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알바니아의 두러스(Durres)항
이탈리아의 지도를 보면 장화 모양의 뒤축 부분 바로 뒤, 아드리아해 동안(東岸)에 위치한 곳이 알바니아이다. 두러스항은 이 나라의 관문항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정권인 알바니아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독재자 엔베르 호자의 철권통치를 약 40년 동안 받았다. 이 시절 알바니아는 북한을 뛰어넘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알바니아의 공산독재는 계속되었으나 동유럽 민주화의 물결 속에 1990년 알바니아 각지에서도 시위가 일어났고, 수많은 알바니아인이 알바니아를 탈출해 이탈리아와 그리스로 떠났다. 결국 알바니아에선 다당제가 도입되어 의사 살리 베리샤가 이끄는 민주당이 창당되었으나, 시위는 계속되었다. 다당제는 도입되었음에도 공산주의 정부는 1991년 총선에서 농촌 지역구에서 승리를 바탕으로 정권연장에 성공했고, 노동당에서 사회당으로 당명을 개칭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1992년에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사회당이 패배하면서 마침내 공산정권은 종식되었다고 한다.
9월 29일 07:30 Durres 외항(外港)에 도착. 투묘했다. 열 두어 척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선박다운 선박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이 같은 공산주의 국가의 것으로 낡고 험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화물다운 화물의 물동량이 없기 때문이다. 오후에 Agent와 Boarding Officer들이 승선. 역시 별로 까다롭지는 않다만 어딘가 가식적인 체면 같은 것이 많다.
얘기로 봐서는 생각보다 일찍 끝날 것도 같기도 하다. 앉은자리에서 한 사람이 줄담배로 4-5개비를 피우고, 내놓은 것은 죄다 먹고 간다. 가지고 가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제복(制服)의 차림새에서 궁상스러움이 가득하고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있음을 본다. 그러나 어딘가 사람들은 순진해 보이기도 한다. 지난번 불가리아 보다 더 후지면서 보이지 않는 통제가 심하다는 느낌이었다.
Tally(적양하 수량계산)를 본선에서 하란다. 그것도 Letter(서류)로서 보고 하라니 서방(西方)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조치이다. 전체 인구 300만에 가장 큰 항구인 이곳 Durres가 약 180,000 정도라니 Mini country란 감이 든다. 내일 접안이랬다. 잘 되야 할텐데.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도 생활도 멈추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갑판(Deck)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놈의 벌레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지 소리가 똑같다. 전날은 종일 비가 뿌리더니 청명한 상현달이 두둥실 떠오른다. 추석이 한 주일 가량 남았는데, 3일째 대기중(Waiting)이다. 여전히 접안 계획이 없다고 한다. 입항 당일 Agent가 말한 ‘내일 접안’은 그냥 해본 소린 모양이다. 지중해로 들어온지 한 달이 넘었다. 또 물밑의 고기들만 죽사발 난다. 모처럼 싱싱한 회를 먹는 것도 별미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소일거리가 낚시다.
전번 불가리아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이 사전계획이 없이 그저 임시방편적이다. 불시에 바뀌고 정해지고 가라마라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늘 비상출동을 기다리는 소방수처럼 오줌 눌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도 배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으니 바깥세상은 전혀 알 수도 볼 수도 없다.
대리점 자체도 국가기관이므로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 자신들의 재량이 없기에 그들의 얘기에 싱빙성이 없다. 그냥 눈치로 미루어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내일, 내일’하던 것이 한 주일을 넘기고 보니 기다리다 지친 ‘동백아가씨’다. 여전히 소식조차 감감한 체… . 햇살이 도타워지고 하늘이 높아가니 완연한 가을이다. 단풍을 본지 오래됐다. 모레가 추석인데 식량(특히 채소)도 식수도 차츰 줄어져 간다. 사람 사는 곳에 먹을 것이 없겠냐마는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며 물건이 있어도 정해진 한도를 넘을 수 없는 제약이 가로놓여 있다.
900톤의 사과를 적재하기 위해 15일을 허비한다면 밥 팔아 똥 사 먹는 장사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것이 사회주의 사회가 아닌가. 대리점 직원도 오도가도 않는다. 해야할 일들이 많은데… .
그냥 매일의 날들이 죽어가는 느낌이다. 마치 정글속의 깊은 늪에 빠진 체 헤어나지 못하는 짐승처럼… . 자신도 세상의 모든 움직임도 잃어가고 있다. 바로 절해의 고도(孤島) 그것이다. 이럴 때 가장 정신이 메마르고 머리가 텅텅 비어져 간다. 바보가 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고립(孤立). 삭막(朔漠), 고적(孤寂) 이것들을 이겨내는 것은 자신의 의지뿐이리라.
한 주일을 외항에서 기다리다 드디어 09:00에 온다던 Pilot(도선사)가 10:20시나 되어서야 나타난다. 11:20시에 접안. 그러나 광석(鑛石) 전용부두다. 석탄 때문에 바닥과 주위가 온통 검다. 비가 오지 않으면 보나마나 검은 석탄가루와 먼지에 모든 것이 함몰되어 버릴 것만 같다.
당초 900톤보다 많은 1,125톤 예정에 약 8일 잡는다. 여러 사람이 다녀갔다. 꼭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다닌다. 아마도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눈치다. 또 하나는 위스키나 담배는 앉은 자리에서 먹거나 피우고 가지 가져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엄격한 통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저 입만 가져 다닌다. 담배, 맥주, 쥬스 주는 대로 걸신들린 것처럼 빨고 털어 넣는다.
코레라 예방주사. 세관, 청수보급 등 수배하는 되로 잘 해주기는 한다만 바로 그 자리에서 영수증(Voucher)을, 그것도 미불(美弗 :USD)로 가격이 명시된 것을 만들고 서명(Sign)을 요구한다.
달러(Dollar)가 부족한 사회주의 나라들의 공통된 현상 중의 하나, 즉 달러를 받을 수 있을 때 사정없이 받아내게 하는 것과 각자의 책임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화물(貨物)인 사과도 불가리아보다 낫다고 자랑스레 했으나 내가 보긴 그게 그거다. 아직 하역설비도 능률도 요령도 까마득하다. 4종류로 분류해서 적하한다면서 뒤죽박죽으로 섞여서 올라온다. 아무래도 한 열흘은 잡아야 할 것 같다. 우선은 시작했으니 끝장이 있겠지. 그저 세월이, 시간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10월 7일, 우리의 추석(秋夕)이다. 국영 선식점에 주문한 몇 가지의 식품으로 두어 가지의 별미가 상위에 올랐으나 맛도 없고 입맛도 당기지 않는다. 신청한 야채 등을 가져왔으나 달걀은 일부 부패한 것이 있어 반품했단다. 역시 모든 물자나 생필품이 모자라고 있음이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생각 외로 저녁에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둥글고 훤한 보름달이 마음을 더욱 처량하고 쓸쓸하게 한다. 이미 내 고국을 비취 주고 여기 왔으리라.
수입국인 Cuba 대사관 직원 2명 그리고 Burgas에서도 왔던 검둥이 검사관이란 녀석도 왔다. 작업이 늦어진 이유를 나한테 묻는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것이다. 허허허~~~, 참말로 이상한 곳이다. 반드시 저네들이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일인데 그걸 어찌 내가 알 수 있는가 말이다. 마치 모든 것이 선박의 책임인 듯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자기네들끼리 뭔가 커무니케이션이 안 맞는 모양이다. 역시 공산주의 사회의 특성을 본다. “당신들이 주인 아니오. Agent에 직접 물어보시오”. 까딱하면 모든 책임을 본선측에 떠넘길 수도 있겠다 싶어 바짝 긴장을 한다.
80년도 이라크(Iraq)의 Basra에서의 ‘억류(抑留)’ 악몽이 되살아 난다만 사회주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늘 묵은 때처럼 지워지지 않고 남은 앙금이다. 그래도 아랍은 이곳에 비하면 양반이란 느낌이었다.
인간의 삶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에 갇힌 들짐승처럼 서성이고 답답해하는 선원들도 안스럽다. 상륙이라도 할 수 있으면 이 쌓인 객고(客苦)가 다소나마 풀어질 수 있을 것인데 어떻게 된 셈인지 이놈의 나라는 철조망 안에 있는 Seaman's Club 이외는 외국인으로서는 상륙이 금지된단다. 그 나마 Club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선・기관장을 포함한 Saloon Class로 제한한다. 땅을 곁에 두고도 밟지 못하는 이 서글픈 현실이 더욱 난감한 명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진흙탕과 석탄 반죽을 밟고 Seaman's Club에 가보다. 여기도 말짱 헛거다. 부두 철조망 안에 있는 클럽에서 보이는 시내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빌어먹을 놈의 나라. 이러니까 찌든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20분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야! 이 친구들아 마음을 다스려라. 우선은 그 길이 최선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겐-, 시간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썰렁대는 선원들에게 마치 도(道) 닦는 지체 높은 스님 같은 말이 귀에 들어 갈 것인가? 억지로라도 공자 같은 성인은 못 되도 쬐금이라도 닮지 않으면 미쳐버린다.
한 나라를 십여 일 동안 부두와 선박을 찾아오는 한정된 사람들만 상대하고 본 것뿐이다. 그래도 알바니아란 국가를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호즈미 다카노부[穂積隆信]’씨가 지은 ‘철없는 내 딸’이란 책을 읽었다. 발간 7개월만에 265판을 기록했을 만한 책이었다. 당시의 일본사회에서-. 그러나 그러한 노력과 과정에는 올바른 사회기능, 상식이 통하는 사회 분위기 등의 여건이 형성되어야만 한다.
「‘부모란 자기 멋데로다. 아플 때는 오직 몸만 건강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건강하면 또 그 보다 더 한 것을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의 욕심이다. 순수한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건강하게만 있어주면- 하는 자세로 일관한다는 것’
‘어쨌든 가정을 만들어 주세요. 필요한 가정을 -’
‘아이들의 문제는 어머니의 문제이고 어머니의 문제는 아버지의 문제이다, 아버지의 자세가 중요하다.’」
결국 문제아의 원인은 문제의 부모에게 있으므로 그 치료를 아이한테 두는 것이 아니고 부모들의 자세(마음의 자세)에다 두고 행해야 한다는 심리감별사 ‘다께에「武江」’씨의 이론에 공감을 갖는다.
어머니의 문제는 곧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빵점이다. 참으로 죽을 쑤는군. 이 책을 읽은 것이 이 기간 동안에 유일하게 남는 업적(?)이라는 생각이다.(계속)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몇 년 전의 일인지 모르지만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되면? 개성이나 능률은 무시되고
그저 피동적이고 폐쇄적이고.. 사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 갖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그러한 낡은 사상에
도취되어 있는 젊은이들이 학원가에 더러 있다는 사실도 걱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을 다스려라' 쉬운 것 같으면서 무척 어려운 주문이었습니다그려.ㅎ
미치지 않고 귀국하여 남기는 글을 읽게 되어 영광입니다.ㅎ
필자의 저력에 감탄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