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미치는 히로시마에 가까이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노년의 부부는 어느날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보기 위하여 여행짐을 꾸린다. 오노미치에는 막내 딸이 함께 살고 있다. 오사카에는 철도청에 근무하는 막내 아들이 살고 있다. 도쿄에는 큰 아들과 딸, 그리고 죽은 아들의 며느리가 살고 있다.
노년부부는 도쿄에 왔으나 당신의 자식들은 자신들의 일에 바빠서 정작 부모들을 잘 챙겨드리지 못한다. 큰 아들은 작은 개인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딸은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다. 옛 며느리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들 부부는 아들 집에 며칠 있다가 딸 집에도 며칠 묵곤 하지만 적응이 잘 안된다. 손주들의 모습에서도 그리 친근함이 들지 않는다. 손주녀석은 자기 엄마에게 할아버지,할머니가 와서 자기가 공부할 방이 없다고 투정까지 한다. 딸이 약간의 돈을 준비해서 온천에도 가지만 온천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오래 있지 못하고 금방 되돌아오고 만다.
도쿄는 본격적인 산업화로 인해 도시 전체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공간에 노년 부부는 그곳의 일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도쿄에서 오래된 두 친구를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자식들 얘기, 사는 얘기, 넋두리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본다. 그러나 누구보다 그 부부를 잘 대해주는 것은 이미 죽은 둘째 아들의 아내이자 재혼도 안 하고 있던 며느리였다. 며느리는 바쁜 회사일의 와중에도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살펴 드린다.
노년 부부는 자식들이 도쿄에서 아주 자리를 잡고 잘 살았다면 아예 살러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만큼 자식들이 여유로운건 아니었고 그럴만큼 도쿄가 살기에 편한 곳은 아니었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나름대로 해주고자 했던 것은 있었으나 부모들이 보기에 흡족한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노년부부는 자식들의 삶을 보면서 이해하고 달관한 듯한 모습으로 다시 고향인 오노미치로 돌아간다.
오노미치로 간 직후 도쿄에 사는 자식들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게 되고 가족들은 전부 오노미치에 모여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 보게 된다. 장례가 끝나고 자식들은 일 핑계등으로 다시 도쿄로 바삐 떠나고 며느리만이 며칠 더 묵게 된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와의 인상적이고도 감동적인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끝을 향해 가는데...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겪는 도시와 시골의 변화는 또한 그 가족관계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오즈 야스지로가 얘기하고자 했던 그것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을까. 아니면 질문 속에 이미 답을 넣고 그냥 그 변화를 얘기하고자 했던 것일까.
오즈 야스지로의 카메라는 항상 고정되어 있다. 요즘에 너무나 흔히 쓰이는 줌인, 줌아웃은 아예 볼 수도 없고 카메라의 이동조차 볼 수 없다. 이는 허우샤오시엔에서 나타나는 기법처럼 상황을 차분히 관망하는 시선이다(허우샤오시엔이 오즈 야스지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 영화를 보면 직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도쿄 이야기>에서의 자연과 건물, 공간 등은 인물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배경이 아니라 그 스스로 이야기하는 캐릭터의 성격을 지닌다. 이는 그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연기가 치솟는 산업화 시대의 높은 굴뚝, 해안가 옆을 지나가는 기차들은 그 자체가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내부의 공간에서도 인물이 등장하기 전, 등장한 후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공간이 말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항상 관망하는 상태이며, 시선은 항상 인물들의 높이에 맞춰져 있다(다다미 쇼트라고 하는 유명한 용어가 여기서 생겼다. 일종의 논높이 시선).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장면 하나, 대사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가 있어야 할 곳, 있어야 할 시간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도쿄 이야기>가 아직도 여전히 감동과 매력을 주는 이유는 삶의 일상성을, 가족이라는 주제를, 일본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보편적으로 모두에게 들려주는데 있다. 그의 영화는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도 깊이있는 보편성의 의미를 끄집어 낼 수 있다. 관객이 보는 어느 곳에서든.
<도쿄 이야기>가 흑백이라서, 이렇다 할 특수효과가 없어서, 극적인 절정의 장면이 없어서 외면한다면 우리는 삶의 일상성을 정점으로 보여준 작품을 볼 기회를 상실한 셈이다.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의 홍수를 통해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러나, 삶의 일상과 그 주제를 이렇게 풀어내는 작품은 정말 찾기 힘들다. 환상도 꿈도, 잠시동안의 삶의 일탈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만난다는 것은 여전히 21세기에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문화라는 이름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상실한 채, 불균형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홍상수의 경우는 삶의 일상이 소재이지만 삶의 단면을 쪼개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시선과는 구분되어 얘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리얼리즘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한국의 풍속도일 것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를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스물 초반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거울처럼 그대로 비춰주는 이런 영화를 너무나도 안본다).
오즈 야스지로는 <도쿄 이야기>에서 한 노년 부부의 여정을 통해 산업화, 도시와 변방, 핵가족화 되어가는 시대의 균열과 이해와 봉합을 보여주고 있다. 즉, <도쿄 이야기>는 산업화 시대의 가족 풍경화로 압축되어진다.
이차대전 이후의 일본은 일찍이 명치시절부터 채택했던 근대화 이후로 망가진 나라를 재건하며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는다. 한국이라든가 다른 식민지 국가들이 정신없이 산업화의 길을 걷던 것과는 달리 일본은 일찍이 서양 물질문명의 가치를 빨리 자기 것으로 흡수했다. 그리하여 전후의 재건이란 말 그대로 백지상태에서 새로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것을 재건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50년대에 전쟁을 치를 무렵, 이들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는 바로 이 지점 4,50년대의 일본이라는 공간, 특히 그곳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자신의 시선으로 잔잔하게 바라보는 작업을 보여주게 된다. <도쿄 이야기>는 바로 산업화의 과정에 놓여있던 이 시간에서 가족관계와 삶의 의미를 차분히 물어보고 있다.
다른 이들이라면 그 바쁜 시절에 왠 사치스럽고 한가로운 얘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예술의 본령이 바로 옆도 안보고 달리는 시절에 그것을 차분하고 냉철히 바라보고 되물어보고 하는 작업이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본령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미 그 시절에 일본영화의 정점을 지나는 50년대라면 일본에 있어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1년에 500편 넘게 만들어지던 그 시절, 영화가 일본의 대중문화의 한 주류로서 자리잡았던 시절, 오즈 야스지로는 생각처럼 대중의 인기를 받았던 감독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일본적인 것, 산업화, 가족의 관계, 그 시절에 있어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꾸준히 그려 나갔다. 그것은 가장 일본적이었으되 또한 보편적인 의미를 생산해 냈고 그의 영상과 의미는 아직까지 우리에게도 유효하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가족 풍경화의 모습을 새로이 보고 싶은 시절에 살고 있다.
from 율리시즈 2004.8.1
ps. 로저 에버트의 베스트 영화목록을 보고 저도 인상깊게 봤던 <도쿄 이야기>가 생각나더군요.
남도여행기 2부 올리기전에 요것부터 한번 보시길...
첫댓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모든 장면이 다 뛰어나지만), 여기 저기 자식들 방문하며 실망을 거듭하지만 그래도 모두 먹고 살만큼 건실히 살고 있고 자신들도 아무 탈없이 지내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만족해하는 시퀀스입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살고 행복한거지 뭘."
하면서 노 부부가 스스로 위안을 하는겁니다.
그리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또다른 장면은, 과부가 된 며느리에게 이제는 고생 그만하고 재혼을 해서 남처럼 행복하라는 시부모의 권유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며느리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대목입니다.
솔직히 저는, '도쿄 이야기'가 염세주의적 경향을 은근히 담고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염세주의적이고 어딘가 허무스러운 면은 저도 많이 느꼈습니다. 인상적인 면은 가족 주변부의 일상을 가감없이 담아내면서도 오즈 특유의 잔잔한 화법으로 풀어낸 점이 한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율리시즈님 이야기 보따리를 정기적으로 푸셔야 할듯요. 흥미로운게 잔뜩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