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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천- 델 리-럭나우-쉬라바스티-룸비니-쿠시나가르-바이샬리
-라지기르-부다가야-바라나시-아그라-마투라-델리-인천
인도 [ India ]
부처님이 태어나고, 깨닫고, 설법하고, 열반에 든 인도의 드넓은 땅은 불자들에게는 마음의 고향과 같다. 불교의 탄생지 인도는 불자로서 평생에 꼭 한번 참배하고 싶은 나라이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로 떠나보자.
인도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며 신비한 매력을 발산한다. 불교와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자이나교등을 비롯해 근세에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여러 성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종교 그룹 등의 수 많은 종교인들은 각각의 독특한 종교예술과 풍부한 정신문화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종교의 수많은 신들을 기리는 다채로운 축제가 1년 내내 펼쳐진다. 가히 축제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각양각색의 삶의 모습은 인도 순례에 멋과 흥미를 더해준다.
인도의 불교 성지
인도순례는 부처님의 주요 발자취가 남아있는 8대성지와 그 밖의 성지 그리고 불교 문화 유적 참배로 이루어진다. 8대 성지는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정각을 이룬 부다가야, 최초로 법을 설한 사르나트(녹야원), 최초의 사찰 죽림정사가 세워진 라지기르(왕사성), 유마거사의 고향이자 최초의 비구니 마하파자파티가 출가한 바이샬리, 부처님의 열반지 쿠시나가르, 금강경 설법지 쉬라바스티(사위성),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설법을 하고 내려왔다는 상카시아로 이뤄진다.
그 밖의 성지로 싯다르타 태자가 유년기를 보낸 카필라성, 가사를 받았다는 케사리아 대탑, 불교 3대 양식 중 마투라 양식을 볼 수 있는 마투라 박물관 등이 있다.
불교 문화 유적지로는 불교미술의 보고인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 탑의 기원인 산치 대탑, 최초의 불교대학 나란다대학 터, 『티벳 사자의 서』를 지은 파드마삼바바의 흔적이 남아있는 라닥, 중관사상의 대가 용수보살이 살았던 나가주나콘다,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 등이 있다.
인도는 세계 면적3,287,263㎢으로 7위, 인구1,220,800,359명으로 2위이고 카스트제도를 쓰고 있으며
부처님 성지에 갈때마다 꽃을 파는데 엄청 비싸게 파네요. 그리고 차가 내릴때, 탈때, 걸을때마다 손을 벌리는
많은 사람들 눈만 마주쳐도 합장하고 돈 달라는 사람들... 인도라는 나라는 카스트제도가 없어야 발전할 것같네요.
불교를 믿는 분들은 꼭 인도에 한번 다녀오시기를 강력추천합니다. 경이롭고 경이롭습니다.
※ 카스트제도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은 브라만교의 성직자들입니다. 이들만이 경전을 읽고 제의를 지내죠. 두번째로는 크샤트리아입니다. 이들은 왕 무사 귀족입니다. 그 다음은 바이샤로 일반 평민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드라는 노비, 천민들입니다
◈ 순례기간 : 2014년 12월15일(음:10월24일) ~ 12월24일(음:11월4일)- (10일)
15일(월)
∘인천공항 출발
∘델리공항 도착 후 호텔 투숙
델리공항
16일(화)
델리공항에서 럭나우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5시간 안개땜에 연착하여 출발
럭나우도착 후 옛 코살라국 수도 쉬라바스티(사위성)으로 이동.*사위성 참배
-수닷타장자 집터, -앙굴리말라 집터
*천불화현지-이곳에서 도솔천에 올라가셔 마야부인과 천인들에게 법을 설하셨다.
쉬라바스티로 가는 거리 풍경
쉬라바스티는 마가다국 다음으로 강성한 나라였던 코살라국의 수도로,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르셨던 사원인 기원정사가 이곳에 있었다.그 옛날 사위성이 누렸던 영광은 정글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지만, 그 성터 안에서는 앙굴리말라의 스투파와 수닷타 장자의 스투파를 만나 볼 수 있다
립나무라고 인도사람은 이나무가지로 양치 한답니다. 벌레가 생기지않고 치약도 만드네요.
여기서 잠시 짜이를 1잔 마셥답니다. 짜이는 홍차+우유+생강으로 만든차로 소화 등 몸에 좋답니다.
반야나무 : 인도의 나라나무래요.
천불화현지- 도솔천에 올라가서 마야부인과 천인들에게 법을 설하였던 장소로 도솔천하면서 한 컷
17일(수)
*기수급고독원 기원정사참배
-라훌라존자승방-사리불존자승방-우물-아난다보리수-세족지
-부처님기거처(여기서 예불)-승원터-목련존자사리탑-수보리존자 승방
기원정사 :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했던 장소로 금강경을 읽고 위에 계시는 스님께 20루피씩 보시하였답니다.
인도 불교성지중에서 기수급고독원으로 알려진 기원정사.
기원정사내에는 “아난다 보리수(菩提樹: Bodhitree)”라는 나무가 있다. 기원정사는 사위성의 급고독 장자가 크나큰 원을 세워 바사익 왕의 태자인 기타태자의 동산에 부처님이 안거할 수 있는 정사를 짓고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수닷타장자의 보시로 창건한 곳으로 부처님께서 17안거를 지내셨으며 금강경을 설하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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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동산 순례
- 부처님 탄생지, 마야데비당, 아쇼카석주
룸비니동산을 가기위해 네팔로 가는 중에 거리풍경, 시골에는 신호등이 없고요. 백미러도 1개뿐인 것이
많아요.
룸비니동산을 가기위해 네팔 소나울리국경에서 네팔군인이 검문검색하는 중, 네팔군인은 프랑스로 용병을
간답니다. 굉장히 용맹하고 가문의 영광이래요.
룸비니동산 : 부처님의 탄생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친정으로 가시던 중 룸비니에서 몸을 푸신 마야데비당
이 있습니다.
카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태자로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곳이다. 마야부인은 당시의 풍습에 따라 출산차 친정 콜리성으로 가던도중, 이곳에서 싯다르타 태자를 낳았다. 룸비니는 부처님이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전법을하고 길에서 열반에 든, 위대한 길의 삶을 시작한 곳이다. 부처님이 이생에 태어난 것이 첫 번째 탄생이라면, 생로병사의 해법을 찾아 카필라성 동문 을 넘어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 두 번째 탄생일 것이다. 동문에 앉아 부처님의 출가 정신을 생각하다 보면, 불법에 의지해 바른 삶을 살겠다는 서원이 굳건해진다.
이처럼 순례는 부처님의 거룩한 행법을 조금 이나마 따라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네팔에 위치한 룸비니는 유네스코에 지정된 세계유산이다. 아기부처님이 첫발을 내디딘 자리를 기리기 위해, 3년전 복원불사를 했다. 이곳에 서면 부처님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전율과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룸비니에는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왕 석주(石柱)가 남아있다. 석주에는 기원전 250년 경 부처님의 탄생지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아쇼카왕이 방문했고,이 지역 백성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BC 249년 당시 인도를 통일했던 아쇼카왕이 룸비니에 세운 돌기둥. 2천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불교의 역사와 부처님의 탄생의 역사를 증명하듯이 당당하게 서 있다. 돌기둥에 세겨졌던 마상(馬像)은 사라졌지만 당시의 아쇼카왕이 참배하고 세운 돌기둥에는 [카로슈티] 문자로 기록된 4줄이 세겨져 있다. 이로 인해 전설속의 탄생지가 아닌 실제 역사적 사실임을 아쇼카 석주가 증
명하고 있다. 19세기말에 돌기둥의 부러진 상이 발굴됨에 따라 2천 5백년 이전의 싯타르타 탄생지임이 확인된 것이다. 만일 룸비니 동산의 아쇼카 석주가 발굴되지 못했더라면 부처님의 탄생지가 룸비니의 어디쯤인지 알수가 없어 전설속에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18일(목)
호텔조식 후 쿠시나가르로 이동
*열반지 쿠시나가르 참배
-사라쌍수,
-열반하신 열반당:6.1m열반상 참배
-열반하신 후 7일후 다비를 올린 다비탑
*열반지 쿠시나가르 참배를 하고 부처님께 가사를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눈물을 멈추지 않네요.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르까지는 차로 다섯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부처님 재세시에는 무척 먼 길이는데, 부처님께서는 열반으로 가는 그 마지막 길을 3개월 동안 걸어서 가셨다. 쿠시나가르에서 부처님께서는 자등명 법등명의 마지막 법문을 하신 다음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현재 쿠시나가르에는 미얀마 스님들이 1920년대에 세운 열반당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이 열반당에는 5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부처님의 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길이 6.1m로 부처님의 상호는 보는 각도에 따라 세 가지로 다르게 보인다. 11C에 조성된 열반당 기단부분엔 세분의 상이 모셔져 있는데 왼쪽부터 마지막 공양녀 “춥다”, 마지막 제자 “시봉”, 아난다 순으로 되어 있다.
19일(금)
*싯다르태자가 삭발하시고 마지막 릿차비족과 작별을 하던
케사리아대탑참배
유마거사의 고향 바이샬리행
*유마거사고향 바이샬리*순례
-아쇼카 석주 중 가장 완벽한 사좌두 석주
-아난다사리탑,
-원왕봉밀지,
-부처님 마지막 안거처
-비구니스님 기거처 및 승원터
-부처님 마지막 안거를 지내신 장소
-암나팔리망고동산 파트나를 경유하여 라지기르 도착
케사리아 대탑 : 부처님의 발우가 묻힌 곳으로 아직 발굴 중
부처님 발우를 모시고 조성된 케사리아 스투파는 릿차위족 사람들이 부처님과 이별하면서 받은 발우를 봉안하여 탑을 세웠고, 아쇼카왕에 의해 증축되었다. 이후 승가왕조와 쿠산왕조를 거치면서 규모가 점점 확대되었으나 이슬람의 침입으로 탑은 폐허가 되었고 1931년 지진으로 상륜부가 파괴되면서 그 모양이 허물어졌다. 케사리아 대탑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불탑으로 여러층으로 이루어진 다층탑이나 아직도 땅속에 묻혀있는 하층 기단부가 완전한 발굴이 되지 않았다. 기단부는 계단형으로 되어 있으며 각층마다 감실을 만들고 불상이 모셔서 있으나 대부분 목이 떨어져나갔거나 몸체부분이 없어지고 하체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출처] 인도여행기 (20131208~20131218) - 5 |작성자 안동한올
아난타 사리탑 :
마하파자파티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자리에 비구니 승원 터가 남아 있는데 12개의 방이 있는 (卍)자 모양의 사원이다. 가운데 큰강당을 중심으로 사면에 3개씩으로 굽타시대에 비구니 스님들을 위하여 건축되었던 것으로 지금은 벽돌로 만든 기단부분만 남아있다. 아난다 사리탑과 아쇼카 석주를 향하여 연못 건너편에서 우리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를 올렸다. 너무나도 많은 유적과 유물이 훼손되었으며, 그것을 찾아 관리하기도 힘든 인도에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다
[출처] 인도여행기 (20131208~20131218) - 5 |작성자 안동한올
리차비족이 세운 도시였던 바이샬리가 나온다. 바이샬리에는 최초로 세워진 불사리탑의 유적이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그 사리는 여덟 개의 나라에 나누어졌는데, 그 가운데 리차비족에게 분배된 사리가 이곳의 사리탑에 모셔졌다. 바이샬리에는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아쇼카왕의 석주로 남아 있다. 이 석주 위에 있는 사자상은 부처님이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 쪽을 바라보고 있다.
바이샬리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안거를 보내면서 자신의 열반을 예고했던 곳이다. 경전에서는 부처님께서 입멸지인 쿠시나가르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가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부처님 사후에 바이샬리는 불교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불교교단이 10사에 대한 논쟁을 둘러싸고 보수파인 상좌부와 진보파인 대중부로 분열하게 되는 제2차 결집이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20일(토)
*법화경 설법지 라지기르순례
-영축산:사리불․아난다수행동굴-부처님향실-지바카병원터
-빔비사라왕 감옥터-
-불교계 최초의 절 죽림정사이동
*5세기 굽타왕조때부터 융성한 최초의 불교대학
나란다대학 순례
-사원-승방-강의실-키친-사리불사리탑-우물 등
*전정각산으로이동-고행림,수행하신 유영굴,수자타아카데미
*니련선하강 참배. 부다가야로 이동
나란다대학에 스님들이 기숙사의 한 방입니다.
나란다대학 : 5세기 굽타왕조때부터 융성한 최초의 불교대학
나란다대학은 탁실라, 비끄라마실라와 함께 3대 불교대학이었다. 굽타왕조가 다스리던 5세기경에 조성되기 시작한 나란다대학은 입학이 무척 어려웠지만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나라와 백성들의 보시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용수(龍樹, Nagarjuna), 무착(無着, Asanga),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 현장과 같은 대학자와 고승들 역시 이곳에서 수학했으니, 이곳의 학문적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성기의 나란다대학은 가로 10km, 세로 5km의 면적에 일만여 명의 스님들이 공부했다. 하지만 11세기에 이르러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 인해 불타고 말았는데, 그 불길이 6개월 동안 보였다고 한다.
인도 어느곳이나 우리가 내리면 남녀노소할 것없이 많은 인원이 이렇게 따라다니며 석가모니불을
외치면서 원달러를 하네요. 우리모두 인도루피를 바꿔서 주기도 하고 사탕도 주고 마후라, 모자,
등등 하지만 끝이 없네요. 내릴 때 받고 또 따라와서 받고 한사람 주고 나면 금방 많은 인원이
모여서 손에 있는 것 낚아채기도 한답니다. 주머니 조심, 가방조심 등
점심 : 로띠를 화덕에 굽는 모습, 카레를 싸서 밥으로 먹어요.
난은 난로에 크게 구어서 파이처럼 조각으로 나오고요. 로띠는 화덕에 굽는 거고요.
기름에 튀기는 것 등 종류가 많아요. 먹을 만해요. 맛있어요.
죽림정사 : 불교계 최초의 절로 저쪽편에는 이슬람교의 무덤이 있어요. 이슬람교가 지배할 때 다른 신을 억압
하기위해서래요.
불교계 최초의 절이다.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기에 죽림정사라 한다. 다른 유적지에 비해 발굴이 거의 되지 않은 상태다. 입구의 작은 법당과 스님들 목욕터가 다라 할 수있다. 허나 정사의 이곳 저곳을 거닐다 보면 부처님과 1250제자들의 여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 30분이상 머물기를 추천한다. 현재 태국스님 한 분이 머물면서 복원에 큰 뜻을 두고 계신다 한다.
영축산 법화경을 설하신 장소로 욜라가는 길. 독수리모양의 바위들이 모여있어요.
영축산 : 법화경 설법지에서 우리도 이렇게 스리랑카처럼 참배하고 법화경을 읽었습니다.
죽림정사와 영축산이 있는 라지기르 왕사성으로 잘 알려진 라즈기르는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초청을 받은 부처님께서 1,000여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가셨던 곳이다. 빔비사라왕의 정성어린 지원과 신심에 힘입어 불교교단은 왕사성에서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불교 최초의 사원이었던 죽림정사와 『법화경』 의 배경이 되는 영축산 역시 이곳에 있다. 영축산 정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던 수행처인 향실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대(臺)가 있다. 중국에 불교를 전한 가섭마등과 축법란은 오늘날 중국의 오대산이 인도의 영축산과 닮았다고 해서 오대산이라 했다
고 한다. 이외에도 라즈기르에는 왕실과 부처님의 주치의였던 지바카의 병원 터, 아들인 자타사트루에게 감금된 빔비사라왕이 최후를 맞이했던 감옥 터가 있다.
수자타 아카데미 : 우리나라 법륜스님이 지으신 학교로 검은옷입은 여자분이 교장선생님이고요. 중학교까지
있으며, 병원도 있고 우리나라 지원금으로 운영한답니다. 인도정부는 한번도 도와주지않고요. 가지고
갔던 학용품과 보시금을 조금 내고 왔답니다.
21일(일)
*성불지 부다가야순례
-성불을 기념한 탑 마하보디대탑,
-성불을 위해 앉으셨던 금강좌와 그 위 성보리수,
-7.7일 지내신 장소들
1주-금강좌/ 2주-보리수를 응시하시고 축복을 주신 자리
3주-포행자리/ 4주-보석처럼 오색이 발한 장소
5주-법구경설법지/ 6주-무칠란다 연못
7주-라자야타나나무 전법의 길을 택하신 장소
바라나시로 이동
마하보디대탑에서는 모바일 휴대 금지 및 카메라휴대시 추가 입장료 지불입니다
마하보디대탑 부처님이 성도하신 곳으로 7장소가 있고요. 여기서도 부처님께 가사를 올렸습니다.
가야성외곽의 고행림에서 고행하며 극도로 쇠약해진 싯다르타는 니련선하(네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한 후 수자타의 공양(우유죽)을 받는다. 공양을 받고 기력을 회복한 싯다르타는 니련선하 강변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전생의 선업과 수행의 힘으로 위대한 성불을 이루었다. 성불한 후 일곱곳에서 7일씩 정진을 하셨는데, 지금도 그 자리가 여법하게 보전되어 있다. 이곳은 성지 중에서도 최고의 성지이다.
부처님처럼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본래 불성을 찾아 명상에 잠겨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최초의 설벌지 녹야원 순례
-최초설법지 다메크스투파,
-최초안거지, -아쇼카석주
녹야원내에 있는 다메크스투파 : 부처님의 초전 법륜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탑
녹야원의 일몰광경
녹야원 : 최초의 설법지입니다.
-사르나트박물관:사르나트불교양식→모바일 및 카메라휴대 금지입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간다라예술품 부처님을 보았는데 앞면은 미소 좌측은 명상, 우측은 생각하는 모습이래요
22일(월)
이른아침 항하사에서 일출감상
-인도인의 어머니강 겐지스강 ,
-여러 경전에 많은 수를 나타낼 때 비유되는 항하사 유람
바라나시출발 아그라도착 후
*세계 7대불가사의 타지마할
-사자한의 부인 뭄타즈마할을 위한 릉 및 정원
갠지스강 : 빨래하는 모습
인도인 성수 바라나시 갠지스강변에 도착하는 순간 어느덧 과거시대 종교의 시대에 빠져버린다. 장엄하게 흐르는 저 강물. 그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수줍움 없는 벌거벗은 시신 그 위에 앉은 까마귀. 아랑곳 않고 성수에서 목욕재계하는 수천 명의 순례자들 속에서 그저 멍할 따름이다
나룻배를 타고 유유히 저어 항하사 모래를 한줌 싸아 다시 유람을 하다 보면 멀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가까이 가면 화장하는 곳이 보인다. 장작위에 시신을 올리고 다시 장작을 쌓은 후 의식 그리고 불을 지핌.육신은 한줌의재와 그리고 연기로 사라질때 육신과 삶의 의의를 찾아 깊은 상념에서 헤메인다.
갠지스강 화장터로 가는 길에 새들이 갈매기를 줄려고 떨어진 모이를 먹기에. . .
화장터는 사진촬영금지입니다.
갠지스강에서는 아침 일찍 성직자들이 목욕하고 또 빨래도 하고 화장도 하며 인도인에게는 성스러운 곳입니다.
타지마할 : 세계7대 불가사의로 사쟈한의 부인 몸타즈마할의 능과 왕의 능이 있으며 보석으로 지어있어
햇빛에 따라 여러가지색깔로 보임. 강력한 황제의 명에 따라 22년간 최고의 장인이 정성을 들여 1653년
완공하였으며 이 장인들은 다시 더 아름다운 건물을 짓지못하도록 죽였다고 하네요.
샤자한 황제는 부인을 전쟁터에 데리고 다닐 정도로 사랑했으나. 그녀는 1631년 황제의 14번째 아들을 출산 한 뒤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무갈제국의 샤자한 황제가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마할의 죽음을 애도하여 조성한 묘소로 1633년 착공되어 22년간 공사가 계속되었다. 65m 높이의 대리석 건출물로 페르시아. 이집트. 이태리 등에서 초빙되어어온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2만여명의 인부와 코끼리 1,000마리를 동운하여 중국의 비취. 버마의 루비등 세계 각지의 보석으로 장식. 타지마할은 태양의 밝기에 따라 건물 자체의 색이 변하는데 특히 달밤에 비치는 타지마할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타지마할 궁앞에서 일몰을 보며...
23일(화)
호텔조식 후
*무굴제국의 철웅성 아그라성
(악바르,자항기르,샤자한궁 및 주요기관)
*인도3대미술 마투라양식의 보고 마투라박물관관람
델리로 이동 석식 후 공항으로 이동
델리출발
아그라 성에서 다람쥐 모이를 주니 받아먹는 모습
아그라성도 보석으로 되어 있는 궁전이 있어요.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등
아그라성 : 무굴제국의 철웅성으로 악바르, 자항기르, 샤자한궁 등 3궁으로 되어 있음
미투라 박물관 - 카메라, 모바일 휴대 금지. 철저한 검문 검색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았습니다. 미얀마에서 보내준 금빛 탑 속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들어있었구요.
금빛, 은빛 오색영롱은 아니었지만 더 숙연하고 감동먹고 참배를 하였답니다.
24일(수)
홍콩도착후 (07:45) 인천국제공항도착
첫댓글 인도 성지순례 가장 멋진 여행 잘다녀
왔습니다. 두문불출하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