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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비극론
제2-1부=제6장 비극의 정의와 구성요소
제6장 비극의 정의와 구성요소
비극은 양념을 친 온갖 언어를 곳곳에 배치해, 낭송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통해, 훌륭하고 위대한 하나의 완결된 사건(프락시스)을 모방하여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함으로써 그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26-27쪽)
비극의 특성을 결정하는 구성요소는 플롯, 성격, 대사, 사상, 시각적 요소, 노래, 이렇게 여섯 가지다. 이 중에서 둘은 모방의 수단이고, 하나는 모방의 방식이며, 셋은 모방의 대상이다, 이외에 다른 구성요소는 없다. 거의 모든 비극시인이 이러한 구성요소를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비극은 모두 시각적 요소, 성격, 플롯, 대사, 노래, 사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28쪽)
* 시각적 요소(옵시스)는 '보는 것'이라는 뜻이며, 배우의 분장, 가면, 의상, 무대 배경그림을 가리킴. (27쪽 주41)
* 대사와 노래는 모방의 수단이고, 시각적 요소는 모방의 방식이며, 플롯과 성격과 사상은 모방의 대상임. (28쪽 주43)
여섯 구성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나 사건을 구성하는 플롯이다. 비극은 사람이 아니라 행위와 삶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 비극의 목적은 행위와 플롯이고, 목적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 비극에서 심금을 울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반전과 인지도 플롯의 일부다. (29쪽)
* 천병희는 '반전과 인지'를 '급전(急轉)과 발견'으로 번역하였음. (천병희, [시학], 문예출판사, 2002, 53쪽)
제2-2부=제7~18장 플롯, 노래, 성격, 시각적 요소
제7장 비극의 플롯과 그 길이
앞에서 비극을 규정하면서 일정한 크기를 지닌 완결된 사건 전체의 모방이라고 했다. 완결된 사건이지만 크기가 없는 사건도 있기 때문이다. '전체'에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다. (...) 또 전체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졌다면 각 구성 부분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고, 일정한 크기도 지녀야 생명체든 사물이든 아름다운 법이다.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에 있기 때문이다. (31-32쪽)
크기와 관련해서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행복에서 불행으로, 또는 불행에서 행복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개연성이나 필연성이 있다고 인정될 정도로 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32쪽)
제8장 플롯의 통일성
한 사람을 다룬다고 해서 플롯이 하나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에게는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나고, 그중에서 어떤 일은 하나의 플롯에 통합되기 어렵다. 한 사람의 여러 행위 중에는 통일되지 않는 행위가 있을 수 있다. (33쪽)
[오디세이아]를 쓸 때 호메로스는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을 다 다루지는 않았다. (...) 호메로스는 앞에서 말한 하나의 통일된 행위를 중심으로 [오디세이아]를 구성했고, [일리아스]도 마찬가지였다. (34쪽)
* 개요와 에피소드의 관계를 말한 것으로, 제17장과 제23장에도 나옴. (박희택)
다른 모방 예술이 하나의 대상을 단일한 전체로서 모방하듯이, 비극의 플롯도 행위나 사건을 모방하므로, 행위나 사건을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 모방해야 한다. 따라서 플롯을 이루는 여러 사건 중에 어느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기거나 제거한다면 전체가 꼬이고 흐트러지도록 플롯을 구성해야 한다. 어느 부분이 있으나 없으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그 부분은 전체의 일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4쪽)
제9장 플롯의 필연성과 개연성
시인의 소임은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는 운문을 사용하느냐 산문을 사용하느냐에 있지 않다. (헤로도토스가 산문으로 쓴 글을 운문으로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의 글은 운율이 있든 없든 여전히 역사일 뿐이다.) 역사가와 시인의 진정한 차이는, 역사가는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하고, 시인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한다는 데 있다. (35쪽)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고결하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역사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을 주로 말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은 ,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경우에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따라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시는 등장인물에게 특정 이름을 붙이지만, 시의 목표는 보편적인 데 있다. (36쪽)
* 시의 보편적 목적에 관해서는 제25장 주180과 박문재의 해제 5항 '시의 목적'을 참조할 것. (박희택)
시인은 모방하기 때문에 시인이고, 시인이 모방하는 것은 행위이기 때문에 운율보다는 플롯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설령 이미 일어난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고 해도, 여전히 시인이다. 이미 일어난 일 중에도 개연성과 가능성이 개입될 수 있는 일이 있고, 시인으로서 그러한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단순한 플롯과 사건들 중에 최악은 에피소드만 모아놓은 것이다. 사건이나 행위가 개연성이나 필연성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나는 '에피소드적 플롯'이라고 부른다, (37쪽)
시인은 완결된 사건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도 모방한다. 그러한 행위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인과관계로 인해 일어난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그러한 행위가 저절로 또는 우연히 일어났을 때보다도 놀라움이 더 커진다. 우연히 일어났다고 해도 의도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면 놀라움은 극대화된다. 이를테면 미티스의 죽음에 연루된 사람이 아르고스에 있는 미티스 조각상을 보는 와중에, 조각상이 그 사람 위로 넘어져서 죽은 일이 그렇다. 이런 일들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플롯이 더 훌륭할 수밖에 없다. (38쪽)
제10장 플롯의 종류
단순한 플롯도 있고, 복합적인 플롯도 있다. 플롯이 모방하는 사건 자체가 단순하거나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건이 앞에서 말한 대로 통일성을 지닌 상태로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그 변화 속에 반전이나 인지가 들어 있지 않다면, '단순' 사건이라고 말하고, 반전이나 인지가 들어 있거나 둘 다 들어 있으면 '복합' 사건이라고 말한다. (39쪽)
반전이나 인지는 플롯 자체에서 발생해야 하므로, 앞에서 일어난 일의 결과로 필연적이고 개연성 있게 일어나야 한다. 어떤 일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과 다른 일 '뒤에' 일어나는 것은 차이가 크다. (39쪽)
제11장 플롯의 요소 : 반전, 인지, 수난
반전은 상황이 앞에서 일어난 것과 정반대로 변하는 것이고, 이것도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따라 일어나야 한다. (...) 인지는 그 명칭이 보여주듯이, 무언가를 모르다가 아는 상태로 바뀌는 것이다. 이때 등장인물은 극에서 설정한 행운이나 불운에 따라 친구 혹은 원수가 된다. (40-41쪽)
인지와 반전이 결합될 때 연민이나 공포가 일어나고(앞에서 말했듯이, 비극는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다), 불행이나 행복도 인지와 반전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 플롯에는 반전과 인지라는 두 요소가 있고, 셋째 요소는 수난이다. 반전과 인지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고, 수난은 파괴적이거나 고통스러운 행위다. 예를 들면 눈앞에 펼쳐지는 죽음, 극심한 고통, 상처를 입는 것 등이다. (41-42쪽)
제12장 비극의 구성요소 : 노래
비극의 구성요소로서 있어야 할 여러 부분을 앞에서 말했고, 이제 양적 측면에서 보면, 비극은 프롤로고스(서장), 에피소드, 엑소도스(종장), 코리콘으로 구분된다. (43쪽)
코리콘은 모든 비극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파로도스(합창대가 입장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스타시몬(합창대가 서서 부르는 노래)으로 구분되며, 주 무대에서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와 콤모스(비가)는 일부 비극에만 나온다. (43-44쪽)
제13장 플롯의 모방 대상
가장 훌륭한 비극은 플롯이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어야 하고,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나 사건이 있어야 한다(이것이 비극이라는 모방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렇게 때문에 고귀한 사람이 행복했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 다음으로 악인이 불행을 겪다가 행복해지는 것을 보여주어서도 안 된다. (...) 또 극악무도한 자가 행복에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어서도 안 된다. (45-46쪽)
그런 식으로 플롯을 구성하면, 사람들이 수긍하기는 하겠지만, 연민이나 공포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연민은 사람이 부당하게 대접받는 모습을 볼 때 생기고, 공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모습을 보며 생긴다. 즉, 연민은 부당한 불행과 관련되고, 공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악한 자의 불행은 연민도 공포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46쪽)
훌륭한 플롯은 결말이 단일해야지,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이 이중적이어서는 안 된다. 결말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서는 안 되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결말은 앞에서 설명한 사람들이나 그들보다 나은 사람들의 악행이 아니라 큰 실수나 결함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47쪽)
* '단일한 결말'은 주인공의 운명만 행복에서 불행으로 비뀌도록 설정하는 결말이고, '이중적 결말'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운명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고, 그와 대비되는 다른 한 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도록 설정하는 결말임. (47쪽 주62)
가장 훌륭하다는 평을 듣는 플롯은 [오디세이아]처럼 이중적 플롯을 전개해 나가다가 고귀한 등장인물과 악한 등장인물이 서로 정반대의 결말을 맞는 플롯이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관객의 약점 때문이고, 시인은 관객이 원하는 대로 작품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에서 얻는 즐거움은 희극의 특징이고 비극에서는 얻기 어렵다. (49쪽)
제14장 플롯의 목표 : 공포와 연민
공포와 연민은 시각적 요소에서 생길 수도 있지만, 사건의 구성인 플롯 자체에서도 발생한다. 플롯 자체에서 생기는 방법이 더 낫고, 훌륭한 시인들은 이 방법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사건의 구성을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그 과정에서 전율과 연민을 느끼도록 플롯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50쪽)
비극에서 기대하는 즐거움은 온갖 종류의 즐거움이 아니라 비극만 줄 수 있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런 즐거움은 연민과 공포에서 비롯되고, 시인은 모방을 통해 그러한 즐거움을 만들어내야 하므로, 이러한 즐거움을 사건들 속에서 구축해내야 한다. (50-51쪽)
제15장 비극의 구성요소 : 성격
성격과 관련해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네 가지다. 그중에서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선함이다. 등장인물이 말이나 행위로 의도를 드러낼 때 어떤 성격을 지니는데, 그런 경우 의도가 선하면 성격도 선하다. 이것은 모든 계층에 적용된다. 여자는 열등하고 , 노예는 비천하기 짝이 없지만, 여자와 노예도 선할 수 있다. 둘째는 적합성이다. 용감함이라는 성격이 있지만, 용감하거나 똑똑한 성격은 여자에게 적합하지 않다. 셋째는 유사성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선하거나 적합한 성격과는 다르다. 넷째는 일관성이다. 따라서 모방 대상의 성격에 일관성이 없다면, 그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없어야 한다. (56-57쪽)
성격을 묘사할 때에도 플롯을 구성할 때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필연성이나 개연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이런저런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는 필연성이나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그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 후에 이어서 나온 말이나 행동 사이에는 필연성이나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58쪽)
제16장 인지
인지는 여러 종류가 있다. 첫째는 증표를 통해 일어나는 인지로, 미숙한 시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며 시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 (...) 둘째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인지로, 이는 인위적이어서 비극과 어울리지 않는다. (...) 셋째는 기억을 통한 인지로, 어떤 것을 보고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 넷째는 추리를 통한 인지다. (...) 또 시인의 설정과 관객의 잘못된 추리가 결합된 인지가 있다. (61-65쪽)
가장 뛰어난 인지는 사건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과정 자체에에서 깜짝 놀랄 일이 밝혀지는 경우다. (...) 다음으로, 추리를 통한 인지를 탁월한 것으로 여긴다. (65쪽)
제17장 플롯의 구성 : 장면(cf. 시각적 요소), 개요, 에피소드
플롯을 구성하고 대사로 표현해서 완성할 때는 그 플롯을 눈앞에 그려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게 하면 모든 사건을 마치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 적절한지를 찾아낼 수 있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못 보고 지나칠 가능성이 최소화된다. (66쪽)
카르키노스의 작품이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그 작품에서는 암피아라오스가 신전에서 돌아오는 장면이 문제가 되었다. 관객이 무대에서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그 장면은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실패했다. 관객은 무대에서 펼쳐진 그 장면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66-67쪽)
시인은 자기 작품에 나오는 사건을 직접 연기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묘사한 감정을 직접 느껴보아야 작품의 설득력이 가장 커진다. 실제로 분노를 경험해보아야 분노한 사람을 가장 실감 나게 표현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거나 신들린 자만 시인이 될 수 있다. 전자는 어떤 등장인물에든 쉽게 빠져들어서 연기해낼 수 있고, 후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디다. (67쪽)
플롯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든 작가가 새롭게 창작했든 먼저 전체 개요를 작성하고, 그런 후에 거기에 에피소드를 채워 넣어 상세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67쪽)
* 개요와 에피소드의 관계는 제8장, 제23장에도 같은 논지로 개진되고 있음. (박희택)
극에서는 에피소드가 짧지만, 서사시는 에피소드 때문에 길어진다. [오디세이아]의 스토리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타지를 전전한다. 포세이돈이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어 그 사람은 늘 홀로 지낸다. 한편 고향에서는 아내의 구혼자들이 그 사람의 재산을 낭비하면서, 아들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는 온갖 역경을 헹치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서 몇 사람에게만 정체를 밝히고는, 원수를 모조리 해치우고 살아남는다. 이것이 원래 스토리이고, 나머지는 에피소드에 해당한다. (69쪽)
* '스토리'는 전체 개요를 일컬음. (박희택)
제18장 플롯의 구성 : 갈등과 해결
모든 비극은 갈등과 해결로 구성된다. 갈등은 극 밖의 것을 포함하고, 흔히 극 안의 것 중 일부를 포함한다. 내가 말하는 갈등은 극의 스토리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주인공의 운명이 행복이나 불행으로 바뀌기 직전까지이고, 해결은 운명이 바꾸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끝날 때까지다. (70쪽)
비극의 종류는 네 가지다(앞에서 말했듯이 비극을 구성하는 요소가 네 가지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전체가 반전과 인지로 이루어진 복합 비극이다. 둘째는 아이아스나 익시온을 소재로 한 것 같은 수난 비극이다. 셋째는 [프타아의 여인들]이나 [펠레우스]같은 성격 비극이다. 넷째는 [포르키스의 딸들]이나 [프로메테우스] 또는 저승을 무대로 하는 단순 비극이다. (71-72쪽)
* 여기에서 말한 '비극을 구성하는 요소'는 반전, 인지, 수난, 성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6장에서 비극의 구성요소로 플롯, 성격, 사상, 대사, 시각적 요소, 노래를 들었지만, 이중에서 성격만 비극의 종류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제11장에서는 비극의 플롯을 반전, 인지, 수난으로 구분한다. 제10장에서는 단순 사건과 복합 사건으로 구분했지만, 이것은 반전과 인지를 기준으로 한 구분일 뿐임. (71쪽 주108)
* '복합 비극'은 반전과 인지로 구성된 비극이고, '단순 비극'은 반전과 인지로 구성되지 않은 비극임. (71쪽 주109)
시인은 이 모든 비극에 정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겠거든 그중에 가장 중요한 비극에 최대한 많이 정통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시인이 혹평을 받기 때문이다. 전에는 한 시인이 비극 중 어느 한 종류만 탁월하게 쓰면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한 시인이 이전에 각각의 비극에서 훌륭했던 시인을 모두 뛰어넘어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72쪽)
비극이 서로 동일한지 다른지를 말할 때는 플롯을 보고서, 즉 갈등과 해결이 동일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많은 시인이 갈등을 다루는 데는 능숙하지만, 해결을 다루는 데는 서투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다 갖추어야 한다. (72-73쪽)
서사시 플롯을 비극에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서 서사시 플롯은 스토리가 여럿인 플롯을 가리킨다. 예컨대 [일리아스]에 나오는 모든 스토리를 비극의 플롯에 담아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서사시는 길게 전개되기 때문에 각 부분의 크기를 적절하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을 그대로 비극으로 만들면 결과가 완전히 딴판으로 나온다. (73쪽)
* 서사시와 비극의 차이에 대해서는 제5장의 주36, 제6장 끝부분, 제24장 첫부분에도 나옴. (박희택)
반전이 들어 있는 단일 플롯을 사용하면 시인이 원하고 기대한 목표를 아주 훌륭하게 달성할 수 있다. 그것이 비극답고 인간답기 때문이다. 그런 효과는 시시포스처럼 영리하지만 악한 자가 속아 넘어가거나, 용감하지만 불의한 자가 패배를 당할 때에 생긴다. 이런 일은 아가톤이 말한 의미에에서 개연성을 지닌다. 아가톤은 "개연성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날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74쪽)
* 여기에서 말하는 '단일 폴롯'은 스토리가 여러 갈래인 플롯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단일한 스토리를 지닌 플롯을 말하며, 반전과 인지를 포함하지 않은 '단순 플롯'과는 개념이 다르다. 통일된 플롯 속에 반전과 인지를 포함하므로, 이것은 '복합 플롯'임. (74쪽 주118)
제2-3부=제19장 사상
제19장 비극의 구성요소 : 사상
사상에 대해서는 수사학에 맡겨두자. 사상은 시학보다는 수사학에 속하기 때문이다. 언어로 만들어내려는 모든 것이 사상을 보여준다. 증명하고, 반박하고, 감정(연민이나 공포나 분노 등등)을 불러일으키고, 강조하고, 축소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76쪽)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의 제6장에서 "사상은 어느 상황에 내재되어 있거나 어울리는 말을 하는 능력이다(29쪽)"라고 정의하면서, "대중연설과 관련해서 정치학과 수사학이 이러한 일을 한다(29쪽)"고 말했다. 또 [수사학] 제1권 제2장에서는 "수사학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서 거기에 내재된 설득력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76쪽 주121)
따라서 행위나 사건으로 연민이나 공포를 불러일으키려 하거나, 중요한 느낌과 개연성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언어에 적용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를 행위나 사건에도 적용해야 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행위나 사건은 언어로 설명하지 않고 그런 효과를 내는 반면에, 언어 사용 시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그런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76-77쪽)
제2-4부=제20~22장 대사
제20장 비극의 구성요소 : 대사의 구성 부분
대사 전체는 다음과 같은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음소, 음절, 연결어, 명사, 동사, 관사, 굴절, 문장. 음소는 더 작게 나뉠 수 없는 음이다. (...) 음절은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여 내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음이다. (...) 굴절은 명사나 동사와 함께 쓰여서 '~의'나 '~에게' 등과 같은 것을 나타내거나, '사람들' 또는 '사람'과 같이 단수와 복수를 나타내거나, 의문이나 명령같은 어법을 나타내는 음이다. (...) 문장은 구성 부분 중 일부나마 독자적으로 의미가 있는, 유의미한 복합음이다. (78-81쪽)
문장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 가지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결어를 사용해 문장을 서로 결합하는 것이다. (81쪽)
제21장 비극의 구성요소 : 명사의 종류
명사에는 단순명사와 복합명사가 있다. (...) 모든 명사는 일상어, 방언, 은유, 장식어, 신조어, 늘임말, 줄임말, 변형어 중 하나에 속한다. (82-83쪽)
은유는 유에 속한 것을 종에, 또는 종에 속한 것을 유에, 또는 종에 속한 것을 종에, 또는 유비를 통해서 다른 대상에 속한 것을 가져와서 어느 대상에 대하여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83쪽)
* 어떤 개념의 외연이 다른 개념의 외연보다 큰 경우에, 전자를 '유'라 하고, 후자를 '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생물과 식물을 비교할 때에는 생물이 유이고, 식물이 종이지만, 식물과 해바라기를 비교할 때에는 식물이 유이고, 해바라기가 종이다, '유비'는 서로 다른 사물 간에 대응해서 존재하는 유사성 또는 동일성을 가리킨다. (83쪽 주135)
제22장 대사가 갖추어야 할 특징 : 명료성과 신선함
훌륭한 대사는 명료하면서 저속하지 않다. 일상어를 사용한 대사는 가장 명료하지만 저속하다. 클레오폰과 스텔넬로스의 작품이 그렇다. 반면에 색다른 말을 사용한 대사는 평범함을 벗어나 신선하고 장엄하다. '색다른 말'은 방언이나 은유나 늘임말을 비롯하여 일상어가 아닌 모든 말이다. 하지만 온통 색다른 말로만 대사를 채우면 수수께끼나 외국어가 되고 말 것이다. 대사가 은유로만 구성되면 수수께끼가 될 것이고, 방언으로만 구성되면 외국어가 될 것이다. (87쪽)
은유를 잘 사용할 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것만은 다른 사람이 가르쳐줄 수 없으며 천재의 징표다. 은유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유사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91쪽)
제3부 서사시론
제23장 서사시
운율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사시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플롯을 극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즉, 서사시의 플롯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 하고, 전체적으로 통일되고 완결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생명체처럼 전체가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서사시 고유의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서사시의 플롯은 역사 서술과 동일하지 않다. 역사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한 시기와 그 시기에 한 사람 혹은 그보다 많은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보여주어야 하며, 각 사건은 보통 서로 연관성이 없다. (93쪽)
호메로스는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보다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트로이아 전쟁은 시작과 끝이 있었던 전쟁이었는데도, 호메로스는 전쟁 전체를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 호메로스는 한 부분만 선택해서 다루고, 함선 목록을 비롯한 나머지 많은 일은 시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에피소드로 사용했다. 반면에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이나 한 시기 또는 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많은 일이 들어 있는 것을 다룬다. (94쪽)
* '이 점에서도'는 '서사시의 플롯을 구성함에 있어서도'란 뜻임. (박희택)
* 위와 같은 논지는 제8장, 제17장에도 나옴. (박희택)
제24장 서사시와 비극
서사시도 비극과 종류가 동일해서, 단순 서사시, 복합 서사시, 성격 서사시, 수난 서사시가 있다. 서사시의 구성요소도 노래와 시각적 요소를 제외하면 비극의 구성요소와 동일하다. 서사시에도 반전과 인지와 수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사상과 시어도 훌륭해야 한다. 이 모든 구성요소를 최초로 적절하게 사용한 사람은 호메로스다.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는 서로 종류가 다르다, [일리아스]는 단순하면서 수난 위주이고, [오디세이아]는 복합적이면서(이 작품에서는 인지가 계속해서 일어난다) 성격 위주이다. 호메로스는 시어와 사상에서도 다른 모든 시인을 능가한다. (96-97쪽)
호메로스는 칭찬받을 점이 많지만, 시인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칭찬받을 만하다. 시인은 자기가 직접 나서서 말하는 것을 극히 삼가야 한다. 그러한 행동은 모방하는 사람인 시인이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시인들은 모방하는 것은 별로, 아니 거의 없으면서, 극 전체에 걸쳐 자기가 직접 나서서 휘젓고 다니지만, 호메로스는 도입부에 해당하는 짤막한 몇 마디 이후로는 곧바로 한 남자나 한 여자, 또는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등장인물은 한결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98쪽)
가능하긴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보다는 불가능하지만 개연성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믿을 수 없는 일로 플롯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 믿을 수 없는 일은 단 하나도 플롯에 넣지 않는 편이 가장 좋다. (100쪽)
시인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플롯 안에 집어넣기는 했지만, 거기에 개연성을 부여했다면, 우리는 그 일이 말도 안 되지만 수용한다. (101쪽)
행위나 사건이 전혀 없어서 성격이나 사상이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는 시어에 특히 공을 들여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어가 지나치게 화려하면 성격과 사상이 가려진다. (102쪽)
제25장 서사시에 대한 비판과 그 해결책
시인은 화가나 그 밖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방하는 사람이므로, 사물의 세 상태 중 어느 하나를 모방할 수밖에 없다. 즉, 첫째는 어떤 사물의 과거나 현재 모습, 둘째는 사람들이 어떤 사물의 모습이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모습, 셋째는 어떤 사물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당위적인 모습이다. (103쪽)
옳고 그름의 기준은 정치학과 시학이 서로 다르고, 다른 예술과 시학도 서로 다르다. 시학 자체에서는 두 종류의 잘못이 존재한다. 하나는 본질적인 잘못이고, 하나는 부수적인 잘못이다. 무언가를 모방하려고 했지만 능력 부족으로 할 수 없었다면, 그것은 본질적인 잘못이다. 반면에 달리는 말을 올바르게 묘사하지 않고 의도적을 말이 두 오른발을 동시에 내딛는 것으로 묘사했다면, 그것은 의술이나 그 밖의 기술에서 본다면 기술적인 오류이거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잘못이겠지만, 시학에선 볼 때는 본질적인 잘못은 아니다. 따라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이런 관점에서 보고 해결해야 한다. (104쪽)
* 정치학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선한 것, 즉 공동체적인 선이라면, 시학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은 시의 목적과 효과 달성에 있다. 비극의 목적은 사람에게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비극 고유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104쪽 주180)
* '시의 목적'에 관해서는 "시의 목적은 보편적인 데 있다"고 했고(제9장, 36쪽), 박문재는 해제에서 "인간은 모방을 통해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보편진리를 배운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 속에서 진리 및 선과 관련된 보편진리를 발견하고, 모방을 통해 그러한 진리를 비극과 서사시 등으로 표현한다"고 했다(126쪽). (박희택)
비판의 근거가 되는 사례에는 다섯 가지, 즉 불가능해 보이는 것, 말도 되지 않아 보이는 것, 해로워 보이는 것, 모순되어 보이는 것, 기술적으로 틀린 것처럼 보이는 것 등이 있다. (112쪽)
제26장 서사시보다 더 우월한 비극
서사시의 모방과 비극의 모방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우월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덜 통속적인 모방이 더 우월하고, 더 훌륭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모방이 덜 통속적이라고 한다면,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하는 모방은 분명 통속적일 것이다. (113쪽)
서사시는 연기가 필요 없는 교양 있는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에, 비극은 저속한 관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비극이 이렇게 저속하다면 분명 서사시보다 열등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평가를 접하면서, 먼저 그런 비난은 비극 자체가 아니라 배우의 연기에 대한 비난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114쪽)
비극도 서사시처럼 연기 없이 비극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비극을 읽어보기만 해도 비극의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극은 모든 점에서 탁월함을 보여주고, 앞에서 결함으로 제시한 사항은 비극 자체에 내재된 결함이 아니다. (...) 비극은 모방이라는 목적을 더 짧은 분량과 더 적은 시간을 들여 이루어낸다. (...) 비극은 자기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한다는 점에서 서사시보다 분명히 더 우월하다. (115-1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