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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창세기-010 하나님의 형상1(창세기 1장 26-31절)
성경말씀은 창세기 1장 26절에서 31절까지 봉독합니다.
[창세기 1장]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오늘은 창세기의 매우 중요 부분, 사람을 창조하신 이야기를 같이 살펴봅니다.
먼저 앞서서 창세기 1장 20절부터 보시면,
[창세기 1장]
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다섯째 날에 창조하신 것은 공중에는 새가 날게 하시고, 바다에는 물고기 뿐 아니라 온갖 바다생물 창조하셨는데,
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전에는 우리가 물 속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없을 때는 바다 밑이 좋은 줄 몰랐죠.
최근에 와서야 바다밑에 아름다운 물고기며 기묘한 산호초의 세계. 이런 것을 안 지가 얼마 안돼요.
바다밑이 뭐가 좋을까 싶었는데, 지금 보니까 정말 바다밑도 아름다워요.
새들도 생태계가 파괴되어서 새를 거의 볼 수가 없죠.
올해에는 제비가 안 온다고 하죠? 여러분 제비 봤어요?
제비가 거의 없어지는가 봐요.
전에 같으면 벌써 많이 왔을텐데.. 거의 몇 마리밖에 안 오는 것 같아요.
점점 생태계가 파괴되어가면서 공중의 새들이 그렇게 보기 좋게 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제가 가끔 그런 새들이 나는 세계를 보고 싶어서, 우리 주변에서는 잘 못 보니까 텔레비전 속에서 새들이 나는 것을 보고 싶어서 켜 보고 하는데 아쉽죠.
새가 나는 모습은 참 아름다운 일인데, 우리 주변에서 너무 새를 볼 수 없어요.
에스라하우스에는 그래도 새가 날고 여기에 우리 해안로 쪽에는 갈매기도 보이는데, 전체 우리 자연환경 속에서 너무 새가 희귀하게 되었어요.
오래지 않아서 새가 무엇인지 생물학도감에서나 보게 되지 않겠나.
환경이 점점 파괴된다는 말이죠.
아마 처음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는 참 새가 많았을 걸로 봅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지리산 지역에는 봄이 되면 꾀꼬리 종달새 노고지리, 노고지리는 지금도 에스라하우스 근방에서 노래하는 것을 듣습니다.
꾀꼬리도 지리산 지역에 가끔 1년에 몇차례 봐요.
뻐꾸기는 조금 있는 것 같애요.
특히 제가 사는 에스라하우스 근방에는 겨울에 새가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빨간 ‘피라칸스’라는 열매가 많이 달리기 때문에 뻐꾸기가 많이 와요. 한꺼번에 20-30마리씩 날아오고 그런데, 뻐꾸기가 참 예쁩니다. 새가..
예쁘기는 한데 삶의 스타일은 못됐어.
뻐꾸기가 둥지도 안 짓고, 알도 품지 않아요.
남의 둥지에다가 알 낳아놓고 자기는 맘놓고 놀고 다녀..
지가 유모들인 것도 아니고..
재개비라는 새의 둥지에 낳아놓으면 그 못된 게 어린 새 새끼가 뻐꾸기 새끼가 나와 가지고 안에 있는 알을 밀어내요. 눈 감고 밀어내요..
눈 감고 거기 알 있으면 안되는 것을 지가 어떻게 아는지..
그 모든 것이 거의 엄마한테 교육 받은 것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참 하나님은 본능도 희한한 본능을 품부하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뻐꾸기를 볼 때마다 ‘저 얌체..’
볼 때마다 뻐꾸기가 노래하는 소리는 예쁘지만 그걸 알고 보니까 보기보다 못된 새야.
그런데 내 생각에는 하나님도 재미있게 뭐 하는 게 있는 가봐. 그렇죠?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동물들 세계에 본능에 속하는 것이지만, 어떻든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 만들어 놓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는 거죠.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어릴 때는 우리가 살던 동네 뒤에 돌이 많고 돌과 돌사이 구멍도 많아서 다람쥐가 참 많았어요.
다람쥐가 월동준비를 상당히 단단히 하거든요.
대체로 다람쥐가 평소에 보면 못 생겼는데, 언제 다람쥐가 예쁘게 생겼느냐 하면, 양쪽 볼안에 도토리를 넣어 볼록하게 하면 예뻐지는 거예요.
몇 개를 넣어가지고 갖다가 나르는데 겨울을 대비해서 저장을 하는 거야.
그리고 가을 메밀밭에 와서 메밀도 볼이 볼록하게 먹어가지고 어디가서 갖다 놓는데,
이게 다람쥐 중에 연세가 많은 것은 갖다 묻어놓고 어디에 뒀는지 모르는 거야.
그 이듬해 다람쥐가 못 찾아 먹었어. 어디에 놔뒀는지 몰라가지고..
그러면 소복소복하게 여기 저기에서 싹이 올라옵니다.
그걸 보고 우리가 욕심만 부리고 멍청하게 그걸 어디 묻었는지 모르고 그런다고 흉을 봤거든.. 아이고 그런데 제가 꼭 다람쥐 짓을 하는 거예요.
뭘 사다가 여기놓고 저기놓고 해서 못찾아서 못먹었어..
집에서 무슨 냄새가 자꾸 나는 거야. 그래서 가서 보니까 썩었어.
그리고 옛날에 우리 어른들이 ‘아끼면 똥된다’ 그런 말이 있죠.
그래서 내가 옛날에 다람쥐 보고 욕한 것 내가 회개 했다니까..
‘내가 다람쥐하고 하나도 다를 게 없구만 그래..’ 그러면서 웃고 그랬습니다.
자연 세계 이런 생물들 동물들 이런 것을 보면 참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집 처마에는 항상 제비가 그렇게 보금자리를 만들고 작년 재작년 우리가 무안에 있을 때는 새 집을 지었는데, 짓자마자 제비가 제일 먼저 와서 집을 지어서 여섯 마리를 새끼를 낳은 거야.
그런데 그 제비 둥지가 작잖아요. 그러니까 여섯 마리가 꽉 차는 거야.
어미가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제가 그 사진을 찍어서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고 했는데,
그런 것들이 우리 사람들 가까이 있고 한 것이 참 아름다운건데 사람만 있으니까 참 외롭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만들었던 처음세계는 많은 생물들이 어떤 것은 사람을 따르고, 어떤 것은 사람을 피하고 하는데,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 그런 새나 물고기나 나비나 이런 것들이 참 많았다는 거죠.
우리가 어릴 때 농약이라는 게 나오기 전만 해도 잠자리 몸체가 이만한 게 있었어요.
이런 게 날고 하면 그것 잡으러 들로 개울로 뛰어다니던 그런 시절이 눈물겹도록 그리운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잘 안보이거든요.
지금 남아있는 것 조그마한 고추잠자리 정도 남아있는 그런 정도예요.
그래서 우리 주변들이 생태계가 많이 파괴되어서 보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생물들을 물에서도 번성하게 하시고 공중에서도 번성하게 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 라고 하시는데,
22절 보세요.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뭐라고요?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새들이나 물고기나 번성하고 생육하는 게 복이예요. 복..
그 다음에 나중에 사람도 마찬가지거든요.
여기 창세 이후로 하나님께서 복이라는 말을 맨 처음 쓰셨을 때 그 복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예요.
요즈음 사람들은 타락을 해서 그런지 결혼도 안하기도 하고, 결혼을 해도 금방 헤어지기도 하고, 안 헤어진다손쳐도 아이를 안 낳거나 낳아도 하나 둘 낳고 말아버리거나..
전혀 자녀손들이 번성한 것, 생육하고 번성한 것을 도무지 복이라고 생각 안해요.
그러니까 하나님 생각하고 사람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가 없어요. 요즘은..
뭣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거예요. 생육하고 번성해야 돼요.
특히 우리 샤론교회 젊은이들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창대하고 심히 중다하고..
전도도 못하면서 아이라도 많이 낳아야지 그래..
저는 이것을 한번도 굽힌적인 없습니다.
저는 산아제한이라든지 가족계획 이런 말은 입에 담기도 민망스러운 말이라..
항상 한결같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우리 샤론교회에서는 아직 안 정했는데, 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항상 젊은이들에게 4명 이상 낳기를 서약을 해야돼요.
그래야 주례도 해주고 중매도 해주고 그렇게 했는데, 여기서는 좀더 높여야 될 것 같애..
4명은 모자라는 것 같애..
우리 딸들에게는 몇 명 낳을거냐 하니까 ‘아빠 6명이요’ ‘6명이 뭐냐? 7명이다. 7명..’
‘럭키 세븐이란 말 못들었냐?’
7명을 낳아야 사운드 오브 뮤직이 나오지..
8명이면 더 좋고 ‘높은 도’까지..
그래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정말 복 중에 맨 일차적인 복이고, 또 유대인 랍비들 학자들이 오경이라고 하는 율법서를 꼭 짜서 액기스를 내니까 율법 율법이 나오는데, 율법을 짜서 분류를 했어요.
‘~ 하라’는 적극적인 명령과 ‘~ 하지마라’는 부정적인 소극적인 명령으로 나누어 봤는데,
‘~ 하지마라’하는 것이 365조, ‘~ 하라’ 하는 것이 248조.
합해가지고 613조인데, 613조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명령한 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예요.
다시 말하면 율법서의 율법 제1조가 ‘생육하고 번성하라’ 입니다.
이게 복 중에서 제일 일차적인 복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고, 명령으로서도 제일 일차적 제1조가 생육하고 번성하라 입니다.
이런 말 처음 들었죠?
아무도 성경을 기독교 복음주의라는 사람이 그렇게 보지 못해요.
성경을 제대로 처음부터 제대로 봐야 될텐데,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너무 잘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 주변에 혹은 에스라성경강좌 오시는 분 중에서는 애기를 하나나 둘 낳고 말았다가 에스라 성경강좌에서 혼쭐나고 그저 둘째 낳고 10년 이상 지났던 사람들이 그리고 아예 형제들 남자분들이 정관수술도 다 했던 사람들이 너무 충격을 받고 우리가 참 잘못 살아왔다 하면서, 새로 병원에 가서 정관 복원수술 다 받아가지고 다시 애기를 가지겠다.
그런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 안고 오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우리 교회도 그런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모범을 보여야 딴 교회가 따라할 것 아닙니까?
..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그러니까 다섯째 날에 공중의 새와 바다 물고기들 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24절에는,
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짐승과 사람이 같은 날에 창조가 되는데,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상하죠. 동물들의 세계를 보면 송아지를 보면 송아지가 귀여워요.
그리고 큰 소도 가만히 보면 세상 참 평화롭죠.
소가 누워있거나 서서 되새김질하는 것 그 자체만 봐도 평화로운거야.
그리고 돼지도 새끼는 이쁩니다. 큰 것은 좀 징그럽지만..
개도 예쁘고 닭도 예쁘고 염소도 예쁘고 양도 참 예뻐요.
그런데 제일 보기 싫은 것이 뭐냐 하면 사람 닮은 것이 제일 보기 싫어요. 그렇죠?
원숭이가 제일 못 생긴 것 같애요. 어떻게..
사람과 가장 가까워보이는데 그게 더 못생긴 것 같애. 여러분은 안 그런가요?
내가 볼 때는 그래요.
차라리 소가 되든지 말이 되든지.. 사람 흉내 내어 이상하게 생겨가지고..
그게 제일 못생기고 재수 없게 생겼어요. 그렇죠?
옛날에 우리 어릴 때는 원숭이라는 말만 들어도 재수없다고 그랬어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어떻든 사람하고 가장 비슷한데 그게 어떻게 우리 눈에 못생긴 걸로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연구중이예요. 왜 그런지..
사람과 가장 비슷한데도 그게 못생긴 걸로 보여요.
그리고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참 예쁘고, 또 호랑이도 무섭기는 하지만 사람만 안 잡아먹으면 그것도 갖고 놀만하죠.
어떤 사람들이 호랑이 새끼를 낳아가지고 낳자마자 엄마를 보지 못하게 해가지고 큰 젖내는 개, 큰 집 개에다가 호랑이 새끼를 그 젖을 빨게 해가지고.. 사진이 집에 컴퓨터에 다 저장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개가 자기 엄마인줄 알아요.
그래서 이빨을 서로 드러내고 이래 물고 맛도 볼려고 하고..
우리 아이들이 하는 말이, 호랑이 새끼가 엄마인 개 보고 ‘엄마, 엄마한테서 맛있는 냄새가 나요.’ 개가 아마 소름이 쫙 끼치겠죠..
그런데 그 사진이 인터넷에서 나왔는데 이 호랑이가 커서도 자기 엄마로 알 것인가?
다 커서도 끝까지 자기 엄마로 모실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가다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도 늘 걱정이 돼요.
그런데 고양이 하고 개가 참 잘 지내는 그런 경우도 있고, 그것 보다 더 넘어서 개와 호랑이가 같이 지내는 거야. 다음에 사진을 가져올께요. 아주 참 평화로운거야..
어미 개와 새끼 호랑이 몸집이 비슷해요.
그런데 서로 같이 뒹구는 거야. 젖 먹고 컸다고..
호랑이가 자꾸 커지면 엄마한테서 고소한 냄새고 나지 않겠는가..
어떻든 그런 동물들이 사자는 사자대로 균형미가 잘 잡혀있고, 사슴은 사슴대로 날씬하고 참 기하학적으로 잘 생겼단 말이죠. 모습들이..
하나님께서 그런 모든 작품들을 만들어 놓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창조의 맨 나중, 26절에,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다스리게’에 줄을 그으세요.
그러니까 이제 공중의 새,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 그 가운데 육지에는 육축. 이렇게 세가지죠? 생물들이..
그러니까 땅위 공중에 존재하는 것들, 땅에 붙에 존재하는 것들, 땅 아래 물속에 존재하는 것들.
이런 세가지의 생태계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어릴 때 이런 게 있었어요.
참새가 얼마나 많은지.. 참새가 수백마리가 함께 날아다니고 했거든요.
수백마리 참새가 벼가 막 패어 올라와서 아직 벼 알이 쌀이 물처럼 되어있을 때 참새가 벼 이삭에 앉아서 벼를 그냥 줄줄 씹어서 단물 빨아먹는 거야.
그러면 한 이삭 통째로 없어져 버려요.
한 알갱이씩 주워 먹는 것은 오히려 얼마 안 먹는데, 패어날 때 물로 꼭꼭 씹어 먹어 단물 빨아 먹어 버리면 허엿게 변해버립니다.
그러면 벼를 지키게 할려고 뭐하죠? 허수아비라는 걸 만들죠.
사람 형상으로 만들죠? 허수아비를.. 사람대신 참새 좀 봐라.
나중에는 참새가 그게 사람 아닌 것을 알아요.
처음에는 ‘저게 뭔가’ 하다가 나중에는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허수아비 어깨에 날아 앉아 있다니까 참새가..
그래서 나중에 장대를 세워가지고 거기에다가 사람얼굴처럼 동그랗게 줄을 달아서 바람에 사람 얼굴같은 것이 흔들리게 이렇게도 해 봤어요.
그것도 일종의 허수아비인데 움직이는 허수아비죠.
그런 것도 새들이 금방 알아요. 얼마 안가서 알아요.
어떻든 사람도 자기 농장을 지키게 할려고 사람 자기 모양 자기 형상대로 허수아비를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도 하나님의 허수아비가 사람이야.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 비슷하게 만들어서 동산에 두면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여러분 이게 소유하게 할려고 지은 게 아니고, 관리하고 다스리고 지키고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 이게 우리 인간의 일차적 사명이예요.
인간에게 주어졌단 맨 처음 사명이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다스리는 것.
이게 인간의 사명이예요.
‘다스린다’ 할 때 우리 한국사람은 그냥 줘 패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게 아니고 ‘지키고 보호하고 관리하고 질서를 잡고’ 이런 게 다스린다는 뜻이예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요. 그런 사명이 있습니다.
마구 파괴하고 쌀 몇톨 더 먹으려고 농약 아무데나 막 쳐버리고 그러면 잘못된 거야.
아직도 농약을 쓰면 안된다는 말을 정부에서도 잘 못하는가 봐요.
저는 농약을 쓰면 안되다는 말을 아주 일찍부터 얘기해왔던 사람인데, 우리 농사를 짓는 성도들도 참 갈등이 되는가 봐요.
이론적으로는 목사님 말씀이 맞는데 현실적으로 농약 안치고 하면 농사가 안되고 자기 혼자만 손해보니까 결단을 못 내렸어요.
그런데 그런 결단을 내리는 역시 우리 경상도 사람보다 호남분들이 잘 해요.
어느 한 지역에서 ‘좋다. 우리 지역은 농약 치지말고 똘똘 뭉쳐서 무농약, 그리고 화학비료 쓰지 말고 유기 농법으로 생산해가지고 제값을 받고 그렇게 해 보자.’
그런 단합이 확실히 호남 사람이 잘 해요.
아직도 왜 경상도 사람은 잘 안되는지 잘 내가 분석을 못하겠는데 참 어렵습니다.
혼자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거든.
농약을 안 칠려거든 그 지역 전체가 안 쳐야 되는데, 혼자 안 치면 딴 사람 다 치고 혼자 안 치면 모든 벌레가 안 친 그 집으로 다 날아올 것 아냐?
그러니까 잘 못하는 거야.
안칠려면 그 지역 전체가 단합을 해서 유기농을 해야 되는데 이게 잘 안되는 거예요.
호남지방에 가면 남상도 목사님이라고, 신학교 동기예요.
그 목사님은 우리보다 나이가 좀 젊은데, 한 면 전체를 설득을 해가지고 그런 운동을 벌이는 거예요.
그래서 농약 안치고 유기농 재배를 해가지고 전국으로 판매망도 만들고..
그리고 그쪽 교회에 대해서 온 지역 주민 전체가 참 어떻게 한 나라 안에서 그렇게 다른지 몰라요.
면 전체가 그 목사님 말씀을 존경하고 또 목사님 말씀대로 따르고 이렇게 해요.
그 목사님이 면장이라. 완전히..
그래서 우리는 예배당 안에서 추수감사절 감사헌금 조금 바치고 하는데,
그 남상도 목사님은 특이 해가지고 ‘추수감사예배’ 그리 안하고 ‘추수감사제(秋收感謝祭)’ 해가지고 국민학교 운동장 빌려가지고 면민 다 끌어모아..
면민을 다 끌어모아서 큰 제사상을 차려놓고 온갖 오곡백과 제물을 차려놓고,
‘면장 여기 하나님께 초혼(招魂) 하시오.’
그래 초혼하고 아헌(亞獻)하고 완전히 제사 형식을 갖춰서 하나님께 절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절하는 것 옳은거죠. 면장부터 절해야지..
우리 마산 시장 여기 왔으면 절하시오. 절해.. 우리 모두 다 절하고..
사실 절 해야 돼요. 따지고 보면..
모든 신들이 다 절 받는데 우리 하나님만 절을 못 받잖아요.
그리고 그런 제사 지내고 나서, 그러니까 교회 나오는 사람이든 안 나오는 사람이든 전부다 감사 제사에 다 참여하게 하고, 그 다음에 온 면민들 그날 줄다리기 씨름대회 축구대회 하면서 하루종일 감사제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 양반은 예배시간에 피아노 이런 것만 하는 게 아니고, 장구도 가져오고 북도 가져오고 굉장해요.
예배시간에 시끌벅적하게 평소에도 그렇게 하고 거의 일년 내내 한복 후즐근하게 입고 다니면서.. 그런 스타일인데..
왜 예배시간에 북을 치고 장구를 쳤느냐? 노회에서 소환을 했다는 거예요.
왜 교회에서 경건한 악기를 쓰지 않고 북이나 장구를 쳤느냐 해가지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종교재판을 당하게 되었다는 거야.
들어가면서 ‘내가 드디어 종교재판을 받는구나.’하고 들어가면서 걱정이 됐다네요.
묻더래요. ‘왜 북을 치고 장구를 쳤느냐? 예배시간에..’
성경에도 없는 것을 왜 하느냐고..
번뜩하더래요. ‘목사님은 왜 성경에도 없는 피아노를 칩니까? 그랬데요.’
성경에 소고치며 춤추고 북을 치라는 것은 성경에 있는거고, 피아노는 성경에 없지않소?
하니까 그 재판관들이 전혀 준비가 안 됐어.
그래서 ‘나는 갑니다’ 하고 가 버렸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야.
지금 나이가 나보다 젊은데 목사로서는 은퇴해가지고 먹거리, 유기농 먹거리 운동 이것을 전국에 체인을 내고 아마 창원에도 지점이 있다고 하는가 봐요. ‘한마음공동체’ 인가 해가지고.. 그렇게 진짜 한마음을 만들어요. 능력이죠.
그래서 생태계를 보호하면서 그런 강의하고 다니고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을 사실 잘 관리하고 다스리고 해야 되는데, 우리가 그 동안 농약을 너무 많이 친 것 같애.
땅 속에 있는 토양미생물들을 다 죽여버려서 우리가 정말 정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암이 제일 많은 그런 나라가 되었죠.
농약을 너무 많이 쳐가지고..
제가 살던 고향 마을은 지리산 큰산 바로 밑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산에서 침식되어 내려오는 아주 비옥한 부엽토 그런 흙인데 거기다가 논을 만들었는데 땅이 배수가 너무 잘되는 거예요. 부엽도 같은 흙이니까..
위에 논에 물을 대면 위보다 밑에 논에 물이 먼저 고인다니까..
그렇게 배수가 잘 되요.
그러니까 모든 곡식이 잘되는 편인데, 문제는 농약을 동네 뒤에 넓은 데에다 농약을 치면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데, 땅속으로 스며들어 동네 한복판에서 우물을 퍼서 마시니까 농약물을 다 마시는 거예요. 동민들이..
제가 그 동네에서 나오고 나서 40대부터 50사이에 농약 많이 치던 시대에 한 동네에서 30명이 암에 걸려 죽었어요.
언젠가 시간 나면 고향마을에 여름되면 온 샤론교회가 전도를 한번 가야 안되겠나 싶어요.
가서 그때 알아봐요.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저도 농약을 많이 쳤을텐데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믿고 거기에서 나와버렸기 때문에 안 죽고 살아남은 거죠.
농약 많이 친 사람들은 다 죽은 거예요.
그래서 생태계가 너무 많이 파괴된 것을 생각할 때, 창세기를 보면서 우리가 다스리고 관리한다는 말이 뭔지 몰라가지고 우리 환경을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농약강산으로 만든 것 같애.
기가 막히는 일이죠.
그래서 다스리게 하라는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잘 관리해야 돼요. 하나님의 동산을..
어떤 생명도 도태되거나 소외되거나 멸종되어서는 안되고, 모든 생명있는 것들 전체를 다 풍성하게 충만하게 살도록, 조화를 이루며 살도록 이렇게 관리해야 되는데,
그런 것을 이 땅의 신학을, 우리가 맨날 복음주의 보수주의는 죄사함 받고 자꾸 천당을 간다고 보채는 바람에 땅의 신학이 안 됐어요.
어떻게 땅을 잘 관리할 것인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삶의 터전을 잘 보존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것 같애요.
저는 오래전부터 파리약 모기약 손 안 댄지가 20년 넘었어요.
어지간하면 우리 샤론교회 성도들은 금년부터는 파리약 모기약 에프킬라 그런 것 하지 말고, 방충망 잠을 자야 되니까 방충망이나 모기장 이런 것 사용하시고, 집 안에 어떤 스프레이로 된 그런 것을 사용하지 않아야 되겠어요.
살충이라 하지만 결국 살인합니다. 그게..
그런 것은 동물이나 모기에게나 파리에게나 사람에게나 절대 이로울 리가 없어요.
방안에다 치고 밀폐해버리면 호흡기를 통해 몸에 쌓이니까 가능하면 모기장이나 방충망으로 잘 치고 그렇게 잠을 잘 수 있도록..
우리가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대해서..
27절,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잘 보호해야 돼요.
모든 생물중에 어떤 종도 멸종되어서는 안되고, 다 보존되게끔 다스리고 관리를 잘해야 되겠죠.
역시 사람에게도 복을 주실 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이었고, 명령도 일차 명령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9절에,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일차 음식, 일차 식품은 곡식 과일 채소, 다시 말하면 식물성이었다는 겁니다. 식물성.
곡식과 채소 과일 이런 것들이 일차적으로 주셨던 겁니다.
육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고기를 안 먹으면 힘을 못 쓴다느니 그것 먹고 크겠느냐?
우려를 하시는 모양인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육식을 하는 것 중에 제인 큰 것이 사자예요. 사자.. 기껏해야.
그런데 채식을 하는 것 중에는 큰 것은 코끼리입니다.
그리고 소를 보세요. 소가 얼마나 큽니까? 소가 풀만 먹고도 얼마나 체격이 우람합니까?
코끼리가 풀만 먹고도 힘이 얼마나 세요?
그래서 채식만 해도 전혀 문제될게 없어요. 채소 곡식 과일만 먹어도 하나도 문제될게 없어요. 일평생 고기를 단 한 점도 안 먹어도 식물성을 골고루 먹으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는거예요.
육식을 허락하게 된 것은, 나중에 홍수 직후에 노아가 이 땅에 내려와 보니까 1년 동안 온 천지를 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거기 곡식도 없고 채소도 없고 과일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너무 절박하니까 풀이야 뭐 싹이 나면 뜯어먹을 수 있지만, 사람이 풀만 가지고 안 되니까 육식을 허락합니다. 홍수 이후에 할 수 없이 허락해요.
그러나 나중에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했을 때는 육식을 하되 가리게 합니다.
육식을 할 수 있지만 가려라 하고 가리는 법을 레위기에다가 가르쳐 주신 거죠.
그래서 지금은 제가 짧은 시간에 음식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다 할 수 없고, 언젠가 나중에 레위기를 공부할 때 되면 우리 성도님들 식성을 조금 바꿔야 돼요.
가능하면 육식들 중에서는 육식을 적게 하던지 아니면 해도 가려서 먹어야 돼요.
그게 우리 구원과 상관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상관있어요. 확실히 상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들 중에서, 앞으로 공부를 하겠습니다만 우리가 먹는 음식이 피를 혼탁하게 하는 음식이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야 돼요. 피..
피가 탁해지게 하는 그런 음식은 뭐든지 피해야 됩니다.
피를 탁하게 하는 음식이 제일 골치아픈 게 피예요. 피..
예를 들면 순대 같은 것. 순대.. 또 선지국 같은 것. 이런 것은 다 우리 피를 더럽게 합니다.
음식을 아주 정하게 가리게 되면 우리 피가 맑아지고, 피가 맑으면 공부도 잘하고 피부도 곱고 비만도 잘 안되고 노화도 천천히 진행되고.. 노화 안되는 게 아니고 천천히 진행돼요.
범사에 피가 맑아야 돼요.
그래서 성경에서 ‘가리라’ 한 음식을 오늘날 식품영양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천번만번 옳다는 거야.
진주에 가면 경상대학이 있는데 아마 경상대학의 차기 총장이 되지 않겠나 싶은데,
그 분이 S교수라는 분인데 이 분이 식품영양학 전공이예요.
부인이 우리 에스라하우스 성경강좌 다녀가시면서 제가 강의한 CD를 가져가서 남편되는 교수님에게 들려드렸더니 그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에스라하우스에서 말씀하시는 노우호 목사의 강의야말로 퍼팩트한 식품영양학이다.’
그분이 믿은 지가 얼마 안되거든요.
‘진짜 최첨단 식품 영양학이다.’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분 가정 전체가 식사를 다 바꾸고, 식품영양을 전공한 대학교수님이신데 전 가족이 다 식사를 바꾼 거예요.
그래서 우리 샤론교회도 조금씩 바꿔야 돼요. 식사를..
제가 가끔 주방에서 나오는 것 보니까 이런 것은 하면 안 되는데 싶은 게 더러 가끔 나오더라고. 보니까..
아직은 그런 강의를 안 들어서 그러겠죠.
오징어 안됩니다. 오징어라든지 문어라든지 낙지라든지 이런 것들은, 한번 어쩌다가 1년에 한번 먹는 것은 괜찮은데 자주 먹으면 안 좋아요. 조심해야 돼요.
그 다음에 돼지고기 같은 것.
우리 경상도 어른들 말씀이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다.’ 본전 잘 안나와요.
돼지고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비계를 좋아하고 그렇게 하면 고지혈증으로 지방간으로 그렇게 간다는 게 이미 다 밝혀졌어요.
그것도 1년에 한 번 먹는 것 때문에 건강에 큰 치명적인 것은 아닌데 자꾸 습관적으로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는 거예요.
쇠고기도 성경에는 쇠고기는 허락됐지만 그것도 많이 먹으면 안돼.
1인이 1인분 먹어야지 5인분 먹어가지고 말이야.. 그러면 안돼.. 그러면 아주 곤란해요.
조금씩 맛으로 조금 먹는 것은 좋은데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메기 같은 것. 바다 갯장어 붕장어. 이런 것 옛날에 회도 해먹고 했는데 나중에 얼마나 안 좋은지 주보에 나갈 겁니다. 그런 것들이..
한국사람들이 먹는 것 보면 꼭 성경에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몸에 좋다고 더 먹어..
그러다 보니까 세계에서 보약도 제일 많고 먹는 것은 좋은 것 다 먹는데, 병은 제일많이 걸린다고..
그리고 한국사람의 피가 평균으로 봐서 세계적으로 제일 탁한 거야.
우리와 전혀 다르게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있거든.. 한국에도..
교단이 이단에 속하는 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이분들은 신학적으로 교리가 영 잘못되어 있지만 한가지 우리가 배워야할게 있어요. 음식을 아주 정갈하게 먹어요.
그래서 삼육학원 그쪽에 학생들 피를 검사해보니까 제일 피가 맑은 거야. 아토피가 없고 피가 맑아요.
이런 것은 이미 다 검증이 되었는데, 제가 다음에 레위기 공부할 때는 비디오를 가져와서 볼거예요. 확인을 여러분이 해 봐요.
그래서 채소 곡식 과일이 일차 식품이다 하는 것을 기억하시고 채소 곡식 과일은 히브리인들은 ‘코셔’라 해서 일단 거룩한 거예요. 정한 음식이야.
그리고 육식 중에서는 정한 게 있고 정하지 않은 게 있다 해서 가리게 합니다.
그래서 가려서 음식을 드시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씨가 착해져요. 음식을 아무 것이나 먹으면 성질이 포학해집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 어린아이들 용돈 줘서 학교앞에 구멍가게에 가서 색깔이 알록달록한 그런 과자들. 그런 것 먹으면 안돼.
어지간하면 그런 것이 안 좋다는 사실을 어른들 강의할 때 식품 강의할 때 꼭 아이들 참여시켜요.
그러면 아이들은 잘 듣습니다.
말 안듣는 것은 어른들이 말 안 들어서 그렇지. 애들은 잘 알아듣고 다시는 안 먹으려고 해요. 어른들이 문제지..
그리고 간식도 엄마가 조금 힘이 들어도 간식을 집에서 만들어주는 그런 습관이 굉장히 중요해요.
엄마가 만들어주는 것이 최고라는 믿음을 얻어내야 돼요. 아이들로부터..
그래서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도 하고, 시중에 파는 것은 어떤 게 들어가는지, 얼마나 안 좋은 게 들어가는지, 또 그것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그림으로 아이들이 봐버리면 줘도 안 먹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식물은 채소 곡식 과일이 일차 식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여기 한가지 더 강조할 것은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지었다는데, 그 형상이 우리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어요.
하나는, 우리가 정말 머리가 있고 밑에 이마가 있고 눈썹이 있고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목이 있고.. 이렇게 생긴 이게 하나님의 형상이냐?
아니면, 우리 속에 있는 내면 영혼. 영혼이 인격성,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있는 인격성이 형상이냐?
어느 것이냐 하고 신학자들이 많이 논의를 하지만 명쾌한 답은 아직은 이것이다 하고 결정짓지 못했어요.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을 볼거거든요.
성경에 우리가 하나님 얼굴을 본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얼굴을 볼려면 하나님이 눈이 있어야 되잖아요. 눈썹이 있어야 되고.. 눈썹이 없으면 나환자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을 신인동형론적인 아주 유치한 생각이라 하면서 무시를 했거든요.
육체의 형상 이런 모습이 하나님하고 닮았다는 것을 말이 안된다 그러면서 영성이나 인격성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이지..
하나님이 머리카락이 있고 얼굴이 있고 볼이 있고 이렇겠느냐? 손이 있고 손가락 다섯 개고 이렇겠느냐?
이렇게 서양신학자들 중에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했어요.
우리 육체는 하나님이 닮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주장을 했는데..
글쎄요. 난 참 무슨 근거로 그런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만약에 사람하고 비슷하지 않다면 뭐하고 비슷해야 되겠어요?
공작새?
공작새는 예쁘기는 한데 하나님이 공작새 같아가지고야 우리에게 존경이 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형상보다 더 존귀한 어떤 모습은 없는 거다.
하나님이 코끼리같다. 그것 안되잖아요.
코끼리가 덩치는 크지만 코끼리 같아가지고는 우리가 하나님 잘 안 섬길텐데..
그래서 최고의 모습이 사람 모습이 아니겠느냐? 사람모습..
물론 우리가 타락을 하고 생태계가 파괴되어서 모양이 그렇습니다마는, 잘 생겼다 하면 말이죠..
그리고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아니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 만약에 ‘다른 모습’이라고 하면 전혀 다른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신게 아니고, 잘 생기고 위엄있고 하지만 역시 예수님이 머리가 있고 눈이 불꽃같고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손발이 있고 했단 말이죠. 부활하신 모습이..
그러면 우리도 우리의 낮은 몸의 형체를 그의 영광스런 몸의 형체로 변케하시면, 예수님 부활하신 그모습과 방불하게 될 텐데.. 예수님이 손발이 있고 이런 우리와 같이..
정말 신인동형론이 맞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그걸 서양신학자들은 신인동형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유치한 생각이다 하면서 엉뚱한 주장을 해가지고 사람들 헷갈리게 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현재 우리의 이런 모습은 아니고, 너무 지금 우리가 초라하고 왜소하죠. 아무리 봐도 잘 생긴 것 같지 않고.. 아멘 안하네..
여러분 왜 자꾸 거울을 봅니까? 아무리 봐도 이상하게 생겼거든.. 내가 봐도..
그래서 우리가 자꾸 외모에 대해서 나름대로 콤플렉스가 있는 것은, 우리중에 아무도 다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로 거의 정상이 아닙니다.
대충 구멍만 뚫어 가지고 앞이나 내다보고 숨이나 쉬는 거지..
이런 모습이 아니라는 거야.
가끔 제가 미국에 프로레슬러를 보면 골리앗만한 게 있어. 보니까..
생기기도 잘생겼어요. 하도 인상을 써서 그렇지..
최소한 저 정도는 생겨야 모양이 난다고 싶어요..
우리는 지금 전부 크다가 말아버려가지고..
어째서 그런지 모르지만 많이 형상이 일그러진 거죠.
모르긴해도 아담이라든지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은 모습도 이렇지는 않았을 거야.
기골이 장대하고, 보통사람이 골리앗 내지는 이봉걸 최홍만 그 정도 그게 보통 사람이고..
홍수 이전에는 최소한 그 정도는 되었을 거야.
그래야 135미터 목선을 만들지..
이래가지는 나무를 들기나 하겠어요? 힘이 없어가지고..
굉장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었을 것이고, 거기다가 신령한 몸 일 때는 또 다른 문제죠.
어떻든 저는 신인동형론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물론 영적인 실체가 인격적이라 할 때, 지성 감정 의지를 가지고 있는 독립적 인격.
이건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가 지음 받은 거죠.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인격성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가 지음을 받았는데,
외형적인 것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전혀 어떤 다른 모습이 아니고, 굉장히 위엄이 있지만 윤곽은 사람과 방불한 모습이었으니까 신인동형론적인 사상이 전혀 잘못되었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올라가서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볼 때, 형상이 손이 있고 얼굴이 있고 이런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만났을 때도 천사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니까 여기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걸 너무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는 것 같애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마 우리가 실상을 존경한다면 형상도 함부로 할 수 없죠.
내가 내 아버지를 존경한다면 아버지 사진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니까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나 형상에 대해서 우리가 함부로 하지 않거든요.
세종대왕을 존경하니까 세종대왕 형상에 대해서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죠.
하물며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 형상을 훼손하는 것은 실상을 모독하는 겁니다.
우리 신학교 다닐 때 그 때 제가 학교를 늦게 다녔기 때문에 장로회 신학대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전두환 전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군부에 실세로 있을 때,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렸다고 해가지고 5월달만 되면 5.18쯤 되면 신학교에서 형상을 만들어요.
그 형상이 누구형상이냐 하면 대머리가 벗겨져가지고 그래 만들어 가지고는 죽창을 가지고 신학생들이 찔러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불싸질러요.
실상을 그렇게 하기 힘드니까 형상에다가 화풀이 분풀이를 하는 거죠.
대개 호남쪽 그쪽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데, 만약에 형상을 그렇게 하지만 실상인 전두환씨가 봤으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그래서 정말 형상에다가 하는 것은 사실은 실상에 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거나 사람을 때리거나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겁니다.
최소한 우리가 그 정도는 공부를 해야 돼요.
창세기 9장에 보면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9장 5절,
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그렇죠?
그러니까 누군가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거나 하면 그 사람도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훼방하거나 모독하면 사형에 해당합니다.
일절 사람이 사람을 헤치는 것은 옳지 않은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는 세 번째는 우리가 어떤 우상에게나 아니면 이른바 믿지 않은 집에서 조상에게 제사지낸다고 절 시키는데, 절 할 수 없습니다.
왜 절을 할 수 없느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거기에 절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절 시키는 거예요.
여러분 우상앞에 하나님을 절 시킬 수 있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형상이지만 거기에 구푸리는 것은 실상을 구푸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일절 안돼요. 그건..
그리고 조상 제사라 하지만 조상 제사에도 우리가 거기에 절을 할 수 없는 게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거기에 우리 조상들이 죽어서 그 영혼이 거기 와서 앉아있지를 못합니다. 우리 절 받으려고 앉아 있지를 못해요.
성경에 보면 믿는 사람의 영혼은 낙원에 가서 있지 오지 않습니다.
불신자의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의 영혼은 죽자마자 음부로 가는 것이지..
여기 49일동안 떠돌이 이런 것도 없고 그냥 바로 음부로 갑니다.
음부에 한번 가면 전혀 외출도 없고 휴가도 없어.
아 내 제삿날인데 외출 갔다 오겠다. 그런 것 안됩니다.
그런데 옛날에 제사 지내는 사람은 꼭 온다고 믿었어요.
온다고 믿고 그 날 저녁에 조상의 영혼이 날아올 때 빨래줄에 걸리면 안 되니까 빨래줄을 걷어라.
우리 어릴 때는 다 그런 소리를 듣고 컸어요.
우리도 어릴 때는 제가 예수님도 모르고 할 때 조상 제사를 지냈거든요.
조상의 귀신이 날아오다가 빨래줄에 걸린다고 빨래줄을 걷고 이렇게 했는데..
그리고 갈 때, 조상들이 우리 제사지내면 앉아서 받아먹고 갈 때 빈손으로 가면 안되니까 대문간에 싸다놓고, 조상의 영혼이 올 때 동네 귀신들이 따라온다고 따라오는 귀신들에게 대문간에 한상 차려놓고 이런 걸 했다고..
진짜 오는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절을 한 건데, 우리가 알고보면 조상의 영혼이 거기 오지 못합니다.
반대로 조상의 영혼이 안 오는 것만 문제가 아니고, 거기에 우리가 절 하게 되면 온갖 동네 귀신들이 앉아서 우리 절 받아먹는 거예요.
귀신이 거기에 버티고 앉아서 ‘에헴 털털 기분좋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보고 절한다. 낄낄낄’ 하면서.. 그러고 귀신들이 앉아 있을 것 아냐? 희희낙락하면서..
얼마나 귀신들이 사람의 절 받기를 좋아하는지..
예수님에게도 ‘나한테 절 한번만 해라. 그러면 온 천하 권세를 다 넘겨주겠다.’ 그러죠?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에게 절 시키는 장난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 사실을 알고 나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되는 거라.
내가 내 한 개인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그냥 사람이라는 존재 같으면 절 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어떤 우상에게나 아니면 조상이랍시고 동네 귀신에게 절 못합니다.
그래서 추모하는 것은 좋아요.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가지고 추모하고 교훈을 서로 나누고 되새기고 하는 것은 좋습니다. 얼마든지..
그러나 거기 절한다고 할 때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신학적으로..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예요.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래놓고 아무런 교훈이 없어요. 오늘 교회에서..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신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런 교훈이 없는 거예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일절 성도들이 그 어떤 데에도 함부로 구푸리는 것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이렇게 기록합니다.
시간이 되어서 오늘 좀더 나갈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하고 안식하시는 말씀은 다음 시간에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물들 그리고 복주시는 것, 그 복중에 복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주신 복이 역시 생육하고 번성할 것과 이것은 복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일차적 명령이었다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경건한 삶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실상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