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를 읽고
- 객관과 주관의 차이 -
이 윤 자
동양은 정적이고 서양은 동적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 같은 것 같다. 나는 독서가 취미로 비교적 다독하는 편이다. 중국 4대 고전 서유기, 홍루몽, 수호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도 읽었다. 처음 발행할 때는 삼국지연의이라고 하지 않고 삼국지로 출판되었다. 흔히 지도자들은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고들 한다. 전술과 통솔과 처신이 삼국지를 많이 인용하면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중국 어느 주석은 자국을 방문한 상대국 정상에게 삼국지를 선물하기도 하였다.
읽을수록 영웅들의 전략이 재미있고 주인공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같은 인물들의 인간적인 의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도 본받아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가장 열세였던 유비를 도와 열국의 높은 반열에 올라 놓은 제갈량의 충성과 전략, 유비 관우 장비의 장수로서의 용맹함과 의리는 사람이면 당연한 미덕으로 생각하고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 첫 장면은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형제의 우애를 결의를 하는 장면이다. 세 사람은 태어난 시간은 다르지만, 죽을 때는 같이 죽자고 굳은 다짐을 하였다. 촉나라, 오나라, 위나라 삼국의 전투는 매우 치열하여 서로 일전 격퇴 일전 후퇴로 밀고 밀리는 격변의 연속이었다. 화복의 위나라, 쓰촨의 촉나라는 양쯔강, 강남의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힘이 축적되면 침략하기를 서로 반복하였다.
위나라 조조는 전략이 뛰어나고 주변에 인물도 많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삼국지연에서는 조조를 아주 간교한 간웅으로 평했으며, 유비는 도량이 넓고 무척 백성을 아끼는 영웅으로 표현했다. 유비의 전성기는 제갈량의 뛰어난 전술로 적벽대전에서 승리하고 오호 장수(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들의 활약으로 전성기를 이루었었다.
촉나라는 형주에 관우를 파견하면서 내리막길이었다. 관우가 아무도 자기를 대적할 장수가 없다는 오만으로 오나라 장수 염홍에게 패하면서 전사를 한다. 장비는 의형제 관우의 복수를 하고자 서두르다 부하 범강에게 살해된다. 유비 또한 두 형제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전략적이기 보다 복수심에 불타 평생 숙원인 북벌을 실패하였다. 책사 제갈량의 만류에도 오나라를 쳐들어갔으나 오나라 장수 육손의 화공으로 패하여 그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못하였으나 유비마저 병사하니 죽을 때는 함께 죽자는 도원의 결의는 지켜진 셈이다.
누군가 “화가 날 때는 중요한 일을 결정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유비, 관우, 장비, 의형제 모두 화가 나있을 때 인내를 못 하여 대의를 그르친 결과이다. 관우의 오만과 장비의 급한 복수심에 유비의 대권이 한순간으로 물거품이 되었으니, 동생들의 복수도 중요하지만, 대의가 먼저임을 잃은 것은 넓게 생각하여 지도자의 자격을 잃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중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 내용을 분석한다면 복잡한 상황이 있을 것이지만, 삼국지연의 전쟁과 영웅들의 이야기는 황제에 대한 충성과 인연으로 맺은 사람들 간의 의리로 미화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구전으로 보태고 보태어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중국의 역사이다. 중국 자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읽는 고전이 되었다.
매우 흥미진진하나 이야기가 길어 이쯤으로 줄거리를 생략한다.
요즘 다시 삼국지연의에 관심을 끌게 된 동기는 우연히 중국 CCTV 교양 방송 샤먼 대학교 이중텐 교수 강의를 들은 후였다.
그것은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의 촉나라에 주도권이 있었으며, 유비를 중심으로 저술되었으나 이중텐 교수는 위나라에서 주도권을 쥐고 조조를 중심으로 저술하고, 오나라와 촉나라를 겹 가지로 엮었다. 누군가는 큰 역사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않고 , 왜 그럴까 도 알고 싶었다.
역사앞에서도 사람은 자기 주관적으로 결정하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이 피할 수 없는 인지상정인 것 같다. 삼국지연의도 평가가 틀리고 있어 어느 것이 객관적으로 평가 된지는 모르겠다. 저자들의 주관과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평가되고 있다.
‘진수의 삼국지’는 정사(220~280)로 되어 있다. 지금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중국 명대 초기)”와 구분하기 위하여 진수의 “정사 삼국지”로 표기한다.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에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나관중이 재미를 더하여 쓴 역사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나라의 역사가 저자의 주관에 따라 매우 다르게 써졌다는 사실이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촉나라, 오나라, 위나라 삼국 중 영토, 인구, 국가 형태의 조직 어느 것으로 보나 조조가 이끌고 있는 위나라가 정통국가로 서술되었다. 그러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촉나라를 정통국가로 인정하였다.
나는 진수와 나관중과 또 현대의 이중텐 교수의 견해가 왜 다른 가 궁금하였다.
삼국지연의 나관중은 한 나라의 후손이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촉나라 출신이다. 그러나 위를 멸망시킨 사마 씨가 세운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며 삼국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오나라와 위나라는 그동안의 사실을 기록하였으나 촉나라는 기록이 없어 진수가 기억을 되살리며 기록했다고 한다. 진나라에서 살며 자기 나라 역사를 낮춰 기록하는 처지라 진수의 아픔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나라가 강해야 국민이 보호받고 살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진 나라는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하였다. 위나라를 정통왕조로 인정해야 장당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위나라와 촉나라의 역사를 날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가 영원히 잘 못 전해지고 있다면 얼마나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힘에 인하여 지구에는 그런 오류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요즘 삼국지연의 강의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이중텐 교수도 조조를 간웅에서 영웅으로 강의하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영웅인 유비는 아주 초라하고 인품도 형편없는 존재로 희석하고 있다. 이중텐 교수는 왜 조조와 유비를 정반대로 평가하고 있나 궁금하였다. 과연 이중텐 교수는 객관적으로 두 주인공을 평가하고 있나? 나관중과 진수와 같은 이유때문에 주관적으로 두 인물을 평가하고 있는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동향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된다. 아무리 훌륭한 명작과 역사도 알고 보면 저자의 경험과 환경에서 출발하며, 저자의 주관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동서고금의 역사에 같은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문자가 일찍 발달하지 못하여 중국보다 기록문화가 늦다고 한다. 고대 역사 기록이 빈약하여 중국의 동북 공정에 대응하기가 어려우니 역사기록이 얼마나 소중한가 말해주고 있다. 현재는 과거요 미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개 난에 의하여 주권을 빼앗긴 왕들은 후세에 무능하고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지만, 학자들의 연구결과로 보면, 매우 지혜롭고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하여 고뇌한 흔적들이 많다고 한다. 광해군도 그 한 예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내가 아끼고 사랑한 백성과 나라의 후손들이다. 후손들에게 잠시도 아니고 영원히 부정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면 영혼이라도 얼마나 억울할까? 생각한다면 기록하는 책임을 진 사람은 양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노력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첫댓글 해박한 지식과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계속 좋은글 기대합니다
조 선생님
과찬의 말씀입니다
열심히 지도해 주시는 지도교수님의
성의에 비하여 발전이 없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선생님께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