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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영역이지만 학문적으로나 그 어떤 체계적인 접근을 하지 못했던 터라 미지의 영역으로 남기고 있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을 읽으면서 신(神)에 대한 진지하고도 심각한 사색을 시도한 지 벌써 이십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마치 덧없는 구름처럼. 그 후론 그 어떤 접근이나 시도대신, 시도라면 종교적 행위에 잠시 몸을 던진 적이 있다는 것 외에는 먹고 살기에 바쁜 일상 생활에서 다람쥐처럼 정신없이 살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책 '신'을 접했을 때 묘한 여운이 주변을 감도는 것을 느낀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될 수 없었다. 너무도 당연한 책이 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작가의 집필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일일이 소제목을 붙인 줄거리를 조금 진행하고, 줄거리 전개와 관련되는 소주제를 선택해서 교과서 처럼 설명을 늘어놓았는데, 일부분에서는 그 설명한 내용이 전혀 교과서 같지 않은 때론 황당한 해석과 공상에 가까운 내용을 늘어 놓은 것도 있고, 독자의 흥미를 바짝 끌어당길만한 주제를 발굴해서 짧은 부연을 덧붙이는 방식도 보이는데, 일전에 소설을 한동안 구성하면서 작가와 동일한 방식을 시도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에서 신(神)을 뜻하는 '엘로힘'은 단수가 아닌 복수를 뜻하는 단어로 유일신을 믿는 기성 종교에 있어서는 역설적이고도 모순적이다. (본문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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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小說家)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한마디 언급한다면 난 베르나르 베르베르같은 타입의 작가를 좋아한다. 작품을 쓰기 위해서 먼저 공부를 한다. 그 다음으로 줄거리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공부한 내용을 상상과 공상(특히 이 작품은 공상과학 소설처럼 진행되는 면이 많은만큼)을 풍부하게 조합하여 줄거리를 머릿 속에 엮어간다. 기회가 무르익으면 본격적으로 작품 집필에 몰두한다. 그렇게해서 탄생된 소설이 작가 자신의 마음에 먼저 흡족하게 되면 대개 이런 류의 작품들은 성공하게 된다.
그 외에 체험을 위해 오랜 시간 투자하는 경우도 있고, 역사 소설이나 섬세한 환경 묘사가 필요한 경우는 그 작품에 적절한 주변을 선택해서 꼼꼼히 답사하여 작품 내내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난 앞에 언급한 작가처럼 미처 알아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대해, 학생 시절 여건상 공부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한 지식을 먼저 탐험하듯 공부하고, 그것도 꾸준히 하다보면 영감이 작용해서 학문에 대한 열정을 문학을 통해 구현해 보는 일련의 작업을 시작해 보고픈 것인데, 대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은 이러한 꾸준한 연구와 학습의 결과물들이라 읽고나면 뭔가 알찬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못하게 된다면, 그래서 우연히 새로운 일을 할 기회가 생기게 되면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은가 라는 생각을 삼십대 초반에 은연중 해 본 적이 있는데 소설가라는 직업이 당장 머리에 떠오른 것은 자라오면서 책을 좋아한 나머지 무심코 마음에 새겨진 포부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문학의 다른 쟝르에도 서서히 눈을 뜨게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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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신'을 읽어가다 보면 신이 처음 우주를 창조할 때의 과정을 꼼꼼하게 경험할 수 있다. 작가는 세계 각 민족의 창조신화에 대한 지식을 두루 섭렵한 후 과학적으로 알려진 우주 기원설에 적용하여 너무 이론적이라 이해하기에 난해하고 지루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시간가는 줄 모르도록 독자를 끌어당겨 생명을 창조하는 신의 입장에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해보게 한다.
말하자면 지구촌 곳곳을 두루 여행하여 지루해진 어느 부호 여행가가 마지막으로 눈길을 돌리는 곳이 엄청난 고액이 소요되는 우주여행이듯 인간의 입장에서 모든 현상과 사물에 대해 사색의 즐거움을 만끽한 독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코스가 우주창조의 전과정이 들어있는 일종의 신성(神性) 체험 패키지 상품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혼돈인 카오스가 있고 다음으로 광물, 식물, 동물, 인간 등의 순서로 생명과 그에 걸맞는 문화와 문명들이 창조되고 발전되어 가는데 이 모든 과정을 우주의 어느 이름 모를 행성에 모인 신(神) 후보생-전생에 인간이었다가 사후 인간의 수호천사로 한동안 살았던-들이 자신의 작업으로 이루어 나가게 되는데 책장이 넘어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신(神) 후보생들과 같이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되어 창조 과정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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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문명이 자리잡기 훨씬 전인 선사시대의 토테미즘이 배경이 되는 인간 시대를 무대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즈음에서 소설 속의 신 후보생들은 가상의 '18호 지구'를 놓고 씨족별로 숭배의 대상을 동물에게서 찾도록 이끈다. 쥐의 습성과 사회 생활에서 씨족 운영의 모델을 찾는 부족이 있는가 하면 거북이, 돌고래, 개미, 말벌 등 다양한 동물과 곤충에서 각 씨족의 개성을 살린 신앙을 창출, 씨족의 운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잠시, 지금은 사라지거나 기억 속에서 많이 잊혀진 우리의 전통 토테미즘을 떠올려보았다. 가깝게는 우리 민족 전체의 시조였던 단군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물, 즉 웅녀인데 그녀는 전생에 곰으로서 살다 여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환웅을 낳은 민족의 어머니로서 우리의 습성이나 삶의 형태를 곰에게서 찾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대체로 곰은 미련하고 행동이 느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신 힘이 아주 세고 거칠 때는 야수의 왕인 호랑이도 그를 당할 수 없다. 무리를 지어 살며 겨울에 긴 잠을 잔다. 그러니까 매사에 부지런하고 성실한 우리 단군의 자손들은 곰의 특성중 하나인 미련하고 느린 부분은 버리고 살아가면서 최대의 강점일 수도 있는 인내심을 곰에게서 습득한다. 서둘지 않고 성급하지 않아 실수를 줄이고 무서운 인내심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 처음 신념을 지켜내어 결국 달성하고 만다. 동물들의 최고의 목표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 인내심은 천재의 덕목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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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마치 한 가지 화두를 인생에 정해놓고 뭔가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도승과 같은 면모를 작가 생활 중에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가 처음 작가로 입문한 이후부터 순차적으로 다뤄온 소설들의 내용들을 훑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내용들이 한 소설을 탈고하는 즉시 졸업하거나 끝나는 개념이 아닌, 주요 개념들을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소설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연관성이 있는 주제들을 놓고 즉, 뭔가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옛말에도 있듯이 꾸준히 공부하고 저축하는 놈은 이길 수가 없다고 했다. 책 표지에 실린 그의 해맑은 미소와 어린 아이와 같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며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동기도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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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적당히 호기심이 남아 있을 때가 즐겁고 재미있다. 궁금했던 모든 게 다 드러나면 당시는 속이 시원하겠지만 이내 허전함이 깃들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신의 허락없이는 절대 개봉해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어기고 열어보았다가 희망을 제외한 온갖 악이 쏟아져 세상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 후론 고통스런 세상살이에서 희망만을 간직한 채 인간들은 연명하게 되었다. 괜한 짓이 아주 고통스런 결과를 초래한 본보기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일면 상상의 나래를 펴 신과 대등한 관계를 가지는 인간의 모습을 흥미있는 여러 상황을 설정해 놓고 전개하고 있지만-인류의 전 역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설 속에서 혼합되어 전개되는 면이라든지(읽다보면 누구를, 어느 민족을, 어떤 시대를 지칭하는 지 추측이 가능하다), 신화 속의 신들을 인간이 대면케 하여 대화를 가지는 장면에서 신성함이 추락한다든지(주인공 미카엘이 마침내 신들의 왕 제우스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위엄과 권위가 사라진다), 신은 결국 인간의 상상이 만든 산물(신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신화)이라고 결론을 유도하는 장면이라든지 등등-결국은 바보 상자인 텔레비젼을 오래 보다가 상상력이 묻혀 머리가 바보가 되어버린 허망한 어느 현대인과 같이 책을 통해 모든 면을 화면 속에 전개되는 세계와 같이 바라다볼 뿐 독자가 상상할 공간을 남겨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허탈한 기분이 되고 만다.
책 속의 많은 페이지에서 작가의 세련된 지식을 활용해 인류의 역사와 문화, 종교, 문명 등에 관한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비유와 분석과 교훈적인 내용을 비춰주지만 결국에 가서는 한 편의 만화를 본 것과 같은 황당함 속으로 젖어드는 기분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것은 일면 신들을 그들의 권위와 영광 속에 내버려두고 연약한 우리 인간은 그로부터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싶은 약자의 얄궃은 변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그런데 책 속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평소 같으면 진지하거나 신성해서 괜히 움츠러들 신들과 그들에 관한 신성시되거나 역사적인 각 내용들이 평범하다 못해 만화 주인공들 사이에 나누는 대화처럼 격이 낮아져 전체적으로 불편하면서 약간은 불쾌감마저 스며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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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오랜 시간 읽지 않으면 머리가 나빠지는 것 같다. 판단력도 흐려지고 집중력도 떨어지면서 진액이 빠져나가 버린 사람처럼 흐물흐물 해지는 것도 같다. 이 책은 전편에 걸쳐 교양이 풍부해서 읽다보면 좋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누구나 가질 것 같다. 번역도 비교적 잘 된 것 같다. 잘 된 번역에 맞춤법에 맞추어 교정이 잘 되어 읽으면서 내용에 빠져들다 보면 머리가 똑바른 활자처럼 교정되고 수리가 되며 일부 보완도 되는 것 같다.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한동안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런 기분이 들었는데 어딘가 남몰래 여행갔다 온 것 같다. (0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