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마다 유난히 애착을 갖는 소재가 있다. 도상봉의 백자 달항아리, 박수근의 나목과 여인, 김창렬의 물방울, 이우환의 선과 점 등이 대표적이다. 이 특별한 소재는 화가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불행한 시대에 '기러기 아빠'로 생을 마감한 이중섭(1916~1956). 그에게도 아주 특별한 소재가 있다.
먼저 사랑하는 가족이다. 6·25전쟁으로 고생하던 일본인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 처갓집으로 보낸 뒤, 그는 애틋한 그리움을 물감삼아 가족을 마르고 닿도록 그렸다. 엽서화 은지화 유화 등 가족이 등장하지 않은 그림이 없을 정도다.
또 소가 있다. 해방 전부터 이중섭은 '소를 잘 그리는 화가'로 통했다. 추사체 같은 힘찬 붓질로 조형된 소들은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듯 강렬하다. 미술계에서 그의 소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그 소들은 절규하거나 기진맥진하거나 저돌적인 체형을 하고 있다.
가랑이 사이의 뜨거운 비밀
만약 고환이 없거나 감춰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처럼 힘이 없다. 생동감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일부러 고환을 강조한 것 같다.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강건한 뒷다리의 포즈다.
패션모델들은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미끈한 각선미로 최상의 포즈를 취한다. 이중섭의 소도 마찬가지다. 뒷다리의 포즈가 예사롭지 않다.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자세 같다. 소들은 한결같이 뒷다리를 한글자음인 '시옷(ㅅ)'처럼 하고 서 있다. 즉 뒤로 뻗은 오른쪽 다리와 앞으로 굽힌 왼쪽 다리가 서로 어긋난다. 벌어진 다리와 다리 사이를 최대한 비워두었다. 왜 그랬을까? 물론 동작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한 조형적인 구성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고환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자세라 하겠다. 황소만 그리고자 했다면, 굳이 고환을 노출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표현이 가능하다. 게다가 고환을 잘 보여주려는 듯이 꼬리까지 치켜들었다. 고환의 표정도 심상치 않다. 힘이 느껴진다. 밀가루 반죽처럼 축 처진 모양이 아니다. 비스듬한 각도로 단단하게 매달려 있다.
정욕으로 그린 쓸쓸한 에로티시즘
그렇다면 이중섭은 왜 고환을 '표나게' 드러낸 것일까? 여기서 원로화가 정점식 화백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이중섭과 가까웠던 그의 회고에 따르면, 이중섭의 소는 해방 후 '미노타우로스'로 변해간다. 미노타우로스는 하반신이 사람이고 머리가 소인 신화 속의 괴물로서, 정욕을 상징한다. 이중섭은 가족과 헤어지면서 자신의 정욕을 불태울 대상이 없어졌다. 그것이 소 그림과 미노타우로스 그림으로 표출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다. 더욱이 이중섭은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았다. 끓어오르는 정욕을 아무데나 배출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림만이 유일한 출구였다. 에로티시즘과 관련된 이런 견해는 가랑이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고환을 예사로 봐 넘길 수 없게 한다. 현재 제작연도가 확인되는 소 그림은, 대부분 1952년 부인과 두 아들이 일본으로 가고 난 이후에 그린 것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출구인 은지화는, 거의 부인과 아이들이 알몸으로 어우러진 음화(淫畵)들이다. 이런 사실들도 원로화가의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황소로 변한 한 사내의 초상
황소에 이중섭을 오버랩 시켜보면, 섬뜩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것은 수컷으로서 외로움에 사무친 한 사내의 처절한 몸짓이다. 마치 인간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처럼 그는 황소가 되어 독한 그리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가랑이 사이에서 고환이 뜨겁게 빛난다.
약력=전 월간 미술세계 기자, 편집장과 월간 '아트프라이스' 편집이사. 현재 미술교양지 격월간 '이모션' 편집인이자 미술전문출판사 (주)아트북스 대표이사.
그런데 소 그림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부위가 있다. 바로 수컷의 상징인 '고환'이다. 소의 역동성은 고환의 각도로 인해 더욱 격렬해진다. 고환이 거세된 이중섭의 소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렇다면 혹시 이중섭의 무의식이 고환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또 고환의 미묘한 각도와 이중섭의 심리 상태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