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육은 겸손하고 또 겸손한 군자니 큰 내를 건너더라도 길하다. 상에 말하기를 ‘겸손하고 또 겸손한 군자’는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기르는 것이다.[겸괘 초육]
예전에 흥사단에서 『주역』을 같이 배웠던 어르신이 “물어볼 것이 있어 찾아왔다”고 하며 『명심보감』을 꺼내 보였다. 나는 “명심보감은 잘 모릅니다”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윤박사가 모르면 누가 아냐?”고 하시며 막무가내였다. “노인대학에서 명심보감을 가르치는데, 당장 내일 가르쳐야 할 대목인데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요즘 노인들은 책을 통 안 사.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게지. 내가 출판사에 사정해서 반값으로 갔다 내놓아도 들쳐보기만 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못 치는 솜씨로 타이핑을 쳐서 인쇄해 주면 그건 좋다고 받으니까.….” 하시면서 인쇄물을 펼쳐놓으셨다. 「효행편(속)」의 손순(孫順)의 돌종 이야기였다. 인쇄물 중에 “홀연히 매우 기이한 돌종이 있어서[忽有甚奇石鍾이어늘] 놀랍고 괴이하게 여겨서 시험 삼아 쳐보니[驚怪試撞之하니] 소리가 아름다웠다[春容可愛라]”라는 대목을 짚으시며 ‘춘용’이 뭐냐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다 뒤져보아도 ‘소리, 울리는 소리, 맑은 소리,….’라고 하면서 한자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석만 하고 있어.”
“‘춘용’이 아니라 ‘용용’입니다”라 했더니, 안경을 고쳐 쓰며 보시고는 “아! 이런! ‘날 일(日)’이 아니라 ‘절구 구(臼)’가 박혀 있네. 그럼 ‘용용’이라는 말인데 더 모르겠는걸.….”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용용(舂容)’은 의성어입니다. 돌종을 치니까 ‘요옹~ 요옹~’ 하고 소리가 났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요옹~ 요옹~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가 아름다웠다’ 정도로 해석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아! 그게 그 말이야? 내가 윤박사 찾아오길 잘했지. 그게 ‘춘용’이 아니라 ‘용용’이라서 ‘방아 찧어 울리는 소리’라고 했구먼. 그 사람도 ‘방아 용’이라고만 알았지, 의성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게지. 그러니까 인터넷에 나오는 말들이, 이 사람 말을 저 사람이 옮기고 저 사람 말을 이 사람이 옮기니까, 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한 거야. 아무리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해석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 ‘의성어’라는 말을 들으니까 단 번에 마음이 뚫리는구먼. 아주 시원해.”
악서(樂書)에는 ‘금성(金聲)은 용용(맑고 경쾌한 소리)해야 하는데 잘못되면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난다(金聲舂容 失之則重).’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꼭 의성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대부분의 의성어는 ‘關關(꺼엉 꺼엉, 혹은 끼륵끼륵)’, ‘丁丁(탕탕 혹은 땅땅)’ 등등 같은 글자를 겹쳐서 표현하였는데, ‘용용’은 다른 글자로 조합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요옹~ 요옹~’하고 두 번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요오옹~’하는 맑고 경쾌한 종울림소리라는 것 아닌가! ‘입으로는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너무 단정적으로 말씀드렸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역에서는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나갈 것이다’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역을 공부하고 연구한다면서도 자랑하고 내세우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