어 있는 가곡. 곧 가사의 각 절이 제1절의 선율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으로 통작가곡(durchkomponiertes Lied)의 대칭어이다.
가사가 규칙적인 형태로 쓰여지고 또 그 내용이 같은 선율을 반복해도
무방할 때 이 형식을 취한다. 가사에는 비교적 단순한 서정시가 많으며
슈베르트의 《들장미》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음계
음악에 쓰이는 음을 높이의
차례대로 배열한 음의 층계. 음악의 양식은 시대나 민족에 따라서 다르므로
그 기초가 되는 음계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유럽의 예술음악에서는
음계는 모두 옥타브를 테두리로 하여 그 속에 배열된 음이 옥타브마다
되풀이되는데, 여러 나라의 민속음악이나 유럽 이외의 민족음계에는
옥타브를 넘어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있고, 또 완전4도나 완전5도와
같은 좁은 음넓이를 음계의 테두리로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유럽음악에서
가장 오래된 음계이론으로 알려진 것은 고대의 그리스선법(旋法)이다.
이것은 처음에는 완전4도를 분할한 테트라코드(4음으로 이루어지는 음렬)이었으나
후에 그것을 2개 겹쳐 옥타브에 걸치는 음계형태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스선법은 도리아·프리기아·리디아의 3음을 기본으로 하여 그 5도
위와 아래에 각각 히포 및 히페르의 음계를 가지고 있어(히포도리아,
히페르프리기아 등) 모두 9종류가 있었다. 이 음계들은 후의 음계와는
달리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배열되는 습관이 있었다. 중세의 교회선법(敎會旋法)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90∼604)에 의해서 정비된 그레고리오성가(聖歌)에서
쓰인 선법으로, 처음에 4개의 정격선법(正格旋法)과 4개의 변격선법(變格旋法)의
8종류로 분류되었는데 9∼10세기에 이 선법을 그리스선법이라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음렬(音列)은 그리스의 선법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그리스선법 및 중세의 교회선법과 근세의 음계와의 차이는 이들 선법이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기본적인 음렬에서 옥타브를 여러 가지로 잘라낸
것에 지나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근대 유럽의 장음계·단음계는
항상 가장 낮은 음을 으뜸음으로 하고 있는데 반하여 그리스선법에는
각 음계에 으뜸음이 없고, 모든 종속(種屬)에 대해서 메세(messe)라고
하는 1개의 중심음이 있었을 뿐이다. 또 중세의 선법에서는 정격선법은
음계의 가장 낮은 음을 으뜸음으로 하였으나, 변격선법은 그 음렬의
제4음을 으뜸음으로 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부터 상술한 8종의 교회선법에
제5 및 제6정격조(正格調)로서 현재의 장음계와 단음계의 형(이오니아와
에올리아)이 채택되어, 이들의 변격조(變格調)를 포함해서 전부 12종이
되었다. 그리고 다성적(多聲的) 음악이 발달해감에 따라 그 중에서 화성적으로
편리한 장음계와 단음계의 형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 여러 선법들은
차차로 취사 선택되어 이 2종만이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다. 현재는
옥타브 내의 12개의 반음 모두를 으뜸음으로 하는 음계도 생각할 수
있으나, 딴이름한소리[異名同音] 관계를 별도로 하면, 다장조 외에 올림표를
가진 7종의 조(調)의 음계와 내림표를 가친 7종의 조의 것을 합한 15의
장조 및 그와 같은 수의 단조의 음계가 쓰여지고 있다. 즉, 장음계는
다·사·라·가·마·나·올림바·올림다·바·내림나·내림마·내림가·내림라·내림사·내림다의
각 조, 단음계는 가·마·나·올림바·올림다·올림사·올림라·올림가·라·사·다·바·내림나·내림마·내림가의
각 조이다. 또 단음계에 있어서는 에올리아선법에서 유래한 자연단음계가
화성적 음악에 적합하도록 변형되어 장음계와 마찬가지로 으뜸음으로
향해 위로 가는 이끔음을 포함한 화성단음계를 낳고, 다시 이 이끔음을
포함하면서도 선율적인 진행을 이루기 위해 가락단음계의 상행형(上行形)이라는
새로운 형을 낳았다. 가락단음계의 하행형은 자연단음계와 똑같다. 주로
온음으로 이루어지는 장음계와 단음계의 7음음계는 온음계라고 불리며,
18∼19세기 이후의 음악에는 이 온음계를 꾸미기 위해 반음이 많이 쓰여졌다.
그리고 1옥타브를 12의 반음으로 나눈 음계도 생각해냈는데 이것을 반음계라고
한다. 온음계를 기반으로 해서 이에 본래 음계 이외의 것이었던 반음이
곁들여 성립된 것으로 생각되는 반음계는 역시 1개의 으뜸음을 지니며
조성(調性)에 관계된다. 이에 반해 쇤베르크 등의 12음기법(技法)에
쓰여지는 12음계는 본래 조성으로부터의 해방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서,
12의 반음이 아주 대등한 위치에 놓이고, 한 으뜸음과의 종속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음계라고 부르기보다는 12음렬이라고
부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또 드뷔시 등이 즐겨 쓴 온음음계는 1옥타브를
6개의 온음으로 등분한 것으로, 역시 으뜸음으로 해야 할 음을 갖지
않으므로 이것도 일종의 음렬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바흐나 그 밖의
작곡가들에 의해서 19세기 말에서 금세기에 걸쳐 시도된 4분음이나 6분음(온음을
4등분 또는 6등분한 것) 등, 반음보다 더욱 좁은 음정을 포함한 음계는
미분음계(微分音階)라고 부른다. 그 밖에 유럽의 여러 민족에는 여러
가지 음계가 있으며,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볼 수 있는 5음음계나 증음정에
의해서 특성이 있는 집시음계는 예술음악에도 채택되고 있다.
인벤션
독일의 작곡가 J.S.바흐의
2성(聲) 및 3성의 클라비어곡. 1722년에 완성된 것으로 모두 30곡으로
이루어졌다. 바흐는 이 중 2성 15곡에 대하여 이 명칭을 붙이고 3성
15곡에 대해서는 따로 《신포니아:sinfonia》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현재는 30곡 모두 《인벤션》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 곡을
연주기술의 기초뿐만 아니라 작곡에서도 기초가 되도록 꾀하였다. 다같이
단일 악상(樂想)을 대위법적으로 전개하여 쓰고 있으며 소품이면서도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데가 있다. 지금도 피아노학습에는 없어서는 안
될 작품으로 꼽힌다.
인털루드
르네상스기 궁정에서애호되었던
희극적인 촌극. 막간희극이라고 번역된다. 라틴어의 interludium(사이의
연기)에서 나온 말로, 연회의 사이사이에 행하는 짧은 연극이었으나
나중에는 긴 연극 사이에 끼워서 상연하는 짧은 연극의 뜻이 되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이것을 인테르메디오(intermedio)라
하고 특히 음악을 중심으로 한 것을 인테르메초(intermezzo)라 하였다.
전자는 프랑스에 전파되어 앵테르메드(interm뢣e)라는 짧은 소극(笑劇)으로
발전하였다. 영국에서는 J.헤이우드가 대표적 작가이며 도덕극에서 발전하여
교훈적이고 세속적인 골계, 풍자를 주로 하는 지적 유희면이 강조된
것을 가리킨다.
인테르메초
간주곡, 또는 막간극(幕間劇).
다음의 2종류가 있다.
①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진지한 내용의
오페라(오페라 세리아) 막간에 상연된 익살스러운 오페라로, 이것이
독립하여 오페라 부파로 발전하였다. 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② 주로 19세기 낭만파에 나타난 소형식의
기악으로 브람스의 피아노용 인테르메초가 특히 유명하다.
인트라다
16.17세기에 연주 개시 개막
또는 인물등장때 축제풍의 팡파레나 행진곡풍의 서주를 말한다.
17세기초 독일의 관현악 모음곡 첫머리에도 사용되었다.
인트로덕션
음악에서 서곡(序曲) 또는
서주(序奏)·도입부(導入部). 곧 어떤 악곡의 주요부 앞에서 도입역할을
하는 음악이다. 흔히 교향곡·4중주곡·소나타 등의 제1악장 첫머리에
둔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제2교향곡》 《제7교향곡》 《제9교향곡》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